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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천미트 대장균 논란, 못 밝히면 모두가 패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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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천미트 대장균 논란, 못 밝히면 모두가 패배자

[안종주의 안전사회] 독립적인 전문가위원회 꾸려야

위험이나 안전 관리기관의 생명은 신뢰이다. 식품 안전은 더욱 그렇다. 안전하지 못한 식품을 제조·판매한 기업이 있다면 그에 대한 불신으로 해당 기업은 심하면 존폐의 기로에 설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식품 안전을 관리하지 못하는 정부 당국이 있다면 소비자들은 당국의 발표를 더는 믿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식품안전 당국이 지녀야 할 최대의 무기는 식품위해 요소를 적확하게 집어내는 능력과 신속 정확한 검사 능력이다. 만약 이것이 무너지면 그동안 쌓아놓았던 신뢰는 하루아침에 무너지게 될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식품에 이물질이 들어있거나 유해물질이 포함된 식품을 팔다가 된서리를 맞은 기업들이 심심찮게 있어 왔다. 이보다는 빈도가 낮지만 정부가 잘못된 검사나 발표를 해 식품기업이 망하거나 심각한 경영난에 빠져 도산 일보직전에 빠진 일도 있었다.

1989년 우지라면 사건이 대표적이다. 이 사건은 검찰이 서울시 환경보건연구원의 잘못된 검사 결과를 토대로 국내 굴지의 기업 대표들을 구속기소하는 바람에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우리나라 최대의 식품 안전 관련 파동으로 자리매김했다.

엉터리 검사가 불러온 식품 파동 : 우지라면과 골뱅이 통조림

1990년에는 수돗물 트리할로메탄(THM) 검출 파동 사건이 있었다. 감사원은 1990년 6월말 전국 17개 정수장 가운데 8개 정수장 수돗물에서 발암물질인 트리할로메탄(THM) 함유량이 허용기준치(0.1ppm)를 초과했다는 조사결과를 국회에 제출해 소비자들이 기겁을 했다. 하지만 이는 당시 감사원이 검사를 맡긴 한국수자원공사 금강수질검사소의 초짜 연구원의 검사 능력 미숙이 빚은 엉터리 결과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 때문에 당시 감사원장이 대국민 공개 사과를 하는 촌극이 벌어졌다. 감사원으로서는 치욕적인 순간이었다.

수돗물 트리할로메탄 파동은 검사 능력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잘 보여준 대표적 사건이다. 런천미트 대장균 검출 사건과 매우 유사한 사건도 벌어진 적이 있다. 1998년 벌어진 통조림 포르말린 사건이다. 당시 검찰은 술안주 등으로 애용되는 번데기, 골뱅이 등의 통조림 제품에 중소식품기업들이 포르말린을 사용했다며 기업 대표들을 기소하고 언론이 이를 대서특필하면서 사태가 일파만파로 번졌다.

하지만 전문가들이 재판 과정에서 극미량의 포름알데히드(포르말린)가 골뱅이 등에서 자연적으로 생성될 수 있으며 자연식품인 버섯 등에서도 이 물질이 미량 존재한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이들은 무죄로 풀려났다. 기업은 이미 도산하거나 파탄 일보 직전이었다.

검찰의 무지와 언론의 마구잡이 보도가 합작해 만들어낸 식품 파동 참사였다. 통조림은 완전 멸균한 상태로 가공·판매되는 제품이어서 포르말린과 같은 방부제(보존료)를 넣을 하등의 이유가 없었음에도 이를 간과한 것이다. 검찰의 형편없는 실력의 민낯이 그대로 세상에 드러난 셈이다.

통조림은 완전 멸균식품 : 대장균 검출은 있을 수 없는 일


지금 우리는 이와 유사한 런천미트(다진 고기를 양념하여 단단하게 뭉친 것으로 보통 통조림으로 나옴) 대장균 검출 사건을 맞닥뜨리고 있다. 런천미트 통조림도 완전 멸균해 시중에 나오는 것이어서 대장균이든, 그 어떤 균이든 내용물에서 세균이 검출되는 것 자체를 이해하기 어렵다. 물론 제조 과정에서 미생물이 오염되고 완전 멸균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중에 유통될 가능성이 제로는 아니지만 제로에 가까울 정도로 매우 희박하다.

이런 사건이 터지면 일단 소비자들은 문제가 된 회사 제품만이 아니라 런천미트 제품 자체 소비를 끊게 된다. 만약 기업에 잘못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면 소비자의 외면은 감내해야 할 당연한 업보이다. 하지만 만약 통조림 제조과정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고 유통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거나 수거를 포함해 검사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거나 검사 자체에 문제가 있었다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진다.

앞서 소개했던 골뱅이 통조림 업체처럼 기업은 억울하기 짝이 없다. 따라서 런천미트 해당기업이든, 식품의약품안전처든, 세균 검사를 했던 충남 동물위생시험소든 조직의 사활을 걸고 런천미트에서 세균이 검출된 원인을 밝혀내야 한다. 식품 대기업으로 쌓아온 명성을 회복하는 일이 해당기업으로서는 시급하다.

이번 사건은 최근 가뜩이나 손가락질을 받고 있는 위해요소중점관리제도(HACCP, 해썹)에 또 한 번 흠집이 나는 것을 막기 위해서도 이른 시일 안에 진실을 밝혀내는 것이 중요하다. 기업의 제조 현장에 대한 현미경 같은 조사도 필요하다.

또 식약처든 충남 동물위생검사소든 이들의 검사 능력 검증과 위험(위기) 대응 능력 또한 이번에 정밀하게 검증해야 한다. 만약에 하나 과거 사건처럼 검사에 문제가 있었다면 이는 우리나라 식품 안전 관리에 치명타를 가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이번에 검사가 완전 멸균 시설에서 멸균한 기구를 사용해 이루어졌는지, 검사원의 복장 등이 오염되지 않은 상태였는지, 검사원의 검사 능력 수준은 어느 정도인지 등을 면밀하게 조사해야 한다. 셜록이 미궁에 빠진 사건의 수사를 놀라운 판단과 추리, 그리고 증거를 바탕으로 해 범인을 잡아내고 사건의 실체를 드러내듯이 말이다.

사건 실체 미궁 빠지면 정부, 기업 모두 패배자

만약에 하나 이번 사건의 원인을 밝혀내지 못한다면 기업이나 정부기관 모두 패배자가 된다.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벌어질 각종 검사 결과와 처벌 등에 대해서도 승복하지 않으려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문제가 된 대장균은 병원성대장균이 아니고 식중독균도 아니라서 검출 자체에 화들짝 놀랄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일반 대장균이 검출됐다고 해서 그냥 지나칠 문제는 결코 아니다. 만약 치명적 식중독균이 제품 속에 들어 있었고 이를 모르고 많은 소비자들이 먹었더라면 전국 곳곳에서 집단 식중독 사태가 벌어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사건을 대하는 태도, 즉 해결하기 위해 가져야 할 태도는 예단하지 않는 것이다. 분명 원인은 있다. 그 원인이 어디에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원인 규명을 위한 전문가위원회 또는 태스크포스팀을 꾸려 조사 방식과 조사 결과에 대한 입장을 정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이해관계가 없는, 다시 말해 기업과 식약처, 검사기관과 관련 없는 전문가들로 위원회를 꾸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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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주 박사는 <한겨레> 보건복지 전문기자를 지냈으며,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안종주의 위험 사회' '안종주의 건강 사회' '안종주의 위험과 소통' 연재 칼럼을 써왔다. 석면, 가습기 살균제, 메르스 등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각종 보건 및 환경 보건 위험에 관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며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석면, 침묵의 살인자> <위험 증폭 사회> 등 다수가 있으며, 최근 코로나19 사태를 맞이해 <코로나 전쟁, 인간과 인간의 싸움> <코로나19와 감염병 보도 비평>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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