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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시위와 한국 민주화 투쟁은 성격이 다르다"

[윤효원의 '노동과 세계'] 탓얀콩 영국 소아스 런던대학교 교수 인터뷰 ①

국내 언론에 홍콩 시위에 관해 수많은 기사가 넘쳐나지만 대부분 반중국(anti-China) 경향성을 띠고서 시위대와 경찰의 공방을 표피적으로 다룰 뿐이다. 탓얀콩(Tat Yan Kong) 영국 소아스 런던대학교(SOAS University of London) 비교정치개발학과 교수를 만나 홍콩 사태의 원인과 전개 과정과 향후 전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탓얀콩 교수는 홍콩 출신으로 영국 옥스퍼드대학교에서 동아시아 비교 정치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동아시아 선진 자본주의의 노동과 세계화, 사회적 대화, 미시-코포라티즘과 부패 문제에 관한 논문을 꾸준히 발표해왔다. 최근 들어 북한의 정치경제학과 북중 관계 연구에도 관여하고 있다.

▲ 지난 6월 16일 홍콩 도심에 홍콩 시민 30%에 달하는 200만 명이 검은 옷을 입고 거리에 나와 범죄인 인도법 완전 철폐 등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EPA=연합뉴스

- 홍콩 시위를 두고 한국의 광주나 87년 6월 항쟁에 비유하는 시각이 많다

홍콩 시위와 한국 민주화 투쟁은 그 성격이 다르다. 홍콩 시위는 1984년 영국과 중국이 합의한 일국양제를 유지하려는 보수적 투쟁이고, 한국의 민주화 투쟁은 친미 반공을 지향한 지배 엘리트가 구축한 체제를 바꾸려는 변혁적 투쟁이었다. 한국의 지배층은 군대를 동원한 학살이라는 무력의 최대치를 행사했다는 점에서도 홍콩과 차이가 있다.

'일국양제(one country and two systems)'를 둘러싼 해석의 차이가 지금의 홍콩 사태를 촉발시켰다. 홍콩의 친중국 세력과 중국 정부는 동맹 관계지만, 이 둘의 이해관계가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베이징의 주목과 지지를 얻기 위해 홍콩의 친중국 세력은 자신들의 배후에 중국공산당이 바로 있는 것으로 과장하는 경우가 많다.

북아일랜드가 영국에 남아있길 원하는 북아일랜드의 친영파들(the Unionists)도 런던의 관심을 끌기 위해 상황을 과장한다. 홍콩 시위대도 마찬가지다. 미국과 영국의 관심을 끌기 위해 자신들의 입장에서 상황을 과장한다. 홍콩 문제는 홍콩 정부의 이니셔티브로 주로 이뤄지지, 베이징 정부가 주도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

- 홍콩 시민 다수는 친민주파와 친중국파 중 누구를 지지하는가

분명한 사실은 홍콩 시민 다수가 홍콩의 독립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들은 현상 유지(status quo)를 원한다. 물론 이번 선거에서 보듯 더 많은 민주화를 원한다. 세대로 보면 청년층에는 친민주파가, 노년층에는 친중국파가 많다.

홍콩 시민 중에 복수 여권을 갖고 있는 이들이 많다. 홍콩 여권, 외국 여권, 심지어는 영국 해외 여권(British National Overseas Passport)도 있다. 사정이 악화될 경우 홍콩을 떠나 해외로 이주할 생각을 하는 사람도 많다.

2차 대전 전에 홍콩 인구는 25만에 불과했다. 지금은 750만이다. 50년대와 60년대에 중국에서 100만에서 200만 명 가까이 정치적 이유로 이주해왔는데, 이런 집안에 속한 경우 대부분 반중국 성향을 보인다. 반면 중국이 세계 대국으로 성장한 이후인 80년대와 90년대에도 많은 중국인들이 경제적 이유로 홍콩으로 이주했는데, 이들은 친중국 성향을 보인다. 지금도 하루에 150명의 중국인들이 홍콩으로 이주하고 있다.

- 친민주파가 주장하는 민주주의란 무엇을 말하는가

가장 큰 이슈는 행정관 직선제 도입이다. 2014년 중국은 제한된 직선제를 제안한 적이 있다. '제한된'이란 수식어를 단 것은 행정관 선거에 나설 후보들은 직능 대표 등으로 구성된 후보지명위원회(nominating committee)의 인준 과정을 거쳐야 하는 제도였기 때문이다. 당시 '우산혁명'을 주도한 시위대 지도부는 물론이거니와 의회격인 입법회(立法會)의 민주파 의원들도 베이징의 제안을 거부했다.

개인적으론 이 안을 받는 타협을 했어야 한다고 본다. 그랬다면 제한된 정치적 경쟁이지만 캐리 람보다는 더 나은 정치력을 가진 지도자를 뽑을 수 있었을 것이다. 정치력에서 민의와의 교감이 중요한데, 만약 그랬더라면 송환법을 이런 식으로 무책임하게 추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친민주파의 우선 순위는 '부패하고 왜곡된' 정치 체제를 개선하는 것이다. 정치 문제가 '부패하고 왜곡된' 사회경제 문제를 야기한다고 본다. 이런 점에서 친민주파에게 사회경제 문제나 재분배는 아직 중요한 쟁점이 아니다. 정치적 권리와 정치적 가능성이 주요 관심사다.

- '친민주' 진영이 사회경제적 개혁에 소극적이라는 비판도 있는데

사회경제적 개혁에 대해서는 친민주 진영뿐만 아니라 친중국 진영도 지금까지 소극적이었다. 단 이번 지자체선거에서 친중국 정당은 공공 주택과 사회복지 같은 공약을 내세웠다. 친민주파는 민주주의를 해야 부패가 줄고, 그래야 제대로 된 사회경제 개혁을 가져올 수 있다고 본다. 빈부격차가 심하고 주택 문제가 심각한 원인을 정치 체제가 부패해서 그렇다고 보며, 정치 개혁과 민주화가 우선이라는 입장이다.

- 시위대 슬로건인 '시대 혁명, 광복 홍콩'에서 광복은 독립을 뜻하는가

홍콩 독립은 유엔이 인정하지 않는 바로 국제법 위반이다. '광복'은 손문의 혁명노선에서 빌려온 말로 보인다. 손문에게 광복은 청나라 군주제의 전복을 뜻했고 이는 1911년 신해혁명으로 이어졌다. 광복이 꼭 독립만을 뜻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중국의 개입 확대를 반대하고 더 많은 정치적 자유를 뜻하는 것으로 본다.

- 2014년 중국이 제안한 '제한된 직선제'에 대한 친중국파의 입장은 뭐였나

식민지 시절에는 친영파였다가 1997년 이후에는 친중파로 돌아선 재계(business)도 중국의 직선제 안을 거부했다. 사실 홍콩의 캐리 람 행정관, 행정회의, 입법회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룹이 홍콩 재계다. 홍콩 정부가 보다 민주적으로 구성될 경우 재계의 입김이 줄어들 것을 염려한 것이다.

- '친민주(pro-democracy)' 그룹은 정치력이 어떤가

친민주 그룹은 세대별로 분화되어 있다. 지금은 40대 이상이 된 90년대와 2000년대 민주화운동 지도부는 유연했다. 하지만 현재의 민주화운동 지도부는 학생운동 경력의 30대 이하 청년층이 주축을 이룬다. 학생들의 의견을 많이 청취하며 비타협적인 성향이 강하다.

- 운동의 청년층 지도부가 비타협적 성향을 보이는 이유는?

이들은 중산층 출신으로 홍콩에 있는 대학을 나왔다. 이들이 사무직 노동자가 되었을 때 초임이 1200 미국 달러로 한국의 최저임금 수준이다. 반면 홍콩의 지배 엘리트들은 대부분 자식들을 해외로 보내 교육시킨다. 캐리 람 장관의 아들이 대표적이다.

홍콩의 집값은 런던의 4배에 달한다. 청년들이 집을 살 수 없다. 그런데 월급 많은 일류 일자리(top jobs)는 서방이나 중국에서 온 이민자들과 경쟁을 해야 하는데, 이 이민자들의 스펙이 만만치 않다. 홍콩의 젊은이들에게 미래는 절망(despair)인 것이다.

이에 더해 홍콩이 지금 누리는 자유를 중국에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을 청년층들이 갖고 있다. 중국에서 유튜브나 페이스북이 금지된 지 오래다. 10대나 20대에게 인터넷 세계의 자유는 대단히 중요하다. 20년 후인 2047년이면 그런 자유가 사라질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크다. 이런 젊은이들의 정서가 운동 지도부의 동력이 되고 있다.

- 영국 식민지 시절의 홍콩이 지금의 홍콩보다 더 민주적이고 경제적으로 나았나?

식민지 시절에 민주주의가 있었다고 말할 수 없다. 선거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홍콩 총독은 전부 런던이 일방적으로 임명했다. 흥미로운 점은 마지막 총독 크리스 패튼이 이전 총독들과 달리 보수당의 거물 정치인이었다는 점이다.

이전 총독들은 공식 행사가 아니면 홍콩 시민들과 어울리지 않았고 늘 흰 제복을 입었지만, 패튼의 행보는 달랐다. 그리고 식민지 막바지에 입법부에 대한 전면 직선제를 허용하기도 했다. 물론 이는 97년 반환 이후 홍콩 정부와 입법회에 의해 철회되었다. 지금 홍콩 시민들이 기억하는 영국 식민지는 패튼 시절의 '좋은' 기억들인 것이다.

경제적으로도 식민지 시절이 더 풍요롭지는 않았다. 하지만 안정된 직업을 갖고 집을 소유할 가능성이 지금 세대보다는 높았다. 몸은 고단하지만 모두 젊었고 열심히 일하면 미래를 향해 잘 갈 수 있다고 느끼던 시절이었다. 한국의 보수층이 박정희 시대를 좋게 보는 정서와 비슷한 것이다.

▲ 12월 28일 중국 광둥성 선전과 가까운 홍콩 셩슈이 지역의 쇼핑몰에서 반정부 시위를 벌이던 한 남자를 경찰이 연행하고 있다. ⓒAP=연합뉴스

- 최근 홍콩을 방문했을 때 현지 상황은 어땠는가

11월 3일부터 11일까지 방문했다. 홍콩은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주중에는 시위대나 경찰을 보기 힘들었고, 주말에 간헐적으로 시위대를 목격했다. 시위대에 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 시위대의 페인트 낙서는 다음 날 바로 청소되어 거리는 안정되어 보였다.

- 현지에서 느낀 시위 상황은?

시위대의 움직임은 빠른데 비해, 경찰의 움직임은 그보다 느렸다. 심각한 폭력을 행사하는 시위대를 두고 대만 간첩이다, 중국 간첩이다, 혹은 시설을 관리하는 회사 직원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폭력 시위대로 시설관리 회사 직원이 거론되는 이유는 파손된 공공 기물이 다음 날 멀쩡하게 수리되어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파손과 수리가 많아질수록 회사가 돈을 버는데 주목한 소문이다. 시위 및 진압과 관련하여 주장과 소문은 많은데, 이를 확증할 구체적인 증거는 없는 것 같았다.

- 홍콩 대학가는 평온한가

시위대는 주말 시위를 기다리는 듯했고, 홍콩침례대학 등 대학가들은 대체로 평온했다. 홍콩이공대 점거는 시위대의 전술 변화에 따른 특수한 경우로 보였다. 공항 입국 절차는 빨리 진행되었고, 시위로 홍콩 방문자가 줄어들다 보니 호텔 가격은 떨어졌고 거리에 보이는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줄었다.

- 홍콩 경찰의 폭력성 문제가 지적되고 있다

서방 언론은 경찰의 폭력성에 지나치게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하지만 홍콩 경찰의 대응이 영국 경찰이나 프랑스 경찰보다 더 잔인하다고 보지는 않는다. 유럽 경찰은 시위대와의 신체 접촉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고, 경찰이 진압봉으로 시위대를 마구 구타하는 장면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그에 비해 홍콩 경찰은 최루 가스와 고무탄을 난사해왔다.

영국의 경우 런던에서 시위가 벌어져 잉글랜드 경찰력만으로 대응하기 힘들면 스코틀랜드 경찰을 동원하는 등 경찰력 보충을 할 수 있는데, 홍콩은 그게 힘들다. 동원 가능한 경찰력에 한계가 있으니, 최루 가스와 고무탄 의존이 커지는 것 같다.

영국 경찰은 영국 본토에서는 최루탄과 고무탄을 안 쓴다. 대신 기마대가 시위 진압에 나서고 때때로 전기총을 사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독립 문제로 갈등을 겪었던 북아일랜드에서는 최루탄과 고무탄을 사용한 적이 많다.

- 홍콩 시위가 격화된 배경은 무엇이라 보는가

관료 출신들이 가득한 홍콩 정부가 정치 문제를 다루는 데 별로 유능하지 않다. 송환법 추진은 홍콩 정부가 한 것이지, 베이징이 한 게 아니다. 이미 홍콩은 세계 여러 나라와 송환 협정을 체결해놓고 있다. 그런데 현행 법제로는 중국, 마카오, 대만에 대해서는 범죄인 송환이 불가능하다. 법률상 사각지대가 발생한 것이다. 이것은 의도적이기보다는 홍콩 반환 과정에서 생긴 우연한 제도적 실수로 보인다.

송환법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중국에서는 법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다고 주장하지만, 이미 홍콩과 송환 협정을 맺어 놓은 필리핀의 법치 수준이 중국보다 높다고 말할 수 없다. 송환 제도의 미비로 중국 정부는 홍콩 기업인과 연루된 각종 부패 범죄의 수사와 처벌에서 애로를 겪어 왔다.

- 홍콩 기업인의 부패가 중국 정부와 어떤 관계에 있다는 말인가

중국공산당의 최대 관심사는 부패 척결이다. 세계 각국의 기업인들이 중국에 들어와 활동하고 있는데, 중국 정부 관료와 연결된 국내외 기업인들의 부패 사건이 비일비재하다. 부패한 관료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연루된 국외 기업인이 확인되면 해당 국가에 송환을 요구하는데, 홍콩 기업인들의 경우 이것이 불가능했다. 중국 정부 입장에서 보면 이러한 이유가 송환법을 추진한 배경이다.

- 중국 정부의 개입 정도는 어떻게 보는가

각자가 자기 입장에 따라 사태를 과장한다고 느낀다. 서방 언론은 서방의 입장에서 과장하고, 홍콩 정부는 자신의 입장에서 과장한다. 친중국파들은 중국의 입장에서 과장한다. 친중국 입장은 홍콩에 대한 중국의 주권과 중화 애국주의를 강조한다. 그렇다고 친중국파와 중국 정부의 입장이 완전히 일치하는 것도 아니다.

중국은 대사관 격인 중국 정부의 중앙인민정부 주홍콩연락사무소(中央人民政府駐香港聯絡辦公室)가 공격받을 때까지 홍콩 사태에 관여를 안 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 해병대가 삼엄하게 지키는 미국대사관과 달리 연락사무소의 보안과 경비는 일반 상점과 같다. 대로에 있고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으며 경비 경찰도 별로 없었다. 그래서 시위대가 쉽게 공격할 수 있었다. 여기서 중국 국기가 불태워지고 국가 상징이 훼손되니까 '일국양제' 원칙이 공격받는다고 느낀 중국이 나서게 되었다.

▲ 탓얀콩 영국 소아스 런던대학교 교수. ⓒ윤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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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효원

택시노련 기획교선 간사,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사무국장, 민주노동당 국제담당, 천영세 의원 보좌관으로 일했다. 근로기준법을 일터에 실현하고 노동자가 기업 경영과 정치에 공평하게 참여하는 사회를 만들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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