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철 교수가 필자가 쓰고 연출하는 연극 TAXI,TAXI(5월 1일까지 대학로 대로변 KFC지하 '공간아울'소극장)에 4월 12일부터 출연하기로 했다. 오세철 교수와 연습 중인 바로 어제(4월 4일) 오세철 교수는 TAXI,TAXI를 세 번째 다시 봤다. 오세철 교수는 이날 본 공연에서는 눈물을 다 흘렸다고 말했다. 이날 필자와 오세철 교수 간에 오간 대화를 여기에 옮긴다.<필자>
한국사회 현실의 괴리
김상수: 선생님의 저서를 보면 북한 정권을 아주 매섭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관료적 독재에 대한 선생님의 질책과 북한을 끌어들이고 국내의 반북 정서를 이용하여 선생님의 사상을 탄압하는 사법적 행위는 암담한 우리 사회현실의 괴리를 그대로 보여줍니다.
오세철: 지금 사법당국의 탄압을 받고 있는 사회주의이념 '조직'들은 북한과는 하등 관계가 없습니다.
김상수: '조직'? 선생님이 관계하시는 '조직'은 어느 정도 크기입니까? 국가체제를 전복할 만큼 '무장'은 갖추고 있나요?
오세철: 무장? 사상적 무장이야 튼튼하지요.(웃음) '조직'은 대략 수십 명쯤 될까요?
김상수: 아니? '조직'의 '수괴'이신데,(웃음) 조직원 숫자도 제대로 파악하지 않았나요?
오세철: (웃음) 너무 엉성한 '조직'이라서 파악이 어려워요.
▲ 오세철 교수. ⓒ김상수 |
국가변란 선전·선동목적 단체의 무력이란?
김상수: 재판장 판결문을 보자면 국가보안법상 '국가변란 선전·선동 단체'에 해당하는 조직이랍니다. 그런데 "폭력적 방법으로 정부 전복을 주장하지 않고, '자본주의 철폐'나 '노동자정부 수립' 등 순수하게 사상만을 주장한 것은 무죄"로 판단한다고 했어요. 무죄로 판단한다면서 일부유죄인 이유가 "국가변란 선전·선동목적 단체이자 폭력적 수단을 통해 현 정부를 전복하려는 목적을 가진 단체"라는 겁니다. 선생님께서는 어떤 폭력적 수단을 가지고 계시나요?(웃음)
오세철: (큰 웃음) 국가전복의 폭력적 수단이라? 한 3개 여단의 포병, 미사일부대여단, 1개 군단 보병을 거느리고 있다고? 아마 내가 위협적으로 보였겠지요. 그러니 국가전복 운운하겠지요. 그러나 과연? 그런 무장세력을 가진다해도 국가공동체가 쉽사리 무너질까요? 물론 병든 공동체는 아주 단순하고 간단하게 썩어 무너져 내립니다. 그게 역사에서 보는 교훈이기도 하고요. 그러나 나는 아직도 우리 사회 공동체가 완전히 썩어 문드러졌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김상수: 희망을 말씀하시는가요? 우리의 국가공동체에 그나마 희망이 남아 있다고 말씀하시는 건가요?
오세철: 그렇습니다.
▲ ⓒ김상수 |
공동체의 구성의 오류 (fallacy of composition)
김상수: 저는 우리사회 공동체 구성의 오류를 생각해 봅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구성의 오류란, 개인과 사회구성원의 긴장관계입니다. 오늘 한국사회는 거짓과 부정이 일반화되어 있습니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사회입니다. 여기서 개개인들의 '참'과 '옳음'이란 개별적으로는 고립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회전체는 '큰 거짓' 즉, 오류에 빠져있습니다. 이는 너무나 예민하고 허약한 사회입니다.
오세철: 그래서 일찍이 칼 마르크스가 얘기했지요. 사람과 물질의 토대, 삶의 배경과 삶의 근거 말입니다. 이 또한 사람과 토대의 구성입니다.
김상수: 칼 마르크스가 얘기한 이론은 물질의 토대나 배경을 통한 행동에 의해, 사람들이 행위하거나 이끄는 것에 의해 확증된다는 식으로 말했습니다. 동시에 마르크스는 '사람들이 소외당하는 건 생산수단의 메커니즘을 통제하지 못해서 발생한다'고 했습니다. 이는 한 사회를 같이 구성하고 있는 구성원들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부딪치는 측면이기도 합니다. 아울러 마르크스는 역사에서 일정한 유형이나 패턴을 의식했습니다.
오세철: 마르크스는 사람의 삶에 있어서 불가피하게 '존재'와 '당위'를 과거 역사에서 보았고 이를 말했지요.
김상수: 그러나 마르크스는 '존재'의 측면에서 인간이 더 '규정'된다고 했습니다. 이 부분 제가 공부가 짧아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왜냐? 인간은 존재의 '당위'도 있지 않는가 하는 때문입니다.
인간의 혁명, 그 존재와 당위
오세철: 그래서 인간은 끊임없이 성찰하는 능력, 자기를 제약하는 삶의 조건을 넘어서는 힘이 필요합니다. 이런 힘이 바로 '혁명'이지요.
김상수: 마르크스는 국가와 재산과 화폐를 무시한다고 해서 이 세상에서 사라져 버리는 것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렇다고 이것은 영원불멸의 것으로 인식할 필요도 없는 현실의 반영이라고 하였습니다. 물질적 생산이 이루어지는 생산 기술과 물질적 생산이 조직되는 생산관계, 그리고 오고가는 거래관계란 정치적 조직을 통해 집단의 참여를 촉발하기도 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저는 경제학이란 결국 어떤 해석과 이론을 다 말해도 그 본질에서는 경세제민(經世濟民)이라고 이해합니다.
오세철: 경세제민이란 결국 '물질'과 '인간의 사회적 균형'이겠지요.
▲ ⓒ김상수 |
"연극 TAXI,TAXI를 보다가 나는 눈물이 다 났다"
김상수: 저는 이 연극 TAXI,TAXI에서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인간의 사회적 균형'이 한국사회에선 무너져있음을 고발하고자 했습니다. 동시에 사회의 어둡고 잔인한 부분에 밀착하여 우리들 삶이 해체되어가는 과정, 그 속에서 아이러니한 삶, 출구가 보이지 않는 절망적인 정황들, 그러나 반대로 삶이란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역설로 말합니다. 그래서 병든 사회를 향한 질문과 인간으로의 저항, 끝내는 포기할 수 없는 인간으로의 자존(自尊)을 드러내 보임으로써 우리들 삶의 정체성을 묻고 있습니다. 이는 경제, 경제하면서 사회가 온통 돈벌이로만 삶의 전체를 지배당하고 있는 현실에서, 이제 우리는 문제의 본질을 깨닫지 않으면 안 될 때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과연 우리들 삶을 피폐한 지경으로 몰고 가는 세력이나 정체를 뚜렷하게 직시할 때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저는 현실을 보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삶에 있어서 정신에 대한 가치는 무너지고, 물질추구 위주의 일상은 서울이란 도시의 익명성(匿名性)과 가공(可恐)할만한 파괴적인 여러 반인간적인 현상들이 이를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더구나 병든 자본의 폭력성은 가히 자동화의 양상까지 보이면서, 자본추구에의 중독성과 자동화는 인간의 삶에 있어서 지켜야 할 마지막 인간의 관계까지 무참하게 파괴하는 처참한 지경입니다. 이 자본만능의 자동화 현상은 인격체와 비인격체를 가리지 않음은 물론이고, 인간의 내밀성까지 마구 파고듭니다. 자동화는 사물, 상황, 끝내는 가족까지 집어삼킵니다. 그래서 우리들의 삶을 지리멸렬한 것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오세철: 그렇습니다. 나는 연극 TAXI,TAXI에서 한 가족이 재벌기업에 당하는 폭력을 보았습니다. 말씀처럼 한 가족의 삶을 지리멸렬, 파괴시키는 경제적 토대의 착란을 봅니다. 재벌기업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던 소녀가 백혈병으로 죽어가면서도 자신의 어머니인 택시운전수를 원망하지 않더군요. 이 부분에서 나는 한 소녀의 죽음에서 어엿한 개별성과 사회성을 봅니다. 연극에서 소녀는 백혈병에 죽어가면서도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진 않았습니다. 심지어 소녀는 죽어가면서 홀로 남겨질 자신의 어머니를 걱정하고 있더군요.
"엄마!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내가 죽으면. 엄마가 얼마나 외로우시겠어요? 아빠도 없는데. 엄마혼자서...내가 시집가서 엄마에게 손주도 보여드리고 해야 했는데...제가 행복해 하는 모습을 엄마에게 더 보여드려야 했는데...엄마한테 잘하고 싶었고, 더 잘해야 하는데...이렇게 떠나야 하니 엄마에게 너무나 미안해요."라고 하는 대사는 내 가슴을 칩디다. 비록 나이어린 소녀지만 삶에 대한 인간으로의 예의를 다 말하고 있다고 나는 보았어요. 이 대목에서 나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다음, 다음 장면인가요? 백혈병에 걸린 소녀가 말하기를 "나는 인생이 뭔지 모릅니다. 그걸 알기에는 나는 아직 나이가 어립니다. 내가 아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아무도 미워하지 않습니다. 엄마도 아빠도 세상도 미워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나는 왜 이렇게 힘이 들어야 하는 겁니까?"라는 대사를 하면서 휠체어에서 떨어지듯이 내려와 바닥에 무릎을 끓더군요. 이는 곧 사회적 분노지요. 자기 '존재'의 당위와 현실을 말하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눈물이 흐를 수밖에 없는 대사였어요. 동시에 소녀는 "하느님, 나는 당신을 믿습니다. 당신께서도 나에게 나를, 나를" 하면서 절규합니다. 무릎걸음으로 몇 걸음 걸어 나온 소녀는 "나를, 나를 이 고통에서, 여기서, 벗어나게, 떠나게, 도와주세요. 아무도 미워하지 않습니다. 세상도 미워하지 않습니다."고 말합니다. 이는 사실 소녀의 현실이란 자신의 사회적 존재의 질문과 저항으로 읽히더군요. 이 부분에서도 나는 울었습니다. 어쩌면 마르크스의 인본주의를 이 연극의 대사에서, 주제에서 연상하기도 합니다.
▲ ⓒ김상수 |
나는 찢어발긴다. 정당성 없는 정치권력과 부패한 자본권력을
김상수: 선생님께서 익히 아시겠지만, 연극은 사회에 대한 인식의 장(場)입니다. 비판이나 고발이 연극의 전부는 아닙니다만 사회에 대한 비판이나 고발은 연극예술의 본질적인 요소지요. 이걸 빠트리고서 연극을 말할 수는 없습니다. 연극이란 '세상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지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처지와 현실에서 출발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미친 세상에 대한 진술이 연극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우리말로 된 우리 언어로 된 창작연극은 그 기본이고요. 문제는 연극예술이 쇼비지니스나 오락거리의 차원이 아니라는 걸 우리 연극계는 새삼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당연히 잘못된 체제나 권력을 비판해야 하는 입장에 있고요. 정당성이 없는 정치권력이나 부패한 자본권력이 펼치는 거짓들을 찢어발기는 건 심지어 연극의 의무이기도 합니다.
오세철: 연극이란 결국, 사람들 고통의 문제에 즉자적(卽自的)으로 접근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는 예술입니다. 따라서 당연히 말씀처럼 연극은 오락거리나 심심풀이로 치부될 수는 없는 예술이지요.
부전모자전(父傳母子傳)의 연극행위를 다시 꿈꾼다
김상수: 선생님께서는 이번 연극 TAXI,TAXI에서는 단 한마디의 대사도 없이 출연하시게 됩니다. 아, 참, TAXI,TAXI라는 외마디 대사를 택시에 올라타시면서 하시긴 하는군요.(웃음)
오세철: (웃음) 나는 때때로 연극에서 한마디 대사가 없는 것도 참 좋아요. 사람이란 꼭 입으로 하는 말이 다 말은 아니지요.
김상수: 선생님의 모친과 부친께서는 두 분 다 우리나라 연극운동 역사의 동지셨습니다. 선생님의 어머님 박노경 여사께서는 '여인소극장'이란 극단의 대표로서 연출을 맡았고, 선생님의 부친 오화섭 선생님은 진보적인 외국희곡을 우리말로 옮긴 번역자였습니다. 선생님의 누님(극작가 오혜령)께서도 선생님의 모친부친께서 공연한 연극에 선생님과 같이 아역으로 출연한 적도 계십니다. 어떻습니까? 이번 기회에 아주 연극배우로 출사표를 본격적으로 던지시지요.(웃음)
오세철: (웃음) 우리의 부모 세대는 그들이 겪은 뼈아픈 역사적 상흔을 감춘 채 자식들에게 그 고통을 넘기지는 않았습니다. 아마 그래서 나는 삶을 살 수 있었고 이렇게 연극무대에서 연기할 수 있음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김상수: (웃음) 이제 선생님께서는 본격적으로 연극에 다시 입문하셨습니다.
오세철: (하하) 두고 보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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