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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규 명리학 <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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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규 명리학 <140>

되돌아 본 러일 전쟁 (1)

올해는 구한말 우리의 운명을 결정지었던 러일 전쟁이 발발한 지 100 주년이 되는 해다. 역사에 관심이 많은 필자는 그런 까닭에 관계된 책을 다시 읽게 되었고, 새로 나온 책들도 읽으면서 당시의 일을 음양오행으로 살펴보았다.

그 중에서 특히 오늘은 러일 간의 투쟁을 사실상 결정지었던 전투, 바로 대한해협에서 벌어진 이른바 쓰시마 해전을 음양오행을 써서 살펴보았다.

러일 전쟁은 조선을 누가 먹느냐를 놓고 양국간의 기세 대결이 전쟁으로 비화된 사건이었다.

전쟁은 1904년 갑진(甲辰)년 2월, 병인(丙寅)월에 발발했다. 갑진, 병인, 이 글자들만 보아도 일본이 승리할 것을 이미 충분히 알 수 있다. 을목(乙木)의 일본이 갑진(甲辰)에 힘을 얻고 병화(丙火)를 보니 승리가 보장되어 있다.

그리고 병화(丙火)는 나중에 보면 알게 되지만 일본이 공세를 취할 때에는 언제나 이 글자가 붙게 된다. 을목이 병화를 만나면 이를 상관(傷官)이라 하는데 최대한 힘을 쓴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초전부터 기습을 통해 태평양 방면의 러시아 해군을 무력화시킨 일본은 땅에서도 승승장구를 거듭하면서 서구 열강들을 경악케 하고 있었다. 러시아는 애당초 일본을 우습게 보았지만, 그것은 러시아의 실수였다.

일본은 청일전쟁에서 받은 전쟁배상금으로 최신예 전함들을 영국에 발주하여 전함 6척과 장갑순양함 8척을 보유하고 있었다. 당시 해군 최강국 영국을 제외하고는 서구 열강의 어느 해군에게도 뒤지지 않는 막강한 함대전력이었던 것이다.

이에 더하여 일본은 1902년, 임인(壬寅)년에 세계 최강의 영국과 동맹 관계를 체결함으로써 든든한 후원자를 등에 두고 있었다. 영국은 임수(壬水)의 나라인데, 지지에 인목(寅木)이 오는 해에 동아시아의 일본과 손을 잡고 러시아를 봉쇄했던 것이다.

역사적으로 러시아는 앵글로 색슨과는 참으로 악연이다. 처음에는 영국의 견제가 제정 러시아의 붕괴를 불렀고, 다음에는 미국이 봉쇄함으로서 소련이 붕괴되었으니 철천지원(徹天之寃)이 있다 하겠다. 러일 전쟁도 결국 일본이 영국을 대리하여 러시아와 붙은 전쟁인 셈이다.

아무튼 러시아의 니콜라이 황제는 1904년 4월 무진(戊辰)월에 일본을 혼내주기 위해 전 해군력을 통털어서 무적함대를 구성하고 이를 극동으로 보내기로 결정하게 된다.

이에 러시아는 최신예 전함을 포함하여 38척의 대 함대를 편성하고 발틱 해를 출발하게 되니 그 날자가 1904년 10월 11일이었다.

년 갑진(甲辰)
월 갑술(甲戌)
일 무인(戊寅)

음양오행 상 러시아로서는 더 이상 불길할 수가 없는 날에 발틱 함대가 출발한 것이다. 러시아를 뜻하는 무토(戊土)를 천간의 갑목(甲木), 지지의 인목(寅木)이 짓누르고 있으니 좋은 결과를 가져올 리 만무.

러시아 함대의 길은 당시로서는 가장 먼 거리의 원정(遠程)이었다. 범선 시대가 아니라, 석탄을 동력원으로 하는 철선이라 발틱 해를 출발하여 남아프리카를 돌아서 인도양, 그리고 블라디보스톡으로 가는 항해에 있어 석탄 보급을 위시한 보급 문제가 전례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천신만고 끝에 러시아 함대는 남지나해를 북상하면서 대한 해협에 접근하게 되었다.

러시아 함대를 이끌던 로제스트벤스키 사령관은 일본과의 결전을 피하고 일단은 함대를 블라디보스톡까지 무사히 끌고 가서 재보급을 받은 다음 전쟁에 임하려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일본 함대의 위치를 모르고 있었기에 대한해협을 지나 블라디보스톡으로 가는 가장 빠른 항로, 그러나 가장 위험한 길을 택하게 되었다.

그러나 러시아 함대가 대한해협을 지날 것으로 확신한 일본 연합함대의 사령관 도고 헤이하치로는 이를 중도에 요격하려는 기도 아래 한반도의 군항인 진해만에 정박하면서 만반의 준비를 갖춰놓고 있었다.

이리하여 쓰시마 해전이 벌어진 것이다.

그러면 이제 러일간에 교전이 벌어졌던 날을 확인해보자.

년 을사(乙巳)
월 신사(辛巳)
일 병인(丙寅)

이미 싸움은 승패가 갈려있다. 러시아의 힘인 신금(辛金) 주변에는 온통 나무와 불의 기운으로 둘러싸여져 있기 때문이다. 물론 불은 일본의 힘이고 나무는 그 불의 원천이다.

먼저 이 날 새벽 일본의 보조 순양함 시나노마루가 러시아 해군의 희미한 불빛을 포착하고 추적한 결과 04시 45 분, 즉 경인(庚寅)시에 ‘적함 발견’을 진해만의 도고 사령관에게 보고했다.

러시아 함대 역시 06시에 무선 교신을 알아차리고 09시 직후 일본의 순양함들을 포착하고 전투 준비에 들어가면서 양 함대는 교전을 위한 기동에 들어갔다. 드디어 도고 사령관은 13시 55분, 그러니까 을미(乙未)시에 그 유명한 Z 신호기를 기함 미카사의 마스트에 게양했다.

Z 기란 “제국의 운명이 이 전투에 달려있다, 제군은 최선을 다하라”는 의미였다. 주목할 것은 이 때가 바야흐로 을미 시였다는 점이다. 일본을 뜻하는 을목(乙木)이 드디어 머리를 쳐든 것이다.

그리고 러시아 함대를 향해 접근하던 일본 함대는 갑자기 적진 앞에서 좌측으로 90도 직각 회전을 하기 시작했다. 적의 화력 바로 앞에서 도고는 횡대 편성을 시도한 것이다. 이를 해군 전술 용어로 ‘T 자 기동’이라 한다.

종대 진영을 적 앞에서 횡대 진영으로 변경할 경우 전 화력을 집중하여 종대로 다가오는 적의 선두부터 하나씩 공격할 수 있는 이점이 있지만 전렬 편성을 하려면 군함들이 같은 장소에 머물러야 하는 위험도 있는 유명한 전술인 바, 이를 적의 사정거리 안에서 실천에 옮긴 도고의 배짱은 실로 대단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하겠다.

이에 14시 8분, 함대간의 거리가 8 Km로 좁혀졌을 때, 러시아의 로제스트벤스키 제독이 먼저 발포를 명했고, 14 시 10분, 6.4 Km 까지 거리를 좁힌 일본 함대 역시 발포를 하면서 유명한 쓰시마 해전이 벌어졌다.

러시아는 화력을 일본의 기함 미카사에 집중시켰고 16 발의 명중탄이 나면서 상당한 피해를 입혔다. 그리고 가장 먼저 피해를 입어 전열에서 이탈한 배가 나온 것도 일본 측이었다.

하지만 교전 시작 1시간이 지난 15시 10분경이 되자 상황은 달려져 있었다. 이 때의 시각은 병신(丙申)이었다. 일본의 힘인 병화(丙火)가 러시아의 힘인 신금(申金)을 압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에 러시아의 전함 1척과 로제스트벤스키의 기함이 화염에 싸여 대열을 이탈했으며, 전투는 5시간 동안 이어지면서 러시아는 4척의 주력함을 잃게 된다. 부상을 입은 러시아 제독은 지휘권을 부관에게 넘겨주고 블라디보스톡을 향해 북진했다.

그 뒤, 일본의 구축함들과 어뢰정들은 포위기동을 하면서 밤을 기다렸다가 20시에 공격을 재개했고, 러시아는 다시 두 척의 전함과 두 척의 순양함을 잃게 된다.

그리고 28일이 시작된다. 날은 정묘(丁卯)일이다. 다시 한 번 음양오행을 확인해 보자.

년 을사(乙巳)
월 신사(辛巳)
일 정묘(丁卯)

날의 정화(丁火)가 월의 신금(辛金)을 사정없이 눌러버리게 되니 러시아 함대의 명줄은 이 로서 끊어지게 된다.

간신히 포위망을 뚫고 북으로 침로를 잡은 잔존 러시아 함대는 이 날 오전 11시, 병오(丙午)시에 가서 또 다시 일본군의 포격에 노출되었다. 이에 더 이상 전투가 무의미함을 인식한 러시아 함대의 임시 지휘관 네보가토프 제독은 백기를 게양하게 된다.

또 14시 경에는 울릉도 남서쪽 70 Km 해상에서 북으로 탈출하던 러시아 구축함 1척도 일본의 추격에 의해 백기를 게양했는데, 이 속에는 심한 부상을 당한 로제스트벤스키 제독이 타고 있었다. 이 시각은 바로 정미(丁未)로서 정묘일과 함께 두 개의 정화(丁火)가 들어오니 러시아 함대의 대장이 포로로 잡힌 것이다.

이로서 29척의 주력함을 포함, 38척으로 구성된 러시아 함대는 19척이 침몰하고 7척이 나포되면서 궤멸되고 말았다. 이에 반해 12척의 주력함을 포함, 96척으로 구성된 일본 함대는 3척의 어뢰정을 잃었을 뿐 다른 배들은 모두 수리될 수 있었다. 집중포화를 받은 기함 미카사는 피해가 컸지만 무사히 귀환할 수 있었다.

러시아의 인명 피해는 4,830명 사망에 7,000명의 포로, 1,862명이 중립국 억류였고, 일본은 사망 116명에 590명이 부상당했을 뿐이었다.

이것이 그 유명한 쓰시마 해전의 간략한 전말이다.

음양오행으로 볼 때, 시작부터 러시아 함대의 패배를 예견할 수 있었지만 이토록 무참한 패배를 당한 것은 이유가 있다.

처음 러시아 황제가 발틱 함대의 원정을 결정한 것은 무진(戊辰)월이었고, 출동은 갑술(甲戌)월이니 바로 6개월 충(衝)이 되는 시기이다. 만일 그보다 앞서 계유(癸酉)월에 출발했더라면 이런 결과가 없었을 것이다.

나아가서 갑술월에 출동한 함대가 그로부터 다시 6개월 충이 되는 1905년 경진(庚辰)월 이전에 블라디보스톡으로 갔다면 교전이 없었거나 아니면 최소한 앞서와 같은 참패는 모면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발틱 함대가 단거리 코스인 대한해협을 지나지 않고 태평양을 돌아가는 코스를 택했더라면 역시 참패는 없었을 것이지만, 지체된 러시아 함대로서는 그럴 여유가 없었던 것 또한 불운이다.

결국 도중에 보급 문제 등등 무수한 장애들을 만나면서 신사(辛巳)월에 대한해협을 지나게 되었다는 것이 궁극적으로 일거에 발틱 함대의 종말을 가져온 것이다.

이처럼 음양오행은 실로 무서운 바가 있다,

필자는 특히 전사(戰史)를 음양오행으로 자주 연구하는데 이는 전쟁이 무엇보다 극적인 면이 있다는 점과 함께 시간 기록이 잘 되어있어 음양오행의 추이를 살피기가 좋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일본이 공격을 개시하는 날은 병화(丙火)가 되며, 우리는 정화(丁火)인 것일까? 그리고 왜 미국은 을목(乙木)의 날에 공격을 개시하며 중국이나 러시아는 경(庚)이나 신(辛)의 날에 공세를 시작하는 것일까? 숱한 전사를 연구해 왔지만 음양오행으로 보면 어김이 없다. 그리고 이는 사실 천기누설인 것이 전쟁에서 적의 공세를 사전에 알아낼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기 때문이다.

다음 차례에는 러일 전쟁의 다른 분야에 관해 알아보기로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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