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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 사고는 지진과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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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화학 사고는 지진과도 같다

[안종주의 안전사회] 화학사고 언제까지 되풀이할 것인가 <하>


왜 우리 사회에서는 화학사고가 끊이지 않고 계속될까? 잇단 사고에 화학단지가 입주해 있는 지역의 한 기초지자체 단체장은 이렇게 말한다. “과거에는 대규모 공장이 들어서면 지역 경제발전과 일자리 등 때문에 주민들이 환영하는 분위기도 있었지만 지금은 외려 건강과 안전 문제에 더 신경을 쓰기 때문에 이들 공장이 애물단지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특히 요즘처럼 화학사고가 잇따르게 되면 저도 그렇고 주민들이 늘 걱정거리를 달고 삽니다.”

대한민국을 안전사회로 가꾸어나가기 위해서 화학사고 예방과 조기 신속 대응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이번 한화토탈 스티렌모노머 증기 유출사고를 깊이 들여다보면서 안전사회를 목표로 한 우리 사회의 갈 길이 여전히 멀고 험하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고쳐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먼저 석유화학공장을 비롯해 화학물질을 다루는 공장들이 노후화돼 배관과 설비 등이 잦은 고장을 일으킨다. 이 때문에 일어나는 화학사고도 상당히 많다. 중소기업들은 안전에 투자할 여력이 없다. 대기업들은 엄청난 이익을 벌어들이면서도 탐욕 또는 안전을 뒷전으로 미루는 방침 때문에 안전 부문 투자를 소홀히 하고 있다. 정부가 중소기업의 안전 투자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지원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대기업에 대해서는 안전을 최우선하도록 행정지도 등을 통해 압박을 가해야 한다.

화학사고든, 그 어떤 부문의 사고든 사고는 현대 사회에서 피할 수 없다. 위험 내지 사고의 불가피성과 상존성은 현대 사회의 속성이기도 하다. 따라서 사건이 생기면 그 사건을 면밀하게 들여다보고 유사 사고가 생기지 않도록 그 내용을 전파해야 하며 제도 개선을 하는 것은 필수적인 일이다.

만약 한화토탈 쪽이 밝힌 대로 2015년에 이미 스티렌모노머 폭주중합반응으로 경기도 화성에서 다량의 스티렌모노머 증기가 유출된 일을 몰랐다면 앞으로 정부 또는 산업안전보건공단, 환경공단 등이 화학사고가 발생할 경우 이 화학물질을 다루는 모든 사업장에 사고 내용을 효과적인 수단을 통해 자세하게 전파해야 한다. 관련 기업 담당자에 대한 별도의 특별교육도 해야 한다.

이번 한화토탈 사고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화학물질 유출사고 사례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난 사실이 있다. 바로 미신고 내지는 늑장 신고다. 유출 사실을 인근 주민한테 제때 알리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같은 공장 노동자와 인근 다른 공장 노동자, 그리고 소방·구조당국과 화학재난합동방재센터, 지자체에 신고하지 않거나 지각신고를 하고 있다는 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이다.

화학사고는 지진과 같아서 조기 경보가 최우선

화학물질 사고는 신속 신고와 조기 대응이 중요하다. 두 가지 모두 어느 것이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동시에 조치가 이루어져야 한다. 한화토탈의 변명처럼 유출을 최소화하고 막는데 온 신경을 쓰느라 신고를 게을리 했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이야기다.

유해 증기는 바람을 타고 순식간에 공장 내부와 인근 공장, 그리고 마을로 퍼져나기 때문에 분초를 다투는 문제다. 지진경보처럼 사고 발생 몇 초 내지 몇십 초 안에 노동자와 주민들에게 유출 사실과 대피·대처 요령을 전달하여야 한다. 20세기 최악의 화학 참사로 1984년 인도 보팔에서 일어났던 유니온카바이드 사의 메틸이소시안산염 유출의 경우에도 늑장 경보 사이렌과 잘못된 경보 발령으로 피해가 더 커졌다.

지금까지 일어난 화학물질 유출 사고의 경우 마을 방송이나 알림문자전송으로 주민들에게 알렸다. 공장 내부 노동자에게는 사내 방송으로 사고 발생 내지는 대피 명령을 내리고 있다. 스티렌모노머 증기를 비롯해 대부분의 유해화학물질 사고가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 상 긴급재난 문자발송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에 따라 긴급재난문자가 주민들에게 발령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앞으로 전향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 화재, 홍수, 지진처럼 화학사고도 분초를 다투는 긴급 상황의 경우여서 재난문자 발송 대상으로 넣든지, 아니면 적어도 이에 준해 신속하게 피난 대상자에게 사고 사실과 대피 요령이 전달되어야 한다. 주민 안전을 가장 가까이서 책임지고 있는 지자체가 그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고 있다.

이번 한화토탈 사고를 계기로 전국 주요 화학산업단지와 화학물질을 다루는 공장에서는 문자알림과 함께 화학물질 누출 경보 사이렌을 울릴 수 있는 시설을 공장 내와 마을 곳곳에 설치해 공장 쪽이나 지자체 등이 버튼만 누르면 실시간으로 대피 사이렌이 울릴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가장 원시적이면서도 가장 효과적인 경보시스템이 될 수 있다.

사고 발생 뒤 서산시가 오후 1시28분께부터 오후 6시23분께까지 세 차례에 걸쳐 마을방송을 했다. 또 오후 1시35분에는 재난안내문자를 주민들에게 보냈다. 한화토탈 쪽도 오후 1시31분께 주민들에게 안내방송을 했다. 이 안내문자와 방송에서 “SM공장 부생연료탱크에서 다량의 증기가 발생해 많은 악취가 발생하고 있다.” “악취가 많이 발생하니 가급적 외출을 삼가라.” “악취는 스티로폼 원료 성분이며 악취유발물질은 유해화학물질에 해당하지 않는다.” 등의 내용으로 되어 있다.

유출된 주성분이 스티렌모노머라는 사실과 이 물질의 특성, 즉 노출될 경우 두통, 메스꺼움, 구토 등의 증상 유발 가능성은 그 어디에도 없다. 공장, 지자체 모두 스티렌모노머 유출에 대비한 안내 내용을 사전에 준비해두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정부는 이번 사고를 계기로 주민들에게 신속하게 사고에 대비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효과적 개선 방안에 대해 검토해야 할 것이다.

늑장신고에 대한 처벌도 강화해야 한다. 늑장 신고는 실수 때문이라거나 비의도적이라기보다는 의도적으로 벌어지는 행위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사고 은폐와 늑장 신고 등은 노동자와 주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중대한 범죄이자 의도적인 불법 행위로 다루어야 한다. 당국의 고발로 거칠 것이 아니라 검경의 철저한 수사, 그리고 사법당국의 엄벌로 이어져야만 기업의 이런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을 수 있다.

방재센터 팀 간 협력 없고 현장측정버스 늑장 출동 다반사

한화토탈 사고로 드러난 사실 가운데 하나는 화학재난합동방재센터에서 일하고 있는 화학구조팀, 산업안전팀, 환경팀, 가스안전팀, 지자체 팀이 신속한 정보 공유와 공동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사고 당일 각 팀은 회사 쪽과 노조 등 서로 다른 기관과 다른 사람들한테서 각기 다른 시간에 사고 사실을 통보받았다. 소방서와 서산시 환경지도팀이 사고 사실을 통보받은 시간은 18분가량 차이가 난다.

화학방재센터에서 근무하는 각 팀은 센터장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서로 다른 부처와 기관에서 파견 나와 있는 형식이어서 지휘계통이 단일화되어 있지는 않다. 다시 말해 각 팀이 독립적으로 활동한다. 하지만 같은 건물에 있고 환경팀이 간사 역할을 하기 때문에 화학사고 때 어느 누구가 사고를 통보받았을 때 출동 경보를 바로 울려 실시간으로 모든 팀이 정보를 공유할 수 있도록 협력체계를 갖추어야 한다.

각 방재센터에는 다양한 화학물질의 공기 중 농도를 정밀하게 현장에서 측정할 수 있는 분석 장비를 갖춘 특수버스가 한 대씩 있다. 10억 원 가량의 예산이 들어간 이 버스는 사고 발생 시 즉각 현장 출동해 누출 물질의 종류와 농도 등을 측정하기 위해 도입했다. 하지만 이번 한화토탈 사고 때도 그러했고 다른 사고 시에도 즉각 출동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화토탈 사고 때도 사고 발생 4시간 30분이 지난 뒤 현장측정분석버스가 대산읍 일대에서 측정 활동을 했다.

다른 화학사고 때도 몇 시간 뒤 또는 하루 지난 뒤 현장으로 가 공장 인근 오염도를 측정하곤 했다. 이는 버스 지나고 난 뒤 손 들기, 즉 오염물질이 완전히 또는 거의 대부분 사라지고 난 뒤 측정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시간이 많이 흐른 뒤 측정한 농도를 토대로 가장 심각했을 때의 농도를 추론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방재센터 대응 매뉴얼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는 몰라도 앞으로 정부의 이런 늑장 대응이 더는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끝으로 화학사고를 비롯해 많은 인명피해를 내는 기업이나 상습적으로 유사 화학사고를 내는 기업에 대해서는 가중처벌 할 수 있는 법을 따로 만들어야 한다. 이른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다. 산업재해는 주민 안전과 직결돼 있다. 공장의 안전이 곧 주민 안전이다. 안전을 확보할 수 있는데도 이를 무시하다 심각한 피해를 노동자와 주민들에게 입혔다면 그에 상응하는 무거운 벌을 줄 수 있는 법제도를 하루빨리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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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주 박사는 <한겨레> 보건복지 전문기자를 지냈으며,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안종주의 위험 사회' '안종주의 건강 사회' '안종주의 위험과 소통' 연재 칼럼을 써왔다. 석면, 가습기 살균제, 메르스 등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각종 보건 및 환경 보건 위험에 관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며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석면, 침묵의 살인자> <위험 증폭 사회> 등 다수가 있으며, 최근 코로나19 사태를 맞이해 <코로나 전쟁, 인간과 인간의 싸움> <코로나19와 감염병 보도 비평>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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