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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터를 바라보는 미국의 두 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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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터를 바라보는 미국의 두 시각

매파들 불만 토로, 비둘기파는 대환영

노벨위원회는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78)을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하면서 이례적으로 "카터 전 대통령은 무력 사용의 위협이 대두되는 요즘 '분쟁은 최대한 국제법에 기반을 둔 중재와 국제공조를 통해 해결돼야 한다'는 원칙을 지켰다"고 우회적으로 부시의 일방주의 외교를 비판했다.

이같은 노벨위원회의 입장 표명에 대한 미국내 여론은 둘로 나뉘고 있다.

카터 전 대통령을 '비현실적이고 무능한 대통령'으로 규정해온 미국의 기득권 세력에서는 이를 못마땅하게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월가를 대변하는 월스트리트저널은 카터가 저술했던 11번째 책 <Living Faith(살아있는 신념>에 대한 신랄한 서평(월스트리트저널 1996년 12월 13일자게재)을 새삼스럽게 11일자(현지시간) 다시 게재함으로써 불만을 토로했다.

하지만 진보·평화진영은 카터의 노벨평화상 수상을 크게 반기는 분위기다. 미국 매파들의 카터에 대한 매도가 얼마나 어이없는 것인가에 대해 국제사회의 심판이 내려졌다는 것이다. 양 진영의 분위기를 읽기 위해 월스트리트저널의 비판이 제기된 이듬해인 1997년 7월13일 퍼시픽 스타 앤드 스트라이프지 편집장 앨런 앤드류스가 이에 대한 반박으로 쓴 글도 함께 소개한다. 편집자주

***가브리엘 쇤펠드(월스트리트저널)**

민주주의 정부들이 완전하다고 누구도 말한 적 없다. 확실히 1990년대와 1970년대 미국의 정치는 그리 잘 되었다고 할 수 없다. 리처드 닉슨이라는 악마적 대통령이 나와 불미스럽게 사임한 뒤 정말 놀라울 정도로 평범 그 자체인 제럴드 포드가 잠깐 집권했다.

그리고 나서는 난데없이 지미 카터라는 무명인사가 등장했다. 20세기 최악의 대통령이라는 논란을 빚은 인물이다. 그의 11번째 책 <Living Faith>는 카터가 정말이지 진부하기 짝이 없는 관념의 소유자임을 보여주지만, 종교와 철학에 대한 그의 명상을 담은 이 책이 다시 한번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다.

카터가 대통령으로서 형편없었다는 것은 자명하다. 4년 임기 동안 카터는 나쁜 상황을 악화시키다 못해 끔찍할 정도로 몰아갔다. 인플레이션은 두 배로 뛰었고 단기금리는 21%로 치솟았다. 빈곤지수는 최소화됐지만 상황이 좋지 않았다.

카터의 엉터리 보좌관들까지 가세해 카터 재임기간은 하딩 행정부 이래 최악의 실정이라고 할 만하다.

사이러스 밴스와 워렌 크리스토퍼 등 카터 행정부에서 국무장관을 지낸 이들도 카터처럼 무력했다. 조지아주 땅콩 농장 출신의 카터의 한계를 벗어난 외교문제에 관해서 특히 그랬다.

<Living Faith>를 보면 금세 알 수 있듯이 오늘날까지도 카터는 자기가 뭘 모르는지조차 모른다.

그러니까 백악관 집무실에서 소련의 시각으로 '세계 전반'을 보려고 노력하면서 정책을 수립했다고 자랑스럽게 회고하는 게 아닌가. 당시 바다 건너편에는 소련의 레오니드 브레즈네프가 있었다. 소련의 독재자와 협상할 때 우선 고려할 상항은 그가 이 책에 썼듯이 '우려사항을 덜어주는 것'이다.

안드레이 그로미코 당시 소련 외무장관과 회담하는 것도 벅찬 일이었다. 카터가 소련의 인권상황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때 그로미코는 역습에 나서 소련의 무료의료보험, 완전고용, 무주택자 부재 등에 대해 일장연설을 늘어놓았다.

카터는 "당시 나는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다"고 실토하고 있다. "우리는 각자 인권에 대해 편리한 정의를 내리고 있다" "이같은 차이를 인식하고 이해해야만 한다". 지금에 와서도 이처럼 어처구니없는 자기노출을 경솔하게 하는 것을 보면 그의 대통령 임기가 엄청난 외교정책 실패로 끝난 것이 뭐 놀랄 게 있는가.

<Living Faith>는 땅에 떨어진 평판을 만회하고자 지속적으로 벌여온 PR(선전)로 가득차 있다. 기자들과 TV카메라를 몰고다니며 그가 벌이는 자선사업- 미국뿐 아니라 공산정권하의 니카라과 등지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집을 지어주는-이 그중의 하나다.

보다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국제간 이해증진을 위해 세운 카터 센터다. 분쟁해결을 위해 '대화'를 강조하는 카터 센터의 철학은 카터에 따르면 미국 기질에 맞지 않는다. '아군이냐 적이냐, 천사냐 악마냐'하는 식으로 갈등을 보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이것은 세계평화를 저해하는 '주요 요인'이다.

카터 자신은 야세르 아라파트, 피델 카스트로, 시리아의 하페즈 알 아사드 등과 회담을 가졌다. 카터가 책에서 썼듯 그들은 모두 "미국 대중들에게 때때로 오해받고, 희화화되고, 철저히 비난받았다". 그 이유 중 하나가 "앵글로 색슨이 아닌 낯선 이름(foreign)"이라고 그는 주장한다.

낯선 이름으로 오해 받는 지도자로 그가 최근 방문한 사람이 독재자 김일성이었다. 북한은 핵무기를 개발해 왔으며 클린턴 행정부는 이에 대해 제재를 가하려고 했다. 카터는 이를 전쟁을 일으킬 '가능성' 있는 조치였다고 말한다.

북한주민들은 "존경을 넘어 숭배에 가까운 그들의 지도자를 범죄자로 낙인찍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카터가 평양에서 가진 회담에서 김일성은 '기독교적 미션'이 거둔 성과를 높이 평가하면서 "미국과 우호관계를 수립할 것을 열망한다"고 표현했다. 시기적절한 회담 덕분에 카터는 제2의 한국전쟁을 피할 수 있었다고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유감스럽게도 위대한 지도자는 한달후 사망했다. 그래서 "개인적 약속 일부가 실현되지 못했다".

모든 게 다 불만스럽지만 가장 참을 수 없는 것은 카터의 진부한 글이다. 이것은 "사랑을 중심으로 한 책"이라고 그가 썼는데, 이와 비슷한 설교와 함께 진부한 표현과 자화자찬이 이 책 페이지마다 발견된다.

카터가 자신이 쓴 시라고 부르는 작품도 이 책에 담겨있다.
"그녀가 미소 지으면 새들은 더 이상 노래 부를 필요가 없다고 느낄 것이다."

지미 카터 같은 사람이 어떻게 위대한 나라의 지도자가 되었는지는 미제사건으로 남을 역사의 수수께끼다.


***앨런 앤드류스(퍼시픽 스타 앤드 스트라이프)**

지마 카터와 그의 부인 로잘린 여사는 '사랑의 집짓기' 등 널리 알려진 활동으로 자원봉사의 상징이 되었으며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프로그램을 위해서 귀중한 홍보대사 역할을 하고 있다.

게다가 카터가 몇몇 분쟁 지역에서 평화전도사로 보여준 노력으로 초당적인 존경을 받고 있다. 일부에서는 마지못해 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북한에서 그가 벌인 개인적인 외교는 백악관 현역 민주당 의원들에게 딜레마를 안겨줬다. 그들은 카터가 그렇게 나서주길 바라지 않은 것은 분명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인권활동에 대해 칭찬을 했다. 호시탐탐 전쟁을 노리는 배고픈 공산국가와 인권을 논하는 회담이 가능하다고 믿는 이에게 보내는 경멸을 감추기는 힘들었겠지만 말이다.

카터는 또한 다작을 써낸 저술가다. 11권을 책 중에는 성공적인 삶에 대한 지침서로 부인과 공저한 것과 딸 에이미와 함께 쓴 어린이용 책도 있다.

카터가 쓴 <Living Faith>에 대한 대부분의 서평은 "이 책에 솔직한 자기고백과 함께 미국 제일의 일요학교 교사가 말해주는 경험에서 우러나는 충고와 격려가 담겨있다"는 것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커멘터리지 편집위원 가브레일 쇤펠드는 지난해 말 월스트리트 저널에 '카터 혹평자'의 전형을 보여주는 글을 썼다.

쇤펠드는 카터의 책을 '멍청하고 설교조'라며 쓰레기 취급을 했다. 또한 카터를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진부한 사상의 소유자'이며 "거의 틀림없이 금세기 최악의 대통령에 속한다"고 규정했다.

그는 카터가 벌이는 '사랑의 집짓기'를 "땅에 떨어진 평판을 만회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벌이는 PR"이라고 매도했다.

쇤펠드는 편향된 시각에서 글을 쓰고 있다. 야시르 아라파트, 피델 카스트로, 시리아의 하페즈 알 아사드, 북한의 김일성, 그리고 니카라과의 산디니스타스 등 카터가 대화의 장으로 이끌어내려고 했던 인물들에게 어떤 고려도 하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쇤펠드의 서평은 비열한 심보로 가득차 있으며 자신의 논지와 반대되는 사실들에 대해 명백히 부당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에 쓴 독자 편지는 쇤펠드의 글에 대한 가장 통렬한 반박이다. 이 편지는 '독설 그리고 히스테리한 편견과 전반적으로 부정확한 의견으로 점철돼 있다' 며 쇤펠드를 비난했다.

이 편지를 쓴 마크 헐랜드는 카터가 "이스라엘과 이집트의 평화조약을 이끌어냈고, 레이건 대통령 취임 직후 이란 인질들을 무사히 구출해 냈고,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소련에 대해 모스코바 올림픽에 불참하는 결정으로 인기는 없지만 도덕적인 입장을 취한 점" 등을 쇤펠드에게 상기시켰다.

조심스럽게 읽어보면 쇤펠드의 글에는 경제주의 관점의 풍자와 가치와 도덕을 국가적 논쟁으로 끌어들이는 정치인에 대한 명백한 혐오감이 담겨있다.

불행하게도 쇤펠드는 경제결정론자들을 대변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 경제적 가치와 인권 사이에는 분명한 경계선이 존재할 수 있다. 쇤펠드는 물론 경제쪽에 서 있다. 그리고 카터는 인권쪽에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카터의 관점을 지지하는 발언으로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연설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로이터 통신의 보도에 따르면 금융계 인사와 대학교수들이 모인 자리에서 교황은 "인간이 경제적 이익보다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세상에는 아직도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가난에 허덕이고 있다"는 교황의 발언은 카터의 책에서 쉽게 찾아질 수 있는 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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