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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배원이 죽어간다

[안종주의 안전사회] 정말 부끄러운 집배원들의 집단 과로사

집배원들이 다음달 9일부터 총파업을 한다고 한다. 파업의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가 집배원들이 과로사로 계속 죽어가고 있는데 우정사업본부, 즉 정부가 집배원을 2000명 더 늘리고 토요일 근무제를 폐지키로 한 노사합의를 실천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집배원들은 올 들어서만 6월 현재 9명이 과로사로 보이는 이유 때문에 숨져갔다. 2008~2017년 10년간 우정사업본부 노동자 166명이 업무상 질병과 안전사고 등으로 숨졌다. 이 가운데 상당수는 과로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부인할 수 없는 과로사회다. 과로 때문에 숨지는 사람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으뜸그룹에 속한다. 어느 국내 사회학자가 <과로사회>라는 책까지 낼 정도로 우리 사회의 치부 가운데 하나다. 노동자들의 과로사는 하루빨리 해결해야 할 해묵은 숙제이자 지금의 화두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의 아주 나쁜 전통 가운데 하나가 장시간 땀 흘려 노동하지 않는 것에 대한 비판과 과로에 시달리는 사람들에 대해 산업역군으로 포장해온 것이다. 1960년대 이래 50년 넘게 이런 나쁜 전통을 좋은 전통으로 여겨온 것이 사실이다. 그런 전통이 아직도 뿌리 뽑히지 않고 암적 존재로 버티고 있다.

과로사회는 전형적 후진사회

물론 최근 들어 국민소득이 크게 늘어나면서 '워라밸'과 '소확행' 등의 유행어에서 보듯이 뼈 빠지게 일하는 것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점차 득세를 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여전히 이런 사회 추세를 따라가지 못하거나 거스르는 일터, 그리고 일중독(워커홀릭, workholic)을 자랑스레 여기는 이들이 공존한다.

문재인 정부 들어 우리 사회가 선진국에 견줘 가장 취약한 자살, 교통사고 사망, 산재 사망 등으로부터 시민과 노동자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국민 생명 지키기 3대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임기 내 이들 3개 분야 사망자를 절반으로 줄이겠다는 야심찬 목표와 계획에 따라 관련 정책이 시행되고 있다. 절반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이 가운데 특히 산재사망 줄이기는 거의 진척이 없다.

세계적으로 고용률이 70%를 넘는 국가 중 연간노동시간이 1800시간을 넘는 나라는 그동안 대한민국이 유일했다. 한국은 최근까지만 해도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평균보다 연간노동시간이 300시간이나 더 많았다. 이 때문에 문재인 대통령도 2017년 "최근 한국 사회 가장 큰 화두 중 하나가 과로사회"라고 규정한 바 있다. 문 대통령은 OECD 최장 노동시간 속 집배원 과로사와 자살, 화물자동차 및 고속버스의 대형 교통사고 등 과로사회가 빚어낸 참사가 계속해 증가하고 있다고도 진단한 바 있다.

하지만 민간기업도 아닌 공무원 조직인 우정사업본부 내에서 과로사가 사라지거나 줄어들지 않고 있는 것이다. 진단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젠 실천이 중요하다. 장시간, 혹독한 노동조건에서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생명의 위협에 시달리는 노동자를 구해야 한다. 집배원들이 93%라는 압도적 찬성률로 사상 첫 파업에 찬성한 것에 주목해야 한다. 그만큼 절박하다는 방증이다.

총파업이 벌어지더라도 우정노조 조합원 2만8000명 가운데 절반 수준인 1만3000명 정도만 파업에 참여할 수 있다. 우정사업은 파업 때에도 공익을 위해 정상적으로 운영돼야 하는 '필수유지업무'로 지정돼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08년 노사 합의로 필수 인원 비율을 정했는데 우체국 창구 직원은 40%, 우편 분류 직원은 60%가 파업에 참가할 수 있다. 집배원의 경우는 25%만 파업할 수 있다. 따라서 시민들이 우편물을 받아보지 못하는 극단적 상황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정상 업무 때보다는 받아보는 시간이 더 걸리는 불편은 불가피하다.

공무원 과로사부터 해결해야 정부가 신뢰 얻어

따라서 시민들은 이런 불편을 감수하면서 이번 기회를 집배원들의 과로사가 완전히 사라지게 만들거나 획기적으로 줄이는 계기가 되도록 지지를 보내야 한다. 집배원들의 과로사는 그들만의 문제가 결코 아니다. 공무원을 비롯해 우리 사회의 과로사를 없애는 일터의 상징으로 만들어야 한다.

공무원들의 과로사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면서 민간 기업에서 벌어지는 과로사를 없애겠다는 것은 헛구호에 지나지 않는다. 고용노동부와 산업안전보건공단 등 과로사를 포함한 산재 예방에 책임 있는 부처와 정부기관은 집배원 문제가 이번에 슬기롭게 풀리면 곧 바로 민간 기업에서 일어나는 과로사 실태와 그 해결 방안을 마련하는데 집중해야 한다.

과로사는 추락사나 질식사 등 안전사고 성격을 지닌 산업재해와는 성격이 많이 다르다. 상당수의 산재가 불시에,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벌어진다면 과로사는 어느 한 순간에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누적돼온 것이 어느 날 자살, 심장질환, 뇌혈관질환(뇌졸중) 등으로 나타나는 특징을 지닌다.

1969년 29세의 일본 청년이 뇌졸중으로 갑자기 사망한 일이 벌어졌다. 과도한 업무로 인해 생긴 병이라고 인정받았다. 이를 최초의 과로사 사례로 보고 있다. 일본에서는 이를 '뽁구리'병이라고 불렀다. 뽁구리란 오랫동안 병을 앓는 일 없이 갑자기 죽는 모습을 가리키는 일본말이다. 일본에서는 1980년대 과로사가 본격 사회 문제가 됐다. 한국에서도 필자가 기자 초년 때인 1980년대 초 한 언론이 뽁구리병이 우리나라에서도 종종 발생한다는 기획기사를 다룬 적이 있었다.

연간 몇 명이 과로사로 숨지는지 아무도 몰라

과로사란 임상이나 법률상 용어가 아니다. 질병분류 코드에 과로사가 없기 때문에 의사 진단서에도 과로사가 없다. 따라서 과로사 통계가 없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나라 판례에서는 과로를 신체적 및 정신적 과중한 부하와 스트레스를 포함하는 포괄적 개념으로 보고 있다. 앞으로 노동계와 정부, 전문가들이 지혜를 모아 과로사에 대한 정의를 해 이를 바탕으로 우리나라 실태 조사와 일상적 통계 처리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과로사는 특정 직업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거의 모든 직업에서 발생할 수 있다. 공무원들도 종종 과로사로 숨지기도 한다. 어느 연구조사에 따르면 공무원의 업무상 사망 가운데 40% 가량이 과로사로 나타나고 있다. 한국타이어 공장에서도 노동자들이 잇따라 과로사로 숨져 사회 문제가 되기도 했다. 사무직, 제조업, 방송 종사자, 집배원, 응급실 의사 등이 잇달아 과로 끝에 숨지면서 장시간 노동과 노동 강도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마침내 문재인 정부 들어 주 근로시간을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축하는 근로기준법을 통과시켰다. 2018년 7월 1일부터 이 법이 적용되고 있다. 하지만 이것도 선진국에 견주면 매우 장시간 노동이다. 이마저도 지키지 않는 곳이 여전히 많다. 2교대 근무나 잦은 밤샘근무 등도 과로사를 부채질하는 요인이 된다.

과로사는 노동조건을 어떻게 만드냐에 따라, 예방이 가능한 산재다. 우리 사회가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크게 줄일 수 있는 성격을 띠고 있다. 과로사 문제가 나오면 그때마다 반짝 하고 관심을 가지지 말고 끈질기게 천착하는 것이 과로사 문제를 해결하는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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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주 박사는 <한겨레> 보건복지 전문기자를 지냈으며,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안종주의 위험 사회' '안종주의 건강 사회' '안종주의 위험과 소통' 연재 칼럼을 써왔다. 석면, 가습기 살균제, 메르스 등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각종 보건 및 환경 보건 위험에 관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며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석면, 침묵의 살인자> <위험 증폭 사회> 등 다수가 있으며, 최근 코로나19 사태를 맞이해 <코로나 전쟁, 인간과 인간의 싸움> <코로나19와 감염병 보도 비평>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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