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소멸의 짙은 위기 속에서, 동학농민혁명의 진정한 출발점이자 사상적 용광로였던 '부안동학'이 130년의 긴 침묵을 깨고 역사의 전면으로 부상하고 있다. 흔히 동학농민혁명이라고 하면 고부 봉기나 전주성 입성, 그리고 비극적인 우금티 전투만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흩어진 농민들이 명확한 군사 편제를 갖추고 혁명 강령을 선포하며 진정한 '혁명군'으로 거듭난 공식적인 출정식의 무대는 다름 아닌 부안 백산이었다.
최근 부안에서 열린 학술대회는 학자들의 치열한 1차 사료 분석과 열띤 토론을 통해 그동안 가려져 있던 부안동학의 거대한 실체를 발굴해 냈다. 무력 충돌을 피하고 향촌 사회의 평화를 지켜내려 했던 김낙철 형제의 상생 노선, 양반 유생의 일기장 속에 숨겨져 있던 무명 민초들의 치열한 궤적, 그리고 혹독한 탄압 속에서도 영학당을 거쳐 항일 의병으로 전환해 간 동학 여당의 생생한 진화 과정 등 새로운 역사적 가치들이 쏟아져 나왔다.
<프레시안>은 학계의 최신 연구 성과와 학자들의 통찰을 바탕으로, 동아시아를 뒤흔든 부안동학의 웅장한 실체와 미래 문화 자산으로서의 가치를 6회에 걸쳐 보도한다. /편집자
그동안 동학농민혁명사 연구에서 부안은 고부나 정읍, 전주의 그늘에 가려진 조연이나 단순한 중간 기착지 정도로 취급받아 왔다. 그러나 9월29일 부안예술회관에서 열린 '2026 부안동학농민혁명 학술대회'는 철저한 사료 고증을 바탕으로 이러한 역사적 통념을 완전히 뒤집었다.
기조강연에 나선 임형진 경희대 교수는 부안 백산이 단순한 집회 장소가 아니라 동학농민혁명이 체계적인 '세계 시민 혁명'으로 도약한 거대한 산실이었다고 역설했다. 임 교수는 "백산대회에서 비로소 전봉준을 대장으로, 손화중과 김개남을 총관령으로 하는 명확한 지휘 체계를 갖추고, 4대 명의와 12개조 기율을 반포함으로써 단순 민란을 넘어선 진정한 의미의 혁명군이 탄생했다"고 강조했다.
임 교수는 특히 백산에서 선포된 4대 명의가 지닌 사상적 깊이에 주목했다. "사람을 함부로 죽이지 말고 가축을 잡아먹지 마라"는 제1항은 해월 최시형의 생명 존중 및 삼경사상(경천, 경인, 경물)을 군사 작전의 핵심 규율로 승화시킨 경이로운 선언이었으며, "일본 오랑캐를 몰아내고 권귀를 모두 없앤다"는 조항은 이 봉기가 명백한 반봉건·반제국주의 혁명임을 전 세계에 공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역사적 대전환은 동학에 결코 우호적이지 않았던 당대 양반 유생의 꼼꼼한 기록을 통해서도 완벽하게 교차 검증되었다. 이선아 전북대 교수는 부안 유생 기행현이 45년간 쓴 『홍재일기』를 정밀 분석하여, 백산대회를 기점으로 민중들의 성격이 규정되는 방식이 완전히 달라졌음을 밝혀냈다.
이 교수는 "기행현은 일기에서 1894년 3월 25일까지 이들을 '동학인'이라 불렀으나, 백산에 진을 친 3월 26일부터는 명확히 '동학군'이라는 군사적 명칭을 사용하기 시작했다"며, 외부 관찰자의 눈에도 무력을 동원한 체계적인 군사 조직으로의 전환이 뚜렷하게 각인되었음을 증명했다.
이에 대해 토론자로 나선 조성운 전 역사와교육학회 회장은 백산대회가 지닌 전략적, 군사적 성격을 더욱 구체화하며 학술적 깊이를 더했다. 조 회장은 "백산대회는 고부 기포와 무장 기포를 거치며 호남 우도의 동학 세력이 총결집한 결정적 사건"이라며 "1만여 명에 이르는 대부대가 집결할 수 있었던 것은 해발 47미터에 불과하지만 배들평야와 만경평야를 굽어보며 관군의 동향을 완벽히 척후할 수 있는 천혜의 요새였고, 해창에 쌓여 있던 4000여 석의 세곡이 장기전을 위한 든든한 군량미를 제공했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백산이 단순한 야산을 넘어 동학의 인본주의 사상을 무장 투쟁의 규율로 벼려내고, 거대한 역사의 톱니바퀴를 돌린 심장부였음이 이날 학술대회에서 학자들의 공통된 견해로 굳건히 확인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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