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 범죄가 아니다. 실수가 아니다. 잠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여수 산업단지에서만 벌어진 일이 결코 아니다. 미세먼지 배출업체와 대기오염물질 배출 수치 조작 사건에 그치지 않는다. 대기업이 이러하니 중소기업, 영세기업에서도 유사한 일이 벌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이번 사건을 접하면서 단박에 적폐가 떠올랐다, 그리고 대기오염물질 배출업체에서만 벌어진 일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작업장 내 유해물질 따위를 정기적으로 측정하는 작업환경측정과 산재사고 신고, 의료사고와 병원감염, 플라스틱과 음식물 쓰레기 등 재활용품과 폐기물 발생량과 폐기 처분에도 분명 비슷한 범죄와 조작이 오래 전부터 광범위하게 있어왔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대한민국 통계는 모두 엉터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해당 분야 전문가들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통계는 중요하다. 복지 정책을 펴는데도, 올바른 교육 제도를 만들고 정책을 펴는데도, 국민 보건과 안전 정책을 마련하는데도 통계가 기초가 된다. 그런데 그 기초가 엉터리다 보니 이를 기반으로 한 정책이 부실할 수밖에 없다.
의사가 처방을 하고 수술을 하려면 환자의 상태를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통계가 바로 그런 구실을 한다. 의사가 오진을 하면 환자가 치료될 수 없다. 마찬가지로 통계가 엉터리라면 이런 통계에 기초한 대책과 정책이 제대로 된 효과를 발휘할 리 만무하다. 이런 것들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수십 년 전부터 쌓여온 적폐들이다. 민생 적폐다.
정부는 대대적인 민생 적폐 수술에 나서라
국민 생명과 건강, 그리고 안전을 위협해온 이런 행태에 대해 지금까지 제대로 된 국가 감시와 관리가 총체적으로 이루어진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설혹 이런 범죄가 드러나더라도 벌금형이나 가벼운 영업정지 등 솜방망이 처벌을 하거나 일부 기업의 일탈로만 치부했다.
한마디로 기업의 실패, 정부의 실패, 국회의 실패, 사법부의 실패, 전문가의 실패, 언론의 실패다. 이번에 내로라하는 국내 대기업들이 미세먼지를 만드는 대기오염물질 배출 수치를 조작한 사건은 측정대행업체와 여수 산업단지 내 대기업을 포함한 일부 사업장의 일탈과 범죄 행위를 넘어서는 것이다.
이번 사건은 우리 사회에서 그동안 오랫동안 관행처럼 벌어져온 것에 대한 일대 수술을 가해야 한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미세먼지 관리 정책을 비롯한 폐기물 관리정책, 산재·직업병 대책, 보건의료 안전 정책에 대한 불신은 증폭되고 이들 정책에 대한 국민 신뢰가 뿌리째 흔들리게 될 것이다.
당장 미세먼지 대책과 정책에 대한 비판이 쏟아질 것으로 본다. 이 문제를 두고 국회에서도 정부와 기업에 대한 질타가 한바탕 쏟아질 것이다. 그 전에 국회는 그동안 무얼 하고 있었는지 성찰하고 반성하는 것이 도리다.
기업 규제 완화, 일자리 확보, 기업 투자 확대, 경기 활성화, 수출 증대, 기업 경쟁력 강화라는 각종 친기업, 기업 이익 우선 정책 앞에 무뎌진 감시의 칼날과 정책이 담합과 조작이라는 괴물을 만들어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들에게 돌아간다. 우리 사회가 배출하는 미세먼지 오염물질의 양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착각과 편견을 가지게끔 만든다. 이를 바탕으로 정책을 펼 경우 효과적인 미세먼지 저감과 제대로 된 저감 목표 제시가 이루어질 리 없다.
미세먼지·폐기물 센서스 실시 힘을 얻어
먼저 이번 사건과 직업 관련이 있는 미세먼지 문제부터 살펴보자. 이번 사건을 계기로 우리나라에서 배출되는 미세먼지를 포함한 대기오염물질의 양을 종류별로, 지역별로 정확하게 파악하자는 요구가 빗발칠 것으로 본다. 필자가 그동안 주장해 온 미세먼지(대기오염물질) 센서스가 힘을 얻을 것으로 본다.
정부는 이른 시일 안에 미세먼지 센서스를 실시하는 것을 확정하고 추경예산을 확보해서라도 올해부터 당장 시행에 들어가야 한다. 3개년 또는 5개년 계획을 세우고 그 실행계획과 로드맵을 만들어 우리나라에서 발생하는 정확한 대기오염물질 배출량을 파악하기를 바란다. 이러한 기본적인 일을 하지 않고 미세먼지 저감 대책 운운하는 것은 한마디로 난센스다.
미세먼지 센서스뿐만 아니라 폐기물 센서스도 지금 당장 이루어져야 한다. 어느 마을과 어느 지역, 어느 시도에서 어떤 폐기물이 얼마나 나오는지, 또 이것이 어떻게 처리되는지를 살피는 센서스를 실시해야 한다. 폐기물 전문가들 가운데 우리나라 재활용률 통계와 각종 폐기물 발생량과 규정을 지킨 폐기물 처리 통계에 대해 신뢰를 보내는 사람을 지금까지 단 한 명도 본적이 없다.
의료·산재 부문도 사고가 은폐되는 대표적 적폐의 온상
의료사고도 마찬가지다. 이번에 분당 차병원 신생아 사고 사망도 묻힐 뻔 했다. 이처럼 통계에 잡히지 않는 의료사고와 병원감염 사례가 얼마나 될지 아무도 모른다. 정확하지 않은 통계와 그 아래 숨은 가해자들은 솜방망이 처벌은커녕 처벌 자체를 받지 않은 채 또 다른 사고를 잉태한 채 환자를 진료한다.
대한민국 산재 사고 발생건수와 중대산재율에 대한 불신은 이 분야 전문가는 물론이고 대다수 노동자와 노동단체가 익히 잘 아는 바이다. 노동자들이 유해물질을 다루는 작업장에 대한 작업환경측정대행업체들 가운데 상당수가 해당 기업과 짜고 수치를 조작한다는 말은 수십 년 전부터 있어온 비판이다. 그런데도 이런 담합과 조작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제는 이런 고의적이고 파렴치한 범죄나 불법에 대해 대수술을 해야 한다. 환부를 완전히 도려내야 한다. 어설프게 수술해서는 안 된다. 암세포나 조직을 조금이라도 남겨두면 수술 후 재발하듯이 이번 사안에 국한해서 수사와 처벌을 하게 되면 또 다른 범죄가 시간이 지나면서 고개를 들 것이다.
고의적인 범죄에 대해서는 관용을 베풀면 안 된다. 우리 사회는 유독 기업들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서는 관대해왔다. 가격담합으로 소비자들이 엄청나게 손해를 본 사건이 벌어져도 가격담합으로 이익을 본 액수의 10배, 20배식으로 강력한 처벌을 하지 않는다. 우리 사회에서 담합이 끊이지 않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만약 내가 검사나 판사라면 기업과 측정대행업체에 대해 법이 허용하는, 가장 강한 처벌을 내리겠다. 또 정부는 영업허가를 취소해 이 바닥에서는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업체의 대표는 이 분야에서 영구히 아웃시켜야 한다. 이번 사건을 적폐가 더 이상 우리 사회에서 활개를 치지 못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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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주 박사는 <한겨레> 보건복지 전문기자를 지냈으며,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안종주의 위험 사회' '안종주의 건강 사회' '안종주의 위험과 소통' 연재 칼럼을 써왔다. 석면, 가습기 살균제, 메르스 등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각종 보건 및 환경 보건 위험에 관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며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석면, 침묵의 살인자> <위험 증폭 사회> 등 다수가 있으며, 최근 코로나19 사태를 맞이해 <코로나 전쟁, 인간과 인간의 싸움> <코로나19와 감염병 보도 비평>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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