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통공사에서 일하던 여성이 입사 동기였던 남성 직원에 의해 숨진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 4주기가 되어간다. 비극의 반복을 막고, 젠더폭력과 괴롭힘 없는 안전한 일터를 만들기 위해 해야 할 일을 담아 공공운수노조가 보내온 글을 싣는다.
2022년 9월 14일 저녁 9시, 신당역에서 근무 중이던 여성 역무원이 살해당했다. 가해자는 같은 해에 함께 입사한 동기였고, 범행 장소는 피해자가 순찰 업무를 수행하던 역사 화장실이었다. 근로복지공단은 이 죽음을 업무상 재해로 인정했다. 이는 여성 역무원의 죽음이 사적 관계에서 비롯된 개별 범죄가 아니라 노동 중에 발생한 재해임을 공인한다. 그렇다면 사후에 산재로 인정된 것이 왜 사전에는 위험으로 평가되지 않았을까.
사건 이튿날 서울시장은 '2인 1조' 순찰 시스템을 재발 방지 대책으로 공표했다. 3년이 지난 지금도 이행은 미진하고, 역무원의 업무를 분담할 권한이 없는 기간제 인력과 사회복무요원이 조에 배치된다. 그러나 이행률을 따지기 전에 물어야 할 것이 있다. 일터의 위험은 어디서 시작됐을까? 위험은 홀로 근무하는 저녁에, 여자 화장실에서만 존재했을까?
'사건 발생' 이전의 위험
가해자는 수년 전부터 입사 동기인 피해자를 스토킹했고, 공사는 2021년 10월에야 그를 직위해제했다. 직위가 해제된 후에도 가해자는 내부 전산망으로 피해자의 개인정보에 접근해 범죄에 활용했다. 규정상 접속 권한은 재판이 끝나고 징계 절차가 개시되어야 박탈되기 때문이다. 공사는 직장 내 괴롭힘을 방기했고, 노동자의 안전을 사법 절차에 위탁했다.
이는 노동안전보건의 원리에 어긋난다. 산업안전보건법상 사업주의 안전보건조치 의무와 위험성평가 의무는 유해요인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발생한다. 재해가 일어나지 않아도, 판결이 확정되지 않아도 의무는 성립한다. 젠더기반 폭력이 방치된 이유는 단순하다. 애초에 관리해야 할 일터 내 위험으로, 예방과 평가, 대책 및 개선이 필요한 유해요인으로 인지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조직문화라는 유해요인
ILO 190호 협약은 이 공백을 겨냥한다. 협약은 일터의 폭력과 괴롭힘을 노동권을 위협하는 유해요인으로 명시하고, 세 방향에서 규제의 틀을 옮긴다. 첫째, 출발점이 피해자의 사후 신고에서 사용자의 사전 예방의무로 이동한다. 사용자는 유해요인을 식별하고 위험을 평가해 예방·통제 조치를 취해야 한다(제9조). 둘째, 규율 대상이 고정된 사업장을 넘어 출장·교육·사교활동·통근·숙소·업무 관련 소통·전산망으로 확장된다(제3조). 가해자의 내부 전산망에 대한 접근 제한과 구성원의 개인정보 보호 역시 노동안전보건의 쟁점인 것이다. 셋째, 규율 범위가 구체적 피·가해 행위를 넘어 특정 성·젠더에 불균형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행위까지 포괄한다(제1조 1항 b목). 핵심은 노동안전보건의 영역에 사회문화적 권력관계를 반영하는 것이다(Cox, 2024).
그렇다면 이 조직에서 위험은 어떻게 셈해지고 있었을까. 정부의 '2023년 성희롱·성폭력 실태조사'에서 '사생활에 관해 묻는 데 거리낌이 없다'고 답한 비율은 남성 30.4%, 여성 54%였다. 같은 조직문화를 남녀가 20%포인트 넘게 다르게 지각한다. 여성이 위험으로 감지하는 정도와 남성이 감지하는 정도가 다르다는 것은, 다수의 감각으로 작성된 위험 목록에서 여성이 노출되는 위험이 누락되기 쉽다는 것이기도 하다. 젠더화된 위험성평가 체계가 필요한 이유다.
보고 역시 쉽지 않다. 같은 조사에서 '성희롱·성폭력 문제 제기는 조직문화를 경직되게' 한다고 응답한 응답자의 비율이 15.6%였다. 2021년부터 2025년까지 서울교통공사 직원에 의한 성범죄로 공식 집계된 것은 23건, 그중 직원 간 사건이 15건이지만 해임·파면은 5건에 그친다. 범행이 인정된 가해자의 3분의 2가 조직에 남았고, 이 잔류가 곧 다음 노동자가 놓이는 위험 조건이 된다. 신당역 살인사건의 피해자가 사내 고충처리 기구나 노동조합을 찾지 않은 것은 위험이 없어서가 아니라, 위험을 말하는 일이 안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위험을 다시 평가하기
근로복지공단은 신당역에서의 죽음을 업무상 재해로 인정했다. 그 죽음은 사적 관계의 파국이 아니라 노동 중에 발생한 재해였고, 그 재해를 만든 조건은 일터 안에 있었음이 사회적으로 다시금 확인된 것이다. 그렇다면 그 조건은 왜 미리 평가되고 예방되지 못했을까?
답은 우리 법제가 젠더기반 폭력을 사용자가 식별하고 통제해야 할 유해요인으로 규정한 적이 없다는 데 있다. 직장 내 성희롱은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로, 직장 내 괴롭힘은 근로기준법으로, 스토킹은 형사 절차로 흩어진 채, 어느 경로도 사업주에게 '발생하기 전에 평가하고 제거하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서울교통공사가 가해자의 전산망 접근권한을 형사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유지한 것은 규정의 미비가 아니라 이 공백의 필연적 귀결이었다. '사건'의 대책으로서 2인 1조를 넘어서 성차별적인 조직문화와 현행 법체계에 대한 쇄신이 필요하다.
한국은 아직 ILO 190호 협약을 비준하지 않았고, 2026년 7월에야 노사정 논의가 시작됐다. 비준은 선언이 아니라, 무엇을 위험으로 셈할 것인가를 다시 정하는 일이다. 젠더기반 폭력을 위험성평가의 항목으로 명문화하는 것, 근로감독관을 그에 맞게 훈련시키는 것, 기간제와 하청과 자회사 노동자를 같은 보호 안에 두는 것이 필요하다. 위험은 '늦은 밤의 고립된 공간'에 하나의 사건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회사가 수년 간 방치한 관계, 판결을 기다리며 열어둔 권한, 그리고 여성이 위험으로 감지하는 것을 위험으로 셈하지 않는 안전관리 체계를 다시 보는 것으로 시작해야 한다.
※ 보고서에 언급된 실태조사는 민주노총 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서울교통공사노동조합의 <신당역 살인사건 1주기 모니터링 보고서: 큰 충격, 의미있는 변화, 변함없는 현장(2023.09)>에서 발췌했다.
※ 참고자료
Cox, Rachel (2024): Addressing gender-based violence and harassment in a work health and safety framework, ILO Working Paper, No. 116, ISBN 978-92-2-040899-5, International Labour Organization (ILO), Geneva,https://doi.org/10.54394/HZNN2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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