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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망주 해외진출, 전면 드래프트가 문제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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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망주 해외진출, 전면 드래프트가 문제였나

[야구라의 그린라이트] 1차 지명제 부활을 막아야 하는 이유

"전면 드래프트가 시행된 뒤부터 프로 구단들의 연고 지역에 대한 지원이 줄어들었다."
"급증하는 우수 아마추어 선수의 국외 진출을 막으려면 전면 드래프트를 폐지해야 한다."
"전면 드래프트 때문에 아마추어 야구가 고사할 지경이다."

프로야구에 전면 드래프트 제도가 처음 시행된 이후, 매년 이맘때면 어김없이 나오는 주장이다. 올해도 '작년에 왔던 각설이'가 죽지 않고 돌아왔다. 지난 10일 한국야구위원회(KBO)에서 열린 2012년 제1차 이사회에서 일부 구단 대표가 전면 드래프트 폐지와 1차 지명 부활을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당초 이날 이사회에서는 9개 구단 단장들이 실행위원회에서 결의한 '신인 드래프트 1라운드 추첨제'를 논의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몇몇 이사들이 "1차 지명제 부활까지 포함시켜 논의하자"고 주장하고 나서면서 결정이 뒤로 미뤄졌다. 이 문제는 실행위원회를 다시 거친 뒤, 추후 열리는 이사회를 통해 결론이 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울고 싶은데 뺨을 때려주는 소식까지 전해졌다. 대구지역의 한 고교 선수가 유명 메이저리그 스카우트와 만나 입단을 타진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사실 고교와 대학 선수들이 미국 스카우트와 만나 사전접촉한 게 어제 오늘 일은 아니지만, 미묘한 시기에 보도가 된 것이다. 해당 스카우트는 다른 지역 고교 유망주 3~4명에도 관심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아마추어 선수의 잇따른 국외 진출'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전면 드래프트를 시행하면서 우수 선수의 국외 진출이 증가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데시벨을 더욱 높였다.

정말 이게 다 전면 드래프트 때문일까? 이를 알아보려면 먼저 전면 드래프트가 도입된 이유부터 살펴봐야 한다. 드래프트 제도의 가장 큰 목적은 '리그의 상시적인 전력 균형'에 있다. 만일 선수 영입을 각 구단의 자율에 맡겨두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상하기 어렵지 않다. 좋은 선수는 죄다 돈 많고 인기 많은 팀에 몰리고, 가난한 팀과 하위권 팀은 계속 꼴찌에서 맴돌 것이다. 결과가 뻔한 스포츠는 재미가 없다. 야구의 가장 큰 매력이 승부의 의외성에서 나온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런 팀간 전력 불균형은 팬들이 야구에 흥미를 잃게 만드는 결과로 이어질 위험성이 크다. 드래프트는 이런 부작용을 막기 위해 탄생했다. 약체팀도 좋은 선수를 영입해서 전력을 보강하고, 계속해서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드래프트 제도는 직업 선택의 자유를 저해한다는 비판을 받지만, 구단 전력 평준화를 위해 나온 대안이다. 2010년 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에서 각 구단 1순위 지명자들의 모습. ⓒ뉴시스

하지만 한국 프로야구의 드래프트 제도는 아주 오랫동안 기형적인 형태로 운영되어 왔다. 각 구단마다 1차 지명권, 즉 연고 지역 고교를 졸업한 선수에 대한 우선 지명권을 행사했다. 가령 2005년 KIA는 연고지인 광주 동성고 투수 한기주를, 롯데는 부산고 내야수 손용석을 1차로 지명했다. 만약 전면 드래프트 제도였다면 전년도 8위 롯데는 1순위 지명권을 행사해서 손용석 대신 한기주나 차우찬, 강정호를 첫 번째로 지명했을지 모른다.

이 제도 하에서는 그 해 구단 연고지역에 좋은 선수가 많이 나오면 드래프트 성공이고, 마땅한 우량주가 없는 해는 실패하는 식이었다. 고교 팀 수가 많고 우수한 선수가 많이 배출되는 지역을 연고지로 보유한 팀이 무조건 유리할 수밖에 없었다. 1980~90년대 해태 타이거즈의 막강 전력도 실은 당시 호남의 아마추어 야구가 최고의 전성기를 누린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매년 선동열, 조계현, 이종범 같은 신인들이 들어오니 해태가 못하고 싶어도 못할 방법이 없었다.

전국에 야구부가 있는 고등학교는 53개교. 이 중 서울에만 14개 학교가 몰려 있고 부산경남은 9개교, 경기 지역에 6개, 광주전남에 5개 학교가 있다. 반면 대구와 경북은 4개교, 인천과 강원 지역은 3개교씩, 대전은 1개 학교밖에 없다. 지역별 전력 차이도 매우 크다. 전국대회 우승은 대부분 서울권이나 광주, 부산의 학교들이 휩쓴다. 대어급으로 꼽히는 신인 선수들이 배출되는 곳도 거의 이들 지역이라고 보면 된다.

1차 지명 제도 하에서 어느 지역을 연고로 보유한 팀이 더 유리할 지는, 오승환이 마무리로 나온 경기를 보듯 뻔하다. 서울-부산-광주 연고 팀이 화수분처럼 솟아나는 좋은 선수를 손쉽게 데려가는 동안, 대구나 충청권의 팀에서는 상대적으로 무게감이 덜한 선수를 첫 순위로 지명할 수밖에 없다. 실제 삼성의 경우 1990년대 들어 대구경북 야구가 약체로 전락하면서, 삼성 열성 팬도 이름을 기억하기 힘든 선수들(감병훈, 안윤호, 김형근 등)이 계속해서 1차로 지명됐다. 한국시리즈 진출을 밥먹듯 하던 삼성이 1994년부터 2000년까지 한 번도 한국시리즈 무대를 밟지 못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1차 지명은 드래프트의 본래 취지인 '전력 균형'과 전혀 무관한 제도인 셈이다.

전면 드래프트가 도입된 또 다른 이유는 제도적인 모순 때문이다. 프로야구는 지난 2000년부터 지역연고제에서 도시연고제로 전환했다. 이에 삼성의 보호지역은 대구와 경북 등 광역권역에서 대구로, 롯데의 보호지역은 부산과 경남에서 부산 한 도시로 한정됐다. 경남지역은 창원에 새로 창단한 NC 다이노스가 권리를 행사한다. 만일 1차 지명제를 시행할 경우 부산 한 도시에만 지명권을 가진 롯데는 여전히 광주와 전라도 전체를 지역으로 삼는 KIA나 대전과 충청권에 권리를 지닌 한화와 비교해서 손해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도시 연고제를 엄격하게 적용하면, 대전에 학교라고는 하나뿐인 한화더러 영원히 꼴찌를 하라는 얘기가 된다. 이런 딜레마는 향후 10구단과 새로운 구단이 탄생할 때마다 논란을 빚을 게 분명하다. 전면 드래프트 외에 다른 대안이 없다.

일각에서는 사실과 전혀 다른 근거를 들어 전면 드래프트 백지화를 주장한다. 가령 서두에 언급한 '우수 아마추어 선수의 국외 진출'이 그런 예다. 그러나 실제 연도별 해외진출 선수 수를 살펴보면 전면 드래프트 시행 이후 해외로 향하는 선수의 수는 오히려 줄어들었다. 총 7명이 미국행을 택한 2009년(시행 첫 해)을 제외하면 이후에는 2010년 1명(덕수고 김진영), 2011년 1명(야탑고 김성민)에 불과했다. 유창식(한화), 한승혁(KIA), 이민호, 노성호(NC), 하주석(한화) 등 해외진출설이 나왔던 선수들은 모두 국내 잔류를 택했다.

사실 2009년의 '엑소더스'도 전면 드래프트 때문이라기보다는, 2006년부터 시작된 아마추어 선수들의 해외 진출 흐름이 계속 이어진 것에 불과했다. 미국행 비행기를 탄 2006년 3명, 2007년 5명, 2008년 6명의 선수들은 1차 지명 제도가 건재하던 시절인데 왜 해외 진출을 선택했을까. 분명한 건, 전면 드래프트와는 별다른 상관이 없다는 사실이다. 유망주들이 미국행을 선택하는 건 전면 드래프트가 아닌 헐값의 계약금 때문이다. 국내 구단의 신인 계약금과 해외 진출 선수 수는 거의 반비례한다. 계약금이 늘어나면 해외 진출자는 줄어들고, 계약금이 바닥으로 떨어지면 해외로 가는 선수가 늘어난다.

가령 류제국, 김일엽, 이승학 등 4명이 미국에 진출한 2001년 당시, 국내 구단들은 1차 지명 선수를 붙잡기 위해 거액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KIA가 김진우에 역대 2위에 해당되는 7억 원을 안긴 것을 비롯해 현대가 조용준에 5억5000만 원, LG가 서승화에 5억 원을 투자하는 등 계약금 총액이 급상승했다. 그 결과 이듬해인 2002년, 미국으로 떠난 선수는 정성기(현 NC) 1명밖에 없었다. 2003년부터 2005년까지는 아예 해외 진출 선수가 전무했다. 미국 진출시 기대할 수 있는 금액을 넘어서는 계약금이 주어진 결과다.

그러다 2006년 3명이 미국행을 택한 것을 시작으로 다시 해외 진출자 수가 늘기 시작했다. 2006년부터 2009년까지 해외 진출 선수는 총 21명. 이 기간 동안 국내 구단에 입단한 신인 선수 중에 역대 신인 계약금 50위 내에 드는 선수는 총 7명에 불과했다. 2001년 한 해에만 무려 8명이 역대 50위 내에 진입했던 것과 비교하면 차이가 매우 크다. 선수들 입장에서는 굳이 헐값을 받으면서 국내에 남을 이유가 없었다. 차라리 미국에서 더 많은 돈을 받으면서 메이저리그에 도전하고, 영어를 배우고, 미국 사회에 적응하며 시야를 넓히는 기회로 삼는 편이 선수 입장에선 더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다.

결국 1차 지역 우선 지명이 부활한다 해도, 구단들이 지금처럼 적은 신인 계약금을 고수하는 한 유망주의 미국 진출은 막을 길이 없다. 이런 문제를 두고 유망주의 해외 유출이 전면 드래프트 탓이라고 주장하는 건, 허수아비를 상대로 헤드샷을 던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어지는 글에서는 전면 드래프트 하에서 지역 유망주에 대한 관리 문제, 아마추어 야구 지원, 신인 드래프트의 개선 방향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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