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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한 처칠'-'이중적인 루스벨트'의 이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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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한 처칠'-'이중적인 루스벨트'의 이중주

[화제의 신간] '역사적 우정' 처칠과 루스벨트

20세기를 넘어 오늘날 자유민주주적인 세계질서를 지켜낸 역사적인 두 인물이 있다. 영국의 처칠 총리와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이다. 2차 세계대전 중 독일의 히틀러가 프랑스마저 점령하자 영국은 유럽의 민주주의를 지켜내는 최후의 보루가 되었다.

***역사적 결정에 영향 미친 처칠과 루스벨트의 우정**

<처칠과 루스벨트>(존 미첨 지음.이중순 옮김.조선일보사)는 역경에 처한 한 나라의 지도자가 동맹국의 지도자와 공동의 목표에 대한 인간적인 신뢰를 바탕으로 역사의 큰 흐름을 결정했는가 하는 인간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춘 기록이다. 또한 공동의 목표를 추구하는 와중에서도 각자의 국익을 챙기려는 외교적인 계산 속에서 갈등을 빚는 지도자들의 적나라한 모습들도 조명했다.

22세에 조그만 지방언론 기자로 출발해 29세의 나이로 미국의 뉴스위크지 편집장이 된 저저 존 미첨은 두 인물을 미화하기보다는 철저하게 "그들은 역사적 인물이기 이전에 인간"이라는 점에서 이야기를 풀어갔다. 이 때문에 루스벨트의 이중성이나 처칠의 자아도취 같은 인간적인 결함이 정치적으로는 장점으로 작용하는 역설적 측면을 그리면서 사적 영역의 비화도 빼놓지 않고 보여준다.

처칠과 루스벨트의 우정은 사실 정치적인 동기로 시작된 것이다. 그것도 궁지에 몰린 처칠의 적극적인 구애로 이뤄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지도자들 사이의 '한계가 있는 우정'이 역사적인 결정에서 큰 역할을 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알몸의 처칠, "각하, 당신에게 숨기는 것 하나도 없습니다"**

저자는 처칠과 루스벨트의 우정의 부침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1939년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한 시점부터 1941년 일본이 진주만을 공격할 때까지 처칠은 루스벨트로부터 도움을 얻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영국이 미국의 신뢰와 지원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루스벨트에게 확신시켜야 했다.

1941년 미국의 전쟁 참여는 두 사람을 뜨거운 우정 속으로 몰아넣게 된다. 그리고 그 우정은 점차 커져가는 미국의 힘이 결국 루스벨트의 생각 속에서 처칠을 멀어지도록 하는 시점이 1943년 11월까지 지속되었다. 전쟁이 끝나가는 시기에는 루스벨트와 처칠의 관계가 더욱 벌어지게 된다. 1944년~1945년의 두 사람을 마치 결혼한 지 오래되어 서로의 취약점과 단점을 너무나 잘 알면서도 여전히 서로를 영원한 인생의 반려자로 생각하는 부부와 같았다.

전쟁 동안 처칠은 8세 연하인 루스벨트를 치켜세우며 종종 스스로를 '대통령의 부관'이라고 부르거나 "그것은 전적으로 보스의 결정에 달려있다"라고 말함으로써 그의 의견에 따르는 듯한 모습을 보이려고 했다. 그러나 가능한 한 적게 양보하기 위해 싸워야 했고, 루스벨트는 다정다감한 모습을 보였지만 줄곧 자신의 뜻대로만 밀고 나가려고 했었다.

처칠이 루스벨트의 신뢰를 얻기 위한 처절한 일화가 있다. 1941년 성탄절 무렵, 막 목욕을 끝낸 처칠은 벌거벗은 채로 백악관에 있는 손님용 침실 내부를 왔다갔다 하고 있었다. 노크하는 소리에 처칠이 "들어오시오"라고 말하자 루스벨트가 문을 열고 들어섰다. 알몸인 처칠을 보고 루스벨트가 실례했다며 뒤로 물러서자 처칠은 방에서 나가려던 루스벨트를 멈춰 세워놓고 이렇게 말했다.

"보십시오, 대통령 각하. 저는 당신에게 숨기는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루스벨트는 그때 일을 매우 즐거워했다. 당시 대통령 비서였던 그레이스 털리는 "그는 후에 내게 그때 일에 대해 이야기해주면서, 어린 아이처럼 낄낄거리며 웃었습니다"라고 말했다.

***투명한 성격의 처칠, 이중적인 루스벨트**

저자는 루스벨트가 더 유능한 정치인이었다면, 처칠은 더 따뜻한 인간이었다고 비교한다. 히틀러가 유럽 대륙을 호령하며 영국해협 건너편을 노려보고 있을 때 윈스턴 처칠은 홀로 서서 마주 노려보았다. 다른 사람 같았으면 타협을 모색하여 히틀러로 하여금 유럽의 대다수 지역을 통치하도록 내버려두었을 것이다. 모두가 머뭇거리고 있을 때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나선 처칠이 끝까지 버팀으로써, 루스벨트가 선뜻 나서지 못하는 미국을 전쟁과 세계적인 리더십을 위해 준비시킬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을 주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처칠이 루스벨트와의 우정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자질을 어릴 때의 성격형성과 연관짓는다. 아버지로부터 전혀 재능을 인정받지 못했던 처칠은 어떠한 감정적 좌절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도록 길들어졌다는 것이다.

이러한 자질로 인해 훗날 냉정하고 때론 잔인하며 항상 구애의 대상으로 남아 있던 루스벨트와의 우정에서도 소중한 자산이 되었다는 분석이다.

반면 루스벨트는 보다 예민했고, 부모의 극진한 보호 속에서 자랐다 루스벨트가 태어날 당시 53세였던 아버지 제임스와 27세였던 어머니 새러의 유일한 자식이었던 그는 처칠이 그렇게 갈망했던 부모의 관심을 넘치게 받았다.

그런 루스벨트는 다름 사람에게 명령하는 위치에 있기를 좋아했고, 남에게 지는 것을 끔직이 싫어했다. 한번은 다른 아이들에게 두목 행세를 했다는 이유로 꾸지람을 들은 어린 루스벨트가 이렇게 말했다. "엄마, 내가 명령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단 말이에요!"

루스벨트는 자신의 삶을 떠받치는 토대에 대해 한번도 공개적으로 의문을 제기한 적이 없었으며, 언제나 낙관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는 대공황의 암울함 속에서 좌절하고 있던 국민들에게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단 한 가지는 바로 두려움, 그 자체입니다"라고 말했다.

저자는 "루스벨트가 항상 자신감을 잃지 앟고 살 수 있었던 이유 가운데 하나는 그 자신이 평생 사랑과 보살핌을 받고 살아왔다고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루스벨트의 또다른 면을 보여주는 일화는 세계 대전이 벌어지고 있는 와중에도 내내 자기 아내와의 분란을 각오하면서까지 자신이 젊은 시절 사랑했던 한 여인과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비밀 유지와 관련해 루스벨트가 보여준 재능은 그가 지닌 가장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였다. 저자는 "여인들과의 관계 속에서 수많은 상반된 감정을 동시에 유지할 수 있었던 사람은 남자들과의 관계 속에서도 똑같은 모습을 보일 수 있었을 것"이라며 "그것은 처칠이 곧 깨닫게 되는 교훈이기도 했다"고 말한다.

***루스벨트, 처칠 속이고 스탈린과 단독회담 추진하기도**

1943년 5월 루스벨트의 밀사인 전 미국대사 조지프 데이비스가 루스벨트의 친서를 들고 스탈린에게 가고 있었고, 그 친서에는 처칠 없이 단 둘이 만나자는 제안이 담겨 있었다. 데이비스는 5월6일 소련을 향해 출발했고, 처칠은 5월11일 백악관에 도착했던 것이다. 그것은 전형적인 루스벨트의 모습이었다. 처칠을 샹그리라에 잡아둔 채 겉으로는 그를 솔직하고 친근하게 대했지만, 또 다른 한쪽에서는 스탈린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던 것이다.

루스벨트는 처칠에게 자신이 스탈린과의 단독회담을 제안해 놓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실제로 루스벨트의 메시지는 처칠이 초기 회담에서 배제되어야 한다는 점을 특별히 강조하고 있었다.

처칠의 딸 메리 소움즈에 따르면 처칠은 투명하다는 의미에서 순수했다. 처칠은 다른 사람들도 자신처럼 투명하기를 기대했다. 처칠은 루스벨트와 스탈린이 알래스카에서 단독 회담을 가지려고 한다는 사실을 알고 어떠한 회담이든 자신도 포함시켜 달라고 간청했다.

그러나 루스벨트는 자신의 교활함이 명백히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거짓말로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다. 루스벨트는 이렇게 회신했다.

"제가 스탈린에게 단둘이서만 만나자고 제안한 적은 없습니다. 스탈린이 제안한 것"이라면서 "그 제안에 대해 논의 중이며 그 안이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여전히 진실을 감추고 있는 루스벨트는 이렇게 덧붙였다. "물론 당신과 나는 이런 문제에 대해 철저하게 터놓고 지내는 사이가 아닙니까."

그러나 스탈린이 곧 루스벨트의 제의를 거절함으로써, 이 문제는 끝났다.

투명한 성격의 처칠은 남에게 거의 원한을 품지 않는 특질을 지녔다. 저자에 따르면. 전쟁 후 처칠과 오랜 세월을 함께 보냈던 앤서니 모태규 브라운은 "단 한 명도 그런 사람이 없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것은 정말 평범치 않은 개인적 매력이었다. 산도스 경은 이렇게 말했다. "그는 오늘이라는 회계장부에 적힌 내용을 내일이라는 계정에 옮겨 적는 법이 거의 없었습니다. 저는 그와 일격을 주고 받으며 날카롭고 신랄하게 논쟁을 벌인 적이 여러 번 있었지만, 그 다음날 아침이면 어김없이 인자하고 다정한 그의 미소를 보곤 했습니다." 용서받지 못할 일이란 거의 없었고, 처칠의 경우는 실제로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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