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에도 서울시는 '약자와의 동행'을 통해 도시를 따뜻함으로 채우고 서울 곳곳에 아름다움과 매력을 더해서 천만 시민이 행복한 미래를 향해 더욱 힘차게 도약하겠습니다."
서울시가 오세훈 서울시장의 신년사를 요약한 문장이다. 오 시장은 임기를 시작하면서부터 행정의 기치로 '동행‧매력 특별시 서울'을 말하고 있다.
신년사에서도 '약자와의 동행'에 작은따옴표를 넣을 만큼 서울시는 해당 슬로건을 강조하고 있지만, 사실 전문을 보면 그와 관련한 내용은 대략 20%만 될 뿐이다. 신년사에서 오 시장은 관광 개발과 경제 발전을 위한 사업 등에 대해 더 많이 말하고 있다.
실제로 오세훈 시장은 동행보다 매력 특별시에 집중하며 디자인 혁신과 수변공간 개발 등 관련 정책을 추진하고, 재개발 활성화를 위한 6대 규제완화책을 발표하고, 한강을 세계적인 랜드마크로 만들겠다며 관광 개발 사업을 계획하는 등 "도시공간의 대전환, 대개조"를 추진하고 있다.
예컨대 오 시장의 여러 개발‧재개발 사업 중 '그레이트 한강 프로젝트'가 있다. 그레이트 한강 프로젝트는 2007년 오세훈 시정에서 추진했던 한강 르네상스 프로젝트와 이어진다. 특히 내년 9월 운항을 목표로 추진되고 있는 '리버버스'에 208억 원의 예산을 편성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대중교통으로써의 실효성이 없고 생태계 파괴 등의 이유로 한강 난개발을 규탄하는 기후정의단체들의 목소리가 있다.
서울혁신파크가 사라진다
오세훈의 도시 개발로 사라지는 곳 중 하나로 서울혁신파크가 있다. 2015년에 개소한 '서울혁신파크(이하 혁신파크)'에 대해 서울시는 시민이 공동의 조성자가 되어 함께 일상의 혁신을 일궈내는 사회혁신플랫폼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혁신파크는 시민사회단체들이 입주해서 사회문제 해결을 도모하거나 사회적기업이 새로운 도전을 하는 공간이었고, 주민들에게는 산책을 하고 자연을 향유할 수 있는 휴식공간이었다.
그런데 오 시장 재임 이후, 서울시는 갑자기 2022년 8월 서울혁신센터에 혁신파크 운영 종료를 통보했다. 그해 12월 "고품격 경제타운" 재개발 계획을 발표했고 입주단체들을 쫓아냈다. 60층 규모의 빌딩, 대형 쇼핑몰 등 랜드마크를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또한 혁신파크에 있는 노동자들을 해고하고, 2025년 공사에 들어가기 전 2년 동안 일부 노동자에 대해서만 적은 임금으로 고용하겠다고 했다. 사실상 임시 운영 기간에 혁신파크를 폐허로 만들고 이후에 개발하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관련해 '공공 토지를 개발하여 상업적 이익을 얻는 것은 서울시 공공성을 저해한다'는 시민사회와 지역 주민들의 반발이 있었다. 특히 제로웨이스트와 비건을 실천하는 '카페 쓸'이나 장애인접근성이 있는 '더스마일 장애인 치과' 등 현재까지 혁신파크에서 버티고 있는 입주단체들이 있다.
'혁신파크에 있기 때문에' 카페 쓸은 가게 앞 텃밭에서 직접 재배한 식재료로 만든 음료를 판매할 수 있었다. 더스마일 장애인 치과에선 치료 중 뛰어나가는 발달장애어린이의 행동이 공원 안에서 수용되어, 환자에게 안전함을 보장할 수 있었다. 그런 이유를 무시하고 서울시는 이들에 대해 명도소송을 진행하며 쫓아내려 하고 있다.
서울시가 임시활용 계획으로 혁신파크 내 건물들을 단체적으로 철거할 계획을 발표하자, 지난 1월 18일 은평구 주민들과 지역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꾸려진 '공공의 공간으로서 서울혁신파크를 지키는 시민모임'은 "시민들이 안전한 파크 사용 방안이 구체화되기 전까지는 철거 진행 및 공공기관 이주를 전면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오 시장은 신년사를 통해 "도시공간의 혁신으로, 서울의 매력을 높이고 시민을 위한 여가공간을 대폭 확충"하겠다고 말하면서도, 시민들이 이미 여가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는 혁신파크를 없애려 하는 모순된 정책을 펼치고 있다.
나아가 서울시는, 문화예술인들이 작업을 하고, 사회적기업이나 청년들이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시민사회단체가 사회체제에 질문을 하는 '혁신'의 공간을 민간 개발과 상업화로 다시 후퇴시키려 한다. 이는 서울시민들로부터 모두의 공간, 즉 공공성의 공간을 빼앗는 일이다.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가 사라졌다
리버버스와 서울항 건설에 예산이 책정된 것에 반해, 예산 전액 삭감으로 소리소문없이 사라지는 기관이나 정책들도 있다.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이하 권리중심공공일자리)'도 그중 하나다.
서울시에서 시행한 권리중심공공일자리는 비장애인 중심 노동시장에서 배제되어 오던 중증장애인, 특히 최중증장애인과 탈시설 중증장애인의 권리를 중심으로 맞춤형으로 시행된 지자체 차원의 공공일자리다. 권리중심공공일자리로 고용된 노동자는 장애 유형과 특성을 고려한 권익옹호, 문화예술, 인식개선 3개 분야의 일을 했다.
서울시는 지난해 11월 예산 편성 과정에서 관련 예산을 전액 삭감함으로써 권리중심공공일자리를 없애고 400명의 장애인 노동자들을 해고했다. 그리고 동행특별시 정책으로 장애유형별 맞춤형 특화일자리를 도입한다. 그러나 이 특화일자리가 해고된 노동자들을 모두 고용승계 하는 것도 아닐뿐더러, 보통 특화일자리는 최중증장애인이 할 수 없는 일로 만들었기에 배제와 다름없다.
권리중심공공일자리는 유엔장애인권리협약(CRPD)에 명시된 권리를 지역사회에 알리고 권리가 이행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중요한 목적으로 설정한 반면에, 특화일자리는 중증장애인을 이윤 중심 생산체계에 끼워 넣는 식으로 활용할 뿐이다. 권리중심공공일자리로 한 발 나아가려던 장애인 노동권 보장이 심각하게 퇴행한 것이다.
지난해 12월 27일에 있었던 '서울시 권리중심공공일자리 폐지 및 중증장애인 400명 해고사태 대시민 토론회'에서 해고노동자 당사자로 참여한 김홍기 씨는 해고에 대해 "우리 보고 다시 시설이나 집구석에서 가만히 죽으라는 얘기나 다름없다"라고 말했다.
권리중심공공일자리는 최중증장애인 당사자가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로 나와 직접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살 수 있는 환경을 마련했다. 서울시는 "이것도 노동이다"라며 권리를 생산하고 사회적 기반을 만든 장애인 노동자들의 자부심을 짓밟았다.
서울시엔 무엇이 남는가
혁신파크와 권리중심공공일자리 외에도, 서울시는 장애인 탈시설을 위한 거주시설 연계 자립생활 지원사업, 서울시사회서비스원 어린이집, 서울여성공예센터 더아리움 등 사회적 소수자를 지원하거나 공공돌봄을 담당하는 기관에 대한 예산을 삭감하여 올해 운영하지 않는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도시 개발을 하며 민간기업과 손잡고 관광객 모으기에만 집중하고 있다. 그렇다면 서울에 무엇이 남는가. 서울에서 삶을 꾸리고 있는 이들에게 무엇이 남는가. 오세훈 시장이 무엇을 없애고 감추는 가운데 우리는 더 무엇을 상상할 수 있으면 좋겠다.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공간과 돌봄이 더 필요한 이들에게 보장되어야 하는 정책, 이름만 녹색이 아닌 기후와 생태계 파괴를 최대한 막아내는 정책, 약자에 대한 동정이 아닌 권리를 보장하며 새로운 이름을 지을 수 있는 사업 등. 우리는 서울이란 도시에 무엇을 남겨야 하는가.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무엇은 무엇인가.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