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사회에서는 돌봄을 둘러싼 위기가 점점 더 일상적인 사회문제로 드러나고 있다. 저출생과 고령화가 심화되고 맞벌이 가구가 늘어나는 한편, 가족 규모는 작아지면서 한 가정이 감당해야 하는 돌봄의 부담은 오히려 커지고 있다. 자녀나 부모의 질병이나 장애, 경제적 어려움과 같은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이를 가족 밖에서 함께 감당할 수 있는 사회적 자원은 충분하지 않다. 이러한 상황에서 돌봄은 여전히 가족의 일, 더 나아가 가족 안에서도 여성의 책임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가족 내 극단적 사건을 개인의 정신건강이나 가족의 문제로만 설명하기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오늘 소개하는 연구는 한국 사회에서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자녀 살해 후 자살을 개인의 정신질환이나 일탈적인 행위로만 설명해서는 안 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여, 우리 사회가 돌봄과 가족의 책임을 어떻게 배분하고 있는지를 되묻는다(☞논문 바로가기: 가족 살해 후 자살과 돌봄 정의: 자녀 살해 후 자살의 젠더화를 중심으로).
그동안 이러한 사건이 '가족동반자살'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면서 부모와 자녀가 함께 죽음을 선택한 것처럼 이해되어 왔지만, 미성년 자녀의 경우 자신의 죽음에 동의하거나 선택할 수 없었다는 점에서 이는 명백히 구분될 필요가 있다. 연구자들은 자녀 살해 후 자살을 가족 안에서 발생하는 살해이자 돌봄 관계의 문제로 바라보면서 그 배경에 있는 사회적·구조적 조건을 살펴본다.
이러한 관점에서 연구자들은 기존의 주류 자살학이 개인 중심적 혹은 정신병리학 중심이라고 비판한다. 기존 연구에서는 자녀 살해 후 자살을 우울증이나 정신질환, 모자관계의 과도한 밀착성, 개인의 잘못된 판단 등으로 설명하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이러한 요인들이 개별 사건에서 작용할 수 있지만 이런 설명만으로는 왜 자녀 살해 후 자살에서 어머니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지, 그리고 왜 이러한 사건이 특정한 사회경제적·가족적 조건에서 반복되는지를 설명하기 어렵다. 연구자들은 특히 여성의 자살을 개인적이고 감정적인 문제로 해석하는 기존의 젠더편향적 해석이 이러한 구조적 원인을 가리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를 살펴보기 위해 연구자들은 1990년부터 2025년까지 언론에 보도된 자녀 살해 후 자살 사건 총 358건을 분석했다. 이 가운데 어머니가 자녀를 살해한 후 자살한 경우가 175건, 아버지의 경우가 135건, 부모가 함께 관여한 경우가 48건이었다. 이는 일반적인 자살률에서는 남성이 여성보다 훨씬 높다는 사실과 대조적이다. 특히 어머니가 자녀를 동반하는 경향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점은 단순히 여성의 개인적 특성으로 설명하기보다는, 여성에게 자녀 돌봄의 책임이 집중되어 있는 사회적 구조와 연결해서 볼 필요가 있음을 보여준다.
연구자들은 자녀 살해 후 자살을 하나의 원인으로 설명할 수 없는 복합적인 사회적 사건으로 보고, 그 발생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네 가지 차원에서 분석했다. 첫째는 가족책임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적 노동시장이 초래한 사회경제적 위험, 둘째는 가족관계 안에서 발생하는 대인적 상호작용의 위기, 셋째는 가부장적 사회규범과 돌봄의 시장화·가족화·젠더화, 넷째는 체화된 인격성과 개인적 특질이다. 분석 결과 사회경제적 요인이 171건으로 가장 많았고, 가족관계의 위기가 104건, 돌봄의 가족화·젠더화가 65건, 개인적 특질이 20건으로 나타났다. 하나의 사건에 여러 요인이 함께 작용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점도 중요한 특징이다.
첫 번째 차원인 사회경제적 위험은 특히 남성의 자녀 살해 후 자살에서 중요한 요인으로 나타났다. 특히 남성의 경우 만성적인 생활고보다 빚, 실직, 사업 실패, 부도처럼 경제적 지위가 갑작스럽게 무너지는 경험이 중요한 계기로 나타났다. 본인의 실직이나 사업 실패가 직접적인 원인으로 분류된 사례도 남성에게서만 확인되었다. 연구자들은 이를 남성이 여전히 가족의 주요 생계부양자로 간주되는 성별 분업과 연결한다. 즉 남성의 경제적 실패가 개인을 넘어 가족 전체의 위기로 확대될 수 있는 구조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는 여성이 출산과 양육에 집중함으로써 안정적인 노동시장 참여를 통해 가계의 경제적 기반을 확보하기 어려운 구조에 놓여 있음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러한 이분법적 성 역할 분업 구조는 남성에게 생계부양의 압박을, 여성에게는 제한된 경제적 자율성을 부과하며 양쪽 모두를 취약하게 만든다.
두 번째 차원은 가족관계의 위기이다. 가정불화, 이혼, 부부싸움, 사별, 가정폭력, 남아선호 등 가부장적 가족관계에서 발생하는 대인적 위기는 여성의 경우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관계의 위기가 돌봄의 위기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폭력적인 배우자를 떠나 자녀와 생활해야 하지만 경제적 자원이 부족한 경우, 배우자와 더 이상 자녀를 함께 돌볼 수 없다고 판단하는 경우, 혹은 자신이 죽으면 남은 배우자가 자녀를 제대로 돌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 등이 나타났다. 따라서 가족관계의 위기는 단순한 부부갈등을 넘어 경제적 의존과 돌봄의 문제를 통해 극단적인 위기로 전환될 수 있었다.
세 번째 차원은 돌봄의 가족화와 젠더화이다. 여성 42건(24%), 남성 17건(12.5%)에서 돌봄의 가족화·젠더화가 중요한 요인으로 확인되었다. 여성 사례에서는 자녀의 장애나 질병으로 돌봄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가장 많았고, 이혼을 하거나 비혼모로서 혼자 자녀를 돌보거나 본인의 장애·질병으로 돌봄이 어려운 상황도 나타났다. 반면 남성의 경우 배우자의 가출이나 질병 등으로 갑작스럽게 혼자 자녀를 돌보게 된 사례가 두드러졌다. 이는 가족 안에서 돌봄이 여성의 역할로 분배되어 있다가 여성이 돌봄을 수행할 수 없게 되면 남성에게도 돌봄과 생계노동을 동시에 수행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여성의 돌봄 부담은 돌봄을 여성의 본질적인 역할로 간주하는 사회문화적 규범과 연결되어 있었다. 여성에게 돌봄이 당연한 책임으로 부과되면서 돌봄 노동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필요한 사회적 자원에서도 배제된다. 그 결과 여성은 노동시장에서는 경제활동을 하면서 가족 안에서는 돌봄을 책임지는 이중 부담을 떠안게 된다. 반대로 남성은 일상적으로 돌봄의 책임에서 상대적으로 배제되어 있다가 배우자의 부재나 질병 등으로 갑자기 돌봄을 담당하게 된다. 연구자들은 이러한 현상이 가족 안의 성별 분업이 얼마나 강하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준다고 분석한다.
네 번째 차원은 개인의 체화된 인격성과 개인적 특질이다. 연구자들은 유서와 사건 보도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죄책감'에 주목한다. 이러한 감정은 단순한 개인의 심리적 특질이 아니라, 가족을 제대로 부양하지 못했다는 인식이나 자녀를 충분히 돌보지 못했다는 무력감처럼 불평등한 사회구조와 돌봄 조건 속에서 형성된 관계적·사회적 감정으로 해석된다. 일부 사례에서는 자신이 죽은 뒤 자녀를 돌볼 사람이 없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에 자녀를 살해함으로써 마지막까지 돌봄의 책임을 수행하려 했다는 인식도 나타났다. 이는 극단적인 행위를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라, '돌봄의 책임을 끝까지 내가 져야한다'는 생각을 통해 돌봄의 문제가 어떻게 개인과 가족에게 오롯이 전가되었는지를 보여준다.
흥미로운 것은 우울증이나 정신병리라는 개인적 특질 역시 젠더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고 있었다는 점이다. 남성의 경우 우울증이나 정신병리가 원인으로 명시된 사례는 단 2건에 불과했고, 명시된 경우에도 가족 갈등 등 사회적 요인이 함께 제시되었다. 반면 여성은 18건에서 우울증이나 정신병리가 원인으로 제시되었으며, 특히 2010년 이후 어린 자녀를 둔 여성의 사건에서는 '산후우울증'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는 경우가 반복되었다. 연구자들은 이것이 실제 정신건강의 차이를 의미한다고 단정하기보다, 여성의 사건을 사회적·관계적 맥락보다 개인의 심리적 취약성으로 해석하는 젠더화된 해석 방식을 보여준다고 본다. 여성의 자녀 살해 후 자살을 우울증이나 개인의 정신병리로 환원하면 경제적 어려움, 가정폭력, 돌봄 부담, 가족관계의 위기와 같은 구조적 조건이 가려질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이 논문이 한국사회에 던지는 가장 중요한 시사점은 돌봄을 더 이상 가족, 특히 여성 개인의 책임으로만 남겨두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인간은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존재이면서 동시에 서로에게 의존하고 돌봄을 필요로 하는 존재이며, 그렇다면 돌봄 역시 개인이나 가족이 알아서 해결해야 할 사적인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함께 책임져야 할 공적 문제이다. 자녀 살해 후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사건을 예방하기 위해서도 정신건강 서비스만을 강화하는 것에서 나아가 경제적 불안, 가정폭력, 장애와 질병, 자녀 돌봄, 주거와 노동의 불안정 등을 함께 다루는 사회적 안전망이 필요하다. 결국 이 논문은 우리에게 "왜 이 사람이 죽음을 선택했는가?"라는 질문에서 멈추지 말고 "왜 이 사람이 그토록 감당하기 어려운 삶과 돌봄의 부담을 혼자 감당해야 했는가?"라고 질문하자고 제안하는 것이다. 돌봄의 책임을 개인과 가족에게서 사회로 조금씩 옮겨가는 것, 그것이 돌봄의 정의로운 전환이며 한국사회가 고민해야 할 중요한 과제이다.
*서지정보
김예원, 김명희. 2026. <가족 살해 후 자살과 돌봄 정의: 자녀 살해 후 자살의 젠더화를 중심으로> 한국여성학 42(1): 1-36.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같은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109 또는 SNS상담 마들랜(www.129.go.kr/etc/madlan)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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