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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란 괴물과 악전고투한 참 목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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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20세기란 괴물과 악전고투한 참 목회자"

[신간] 타계 10주년 맞아 발간된 <문익환 평전>

59세의 늦은 나이에 민주.통일 운동에 뛰어들어 이후 94년 별세할 때까지 18년 동안 무려 12년이나 여섯 차례의 옥살이를 하면서 재야운동사의 '영원한 어른'이 된 고 문익환 목사. 고인의 타계 10년주년을 맞아 발간된 <문익환 평전>(실천문학사 간)은 현재 민족문학작가회의 사무총장 김형수씨가 5년간에 걸친 자료수집과 시적 언어로 엮은 문익환에 대한 본격 평전이다.

***"문목사는 영웅적 인간이 아닌 그리스도적 인간"**

저자는 이 평전을 통해 범속한 외부의 눈으로 형성된 기존의 ‘문익환 신화’를 정면으로 부정한다. 문목사는 대립을 통해 형성되는 ‘영웅적 인간’이 아니라 역사와 가족, 개인적 품성이 빚어낸 ‘그리스도적 인간’이라는 것이다.

저자의 이러한 전제에 동의한다면, 저자가 왜 민주.통일 운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1976년 이전 시대상황과 그의 가족사에 8백페이지가 넘는 분량 중 절반 이상을 할애했는지 이해된다. 아울러 왜 박용규 목사가 “문 목사가 등장한 뒤로 재야는 엄숙함 대신 환희와 축제의 분위기로 바뀌었다”고 말한 이유를 짐작하게 된다. 그는 단순한 재야운동가가 아니었다.

민족문학계의 대표적인 시인 겸 소설가, 논객으로 평가받는 저자는 문익환 목사의 숭배자로서 만주와 미국, 일본 그리고 북한을 오가는 현장취재, 60여명에 이르는 관련 인물과의 인터뷰, 50여종의 참고서적.논문을 망라한 자료를 바탕으로 열정적이면서 탄탄한 필력으로 문 목사의 생애를 엮어냈다.

***불행한 세기의 원년에 태어나다**

자크 아탈리는 저서 <21세기 사전>을 통해 “20세기는 1918년에 시작되었다”고 규정했다. 1917년 10월 러시아 혁명이 성공하고 약 9개월에 걸쳐서 소비에트 권력의 국가적 위상이 확립되고 세계는 냉정하게 두 개의 진영으로 갈라졌고 그 진영적 재편은 철저하게 전쟁의 형식으로 관철되었다는 것이다.

해나 아렌트도 “20세기는 사실상, 레닌이 예견했듯이, 전쟁과 혁명의 세기가 되었으며, 그러므로 전쟁과 혁명의 공통분모라고 일반적으로 믿어지는 폭력의 세기가 되었다”는 견해를 밝혔다.

문 목사는 이 불행한 세기의 원년(1918)년에 태어났다.

그는 북간도에 태어나서 초.중.고교 과정을 마치고 21세 때 일본 신학교에 유학한다. 동경 시절에 알게 된 전도사 박용길과 1944년에 결혼하고, 만주 신경에서 목회 활동을 하다가 1946년에 월남하여 이듬해에 30세의 나이로 한신대를 졸업하면서 목사 안수를 받는다. 1949년에 다시 미국 프린스턴 신학교에 유학했다가 전쟁이 발발하자 33세의 나이로 유엔군에 지원해 통역자로서 정전회담에 참여한다.

그의 신분적 정체성이 최종 확정되는 것은 1955년 미국에서 돌아와 한신대.연세대에서 구약학을 강의하면서 그리고 한빛교회 목사가 되면서였다. 그후 1968년부터 신.구교 공동 성서번역의 책임위원으로 매진하고 1976년에 ‘3.1 민주구국선언’에 연루되면서 비로소 대중에게 알려진다.

이때가 바로 59세. 그는 원로의 나이였지만 재야운동에서 단연 두각을 드러내어 77세에 별세하기까지 여섯 차례에 걸쳐 12년간의 옥살이를 하는 수난의 삶을 산다. 그 기념비의 하나로써 ‘방북’은 통일운동의 최고 업적이 되어 후에 남북 양측의 극적인 공감대로 사용되었다.

***“문익환은 ‘20세기라는 괴물’과 처절한 악전고투 벌인 목회자”**

그러나 저자는 문익환의 이름에서 ‘불멸의 저항정신’가 ‘탁월한 지도력’을 연상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에게는 적을 미워하려는 의지가 없었고, 그의 행동에는 늘 전략과 전술이 담겨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흔히 이야기되는 ‘콤플렉스론’, 즉 해방 전까지는 윤동주와 친구였고 해방 후부터는 장준하와 교분이 두터웠는데 그 둘의 죽음으로부터 늘 콤플렉스를 느꼈던 것이 노년에 발현됐다고 생각하는 것은 천진난만하기만 한 해석이라고 저자는 일축한다.

저자에 따르면 문익환은 신라,고려,조선에서 배양된 연고주의, 섹트주의, 분리주의적 사고를 엄청나게 싫어했다. 그의 정서적 조국은 고구려였으며, 영혼적 혈통은 유목민이었다. 그는 늘 광활한 무대를 그리워했고, 좁은 칸막이 안에서 형성된 기득권을 타고 안주하는 것을 언제나 경계했다.

그가 험난한 시기에 자기의 의지를 관철해간 경로는 누군가 오랜 세월 동안 준비했다 내놓은 한 편의 드라마처럼 느껴진다. 그랬을 때의 주제는 촛불처럼 위태로운 생의 존엄성을 사이에 두고 어느 동화책 같은 목회자 한 사람이 ‘20세기라는 무자비한 괴물’과 벌인, 처철하다고 말해도 좋을 만큼의 악전고투이다.

저자는 그가 53세에 붙인 ‘늦봄’이라는 호에 대한 해석도 ‘늦게 깨달았다는’ 것이 아니라 그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인 늦봄처럼 살고 늦봄을 즐긴다는 액면 그대로 해석한다.

한국에서 20세기가 최초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식민지’였지만, 그 본질이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1945년의 분할점령이었으며, 그 마각이 노골화된 것은 한국전쟁이었다. 그 끝은 ‘통일’일 텐데, 그 전 경과를 문익환만큼 가까이에서 목격한 사람은 많지 않다. 아니, 없다. 이 측면에 관한 한 문익환의 자아사와 가계사와 한국사는 경악스러울 만큼 맞붙어서 진행된다.

저자는 문익환이 정전회담의 통역을 하면서 ‘그 어떤 비극 앞에서도 끝까지 ‘이데올로기의 칸막이’를 포기하지 않는 그 모순투성이이 20세기 인간들‘을 직접 겪으면서 그의 생애의 반전이 시작된 것으로 파악했다.

그의 생애의 반전이 극적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긴 시간 동안 포기와 회피와 절망을 거듭하면서 이루어진 매우 느리고 지루한 것이었다.

***“한국 국적의 히브리 민중에 대한 뜨거운 사랑 퍼붓기”**

그는 자신이 갈망하던 대사업이 신.구교 공동번역의 일이 무르익을 때 아호 ‘늦봄’을 짓게 된다. 이 지점이 바로 그가 시를 통해서 ‘히브리인에서 한국인으로’ 돌아왔다고 말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저자는 문익환을 읽을 때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되는 것이 그의 가족이 언제나 하나의 ‘애국단체’처럼 운영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그는 가족 성원들의 강제에 의해서라도 ‘한국사의 장소’를 떠나 있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아버지 문재린은 3. 1운동때 간도 국민회의 일원이었고 어머니 김신묵은 이동휘 선생의 딸이 결성한 ‘7인의 비밀 여자결사대’에 속했던 인물이다. 특히 동생 문동환과 누렸던 형제간의 우애와 경쟁의 뜨거움은 역사의 공간을 함께 갖지 않고서야 도무지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는 드디어 "민주는 민중의 부활이요, 통일은 민족의 부활"이라는 예언적 사명을 외치며 ‘한국 국적을 가진 히브리 민중’의 희생과 비애를 숭고한 차원으로 고양시키는 길을 향한다.

그에게서 한국은, 고통을 통해 한국뿐만 아니라 인류를 구원하는 그리스도의 장소로 인식되었다. 한국은 반드시 ‘부활’을 이뤄야 할 어떤 신성한 사명을 갖는 땅이 된 것이다.

고은 시인은 문익환이 자신의 공동체에다 투여했던 막대한 양의 사랑,박애, 헌신에 대해 "그의 순정은 폭력이었다!"고 촌철살인한다. 폭력은 상대방의 능동적 방어를 용인하지 않는다. 그의 순정은 불가항력의 성격을 띠고 한국현대사가 가장 참담했던 시기에 능동적 방어를 무너뜨리고 불행한 이웃들을 안간힘으로 사랑해 버렸다는 것이다.

때문에 저자는 문익환의 신분적 정체성을 나타내는 호칭을 ‘선생’이 아니라 ‘목사님’이라고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가 추구해온 가치는 정치 사회적으로 인권운동, 민중운동, 통일운동 등으로 보이지만 내면적 실체는 ‘그리스도적 가치의 실현’이며 그의 행적에서 ‘인류 보편의 가치’ 즉 우리 민족만의 가치가 아니라 ‘지구적이고 우주적인 가치’가 발견된다는 점이 분명히 다른 재야인사들과 다른 점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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