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캠프의 공동상임선대위원장으로 영입됐던 조동연 교수가 사퇴했다. 10년 전 이혼과 관련한 사생활 논란이 불거진 뒤 이틀 만이다. "누굴 원망하고 탓하고 싶지는 않다. 아무리 발버둥 치고 소리를 질러도 소용없다는 것도 잘 안다. 열심히 살아온 시간들이 한순간에 더럽혀지고 인생이 송두리째 없어지는 기분이다. 다만 아이들과 가족은 그만 힘들게 해주셨으면 좋겠다." 그가 사퇴에 즈음해 페이스북에 올렸다는 글이다. 단어와 단어 사이에 흐느낌이 배어 있고, 문장과 문장의 행간에 선혈이 흐른다. 숨죽여 터뜨리는 통곡이 정치의 황량한 거리에 빗물이 돼 흘러내린다.
한 사람의 눈물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기쁨이다. 민주당의 '영입 1호' 인사를 단숨에 저격한 기쁨의 축배 소리가 곳곳에서 들린다. '검증'이라는 이름의 무자비한 인격 살해를 한 유튜브와 일부 언론, 이를 부채질한 야당이 축제의 주인공이다. '먹잇감'이 나타나자 곧바로 화살을 쏘아 쓰러뜨린 사냥꾼의 쾌감을 그들은 한껏 만끽한다.
이번 사냥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유튜브 채널 '가로세로연구소'의 운영자는 그 자신이 불륜설, 사문서위조 혐의 등으로 진흙탕에서 허우적댄 사람이다. 도덕성을 자랑할 건덕지도 별로 없는 인물이 남의 사생활을 들추어내 도덕 강의를 펼치는 모습은 비루하고도 그로테스크하다. 유튜브만이 아니라 <TV조선>과 <조선일보> 역시 사냥에 뛰어들어 '황색언론'의 위용을 확실히 보여주었다. 조 교수의 결혼과 이혼에 관한 세세한 내용, 심지어 자녀의 출생 시점 등 '아동 인권'을 침해할 내용마저 시시콜콜히 보도했다. 이 모든 것이 '공인에 대한 검증' '국민의 알권리 충족'이라는 이름 아래서 이뤄졌다.
언론의 무책임한 까발림도 문제지만 민주당의 성급한 영입과 검증 실패가 근본 문제라는 비판의 목소리도 높다. 민주당 내부는 물론 진보를 표방하는 단체와 언론에서 터져 나오는 지적이다. "기본적인 검증도 거치지 않고 요직에 발탁한 민주당의 책임이 막대하다"고 질타하며 이번 사안을 "부실한 검증이 빚은 참사"라고 규정한다.
선거에 임박해 정당이 이미지 제고용 외부 인사들을 끌어들이는 '이벤트성 영입'은 비판받아야 한다. 게다가 민주당은 야당의 시빗거리가 될만한 내용을 사전에 인지하지 못하고, 공격에 대비한 준비도 전혀 하지 않았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비판에 휩쓸려 가장 중요한 질문이 실종됐다. 과연 조 교수의 '흠결'은 공직을 맡을 수 없는 치명적인 '자격 미달' 사항인가?
'부실 검증'이라는 말에는 검증 대상자가 '부적격자'라는 의미가 은연중 내포돼 있다. "과열된 인재 영입 과정에서 생긴 인사 검증 실패"라는 비판에는, 가족 관계에 얽힌 과거사 문제가 있는 사람은 애초 영입하지 말아야 했다는 생각이 서식하고 있다. 실제로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는 "사생활 논란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거짓에 기초한 가정 구성이나 삶의 태도는 성별을 떠나 문제가 있다"고 조 교수를 질타했다. 명색이 '성평등한 민주주의와 여성의 정치참여 확대'를 목표로 내건 단체가 내놓은 성명 구절이다.
지금 대다수 국민은 조 교수의 '결혼 과거사'를 접하며 심각한 도덕적 분노를 느끼고 있는가? 이런 사람은 절대 공직을 맡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런 '숭고한 도덕주의'가 우리 사회의 보편적 국민 정서라는 말인가? 아닐 것이다. 대다수 사람은 그런 알량한 도덕주의에 매몰돼 있지 않다고 믿는다. 오히려 '인사 검증 실패' 비판이 본질을 흐리고 초점을 잃게 했다. 부실 검증이라는 질책은 어느 면에서는 당사자에 대한 가혹한 '2차 가해'다. 진보를 자처한다면 마땅히 이렇게 외쳐야 한다. "그래서 조 교수가 공직을 맡지 못할 이유가 무엇이라는 말인가?" 민주당이 비판받아야 할 것은 '부실 검증'이 아니라 오히려 논란이 불거진 뒤 보인 '발뺌 대응'이다.
글을 여기까지 쓰고 있는데 뜻밖의 뉴스가 전해졌다. 민주당 대선대책위원회 법률지원단 부단장인 양태정 변호사가 발표한 글이다. "조 전 위원장은 2010년 8월경 제3자의 끔찍한 성폭력으로 인해 원치 않는 임신을 하게 됐으나, 군 내부의 폐쇄적 분위기 등 때문에 외부에 신고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당시 혼인 관계는 사실상 파탄이 난 상태였고, 차마 뱃속에 있는 생명을 죽일 수는 없다는 종교적 신념으로 홀로 책임을 지고 양육을 하려는 마음으로 출산을 하게 되었다"는 내용이 골자다. 참으로 처참하다.
조 교수의 혼외자 문제를 비도덕적으로 몰아가 낙마시킨 '관련자들'은 입이 있으면 뭐라고 말해보라. 그대들이 저지른 패악에 대해 일말의 양심의 가책이라도 느끼고 있는가. '부실 검증'을 지적한 언론 역시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들 언론은 명시적으로 말하지 않았지만 '불륜으로 혼외자를 얻은 인물'이라는 데 동의한 셈이었다. "기본적인 검증도 거치지 않고 요직에 발탁한 데서 비롯된 인사 참사"라는 일갈도 그런 맥락에서 나왔다. 그래서 묻는다. "기본적인 취재도 거치지 않고 '요직 발탁 부적합'으로 몰아간 '부실 보도'야말로 언론의 보도 참사 아닌가?" 총체적 난국이요 비극이다.
조동연 교수 사태를 지켜보며 생각의 끈은 자연스럽게 대선 후보 부인 검증 문제로 이어진다. 검증 필요성을 놓고 보면 정당의 대선 캠프 선대위원장과 유력한 '영부인 후보'는 비교할 바가 아니다. '퍼스트레이디'는 단순히 대통령의 부인이라는 의미를 넘어 한 국가를 대표하는 얼굴이다. 공식적으로 청와대 제2부속실 직원들의 보좌를 받는 자리이며, 막대한 국가 예산과 국민의 세금이 들어가는 자리다. 각종 사회 활동과 외교 등 독자적인 '영부인 정치'를 하는 경우도 많다.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의혹, 코바나컨텐츠 전시회에 대한 기업들의 '보험성 뇌물 의혹' '개 사과 사진 연출 의혹' 등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부인 김건희씨는 숱한 의혹들에 휩싸여 있다. 내용을 보면 그의 과거사는 '일회성'이 아니라 '출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 줄로 연결된 것으로 보인다. 의혹들 너머에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어둡고 음습한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남편인 윤석열 후보가 직간접으로 연관된 사안들도 많다. 조 교수의 경우에 비교해보면 검증의 필요성은 차고 넘친다.
그런데도 김건희씨의 숱한 의혹들에 대한 검증은 언론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후보자 부인을 왜 검증하는가"라는 주장도 더욱 힘을 얻고 있다. 그러면서도 한편에서는 이제 갓 정치권에 진입한 여성에 대한 신상털기가 '공인에 대한 검증' '국민의 알권리 충족'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된다. 이런 물구나무선 풍경이 지금 우리가 목도하는 언론의 대선 보도 현실이다.
이제 언론들은 김건희씨에 대한 검증 회피를 이런 말로 합리화할지 모른다. "이번에 조동연 교수 사태를 겪으면서 섣불리 검증에 손대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사냥꾼들의 입장에서는 어차피 표적으로 삼았던 먹잇감은 노획했으니 손해 볼 일도 없다. 이래저래 조동연 교수는 끝까지 정치적으로 악용되고, 김건희씨는 더욱 교묘히 검증을 피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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