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난 프리타>는 사회가 프리터족을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대한 영화로, 미디어에 의해 완전히 객체화된 '불쌍한' 프리터의 모습이 등장한다. 자기 삶에 당당했고, 꿈도 분명했던 인식 씨는 영화를 보고 임시직을 전전하는 지금의 모습이 구질구질하게 비칠 수도 있다는 점에 불안해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방황(?) 끝에 그는 다시 감독들 앞에 나타난다. 여전히 자신의 20대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마음에서 용기를 낸 것이다.
"우리 이야기는 우리가 할게"
최근 들어 20대에 의한 20대 다시 보기가 활발하다. 도화선은 <88만 원 세대>(우석훈·박권일 지음, 레디앙 펴냄)였다. 2007년을 강타한 동명의 책은 그 내용보다 이 명명(命名)이 만능이 돼 버린 게 문제였다.
이 말 속에는 공동체를 체험하지 못해 이기적으로 변해버린, 그럼에도 태생이 무기력하고 노력해도 88만 원 밖에 손에 못 쥐는 '잉여'들이 웅크리고 있었다. 윗세대는 이 말을 편의대로 갖다 붙이면서 '잉여' 상황을 각개전투로 타파하라고 권하기나 할 뿐이었다. 결론이 '각자 잘 하자'로 수렴되면서 논의는 거기서 닫혀버렸다.
▲ <이십대 전반전>(문수현 외 지음. 골든에이지 펴냄). ⓒ프레시안 |
첫째, 내 이야기는 내가 한다는 책임감 혹은 자존감이다. 저자들은 "정형화된 이미지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세상에 알릴 방법은 결국 스스로 자신의 이야기를 해나가는 방법 밖에 없"기 때문에 출판 제의를 받아들였다고 말한다.
"어느 학자가 문화에 대한 다양한 정의들을 175개로 정리한 후 이를 종합하여 새로운 정의를 내놓았지만 그건 결국에는 문화에 대한 176번째 정의가 되었을 뿐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우리의 이야기는 20대에 대한 176번째 담론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 설령 이것이 176번째 담론이더라도 우리에게는 첫 번째 이야기다. 게임의 구조는 거듭 이야기되어야 한다. 특히 그 자신의 입을 통해서." (홍지선, '게임을 끝내는 방법')
둘째, 이 이야기를 다른 이들과 나누고 싶다는 연대의식이다. 지금의 20대를 불안의 구렁텅이로 빠뜨린 구조를 개선하면서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다.
저자들이 출판 기획 회의를 하면서 나눈 것으로 보이는 필담 중앙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나에서 시작해서 우리가 완성하는 글.' 여기서 우리란 저자 다섯이 아닌 책을 읽는 독자 모두, 특히 이제 곧 20대 전반전을 겪을 후배들일 것이다. 저자들은 여는 글에서도 "우리 20대의 전반전은 세상이 얼마나 가혹한지 배워가는 시기였지만, 후반전은 함께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세상이 돼야 한다"며 연대를 강조하고 있다.
"영화 <배틀로얄>과 우리들의 게임 사이엔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 영화 속 게임에서 참가자들이 질 수밖에 없는 건 외부와의 소통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 게임은 고립된 섬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그런 닫혀 있는 세계가 아니라 훨씬 복잡한 세계이다." (홍지선, '게임을 끝내는 방법')
20대 세대론? 20대 생태 보고서!
<이십대 전반전>의 저자 문수현, 박은하, 원소정, 최은정, 홍지선은 이제 막 대학문을 통과했거나 그 문턱 바로 직전에 서 있는 이들이다. 이들은 서울대학교 학내자치언론 <교육저널>의 기자로 활동하던 중 스펙 열풍 및 취업 고민에 관한 내용을 특집으로 실었다가 출판사 골든에이지로부터 뜻밖의 제안을 받는다. 88만 원 세대의 고민에 대해 써보자는 것이었다.
이 세대론에 부정적이었던 저자들은 역설적으로 그런 고민에 대한 글을 쓰지 않겠다고 결론 내렸을 때 책을 써야 하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거칠고 무성의한 범주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그 범주 속에 생동하는 진짜 20대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써보자는 거였다.저자들은 그래서 <이십대 전반전>을 <88만 원 세대>보다는 만화가 최규석의 <습지 생태 보고서>에 비유한다.
20대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밀착형으로 들려준다는 점에서 이 책은 영화 <개청춘>이나 지난 1월 출판된 <요새 젊은 것들>과 같은 맥락에 있다. 그러나 <개청춘>이 카메라를 들고 관찰하거나 개입하는 형태로 진행됐다면 이 책의 이야기는 좀 더 직접적이고, <요새 젊은 것들>이 인디 레이블이나 패션 무가지를 창업하는 등 앞서 다른 길을 개척한 사람들의 이야기라면 이 책은 보다 보편적인 이야기를 지향한다. 취업, 아르바이트, 스펙, 가족관계 등에 대한 이들의 이야기는 너무나 평범해 서울대생들이 물질적·상징적 기득권을 독식해왔다는 편견을 깨준다.
각자 다른 환경에 처한 20대 전반전 기수들에게 보편이란 무엇일까? 이 책에서 발견한 보편성은 '불안'이다. 20대는 경쟁 논리가 지배하는 세상이 잘못됐다는 생각을 하긴 하지만, 안정적인 주거나 좋은 직장 등 제 삶의 조건을 낫게 하기 위한 개인적 문제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어 불안하다. 희생이 필요한 구조의 개선과 보호하고픈 자신의 처지 사이에서 발생하는 불안은 캠퍼스, 자취방, 아르바이트 일터, 토익 시험장, 배낭 여행지까지 따라다니며 종횡무진한다.
이들은 냄새나는 자취방에서 탈출하고 싶지만 "누군가가 필요 이상으로 사치스러운 공간에서 사는 만큼 다른 누군가는 인격유지가 어려울 정도로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야 한다는 사실"에 불안해한다. (홍지선, '아무것도 포기하고 싶지 않아)
또 서비스직 아르바이트보다 훨씬 편한 환경에서 과외 교사를 하지만 "가장 창의적이고 진취적이어야 할 논술·토론 수업에서조차 먹기 좋게 포장된 개요를 입 안에 떠 넣어 주는 것이 내 역할이라는 사실"에 혐오감을 느끼기도 한다. (문수현, '친구야, 우리 과외하지 말자')
<이십대 전반전>은 이 치열한 불안을 낱낱이 공개하면서도 불안을 강요하는 세상에 옐로카드를 던지고 있다. 이 점에 주목한다면 책 표지의 노란색은 다소 위협적일 것이다. 그러나 <이십대 전반전>은 섣불리 '짱돌을 들라'고 말하지 않는다. 저자들이 말하듯 20대 대부분은 정치적으로 울퉁불퉁한 존재이고, 무엇보다 그들만의 연대법이 있기 때문이다.
그 방법이란 불안도 아픔도 직시하며 공감할 수 있는 분노를 만들어가는 것, 그리고 그 세를 불려 더 많은 사람들을 끌어안는 법을 강구하는 것이다. 저자들의 대학생활이 고스란히 담긴 잡지 이름이 하필 '교육' 저널인 이유도 알 것 같다. 이들의 저항은 말하자면 착실하고 사려 깊다. 옐로카드를 덮으며, 쉽지 않은 시대를 살아가는 동안 지켜낸 미덕을 후반전에서도 보여주길 기대하게 된다.
"누군가를 패자로 만들지 못해 안달하는 세상이라면, 서로의 패배를 끌어안는 것이 지배당하지 않을 가장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박은하, '양아치와 이불 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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