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로 지율스님의 단식이 87일째를 맞고 있는 가운데, 곽결호 환경부장관이 20일 밤 지율스님을 찾았지만 지율스님이 '정서적 호소'가 아닌 '확실한 대안'을 요구하며 만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곽결호 장관 지율스님 방문했지만 못 만나**
20일 저녁 8시30분쯤 곽결호 환경부장관이 직접 청와대 근처 통의동의 지율스님의 거처를 찾아갔지만, 지율스님이 만남을 거부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이와 관련, "열린우리당과 당정협의가 끝난 후 곽결호 장관이 단식 중단을 권고하기 위해서 지율스님을 찾았다"고 방문사실을 밝힌 뒤, "지율스님이 만남을 꺼려하는 것으로 알려져 언론에는 따로 공개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는 "지율스님이 곽 장관과의 만남을 피하기 위해 미리 인근 수녀원으로 자리를 옮겨 20~30분간 밖에서 기다리다 그냥 돌아왔다"며 "그 시간 동안 스님과 통화를 해 단식 중단을 권고했지만 스님께서 완강히 거부하신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당시 지율스님은 곽 장관에게 "나를 찾아와 단식 중단을 권고할 것이 아니라, 천성산을 살릴 수 있는 해법을 제시하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율스님은 앞서 <프레시안>과 13일 가진 마지막 인터뷰에서도 "곽 장관이 찾아와도 천성산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지 못하다면 절대 만나지 않을 것"이라고 면담 거부 의사를 밝힌 바 있다.
***청와대-환경부, "스님 요구는 못 들어준다"**
지율스님이 곽 장관을 만나지 않은 것은 천성산 문제 해결을 회피한 채 정서적으로 단식 중단을 권고하려는 청와대와 정부 인사들의 시도에 다시 한번 거부입장을 밝힌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청와대와 정부는 지율스님의 목숨을 건 단식에도 불구하고 지율스님의 요구를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곽결호 장관에 앞서 지난 18일 저녁 비공식적으로 지율스님을 방문했던 문재인 청와대 민정수석도 19일 <프레시안>에 전화를 걸어 방문 사실을 알린 후, "현재 청와대나 정부 입장에서 천성산과 관련해 지율스님이 요구하는 것을 들어줄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고 밝혔다.
문 수석은 "대신 지율스님의 단식으로 환경과 생명에 대한 큰 반향이 있었던 만큼 지율스님이 단식을 중단하고 앞으로도 환경, 생명 운동에 전념하실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며 "환경단체나 언론도 지율스님이 단식을 풀 수 있도록 도움을 줘야 할 것"이라고 협조를 요청한 바 있다.
20일 곽결호 장관과 박선숙 차관이 참석한 열린우리당과의 당정협의에서도 "정부가 이 상황에서 천성산 문제에 대해 행정적으로 약속하거나 변경할 수 없는 처지에 와 있다"며 "지율스님을 방문해 단식을 호소할 수밖에 없다"고 결론을 내린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지율스님은 "경부고속철도 천성산 관통터널 공사를 잠시 중단하고, 지질 안전성과 지하수 문제를 포함한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하는 것과 같은 해결책 없이는 단식을 중단하지 않겠다"는 얘기를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청와대와 정부의 정서적 호소로는 아무것도 해결될 수 없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지율스님 단식 푸는 열쇠는 청와대와 환경부에 있어**
한편 문재인 수석은 19일 <프레시안>과의 전화통화에서 "지율스님께서 '안의 문을 열어도 밖의 문이 열리지 않는다면 단식을 풀 수 없다'고 하셨다"며 "언론과 환경단체가 밖의 문을 열 수 있도록 도움을 줘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하지만 이 역시 정부가 상황을 잘못 파악하고 있다는 방증이라는 지적이 많다. 한 환경단체 관계자는 이와 관련, "밖의 문고리를 잡지도 않고 놓아둔 이들이 바로 청와대와 환경부"라며 "환경단체와 시민들은 언제든지 지율스님이 밖으로 나오면 함께 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청와대와 환경부의 안이한 상황 인식을 질타했다.
지율스님의 단식을 풀 수 있는 '열쇠'를 손에 쥐고 있는 청와대와 정부가 애꿎은 언론과 환경단체 또 시민들 탓만 하고 있다는 반론이다.
또다른 시민단체 관계자는 "저러다 지율스님께 큰일이라도 생기면 청와대, 정부, 환경단체 모두 패닉 상태에 빠질 것"이라며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가장 앞장서야 할 청와대와 정부가 감성적인 단식 중단 호소로만 일관하고 있으니 갑갑하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곽결호 환경부 장관은 지난 10월26일 한 신문에 기고한 '노벨평화상과 환경운동'이라는 글에서 환경운동가 왕가리 마타이가 노벨평화상을 받은 것에 대해 "이제 환경보호가 세계평화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요소라는 인식이 국제사회에 뿌리내리고 있다"고 칭송을 아끼지 않았다.
케냐에 마타이가 있다면 한국에는 지율스님이 있다. 천연수림에 조성되던 택지공사를 막기 위해 나무를 심다 경비원에게 끌려가고 무장 괴한들의 공격을 받아 생명의 위협을 받은 마타이처럼, 지율스님도 터널공사로 망신창이가 될 천성산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건 단식을 하고 있다. 이제 청와대와 정부가 하루 빨리 지율스님의 단식에 답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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