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봉 묘목 50주와 신장투석기, 소나무재선충 방제약이 북측으로 갔다는 소식은 곧바로 논란이 됐다. 제주도는 16년 만의 남북교류 재개라는 의미를 강조했다. 일부 언론과 정치권은 수상한 대북 접촉 의혹을 제기했다.
이 사안을 남측 내부의 성과와 의혹이라는 틀로만 보면 더 중요한 질문을 놓치게 된다. 조선은 이 일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더 정확히 말해 조선 중앙은 이 일을 알고 있었고, 승인했으며, 정책적 판단 아래 수용했는가.
이 질문은 단순한 절차 확인이 아니다. 조선은 더 이상 남북관계를 민족 내부의 특수관계로 보지 않는다. 김정은 체제는 남북관계를 통일 지향의 특수관계가 아닌 적대적 두 국가 관계로 재정립하고 있다. 통일, 민족, 화해의 언어는 공식 담론에서 밀려났다. 한국은 협력 상대가 아니라 대결적 국가로 재규정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남측 지방정부의 물품을 조선이 공식 수용했다면 의미는 작지 않다. 적대적 국가관계 속에서도 의료·산림·농업 분야의 제한적 실무협력은 관리할 수 있다는 신호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드러난 정보만으로는 그런 해석을 하기 어렵다. 물품이 중국 다롄항을 거쳐 남포항에 도착했다는 사실만으로 조선 중앙의 승인과 수용을 단정할 수 없다. 남포항 도착은 물류상의 사실일 뿐 정책적 수용을 뜻하지 않는다. 조선 중앙이 사전에 알고 승인했는지, 어느 기관이 관여했는지, 실제 수령 주체가 누구인지, 물품이 어디로 전달됐는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다.
리호남이라는 인물의 등장은 문제를 더 민감하게 만든다. 그는 단순한 실무 연락 창구로 보기 어려운 인물이다. 과거 남북 정상회담 논의와 대북송금 사건 재판 과정에서 이름이 거론된 만큼 그의 행위는 정치적 해석을 피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그의 등장이 곧 조선 중앙의 공식 방침을 뜻하지는 않는다. 중앙의 명시적 승인 없이 특정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진행된 제한적·비공식적 접촉이었을 가능성도 열어둬야 한다.
조선 체제에서 대남 접촉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김정은 시기에는 대남·대외·경제협력 영역이 더욱 중앙집권적으로 관리돼 왔다. 그런 체제에서 개인 차원의 움직임이 가능했느냐는 의문도 당연하다. 다만 조선 내부에서도 과거 대남사업, 해외 네트워크, 경제적 이해관계, 실무기관의 관성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중앙의 전략 노선과 현장 네트워크의 이해관계가 항상 일치하는 것도 아니다.
이번 사건의 핵심은 "조선이 남북교류를 다시 열었다"가 아니다. 핵심은 "조선 내부의 어떤 층위에서, 어떤 권한과 판단으로 이런 접촉이 가능했는가"다. 중앙의 승인 아래 이뤄진 일이라면 제한적 기능협력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가 될 수 있다. 중앙의 묵인 속에 실무선이 처리한 일이라면 아직 완전히 닫히지 않은 회색지대의 존재를 보여준다. 특정 인물이나 네트워크의 개인적 추진이었다면 남북교류 재개의 신호가 아니라 오히려 위험한 예외에 가깝다.
조선 중앙의 시각에서 보면 문제는 더 복잡하다. 이번 일이 중앙의 정식 판단이 아니었다면 남측에서 벌어진 논란은 조선 내부에 부정적 신호로 읽힐 수 있다. 남측과의 작은 접촉이 곧바로 정치적 공방과 의혹으로 번지고, 접촉 인물의 이름이 공개적으로 소비되며, 사업 경위가 언론과 정치권의 공격 대상이 된다면 조선 중앙은 남측 접촉의 위험성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남측과 접촉해 봐야 얻을 것은 적고, 내부 통제와 대외 노출의 부담만 커진다"는 판단이 강화될 수 있다.
가장 큰 피해는 제주도나 특정 인물에게만 돌아가지 않는다. 이미 거의 사라진 남북 간 물밑 접촉 공간이 더 좁아질 수 있다. 군 통신선도 끊기고, 당국 간 회담도 중단됐으며, 민간교류도 막힌 상황이다. 남아 있는 것은 비정치적·인도적·실무적 접촉의 희미한 가능성뿐이다. 그 가능성마저 정치적 의혹의 언어로 소모된다면 어느 북측 기관도, 어느 실무자도, 어느 중간 네트워크도 남측과의 접촉을 시도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이번 사안을 "성과냐 의혹이냐"로만 볼 수 없는 이유다. 성과라고 말하기에는 조선 중앙의 승인과 수용이 확인되지 않았다. 의혹이라고만 보기에는 실제 물품 반출과 도착이라는 사실, 통일부 승인 절차, 의료·산림·농업이라는 품목의 성격이 있다. 더 중요한 문제는 따로 있다. 이 사건이 남북교류 재개의 가능성을 보여주는지,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비공식 접촉 공간마저 닫히게 만드는 계기가 될지 아직 판단할 수 없다는 점이다.
지금 필요한 질문은 "조선 중앙은 이 일을 알고 있었는가. 알고 있었다면 어느 수준에서 승인했는가. 몰랐다면 이번 일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리호남의 접촉은 공식 권한에 따른 것이었는가, 과거 네트워크의 잔존적 움직임이었는가. 물품은 실제로 어느 기관에 전달됐고 어떤 방식으로 사용되고 있는가. 남측의 공개 논란은 조선 내부의 대남 접촉 관리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이다.
한라봉 묘목 50주는 거대한 평화의 상징이 아닐 수 있다. 단순한 불법 접촉의 증거로 단정할 일도 아니다. 조선 중앙의 의중이 확인되지 않은 불확실한 사건이다. 남측의 희망을 앞세워 "조선이 실용협력을 받아들였다"고 해석하는 태도는 신중해야 한다. 남측의 의심만 앞세워 "수상한 대북 접촉"으로 몰아가는 태도도 위험하다.
남북관계가 완전히 막힌 시기일수록 작은 틈새는 더 소중하다. 그만큼 더 취약하다. 이번 사건은 그 취약성을 보여준다. 조선이 열어준 문인지, 누군가 잠시 밀어본 틈인지, 이미 닫히고 있는 문틈에서 생긴 마지막 흔적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하나다. 남측 내부의 과도한 정치화가 계속된다면 조선 중앙은 남측과의 작은 접촉마저 더 위험하고 불필요한 것으로 판단할 가능성이 높다.
지금 봐야 할 것은 한라봉 묘목 50주의 크기가 아니다. 그 묘목이 지나온 좁은 틈의 성격이다. 그 틈이 조선 중앙의 계산 속에서 열린 것인지, 중앙의 뜻과 무관하게 생긴 예외적 균열인지 확인해야 한다. 확인 없이 성과와 의혹만 다투는 사이, 남북관계의 마지막 실무 접촉 공간은 더 빠르게 사라질 수 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