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선거운동 및 정당활동의 자유 확대와 유권자 알 권리 강화 등을 골자로 하는 정치관계법 개정 의견을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 제출했다. 정개특위는 이날 선관위 보고를 받고, 소위원회를 구성해 선거구제 개편 및 관련 법 정비에 시동을 걸었다. 다만 선관위의 개정 의견 가운데 일부는 논란이 예상된다.
선관위는 30일 정개특위 보고에서 크게 △선거운동 자유 확대 △유권자 알 권리 확대 △정당활동 관련 입법사항 정비 등을 위한 법안 개정 의견을 밝혔다.
먼저 선거운동 자유 확대와 관련해서는, 선거일 당일을 제외하고 정당·후보자·선거운동이 가능한 유권자가 대면 대화와 전화 통화를 통한 선거운동을 허용하기로 했고, 일반 유권자·지지자가 자신의 옷·모자·배지·자동차·주택에 특정 후보자를 지지하는 내용을 표현하는 행위(소품 및 표시물, 주택·자동차 부착물을 통한 선거운동)를 허용키로 했다. 선거운동을 할 수 없었던 동네 반장과 주민자치위원, 후보자의 미성년 자녀·손자, 정치인 지지단체와 동호인 모임의 선거운동도 허용된다.
유권자 알 권리 강화 차원에서는, 선거일 7일 전부터 여론조사 결과 공표가 금지되던 일명 '블랙박스' 기간을 2일로 단축하고(가상번호 활용 조사시), 선거일 40일 전부터 2일간 후보자 등록을 하도록 하며(현행은 대선 24일전, 총선 20일전까지), 후보자가 낸 공약에 대한 비용추계를 국회 예산정책처가 담당해 공약 발표일 후 30일 이내에 비용추계액도 발표토록 하는 방안 등이 제안됐다.
또 유권자 참정권 확대를 위해 선거권자 연령을 18세로 하향 조정하고, 유권자 신뢰 보호를 위해 후보자 등록 마감시각 후에는 사퇴를 금지하도록 하자는 게 선관위 의견이다. 선관위는 그 이유에 대해 "선거일에 임박해 후보자가 사퇴할 경우 사퇴 이전에 실시한 사전투표나 거소투표에서 사퇴한 후보자에게 기표한 무효표가 다수 발생하는 등 유권자 의사가 반영되지 못하는 문제점을 해소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당활동 자유 확대를 위해 과거 지구당으로 불렸던 구·시·군당 설치를 허용하고, 다만 그 전제로 당내 민주화와 회계 투명성 확보를 들었다. 선관위는 이 '전제'와 관련해 "구·시·군당 대표자는 해당 당부 당원총회 또는 대의원대회에서 비밀투표 방식으로 선출"하고 "운영의 고비용 해소 및 회계 투명성 확보" 방안도 제안했다. 그러나 이같은 보고 내용은 정개특위 위원들로부터 '선관위가 정당을 계도 대상으로만 보고 갑질하려 한다'는 비판을 듣기도 했다.
선관위는 또 교섭단체(20석 이상 정당) 우선의 국고보조금 배분 방식을 개선, 의석수가 아닌 정당 득표수 비율에 따라 지급하는 방안도 제안해 눈길을 끌었다. 정개특위 위원장은 소수 정당인 정의당(5석) 소속 심상정 의원이다. 선관위는 "교섭단체를 구성한 정당에 100분의 50을 정당별 균등 분할 배분·지급하는 방식(을) 폐지"하고 "5석 이상 정당과 득표수 비율이 일정 요건에 해당하는 정당에 대한 국고보조금 배분·지급제도는 현행 기준을 따르되, 그 잔여분은 국회의원 선거 득표수 비율에 따라 배분·지급"하는 방안과 "당비 납부액 및 납부 비율에 연동한 국고보조금 지급" 방안을 제안했다.
헌재가 위헌이라는데…"총선 2번 무당선·2%미만 득표 정당은 해산" 또 입법하자는 선관위
그러나 선관위가 제안한 내용 가운데는 논란의 소지가 큰 방안도 일부 포함됐다. 선관위가 "조속한 개정이 필요한 사항"이라며 보고 후반부에 포함시킨 내용 가운데는 "정당의 등록취소 요건 정비"라는 내용이 있었다. 선관위는 "현행 규정이 정당 설립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헌법재판소 위헌결정(2014.1.28.)에 따라 해당 규정을 정비하려는 것"이라며 "국회의원 선거에 2회 연속 참여해 의석을 얻지 못하고 지역구 국회의원 선거 또는 비례대표 국회의원선거에서 유효투표 총수의 100분의 2 이상을 득표하지 못한 정당은 등록 취소"하게 하자고 제안했다.
이는 기존의 조항에서 '2회 연속'이라는 말만 추가한 것으로, 헌재 결정 취지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이다. 지난 2014년 헌재는 "일정 수준의 정치적 지지를 얻지 못한 군소 정당이라는 이유만으로 정당을 국민의 정치적 의사형성 과정에서 배제하기 위한 입법은 헌법상 허용될 수 없다"면서 "과잉금지 원칙에 위반되며 정당 설립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결정했었다. (☞관련 기사 : 헌재 "득표 2% 미만 정당 등록취소는 위헌")
또 선관위는 기존의 선거구획정위원회 구성안(선관위 지명 1인, 여야 각 4인씩 8인 지명)을 '교섭단체 정당 1인, 선관위 6인'으로 변경하고 의결정족수도 2/3에서 과반으로 변경하자는 제안을 냈는데, 이는 보고 직후 현장에서부터 질타를 받았다. 더불어민주당 김상희 의원은 "선관위 권한만 늘리고 '국회 패싱'하자는 내용"이라며 "어떻게 이런 안을 내는지 굉장히 실망"이라고 비판했다. 심상정 정개특위 위원장은 "(21대 총선 선거구획정위는) 현행법 기준으로 구성하기로 여야 간사 간 의견을 모았다"며 "(선관위 제안) 법안은 논의를 시작하되, 이번 획정위는 현행법을 기준으로 구성할 예정"이라고 일축했다.
한국당 "300명 정수 유지, 중대선거구제 도입"…민주·평화·정의 "정수 문제 논의 필요"
선관위는 가장 뜨거운 현안인 국회의원 선거제도 개편에 대해서는 별도 보고를 하지 않고, 지난 2015년 국회에 제안한 '의원 정수 300명 유지 전제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안을 "참고 자료"라며 보고에 슬쩍 끼워넣기만 해 빈축을 사기도 했다. 김상희 의원은 "달라진 것, 보완할 것 없느냐"며 "국민적 요구가 달라지고 더 높아졌는데, 오늘 보고에서 제대로 보고를 했어야 한다. 그것을 하지 않고 2015년 19대 국회 때 보고했던 자료를 '참고'라며 보고하는 것은 굉장히 비겁하다"고 질타했다. 다른 위원들도 '다음 회의 때는 보고해 달라'는 등 유사한 취지의 요구와 지적을 했다.
선관위 보고는 없었지만 가장 첨예한 현안인 만큼 여야 위원들은 선거구제 개편에 대한 나름의 의견을 피력하며 토의를 이어갔다. 한국당 김학용 의원은 "(연동형·권역별) 비례대표제를 하려면 의원 정수를 늘려야 하는데 이것을 국민이 용인하겠느냐. '300명'을 지키며 묘수를 내야 한다"면서 "결국 지역구를 줄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고, 그러면 중대선거구제로 갈 수밖에 없다. 우리 선거제도도 소선거구제 같지만 (강원 일부에서) 5개 시군이 1개 선거구로 구성되는 등 중선거구제 성격도 있다"고 주장했다. 한국당 간사인 정유섭 의원도 비슷한 취지에서 중선거구제 도입 전제 의원 정수 유지를 주장했다.
반면 민주당·평화당·정의당 등 범(汎)진보개혁진영에서는 다른 목소리가 나왔다. 민주당 이철희 의원은 "실질적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의원 정수는 늘려야 한다"며 "선관위가 과감한 의견을 주면 어떨까 한다"고 말했다. 같은 당 최인호 의원도 "선관위가 토론회를 해 보면, 국민들 가운데는 '1명도 못 늘린다'는 분도 있을 수 있고 다른 분도 있을 수 있다"며 "공론장이라도 만드는 대책을 (선관위가) 강구해 달라"고 주문했다.
평화당 천정배 의원도 "지역구 의원 수를 줄이는 것이 옳고 그름을 떠나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많은 전문가들과 선거 개혁을 바라는 분들이 어느 정도 비례대표 수를 늘이면서 총 의원 정수를 늘이고, 국민 걱정하는 예산이 늘어나지 않게 세비 등 동결하면서 의원을 늘려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정수를 늘릴 필요가 있다"고 발언했다. 심상정 위원장도 이날자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비례성과 대표성 강화라는 측면에서 의원 정수 문제를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영수 선관위 사무총장은 여야 의원들의 이같은 의견 개진에 대해 "의원 정수 얘기는 조심스럽다.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돼야 하고, 국민 동의 하에서 돼야 한다"면서도 "현실적으로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을 위해 의원 정수 확대는 불가피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언급해 눈길을 끌었다. 박 총장은 그러나 다시 "의원 정수는 외국에 비해 (의원 1인당) 대표하는 국민이 많아 늘릴 필요가 있지만 현실적으로 국민들이 얼마나 동의해줄지…"라며 "방안을 찾는 것은 선관위 역할이 아니다"라고 피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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