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율스님의 단식이 92일째를 맞고 있는 가운데, 건설교통부와 한국고속철도공단(현 한국철도시설공단)이 대선직후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대안 모색' 지시를 묵살하고 공사를 강행했으며 천성산 사태의 근원은 정부측에 있다는 요지의 정부산하 국책연구기관의 보고서가 뒤늦게 확인돼 주목된다.
***"경부고속철도사업, 사업 시작될 때부터 문제투성이"**
국무총리실 산하 한국환경정책ㆍ평가연구원이 지난해 11월30일 펴낸 <환경분야 갈등유형 및 해결방안 연구>라는 제목의 보고서는 "경부고속철도사업은 처음부터 문제투성이 사업이었으며, 노무현 대통령이 대선 당시 공약을 불이행하면서 천성산 관통터널을 둘러싼 갈등이 더욱더 커졌다"고 지적하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경부고속철도사업은 사업이 시작될 때부터 합리적으로 결정된 사업이 아니라 충분한 분석 없이 1990년 당시 노태우 정부의 정치적 논리에 의해 일방적으로 진행됐다. 이 때문에 정권을 거치면서 사업비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1987년 노태우 당시 민정당 대통령후보가 경부고속철도 건설을 대선 공약으로 내세울 당시 사업비는 5조8천억원이었나, 김영삼 정권 때는 10조7천4백억원에서~17조6천억원, 그리고 김대중 정권 때는 18조4천3백85억원으로 눈덩이처럼 부풀었다. 건설 계획 또한 1992년 착공 이후 1998년까지 기본계획이 3차례 변경된 것을 포함해 계획상 크고 작은 부분이 2백32차례나 변경되었다.
이렇게 구먹구구로 사업이 추진되다 보니 개통된 이후에도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경부고속철도는 개통되면 하루 평균 22만명이 이용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실제는 7만명에 불과해 운행을 할수록 적자폭이 늘어나는 꼴이 됐다. 벌써 매년 수천억원의 적자가 불가피한 것으로 추정되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국민 몫이 되고 있다.
이에 이해찬 총리조차 지난 14일 "경부고속철도 사업은 수요예측을 잘못했거나 고의로 부풀린 또 정치적 입김이 많이 작용한 잘못된 사업"이라고 부정적 평가를 내리기에 이르렀다.
***지율스님 말대로 "부실한 환경영향평가가 1차적 원인"**
특히 보고서는 경부고속철도 천성산 관통터널을 둘러싼 갈등의 원인으로, 지난 4년간 지율스님이 일관되게 지적해온 내용을 똑같이 지적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보고서는 우선 '환경영향평가의 부실'을 꼽고 있다.
보고서는 "1994년에 실시된 환경영향평가가 규정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환경영향평가 후에도 7년이 넘도록 공사가 착공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이어 "1994년도 환경영향평가서에는 법적 보호 동식물 40여종이 한 종도 보고 되지 않는 등 '부실한 보고서'였다"고 지율스님 주장에 힘을 실어주었다.
보고서는 "1994년 당시 환경영향평가가 정확히 이루어졌다면 지금과 같이 갈등이 불거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천성산 갈등 핵심에는 노대통령 책임 있어"**
보고서는 또 천성산 사태가 악화된 데는 노무현 대통령의 책임이 크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개발사업과 관련해 정치 지도자는 정확한 근거에 기초해 의지를 밝혀야 한다"며 "노무현 대통령은 후보자 시절 천성산 관통 구간을 백지화할 것을 공약으로 천명했지만 대통령 당선후 이를 이행치 못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노 대통령이 공약을 이행하지 못함으로써) 국민의 대정부 신뢰도 및 정부의 위신이 현저히 추락했고, 궁극적으로 불교계를 우롱하는 결과를 낳았다"며 "이는 결국 환경단체와 불교계 등 사업 반대측의 내부 결속력의 강화로 이어졌다"고 지적했다.
***"건교부와 한국고속철도공단, 인수위 지시 묵살"**
보고서는 또한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자 시절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공사에 제동을 걸었음에도 불구하고 건설교통부와 한국고속철도공단이 노 대통령의 지시를 무시한 정황을 밝혀내 관심을 끌고 있다.
보고서는 "2003년 당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측량, 노반공사, 대안입찰 발주 등을 권고했으나 건교부와 한국고속철도공단은 일정대로 공사를 진행했다"며 "이들은 천성산 관통노선이 최적의 대안이라고 믿고 '기존 노선 변경은 절대 있을 수 없다'는 원칙을 밀어붙였다"고 지적했다.
현재 문재인 청와대 민정수석과 곽결호 환경부장관은 "경부고속철도 천성산 관통터널 공사가 법적 절차에 의거해 정상적으로 이루어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국무총리실 산하 국책연구기관은 다른 주장을 하고 있다. 과연 누구의 주장이 맞는 것인가. 정부가 답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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