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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가 바깔로레아에서 배울 것은

[김제완의 '좌우간에'] 좌우 이념은 흑백논리가 아니다

"철학은 세계를 바꿀 수 있는가." 철학은 세계를 바꿀 수 있을 것 같기고 하고 없을 것 같기도 하다. 철학은 힘없는 관념에 불과하지만 거대한 현실세계를 바꾸기도 한다. "꿈은 필요한가?" 도전 가능한 꿈은 인생을 활기있고 건강하게 하지만 현실적으로 실현불가능한 꿈은 인생을 고문할 수도 있다. "예술 작품은 반드시 아름다운가?" 예술은 아름다움을 추구하지만 현실을 고발하는 작품은 아름다움만을 추구하지는 않는다.

프랑스 바깔로레아 시험문제 몇 개를 소개했다. 이 문제들의 공통점은 양면의 진실이 담겨 있다는 점이다.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어서 시험 출제자는 학생들이 두 가지의 진실 사이에서 방황하도록 인도한다. 왜 이런 문제를 출제하는 것일까.

프랑스에서 선거를 하면 좌파와 우파 중에 어느 쪽이 이기든 52대 48의 비율로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지난 5월 대통령선거에서도 이와 비슷한 비율로 사회당후보가 이겼다. 국민 중에 좌파 지지자와 우파 지지자가 절반씩 된다는 말이다. 마치 남한 사람과 북한 사람이 함께 모여 사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고등학교 교실에는 선거에서 좌파를 찍을 예비 유권자와 우파를 찍을 예비 유권자가 절반씩 앉아 있는 셈이다. 이들을 한 교실에 모아놓고 철학을 가르친다면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 어떤 교육방법이 필요할 것인가. 우파정권이 들어서면 우파교육을 좌파정권이 들어서면 좌파교육을 시킬 것인가. 권력이 교육을 장악해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후진국에서나 있음직한 발상이다.

두 가지의 상반된 세계관을 갖고 있는 국민들이 공존하려면 좌우라는 가치를 동시에 가르칠 수밖에 없다. 학생들은 좌우의 길항작용과 긴장 배척등 양자 간의 관계도 학습하게 된다. 무엇보다 진실은 하나가 아니라 두 가지라는 사실을 배우고 그 두 가지 사이에서 고민하는 훈련을 받게 될 것이다. 교실에서 늘 한 가지만 배워온 우리에게는 이런 상황이 익숙하지 않다. 바깔로레아는 이런 조건에서 탄생한 것이다. 결코 청소년들을 위한 두뇌체조용 퀴즈가 아니다.

시험문제의 답이 늘 두 가지로 갈리는 것은 좌파 우파의 관점에서 도출되는 견해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답이 어느 하나일 수 없다. 답안 채점자는 작성자의 일관된 논리력과 근거가 적절한지를 볼 뿐이다.

이런 훈련을 받은 학생들은 어느 한쪽을 선택하더라도 선택하지 않은 건너편에 무엇이 있는지 잘 안다. 그쪽에도 장점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래서 이쪽이든 저쪽이든 극단으로 맹목적으로 치우치지 않는다. 이것은 전적으로 옳고 저것은 전적으로 그르다는 흑백논리에 빠지지 않는다. 대부분의 경우 중간에서 약간 왼쪽이나 오른쪽에 진실이 있다는 것도 안다. 그래서 중도우파나 중도좌파의 가치관을 갖는 국민이 다수를 점한다. 이렇게 해서 좌우 균형이 잡힌 시민들이 만들어진다. 불현듯 우리도 이런 교육을 꿈꿀 때가 됐다는 생각이 든다. 언제까지 분단체제에서 반쪽이로 살 것인가.

좌우 사이의 거리가 아주 넓기 때문에 중간에 몇 개의 표지판 또는 안내판이 설치돼있다. 지난 프랑스 대선을 통해 알려졌듯이 네 개의 현실정치세력이 있다. 이 정당들은 극좌 중도좌 중도우 극우에 대응한다. 이들 네 개의 표지판 사이에도 많은 생각의 지점이 있다. 예를 들어 중도좌파인 사회당 안에 사회당좌파 사회당우파라 불리는 사람들이 있다. 이와 같이 해서 인류의 머리를 지나쳐간 거의 모든 사상들이 좌우라는 1차원의 이념 좌표에서 자기의 지점을 갖게 된다.

안철수는 진보 보수, 좌파 우파 구분에 대한 강한 저항감을 표해왔다. 그는 진보 보수를 이거 아니면 저거라는 흑백논리로 보는 듯하다. 중도좌와 중도우는 없고 극좌와 극우만 큰소리를 내며 대립해온 우리사회에서는 그렇게 생각할 만도 하다.

지난달 출간된 "안철수 He, Story"의 저자 박근우는 그의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그는 10년 동안 안철수연구소의 커뮤니케이션 팀장으로 일했다. "더 이상 구시대의 산물인 편가르기식 흑백논리를 후세에 물려주지 말아야 한다. 자라나는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은 상식이 통하는 대한민국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진보 보수, 좌파 우파의 대립과 이로 인한 소모적 갈등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말로 들린다. 흑백논리가 잘못된 것이라는 사실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그런데 그 책임을 좌우 이념에 전가하는 것이 옳은 태도인가. 이념이 무슨 죄인가. 이념을 악용하는 사람들이 문제지. 그것을 판별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무지와 오해가 문제 아닌가. 다시 말하지만 좌우 사이에는 수많은 선택의 지점이 있다. 좌우 이념이 곧 흑백논리가 아니라는 말이다. 흑백논리라는 목욕물을 버리다가 이념이라는 아이까지 버리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안철수는 지난해 여름의 청춘콘서트에서 상식과 비상식이라는 새로운 이념을 제시했다. "굳이 나누어야 한다면 보수와 진보가 아닌 상식과 비상식으로 나누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제 누군가 물어보면 '저는 상식파인데요'라고 말하려고 한다."

이 발언 직후에 옆에서 말을 거들어주던 박경철은 상식과 비상식을 이렇게 설명한다. "배고파 굶어 죽어 가면 살려야 한다. 다리가 아파서 절뚝거리면 부축해야 한다. 이게 상식이다. 상식과 비상식으로 바라보고, 틀 속에 자기를 가두지 않는 청년들이 되면 좋겠다. "
▲ 안철수 서울대학교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시골의사 박경철 씨와 함께 2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청에서 열린 '청춘콘서트'에 참석해 특강준비를 하고 있다. ⓒ뉴시스

이 시대를 사는 사람치고 상식과 비상식이 이념에 대한 염증에서 나온 것임을 모를 사람은 없다. 그러나 안철수는 상식에도 두 가지가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자본가의 상식 노동자의 상식이 있고, 좌파의 상식 우파의 상식이 있지 않은가. 진보 보수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치지만 결국 손오공의 손바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안철수가 대학생들에게 진보 보수 이념에 부정적인 발언을 계속하는데 대해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이념에 대한 거부감을 왜 대를 이어 세습시키려 하나. 서구에서는 좌우 이념이 세상의 진실을 찾기 위한 유용한 도구로 쓰인다. 르몽드 신문의 지면에 가장 많이 보이는 단어는 좌와 우이다. 이달 중에 안철수의 정치 사회 분야 에세이가 출간된다고 한다. 현재 막바지 원고를 작성하고 있다니 이런 문제에 대한 고뇌도 담겨지길 기대한다. 바깔로레아가 주는 교훈을 숙고해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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