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율스님이 21일 오후 <프레시안>과의 단독 인터뷰를 통해 청와대와 정부의 '언론 플레이'를 비판한 뒤 "정부가 나보고 목숨을 내려놓으라고 다그치는 것처럼 보인다. 내가 갈 길이 이것뿐이라면 스스로를 내려놓겠다"고 밝힌 뒤 잠적했다. 이에 대해 정부는 "지율스님 안타깝지만 안되는 것은 안되는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사태가 최악의 방향으로 치닫는 긴박한 양상이다.
***지율스님, "나보고 목숨 내려놓으라고 다그치는 건가"**
지난 14일부터 말문을 닫아온 지율스님은 21일 오후 <프레시안>에 전화를 걸어와 "지난 금요일 외부와의 연락을 일절 단절하면서 특히 언론과의 접촉을 최대한 피했다"며 "그런데 그 동안 청와대와 환경부 등 정부가 온갖 '언론 플레이'를 하는 것을 보고 너무 기가 막혀서 몇 가지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지율스님은 우선 문재인 민정수석(당시는 시민사회수석)과의 18일 비공식 회동과 관련, "지난 18일 밤 청와대 문재인 시민사회수석이 언론 공개를 하지 않고 비공식적이고 개인적으로 방문을 한다고 해서 허락했다"며 "나야 이렇게 정신을 놓으면 편하겠지만 뒤에 남는 사람이 큰 상처를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마음이라도 풀어주는 게 도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지율스님은 "문 수석과 만난 데에는 노무현 대통령이나 문 수석 역시 나름의 방법으로 나라를 위하는 방법을 찾고 있을 것이라는 일말의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그 날도 나는 문 수석에게 '우리는 생명과 평화라는 다른 개혁을 말하고 싶은데 당신이 추구하는 개혁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이냐'고 얘기한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지율스님은 이날 문수석과 만난 자리에서 '터널공사를 완전중단하고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하라'던 종전의 요구를 큰 폭으로 양보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했고, 문수석도 이에 "조만간 좋은 소식이 있지 않겠냐"고 해결 가능성을 비쳤다고 밝혔다. 이에 지율스님측은 다음날 변호사를 통해 정부측에 ▲토목공사는 하되 발파공사를 중단할 것, ▲원래 6개월으로 잡혀있던 환경영향평가 기간을 3개월로 줄일 것 등 2가지 수정안을 전달하며, 21일까지 답을 해줄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정부는 그후 답변 대신 '언론 플레이'를 했다는 게 지율스님측 주장이다.
곽결호 환경부장관이 구체적 답변을 갖지 않고 갑자기 20일 저녁 방문하겠다고 하자 스님은 "내일 결과를 가지고 와야지, 왜 방문하느냐"며 안 만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경찰 관계자도 곽 장관에게 "스님이 안 만날 거다. 헛걸음 할 필요 없다"고 얘기했다. 하지만 곽 장관은 방문을 강행해 밖에서 20~30분 동안 기다리다 돌아가는 모습을 보였다. 지율스님은 곽 장관이 "'한 20,30분 떨다 오면 되니까 걱정 말라'고 했다더라"며 "청와대와 정부가 나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라고 울분을 터뜨렸다.
지율스님은 "정부도 인정한 부실한 환경영향평가를 정당한 절차를 거쳐 제대로 해보자는 요구가 그렇게 들어주기 힘든 것이냐"며 "더구나 내 입장에서는 수용하기 힘든 양보안까지 거론됐는데 정부가 저렇게 나오니 절망스럽기만 하다"고 탄식했다.
지율스님은 마지막으로 "청와대나 정부가 나보고 목숨을 내려놓으라고 다그치는 것처럼 보인다"며 "내가 갈 길이 이것뿐이라면 스스로를 내려놓겠다"고 최후를 암시하는 말을 덧붙이기도 했다.
지율스님은 또 "문 수석을 통해 언론에 보도된 '(내가 단식을 풀고) 나가려 해도 나갈 문이 없다'고 했다는 얘기도 와전된 것"이라며 "문 수석이 하도 대안이 있을 것이라고 얘기를 해서 그럼 서로 양보를 해서 해결책을 찾아보자는 얘기를 한 것뿐"이라고 말했다.
한마디로 말해, 이제 더이상 청와대와 정부를 믿을 수 없다는 게 지율스님 생각이었다.
***문재인 수석, "지율스님 안타깝지만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것"**
이같은 지율스님의 주장에 대해 22일 문재인 민정수석은 "실상은 그렇지 않다"고 반박했다.
문재인 수석은 22일 오전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18일 스님을 만났을 때 타협안에 관한 얘기는 전혀 없었다"며 "스님께서 좋은 목적을 가지고 몸을 던지는 것은 이해되지만 그 과정에서 상황을 편의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곤혹스럽다"고 말했다.
문 수석은 "스님을 만났을 때 '스님의 노력으로 생명과 평화에 대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으니 이제 천성산 문제에서 자유로워져서 스님이 지향하는 생명과 평화 운동을 계속 하셔야 되지 않겠느냐'며 단식을 풀 것을 요청한 것 뿐"이라며 "그 과정에서 스님이 '나갈 문이 없다'고 해 '스님이 나오면 그게 바로 문입니다', 이런 얘기를 한 것"이라고 밝혔다.
문 수석은 "지율스님의 양보안은 국무총리실의 남영주 비서관에게 변호사를 통해서 그 다음에 제시됐다"며 "청와대와 정부 입장에서는 천성산 문제와 관련해서는 스님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고, 남 비서관도 그런 판단을 할 만한 위치에 있지 않기 때문에 결국 변호사를 통해서 스님께 수용하기가 어렵다는 뜻을 밝혔다"고, 스님 제안을 거부한 과정을 밝히기도 했다.
문 수석은 이어 "자꾸 지율스님의 단식에 대해서 청와대나 정부가 개입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데 정당한 절차에 의해서 진행되고 있는 사업에 대해서 청와대나 정부가 개입하는 게 말이 되느냐"며 "지율스님의 상황이 안타깝기는 하지만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것"이라고 단호하게 재차 수용 거부 입장을 밝혔다.
***지율스님 잠적, 경찰 "스님 꼭 안 찾으면 큰 일 난다"**
한편 21일 <프레시안>과의 통화를 마친 지율스님은 이날 오후 단식 수행 장소인 청와대 부근 거처를 떠나 청와대 쪽으로 가려다 경찰의 저지를 받았고, 이후 동생 등 지인들과 서울 마포 모처로 이동한 뒤 행방이 확인되지 않고 상태다.
이 과정에 지율스님은 천성산대책위 관계자 등 지인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뒷일을 부탁한다"는 유언과 비슷한 말을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지율스님은 지난 여름 청와대 앞에서 58일간 단식을 할 때, 같은 장소에서 이라크 파병에 반대하며 단식을 했던 김재복 수사가 동행하며 도움을 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스님을 관찰해온 종로경찰서 관계자도 22일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21일 저녁 7시15분께 전화를 걸어 '그 동안 신경 써준 것 고마웠다.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한 뒤 연락을 끊었다"며 "청와대 앞이 아닌 제3의 장소에서 죽음을 맞이할 가능성이 있어 행적을 파악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요 며칠 새 스님 건강이 눈에 띄게 안 좋아졌다"며 "스님 찾아서 꼭 단식을 풀게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큰 일이 날 수도 있다"고 다급한 심경을 드러냈다.
이렇게 스님이 종적을 감춘 것은 지금까지 있어왔던 비공식적인 청와대 및 정부와의 접촉도 끊고, 사실상 스스로를 완전히 고립시키는 것이어서 관계자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조계종, "지율스님 막다른 곳으로 몰지 말라"**
한편 불교조계종 환경위원회(위원장 지원스님)는 21일 지율스님 단신과 관련, 대정부 호소문을 발표했다.
환경위원회는 호소문에서 "많은 양식 있는 단체와 시민들이 정부가 침묵이 능사만이 아님을 속히 자각하고, 국민들과 지율스님이 납득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며 "정부는 이러한 요구에 시급히 답변해야 한다"고 밝혔다.
환경위원회는 또 "시민들은 치명적인 발파 공사를 일시 중단하고 천성산에 끼칠 환경영향에 대해 지금이라도 재평가해야 하며, 지율스님을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고 있는 정부당국의 무책임과 약속위반에 대해 당사자들의 겸허한 반성과 솔직한 사과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며 정부 측에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불교계뿐 아니라 환경관련 시민단체들도 상황이 최악의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고 판단, 지율스님과의 접촉을 시도하는 한편 정부에 대한 적극적 해결노력을 촉구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등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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