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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록 더 쪼들리고 앞날은 막막"

<김주익 위원장 유서 전문> "21년 근속에 기본급 1백5만원"

17일 아침 자살한 사체로 발견된 한진중공업 김주익 노조위원장(40)이 남긴 유서들이 발견됐다. 가족과 노조원들에게 남긴 이 유서는 지난 9월9일과 10월4일 작성된 것이어서, 외로운 고공투쟁을 하던 고인이 오래 전부터 자살투쟁을 생각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고인은 유서에서 "이 회사에 들어온 지 만 21년, 그런데 한달 기본급 1백5만원, 그중 세금들을 공제하고 나면 남은 것은 팔십 몇만원에, 근속연수가 많아질수록 더욱 더 쪼들리고 앞날은 막막한" 노동자들의 극한현실을 토로했다.

고인은 또 유서에서 "노동자가 한 사람의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목숨을 걸어야 하는 나라, 그런데도 자본가들과 썪어빠진 정치꾼들은 강성노조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고 아우성"이라고 정치권과 재계를 신랄히 비판했고, "이놈의 보수언론들은 입만 열면 노동조합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고 난리니 노동자는 다 굶어죽어야 한단 말인가"라고 보수언론의 보도태도에 대해서도 분노를 숨기지 않았다.

고인은 "경영진들은 지금 자신들이 빼어든 칼에 묻힐 피를 원하는 것 같다. 그래, 당신들이 나의 목숨을 원한다면 기꺼이 제물로 바치겠다. 하지만 이 투쟁은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고 자신이 죽음을 택한 이유를 밝혔다.

다음은 고인이 남긴 두 통의 유서 전문이다.

***유서**

오랜만에 맑고 구름 없는 밤이구나.

내일 모래가 추석이라고 달은 벌써 만월이 다 되어 가는데 내가 85호기 크레인 위로 올라온 지 벌써 90여일.
조합원 동지들의 전면파업이 50일이 되었건만 회사는 교섭 한번 하지 않고 있다. 아예 이번 기회에 노동조합을 말살하고 노동조합에 협조적인 조합원의 씨를 말리려고 작심을 한 모양이다.

노동자가 한 사람의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목숨을 걸어야 하는 나라, 그런데도 자본가들과 썪어빠진 정치꾼들은 강성노조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고 아우성이다.

1년 당기 순이익의 1.5배, 2.5배를 주주들에게 배상하는 경영진들, 그러면서 노동자들에게 회사가 어렵다고 임금동결을 강요하는 경영진들. 그토록 어렵다는 회사의 회장은 얼마인지도 알 수 없는 거액의 연봉에다 50억 원 정도의 배상금까지 챙겨가고 또 1년에 3천5백억원의 부채까지 갚는다고 한다. 이러한 회사에서 강요하는 임금동결을 어느 노동조합, 어느 조합원이 받아들이겠는가.

이 회사에 들어온 지 만 21년, 그런데 한 달 기본급 105만원. 그중 세금들을 공제하고 나면 남는 것은 팔십 몇 만원. 근속 년수가 많아질수록 생활이 조금씩이라도 나아져야 할텐데 햇수가 더할수록 더욱 더 쪼들리고 앞날이 막막한데, 이놈의 보수언론들은 입만 열면 노동조합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고 난리니 노동자는 다 굶어죽어야 한단 말인가.

이번 투쟁에서 우리가 패배한다면 어차피 나를 포함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 한사람이 죽어서 많은 동지들을 살리 수가 있다면 그 길을 택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경영진들은 지금 자신들이 빼어든 칼에 묻힐 피를 원하는 것 같다. 그래, 당신들이 나의 목숨을 원한다면 기꺼이 제물로 바치겠다. 하지만 이 투쟁은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

잘못은 자신들이 저질러놓고 적반하장으로 우리들에게 손해배상 가압류에 고소고발로 구속에 해고까지 노동조합을 식물노조로 노동자를 식물인간으로 만들려는 노무정책을 이 투쟁을 통해서 바꿔내지 못하면 우리 모두는 벼랑 아래로 떨어지고 말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어떤 일이 있더라도 승리할 때까지 이번 투쟁은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그동안 부족한 나를 믿고 함께 해준 모든 동지들에게 고맙고 또 미안할 따름이다. 그렇지만 사람은 태어나면 죽는 것, 40년의 인생이었지만 남들보다 조금 빨리 가는 것뿐, 결코 후회는 하지 않는다.

그리고 노동조합 활동을 하면서 집사람과 아이들에게 무엇하나 해준 것도 없는데 이렇게 해어지게 되어서 무어라 할 말이 없다. 아이들에게 휠리스 인지 뭔지를 집에 가면 사주겠다고 크레인에 올라온 지 며칠 안 되어서 약속을 했는데 그 약속조차도 지키지 못해서 정말 미안하다.

○○아, △△아, □□야.
아빠가 마지막으로 불러보고 적어보는 이름이구나. 부디 건강하게 잘 자라주기 바란다.

그리고 여보,
결혼한 지 십 년이 넘어서야 불러보는 처음이자 마지막 호칭이 되었네. 그 동안 시킨 고생이 모자라서 더 큰 고생을 남기고 가게 되어서 미안해. 하지만 당신은 강한 데가 있는 사람이라서 잘해주리라 믿어. 그래서 조금은 편안히 갈 수 있을 것 같애.

이제 저 높은 곳에 올라가면 먼저 가신 부모님과 막내누나를 만날 수 있을 거야. 그럼 모두 안녕.

2003년 9월 9일

김주익

***동지들에게 남기는 글**

회사의 경영진들은 우리 노동자들을 최소한의 인간 대우를 해달라는 요구를 끝내 거부하고 말았습니다.

대의원 이상 간부 동지들. 그리고 조합원 동지 여러분.

어떤 일이 있더라도 이 투쟁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반드시 승리해야만 합니다. 그래야 노동조합을 사수할 수 있고 우리 모두의 생존권도 지켜줄 수 있습니다.

동지들

나의 죽음의 형태가 어떠하든 간에 나의 주검이 있을 곳은 85호기 크레인입니다. 이 투쟁이 승리할 때까지 나의 무덤은 크레인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나는 죽어서라도 투쟁의 광장을 지킬 것이며 조합원이 승리를 지킬 것입니다.

10월 4일

김주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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