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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염수 방류는 국가가 했는데, 그 피해는 왜 내가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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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염수 방류는 국가가 했는데, 그 피해는 왜 내가 볼까?

[인권의 바람] 탐욕의 자본주의 체제를 멈추는 것을 두려워 말자

엄청 뜨겁다가 갑자기 폭우가 쏟아진다.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최근의 날씨는 이동만 힘들게 하는 게 아니다. 폭우나 폭염은 농작물을 키우는 농민들의 마음을 닳게 한다. 생산자인 농민만이 아니라 소비하는 비농민 시민도 마찬가지다. 가격이 오를 것이기 때문이다. 돈이 많은 사람이야 가격이 올라도 개의치 않고 제철 과일과 곡물 혹은 가공품을 사서 먹겠지만, 돈 없는 사람들에게 농산물 가격인상은 고민거리다.

물가폭등 등 기후위기는 일상생활 전반에 영향 미쳐

최근 영국 <BBC> 시사프로그램에서는 기후위기로 인한 물가상승을 뜻하는 '기후플레이션'(Climate Inflation)이라는 신조어를 소개하기도 했다. 보도에 따르면 최근의 물가상승 국면엔 우크라이나 전쟁뿐 아니라 기후위기도 한몫했다고 한다. 매체는 특히 지난해 기후 위기가 전체 물가 상승률을 0.67%p 더 올린 것으로 추정했다.

기후위기로 인한 물가상승은 인간이 자초한 것이다. 다만 이 자업자득의 결과는 다소 불평등하다. 기후위기의 영향은 대형홍수를 직접 겪지 않는 사람의 일상에도 영향을 미칠 정도로 전 방위적인데, 안타깝게도 그 피해는 지불 능력이 없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더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후 위기에 맞선 실천은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일일 수밖에 없다.

이 뿐만이 아니다. 일본 후쿠시마 핵오염수 방류로 소금 값이 많이 올랐다. 하루 100건 내외 정도 오던 주문이 500건을 넘을 정도로 판매량이 급증했다. 이는 단순히 개개인의 사재기 심리 때문에 벌어진 일일까? 아니다. 핵 오염수 방류를 결정한 일본 전력 자본과 일본 정부와 한국 정부의 무책임한 정책이 원인이다. 다시 말해 기후 위기의 시대에서조차 '각자도생'을 부추기고 있는 국가의 정책이, 기후위기로 인한 '일상위협'의 근본적인 원인이다.

나아가 핵오염수를 발생시키는 핵발전소를 국가가 계속 짓고 있는 현실에서, 일본 핵오염수방류는 일회적인 위험으로 여길 수도 없다. 정부가 튼튼하고 안전한 핵발전에 대한 환상을 유지하는 한, 위험은 사라지지 않는다. 발전소 폭발이 아니어도 방사능 영향과 핵폐기물 등으로 인한 핵발전소의 위험은 꾸준히 제기돼왔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이 12년이나 지났는데도 폐기물을 처리할 수 없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그 위험은 매우 장기적이다.

그런데도 윤석열 정부는 2024년 원자력발전 산업 지원을 위한 예산과 원전 수출 활동 지원예산을 늘렸다. '원전생태계 정상화'라는 이름으로 2023년 예산 중 신한울 3, 4호기 등 핵발전 일감만 2조 9,000억 원 규모로 확대하고도 더 늘리겠다는 것이다. 독일처럼 핵발전소를 중단해야 마땅한 데도 정부는 핵발전이 석탄연료를 대체할 수 있는 안전한 에너지인 것처럼 속이며 원전 증가 정책을 확대하고 있다.

▲도쿄전력이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시작한 지난달 24일 오후 부산해운대해수욕장에서 환경운동연합과 부산고리2호기 수명연장·핵폐기장 반대 범시민운동본부 관계자들이 원전오염수를 뜻하는 대형 노란색 비닐을 활용해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투기에 반대하는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연합뉴스

자본주의의 성장은 풍요가 아니라 위험을 가져온다

사실 핵발전소를 많이 짓는 이유도 개발과 더 많은 생산을 위해서다. 더 많은 공장을 짓고 에너지를 사용하기 위해서다. 묻고 싶다. 도대체 그 많은 공장과 생산물은 누구를 위해 필요한 것인가. 기업주들, 자본가들의 이윤을 창출할 뿐이다. 대다수 사람들의 삶에 필수적인 것이 아닌데도 수없이 생산하는 것은 자본가의 이윤을 늘리기 위해서이다.

그동안 자본주의적 성장이 모든 사람의 삶을 풍요롭게 할 것이라고 선전했지만 이는 이미 거짓이었음이 드러났다. 현실은 일부 가진 자들, 자본가들의 삶만 풍요롭게 할 뿐이다. 불평등은 점점 심해지고 있지 않은가. 지난 9월 15일 국제구호개발기구 옥스팜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19가 유행한 2년 동안 생긴 부의 63%를 상위 1%의 부자들이 가져갔다고 한다.

경제적 불평등만이 아니라 사회적․ 환경적 불평등도 심각해지고 있다. 생태계 교란과 기후위기로 튼튼하고 안전한 주거공간이 필요하지만 가난한 동네의 집들은 기후 위기에 대처할 만큼 안전하지 않다. 불어난 홍수로 건물이 쓸려가고 태풍에 집이 무너진다. 핵발전소의 위치만 해도 그렇다. 국가는 부자들이나 권력자들이 사는 도심에 핵발전소를 짓진 않는다.

기후 위기로 인한 피해가 가난하고 힘없는 자들의 몫이 되는, 불평등한 상황이 도래한 지 오래다. 정의롭게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먼저 가난한 나라에서 벌어지는 기후재난에 대해 경제선진국이 몰려있는 북반구 국가들이 책임을 져야 한다. 적어도 '오염자 부담의 원칙'에 따라, 북반부 국가가 남반구 국가와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생태부채'를 갚아야 한다.

그리고 풍요의 개념도 달라져야 한다. 더 많은 생산을 위해 노동자들은 자신의 삶 대부분을 공장과 직장에서 보낸다. 친구나 이웃과 함께 담소를 나누고 여가를 즐길 시간이 없다. 인간관계가 좁아지고 삶이 피폐해진다.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은 꿈도 꾸지 못한 채 살아가기도 한다. 특히 한국처럼 장시간노동이 일상인 사회에서 노동자는 공장의 노예, 생산의 노예가 된다. 이렇게 자본주의의 성장은 노동자의 시간과 삶을 갉아먹는다. 자본주의적 성장은 풍요를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위험을 가져오며 노동자가 세계와 맺는 관계를 좁힌다.

풍요는 다양한 존재들과 관계를 맺고 공존하는 시간 속에서 만들어진다. 많은 것을 생산하고 소유한다고 삶이 풍요로워지는 것이 아니다. 이웃과 동네 뒷산의 새와 공존하고, 사색하며 걷는 시간을 늘리는 일상 속에서 풍요를 맛볼 수 있다. 생산 위주의 체제를 멈추면 인간만이 아니라 비인간동물도 살 수 있다. 생산과 경쟁이 아니라 최소한의 필수재에 대한 공공성을 늘리는 방식으로 사회가 굴러가야 한다. 공공성을 강화하고 모두가 공존할 수 있는 정책, 다양한 존재의 공존을 위한 정책이 수립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탐욕스런 자본주의 체제를 멈추어야 한다.

이제 자본주의 체제의 '성장과 풍요 신화'가 실효성 없는 거짓임을 인정해야 한다. 기후 위기가 지속될수록, 현 체제가 유지될수록 가난한 사람들은 식량과 주거, 대중교통 등 삶의 필수적인 것들을 취하기 어려워진다. 기후 위기를 멈추기 위해 탐욕스런 자본주의 체제를 끝내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자. 우리가 잃을 것은 위험과 거짓 풍요일 뿐이다.

9월 23일은 기후정의 행진이 있다. 작년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오면 좋겠다. 기후 위기를 일으킨 거대한 체제에 함께 균열을 만들어 가면 좋겠다.

ⓒ9.23 기후정의행진 조직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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