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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 이 아름다운 사람들과 더 오래 함께 하셔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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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 이 아름다운 사람들과 더 오래 함께 하셔야지요"

[문규현 신부가 마지막 준비하는 지율스님께 드리는 편지]

지율스님이 21일 행방까지 감추자 지율스님과 함께해온 환경단체, 시민들은 마음은 무겁기만 하다. 서울, 대구, 부산, 광주, 부안, 양산 등 전국 10여개 지역에서는 14일부터 시작된 '지율스님과 천성산을 살리는 촛불집회가 8일째 계속됐다.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 앞에서는 1백여명의 시민들이 모여 촛불을 들고 지율스님의 뜻과 공명하는 촛불을 높이 들었다. 이날 집회에서는 60대 중반의 한 시민이 자진해서 발언을 요청해 "단식을 하고 있는 스님과 지금 이 자리에서 촛불을 들고 있는 젊은 사람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기 위해 발언을 자청했다"며 "앞 세대로서 당연히 느껴야 할 환경과 생명에 대한 책임을 스님과 여러분에게 떠넘긴 것 같아 고개를 들 수 없다"고 말해 사람들의 큰 박수를 받았다.

부안에서도 문규현 신부, 김인경 교무 등이 부안 주민들과 함께 촛불을 들었다. 특히 문규현 신부는 21일 천성산 홈페이지에 지율스님께 보내는 편지를 남겼다.

문 신부는 "새만금 갯벌을 살리고 상생의 길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가 우리에게 주어진다는 기쁜 소식을 들은 순간, 스님 생각에 그만 눈물부터 나고 말았다"고 비통한 심정을 털어놓았다.

문 신부는 "스님을 사랑하고 존경하고, 천성산을 살리기를 염원하는 수많은 영혼들이 매일 매순간 기도하고 매일 저녁 촛불과 애끓는 심장을 태우고 있다"며 "스님은 죽어 천성산의 전설이 될 것이 아니라 살아 천성산의 어미가 되어야 한다"고 단식을 풀 것을 간곡히 요청했다.

다음은 문규현 신부가 지율스님에게 보낸 편지 전문.

스님. 지율스님
이제 단식을 거두어주시지요.
새만금 갯벌을 살리고 상생의 길로 나아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우리에게 주어진 기쁘디 기쁜 소식을 들은 그 순간, 나는 스님 생각에 그만 눈물부터 나고 말았습니다.
우리 지율 스님은 어찌 하냐고요.
기적 같은 이 소식이 정말 현실이라는 것을 실감하고 실감할수록 스님 생각에 더더욱 속이 탔습니다.

스님의 결단과 의지에만 기댈 뿐 무엇 하나 보탬 안 되는 죄스러움에 그간 찾아보지도 못했건만, 수많은 망설임 끝에 그래도 어제는 새만금 조정권고안을 수용하자는 기자 회견 뒤에 용기를 내어 스님을 뵈었지요.
이미 다 마를 대로 마르고 비워진 몸이건만, 스님 영혼은 여전히 맑고 순수하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생명에 대한 사랑, 생명에 대한 외경, 생명의 힘, 그것이 그렇게 기적을 만들고 있는 것이겠지요.

스님.
스님을 그 작은 방에 내려두고 다시 이곳 부안으로 돌아오는 걸음이 천근만근 무거웠습니다. 아프디 아프고 슬프고 슬픈 마음이 가시지를 않았습니다.

스님.
스님을 사랑하고 존경하고, 천성산을 살리기를 염원하는 수많은 영혼들이 매일 매순간 기도하고 매일 저녁 촛불을 태우고 있습니다. 애끓는 심장을 태우고 있습니다.
이 아름다운 사람들과 더 오래도록 함께 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천성산과 도롱뇽과 온 생명붙이들과 노래하고 속삭이기를 더 오래도록 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 같은 종교인에게야 삶과 죽음이 별반 다르지 않고 선명한 경계 또한 있을리 만무하겠지만, 우리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생명 이야기를 들려주고 더 많은 사람들이 생명존중과 상생의 여정에 들어서도록 북돋우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스님과 더욱 오래도록 생명 사랑을 이야기하고, 스님에게서 천성산 이야기를 들을 권리가 있습니다.
그 방법이야 스님께서 해 오신 수많은 노력들을 통해 우리가 이미 알고 깨닫고 있지만,
이 이승에서 스님과 더 긴 시간을 나누고 싶어 하는 사부대중의 애타는 심경 또한 천성산 생명 소리만큼이나 귀하고 소중하게 들어주시길 간곡하게 청합니다.

스님.
죽어 천성의 전설이 되지 말고 살아 천성의 어미가 되어주십시오.
어제 문득 제 자신을 돌아보니 새만금 갯벌을 살리자고 나선지 벌써 칠팔년 되었습니다.
길 위에서 갯벌에서 뒹굴며 세월을 잊었는데 어느덧 흰 머리 흰 수염 무성해진 환갑의 노인네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 길고 긴 시간을 속절없고 대책 없이 저 넓디넓은 생명의 갯벌이 죽어가는 걸 어쩔 수 없이 두 눈으로 지켜보고 수없이 눈물 삼키며 이 길 왔습니다.
이제 새만금 갯벌도 숨길을 틔울 수 있고 우리 전북도민들도 살 수 있는 희망의 기회가 오래고 오랜 기다림 끝에 기적처럼 찾아왔지만, 아직 모릅니다.
우리는 또 다시 이 길을 얼마나 더 오래 가야할지 모릅니다.
저 아픈 갯벌을 끌어안고 피눈물 뿌리며 얼마나 더 질기고 모진 길을 가야 진정한 부활 소식을 듣게 될 지 아직 모릅니다.
그저 살리고 살 길을 찾아, 가고 또 가야 할 것만을 알 뿐입니다.
스님, 그 길에서 스님도 오래도록 뵐 수 있기를 바랍니다.
생명과 생명이 초록의 공명을 이루고, 천성산과 새만금 갯벌이 서로 화답할 수 있도록 스님이 그 여정에 꼭 계셔주시길 기도하고 또 기도합니다.

스님.
나도 이곳 부안에서 희망의 촛불을 들겠습니다.
스님을 사랑하는 수많은 이들의 손에 든 촛불이 스님 몸을 덥히고 그 소중한 마음들은 생명의 곡기로 흐르게 해달라고,
천성산이 죽을 때 죽고 패일 때 패이더라도 스님의 간절한 염원처럼 제대로 된 환경영향 평가를 단 한 번만이라도 받게 해 달라고 마음 모으고 또 마음 모으겠습니다.

밝고 환한 햇살아래 웃으며 스님 뵐 수 있을 귀한 소식이 곧 들려오기를 꿈꿔봅니다.

문규현 신부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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