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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규 명리학 <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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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규 명리학 <156>

우리가 사는 한반도 (2)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한반도는 아주 오래 전에 바다였고, 동해는 육지였다고 한다. 그러다가 한반도가 융기하고 동해가 가라앉게 된 것은 지질학자들의 추정에 의하면 대략 6천5백만년도 더 된 일이라고 하니 지구상에 인류의 선조가 생겨나기 전의 아득한 일이다.

그렇다면 이런 한반도에 우리들의 조상들이 옮겨와 살기 시작한 것은 언제 쯤이며, 또 어디에서 왔을까? 이런 질문은 어쩌면 영원한 수수께끼로 남게 될 가능성도 있다. 환단고기와 같은 책도 있지만, 신빙도에서 아직은 떨어진다. 하지만, 우리 조상들이 어디에서 왔다는 것을 알려주는 적지 않은 단서들이 남아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기로 한다.

우리나라의 무속은 특이하게도 남무(男巫)와 여무(女巫)가 모두 있다. 지구촌을 통 털어 이런 경우는 아주 드문 경우이다. 이른바 박수무당이라 부르는 남무는 한반도의 북쪽 전승이고, 여무는 남쪽 전승이다. 이는 우리 조상이 반도의 북부에서도 왔지만, 바다 건너 남쪽에서도 왔다는 점을 말해준다. 일본의 경우, 남방의 전승인 여무의 전통을 지녔다.

또 하나 재미난 점은 음식의 간을 맞춰주는 간장만 해도 우리는 특이하다. 간장은 크게 나누어, 콩장과 젓갈장이 있는데 우리의 경우 두 가지 모두 즐겨먹고 있다. 여기서 콩장은 북방 문화이고, 젓갈장은 남방 문화이다. 젓갈류가 입맛에 맞지 않는 사람들은 태국이나 베트남, 캄보디아 등지의 음식을 즐기기가 어려운데 모두 젓갈로 간을 하기 때문이다.

이런 단서들을 놓고 볼 때, 우리는 남방 아시아인과 북방 아시아인들을 모두 선조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일부 이설도 있긴 하지만, 제주도의 돌하루방은 궁극적으로 남방 아시아의 전통이라 하겠다.

그리고 또 재미난 점이 있으니 바로 솟대다.

솟대란 나무로 만든 새, 주로 오리나 기러기 등을 장대 위에 얹어놓고 마을 공동체의 안녕과 행운을 기원하는 오래된 우리의 풍속이다. 그런데 이 솟대란 것이 우리 조상들이 어디에서 왔는가를 알려주고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상상력을 발휘해 보기로 하자.

먼 옛날 빙하기가 끝나갈 무렵, 기온은 여전히 매섭고 차가웠다. 아마도 1만년도 더 전의 일로 여겨진다. 당시 인류는 신석기 문명을 열어가고 있었다. 당시 북방 아시아에 살던 사람들에게 가장 반가운 것은 따듯한 햇빛이었을 것이다.

당연한 일이지만, 햇빛은 봄이 되어야 길어지고 따뜻해진다. 당시의 우리 선조들은 봄날이 되면 해도 길어지지만 그 때쯤이면 겨우내 없어졌던 새들이 돌아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지금의 기러기나 오리 종류였다.

그러자 그들은 새야말로 태양의 사자(使者)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계절의 순환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북방의 우리 선조들은 아무튼 새가 돌아오면 햇빛이 길어지고, 그럼으로써 살기 좋은 나날이 온다는 것을 믿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런 시간들이 계속되면서 우리 선조들은 다시 추워지는 계절이 되어 새들이 어디론가 날아가 버리면 또 다시 해가 길어지는 나날이 온다는 것을 보장할 수 없었기에 따듯한 날이 돌아오기를 기원하는 마음에서 장대 위에 나무로 깎아서 만든 새들을 올려놓기 시작했다. 일종의 기원이고 바람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솟대였다.

그런데 겨울이 되면 새가 떠나가고 봄이면 돌아오는 지역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한반도가 아니다. 한반도의 경우, 봄이면 새가 돌아가고 겨울이 되어야 북쪽에서 철새가 돌아온다. 다시 말해서 봄이면 태양의 사자로서 철새가 돌아오는 곳은 한반도가 아니라, 아시아 북쪽의 땅인 것이다.

솟대 신앙을 가졌던 우리의 선조들이 살던 곳은 따라서 한반도가 아니라 북쪽의 추운 지역일 것이고, 그들이 남하해서 한반도에 정착한 뒤에도 솟대 신앙을 그대로 지켜나갔다고 봐야 한다.

솟대는 우리 민족의 원시신앙으로 잘 알려진 소도(蘇塗)와 깊은 관련이 있다. 어쩌면 솟대가 소도일 것이며, 햇빛이 돌아오기를 기원한다는 것은 풍요와 다산의 상징으로서 신성한 장소였던 것이다.

나아가서 저번 글에서 언급했듯이 새와 태양을 신앙의 대상으로 하던 민족들을 통 털어 중국 역사책에는 동이(東夷)사람이라고 되어있다.

이 솟대와 새, 그리고 태양에 관한 신앙, 고구려의 동맹이나 부여의 영고와 같은 종류의 신앙은 따라서 북방 아시아 사람들의 공통된 문화인 것이고, 우리 선조의 주류는 북방 아시아계임을 말해주고 있다.

하지만 지금 한반도에 살고 있는 우리 민족의 원류는 북방과 남방 아시아인들이 골고루 섞여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기마민족설이나 북방 아시아 도래설 등이 지나치게 강조되면 그것은 도그마가 되고 이데올로기가 되어 자칫 민족주의가 지니는 부정적인 면이 강조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반도의 기운을 음양오행으로 표현하면 갑자(甲子)가 된다. 유라시아 대륙의 동단에 있기에 갑목(甲木)이 되고 북쪽에 처해 있기에 자수(子水)가 되니 갑자인 것이다.

언젠가 이야기한 적이 있지만, 우리나라를 상징할 수 있는 것은 무궁화가 아니라 송백(松柏)이라 여긴다.

송백 중에서 특히 잣나무는 한반도와 만주, 우수리 강 일대와 일본이 원산지이며, 소나무는 한반도의 대표적인 수종이니 바로 우리 민족과 함께 하는 나무인 것이다.

우리 민족의 역사는 발해만 일대에서 시작한 중국의 은(殷)과 그 후예인 연(燕)과 제(齊), 그리고 단군 조선과 그 후예인 고구려와 부여, 그리고 백제, 신라, 또 다른 갈래인 발해와 여진의 금(金)제국, 또 남방 아시아 문화의 유입으로 생겨난 가야, 멀리는 오늘날 일본의 고대 왕조들이 바로 그것이다.

그것은 발해만 일대, 즉 산동과 요동반도와 만주, 한반도, 일본 열도를 포함하는 하나의 문화 공동체로 보지 않으면 우리의 역사는 결코 이해되지 않을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한자(漢字) 역시 중국 서부 내륙의 사람들이 만든 것도 아니고, 은과 동이 사람들이 만들어낸 것이기에 따지자면 한글과 더불어 우리의 문화유산이라고 본다. 필자는 한자가 우리말과 깊은 연관이 있다는 증거를 가지고 있다. 예를 들면 저번 글에서 제(齊)가 나라 이름 제가 아니라, 원뜻은 가운데라는 뜻이며, 그것의 더 원뜻은 땅이라고 한 것이 그 일례이다.

그 외에도 필자는 초기 한자 천여자의 원 의미가 우리말의 원류와 같이 한다는 것을 연구를 통해 알아내었다. 이 분야는 언젠가 이에 대한 연구 결과를 논문이나 책으로 발표할 생각이다.

음양오행 역시 동이 사람들의 창안이기에 중국 서쪽의 주(周)문화에서 생겨난 주역(周易)과는 그 사상이나 원류가 다르다. 나중에 후한(後漢)대에 이르러 중국인들은 주역과 음양오행을 한데 섞어버린 결과, 오늘날 음양오행이나 주역이 한 뿌리인 줄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음양오행 사상이 발전하는 데 있어 중국인들의 공헌이 컸지만, 따지자면 원래 우리 것이다.

그리고 우리나라를 갑자(甲子)라고 했는데, 갑자는 육십갑자 중에서 가장 으뜸에 오는 코드라는 사실도 알려드리고자 한다. 무슨 말인가 하면, 기록이 없는 선사(先史)시대라서 그렇지만 어쩌면 인류 문명이 시작된 곳이 바로 이곳 한반도와 만주, 발해만 일대였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이다. 최소한 음양오행의 철리에서 보면 그렇다는 얘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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