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2차 공공기관 지방이전을 핵심 국정과제로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1차 공공기관 지방이전과 혁신도시 정책의 성과와 한계에 대한 충분한 평가 없이, 2차 이전 논의가 속도감 있게 진행되고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공공운수노조는 이번 연속기고를 통해 1차 지방이전의 경험을 되짚고, 일·가정 양립과 노동자의 삶, 공공기관의 기능과 공공성, 지역균형발전의 방향을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단순한 기관 이전을 넘어 지역발전과 공공성 강화가 함께 실현될 수 있는 2차 공공기관 지방이전의 방향을 모색하는 데 이번 기고가 작은 계기가 되길 바란다. - 공공운수노조
"남편은 수도권에 직장이 있고, 아이는 이제 초등학교에 들어가요. 제가 내려가라는 건 결국 그만두라는 말 아닌가요."(공공운수노조 2차 지방이전 관련 인터뷰 중)
수도권의 한 공공기관에 근무하는 30대 여성 노동자의 이 짧은 반문에는, 현재 정부가 추진 중인 2차 공공기관 지방이전 논의가 철저히 외면해 온 핵심적인 맹점이 담겨 있다. 기관의 좌표를 옮긴다는 결정이 왜 한 여성에게는 직장을 그만두라는 강요로 번역되는가. 1차 공공기관 이전 정책의 한계를 짚어본 앞선 기고(☞관련 글 바로가기 : 2차 공공기관 지방이전, 1차 때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에 이어, 우리는 이제 '균형발전'이라는 이름 아래 가려진 가구 내 불균형과 노동시장 내 성별 불균형의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가구의 좌표를 결정하는 것은 '두 사람의 직장 거리'다
정부는 수도권 350여 개 공공기관 이전 로드맵을 올해 안에 구체화하고 2027년부터 본격적으로 이전을 시작할 계획이다. 그러나 현재 추진되는 양상은 '어디로, 무엇을 옮기느냐'라는 기관 분산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을 뿐, 정착의 주체인 노동자와 그들의 '가족'에 미칠 영향은 배제되어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5년 하반기 지역별고용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맞벌이 가구 비중은 이미 48.6%에 달한다. 특히 18세 미만 자녀를 둔 가구의 60.4%가 맞벌이이며, 6세 이하 영유아를 둔 가구의 맞벌이 비율도 56.5%로 절반을 넘어섰다. 이처럼 맞벌이가 보편화된 가족구조 속에서 가족의 삶, 특히 거주지는 더 이상 '한 사람의 직장' 위치로 결정되지 않는다. 부부 두 사람의 직장 위치, 즉 '직장 간 거리'와 자녀의 학령, 돌봄 자원이 맞물려야 거주지가 결정된다. 이런 상황에서 부부 중 한쪽만 지방으로 이동하게 되면 직장 간 거리는 급격히 벌어지며, 기존에 유지되던 통근과 돌봄, 가사 부담의 전면적인 재배분이 불가피해진다.
돌봄 분업의 조정 비용, 여성의 경력단절로 메워지는 구조적 모순
문제는 한국의 성별 돌봄 분업 현실에서 이 거대한 '조정 비용'이 여성에게 집중되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것이다. 직장 간 거리가 멀어지고 돌봄 공백이 발생할 때, 여성은 직장을 유지한 채 과중한 통근과 육아를 이중으로 떠안으며 스스로를 소진하거나, 결국 돌봄을 위해 자신의 경력을 포기하고 퇴사나 휴직을 선택해야 하는 벼랑 끝에 내몰린다.
1차 이전의 데이터는 이를 적나라하게 증명한다. 정부는 '가족동반·1인가구 이주율 67.7%'라는 수치를 성과로 내세우지만, 이는 독신과 미혼을 합산한 착시다. 기혼자만을 기준으로 하면 가족동반 이주율은 55.7%에 그치며, 무려 1만 1908명의 기혼 노동자가 가족과 분리된 채 단신 이주를 했다.
최근 사회공공연구원의 설문조사 결과는 이 문제가 지닌 상황의 엄중함을 다시 한번 일깨워 준다. 노동자들은 이전 시 가장 큰 걱정으로 배우자의 직장 문제(31.0%)와 자녀 교육·양육 문제(21.7%)를 꼽았으며, '가족 동반 전면 이주'를 계획한다는 응답은 단 7.7%에 불과했다. 특히 2030 세대의 절반 가까이가 이전이 현실화될 경우 퇴사를 고려하겠다고 답했다. 국회예산정책처 분석에서도 이전 후 공공기관 퇴사율이 급증했으며, 특정 기관은 퇴사율이 5.8배나 치솟았다. 가족 단위의 설계가 없는 물리적 이전은, 안타깝게도 여성 노동자와 청년들을 비자발적 퇴장으로 내모는 구조적 압박과 다름없다.
단기 '불편'을 넘어선 '기약 없는 가족해체'
정부는 여성의 경제활동 확대와 저출생 대응을 위해 일·가정 양립 정책을 확산하며 성과를 만들어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흐름과 달리, 지금의 공공기관 지방이전은 국가적 기조와 구조적으로 충돌하고 있다. 맞벌이 가족, 학령기 자녀를 둔 가족, 노부모 돌봄 책임이 있는 가족에게 무작정 단행되는 지방이전은 단순한 '개인의 선택'이나 단기적인 '불편'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필연적으로 주말부부 양산과 과도한 장거리 통근 등 장기적인 가족 분리 상황을 고착화시킨다. 부모 중 한 명이 부재한 상태로 장기간 이어지는 독박 육아와 정서적 단절은 결국 기존 가족 제도를 뒤흔들며 '기약 없는 가족 해체'로 이어질 위험이 매우 크다.
가족을 고려하지 못한 이전이 만들어내는 압박은 결코 단기적 적응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국토교통부 2024년 말 기준 통계에 따르면, 이전 공공기관 기혼자 10명 중 4명은 여전히 가족과 떨어져 살거나 다른 도시에서 출퇴근하고 있다. 이는 이주 후 10년이 지나도록 풀리지 않는 장기 고착 상태가 '주말부부·혁신기러기'라는 일상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이는 주말부부와 장거리 통근 등 장기적인 가족 분리의 고착화이며, 나아가 '기약 없는 가족해체'를 의미한다.
정책의 정합성 : '가족' 단위 설계와 '공공혁신거점'으로의 전환
노동자들이 반대하는 것은 국가 균형발전 그 자체가 아니다. 노동자와 가족의 삶을 최소한의 정책 비용으로조차 계산하지 않은 채, '5극 3특 국가균형성장전략' 등 다른 정책들과 철저히 분절되어 진행되는 일방통행식의 이전을 우려하는 것이다.
구성원의 삶을 뿌리째 흔드는, 노동자와 가족의 현실을 배제한 '진공 상태'에서의 일방적 이전은 더 이상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2차 이전이 진정한 균형성장의 동력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가족'에 미칠 파급력을 고려하여 정책의 틀을 재설계해야 한다.
더 나아가 공공기관 지방이전은 단기적인 성과주의를 벗어나, 현장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노조와의 충분하고 투명한 협의를 바탕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성공적인 정착을 위해서는 돌봄과 교육, 의료 인프라의 확충은 물론, 노동자와 배우자의 경력 유지를 위한 실효성 있는 지원 대책이 함께 마련되어야 한다. 물리적 이전을 뛰어넘어 일과 돌봄이 통합된 '권역별 공공혁신거점'으로 도약해야 한다. 저출생 대응과 여성의 경제활동 확대, 맞벌이 부부 맞돌봄 확산이라는 시대적 과제와 발을 맞추어, 사람과 가족의 삶을 온전히 살려내는 정책적 전환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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