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80주년을 맞았음에도 여전히 관련 사료와 증언이 부족해 독립운동을 위해 헌신한 의병과 독립유공자들이 빛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관련 사료가 존재하지 않은 상태에서 증언을 해줄 사람들조차 점점 줄어들고 있어 이에 대한 문헌 확보와 증언 채록 등의 작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28일 오후 전북 부안군 부안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광복80주년 부안군 출신 근현대 독립운동가 발굴 학술대회'에서 관련 문제에 대한 현황과 과제 등이 집중적으로 제기됐다.
부안학연구소가 주관하고 국가보훈부 광복회 전북지부 등이 주최한 이날 학술대회에서는 부안 의병·독립운동 연구와 서훈(박대길 박사), 부안출신인 독립운동가 백정기 선생에 대한 생애와 현창사업(김주용 원광대학교 교수), 지운김철수 선생의 독립운동에 대한 역사적 의의(윤상원 전북대학교 교수) 등의 발표가 있었다.
특히 눈길을 끈 것은 김형관 교수(중국 무순대학교)가 발표한 '숨겨진 부안군 출신 독립운동가 활동과 기록'이다.
김형관 교수는 이날 발표를 통해 부안군에서 그동안 빛을 보지 못한 의병 또는 독립운동가들의 활동사례를 증언과 제한적인 사료 등을 꾸준히 수집해 이날 소개했다.
사례 가운데는 '대한광복단 교통원(交通員, 연락책)'으로 소개된 고광계(高光契, 일설에는 고광설(高光偰)이라는 주장도 있음)선생의 일화가 관심을 끈다.
고광계 선생(1897~1943)은 부안군 출신으로 건국훈장 독립장에 추서된 고평(高平, 일명 고인석, 1886~?)선생의 조카로 추정된다. 추정하는 것은 기록과 관계 없이 주변인들의 증언을 기초했기 때문이다.
고광계 선생은 대한광복단 소속으로 1920년 10월 청산리 전투 직후 함경도 삼수, 갑산으로 이동해 국내외 무장투쟁을 전개하는 과정에 그 일원으로 참가해 활동하다 일제에 의해 검거됐다. 그러나 구체적인 활동 기록은 발견할 수 없고 일본 육군성의 비밀문서 기록과 조선독립운동사, 매일신보의 기록 등을 통해 '주거부정'의 고광계가 검거(일부 문서는 미검거)됐다고 등장하기 때문이다.
고광계 선생에 대한 증언은 그의 양손자가 현존해 있어 그를 통해 일부나마 확인할 수 있으나 관련 사료 등이 빈약해 독립유공자로 서훈을 받기에는 큰 어려움이 따르고 있다.
또 이미 작고한 신영옥(1927년생)선생의 공적 또한 일부 증언과 기록이 존재하지만 독립유공자 서훈으로 이어지기에는 난망한 상황이다.
신영옥 선생은 1941년 5월 당시 부안군 상서면에 설치된 부서보통학교(현 상서초등학교)5학년에 재학중이었다.
열다섯 살의 신영옥은 5학년의 반장을 맡을 정도로 리더십과 책임감이 강했다.
그러던 중 5월 9일 한 일본인 교사가 '교내에서 국어(일본어)를 사용하지 않고, 조선말을 한다'는 이유로 학생들을 이날 밤 늦게까지 붙잡아 두고 체벌을 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에 분개한 신영옥은 친구 이화영(당시 14세) 등 동급생 4명과 함께 하교하는 재학생들에게 '다음날부터 학교에 나오지 말 것'을 설득했고 실제로 다음날 전교생 500여명 대부분이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훗날 신영옥의 동창생인 송영구의 증언에 의하면 "등교 거부 이틀 만에 어머니 손에 이끌려 학교에 가보니 '교무실과 교실은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을 정도로 살벌한 분위기'였으며 일본인 교장은 책상을 두드리고 통곡을 하면서 주동자 색출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고 한다.
결국 신영옥은 등교거부 사건의 주동자로 지목되어 같은 달 18일 퇴학을 당하고 그 뒤로 평생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신영옥은 그 뒤 50년이 흘러 그의 나이 65세가 되어서야 비로소 이 같은 공적이 동창생들을 통해 알려지게 되었고 1991년 2월에 열린 상서초등학교 졸업식에서 뒤늦게 명예 졸업장을 받게 되었다.
당시 명예졸업장을 받기 전 신영옥의 동창생은 물론이고 선배와 후배, 주민 등 13명이 그의 공적활동에 대한 '보증서'를 써주기도 했다.
신영옥 선생은 그러나 정부로부터 공적은 인정받지 못한 채 사망했으며 현재 후손들은 이를 매우 안타깝게 여기고 있다는 것이 김형관 교수의 주장이다.
김형관 교수는 "지역의 독립운동사 연구에 대한 필요성은 자주 언급되고 있으나 실제 전반적인 연구와 조사는 부진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면서 "이번 학술대회를 계기로 지역조사와 자료발굴, 문헌자료 확보는 물론 생생한 현장감을 반영할 수 있는 지역민의 증언이나 학자들의 의견을 모으는 작업을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토론에 나선 박종오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모든 것이 기록될 수는 없고 '기록할 수 없는 진실'도 있는 법"이라며 "기록이 없다고 해서 독립운동을 했던 행적이 온전히 없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이어 "기억되는 역사에 대한 교차 확인 작업과 함께 독립운동가의 범위를 명확히 설정하고, 나중에 변절했던 이들에 대한 검증작업 등을 여러 사람들이 함께 하면서 '드러내지 못했던 진실을 되찾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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