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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에 세금을 부과하라

[김종구의 새벽에 문득]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곳곳에서 고통의 신음소리가 끊이지 않지만 한쪽에서는 즐거운 비명도 들려온다. 골프업계도 그중 하나다. 골프 애호가들의 해외 여행길이 막히면서 국내 골프장들은 전례 없는 호황을 누리고 있다. 한국레저산업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 259개 골프장의 지난해 영업이익률은 31.8%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한다. 이런 호황으로도 성이 차지 않는지 전국 대부분의 대중골프장이 이용료와 각종 부대비용을 대폭 인상했다는 언론 보도도 얼마 전에 있었다.

전쟁과 역병은 수많은 사람을 죽음과 고통 속으로 몰아넣지만 반대로 그 속에서 행운을 거머쥐는 사람도 있다. 유대계의 대부호인 로스차일드 가문은 나폴레옹 전쟁을 계기로 큰 부를 쌓았고, 은행과 상업으로 중세 유럽을 풍미한 독일의 벨저 가문은 흑사병을 거치며 우뚝 일어섰다. 흑사병으로 유럽 인구의 3분의 1이 사망하면서 경제가 큰 타격을 받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풍부한 자금력을 갖춘 소수의 큰 기업이 산업과 무역, 금융 등 주요 시장의 지배자가 됐다고 경제사학자들은 말한다. 지금 코로나 시대도 마찬가지다. 골프업계의 호황은 매우 사소한 예에 불과할 뿐, 전 세계적으로 '부(富)의 재구성'이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다.

'운'은 인간의 행·불행에 큰 영향을 끼치는 자연의 우연한 작용을 일컫는 말이다. "운은 노력의 다른 이름" 등의 말도 있지만, 간발의 운의 차이로 생사가 엇갈리기도 하고, 성공과 실패의 차이가 하늘처럼 벌어지기도 한다. 예기치 않은 역병의 도래 역시 어떤 사람들에게는 불운이지만 다른 어떤 사람들에게는 행운으로 작용한다. 소규모 상공업과 자영업 등을 하는 것이 시대를 잘못 만난 불운과 재앙이라면 온라인 쇼핑, 배달 앱 등 비대면 시대에 적합한 업종을 선택한 것은 하늘이 내린 축복이자 행운이다.

단순히 운 때문에 어떤 사람은 비참의 나락에 빠지고 어떤 사람은 성공의 축배를 드는 것이 불공평하다는 생각은 법 이론과 도덕, 정치철학의 주제이기도 하다. '운 평등주의' 철학은 그런 맥락에서 나왔다. 개인이 선택하지 않은 '운'에 의해 발생한 불평등은 정당화될 수 없으며, 정의로운 사회는 이런 개인적 불운에 보상해야 한다는 것이 이 철학의 핵심이다. 운 평등주의는 '비선택 운'(brute luck, 눈먼 운, 불가피한 운)과 '선택 운'(option luck)을 구별한다. 자신이 스스로 선택한 결과의 불운에 대해서는 사회가 책임을 지지 않지만, 불가항력적 불운의 희생자는 돕는 게 정의에 부합된다는 것이다. 2008년 한국을 방문한 적도 있는 자유주의 철학의 거두 로널드 드워킨(2013년 작고) 교수 등이 대표적인 운 평등주의 주창자다.

코로나 사태는 '선택 운'인가 아니면 '비선택 운'인가. 대답은 자명하다. 이런 끔찍한 역병이 덮치리라고 누가 꿈에나 상상했을까. 코로나는 더 설명이 필요 없는 불가항력적 운이다. 그런 점에서 코로나로 피해를 입은 서민들에게 재난지원금을 지급하는 것은 운 평등주의 철학과 관련해 음미해볼 대목이다.

그런데 '불운 피해자'를 돕는 것은 마땅하게 여기면서도 '행운의 승리자'한테서 재원을 조달하는 대목에 이르면 반대가 극심하다. 코로나 이후 소득이 늘어난 기업 등한테서 세금을 더 걷자는 특별재난연대세, 사회연대특별세 등의 법안에 대해 야당 및 보수신문들은 거의 악담과 저주 수준의 비판을 쏟아낸다. "경제 주체의 팔목을 비트는 행위" "내년 대선을 앞두고 지지층 결집과 외연 확장을 위한 전형적인 '갈라치기' 수법" 등등…. 심지어 "코로나로 총선에서 이익을 본 현 정권부터 이익을 토해내라"는 유치찬란한 칼럼까지 <조선일보>에는 등장했다. 이런 선전선동 수준의 극심한 반대 앞에서 공정과 평등, 분배의 정의가 무엇인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발붙일 공간은 사라져 간다.

코로나 시대의 성공은 오직 실력과 노력이 100% 작용한 덕분일까. 또 '패자들을 돕기 위한 재원을 승자들의 호주머니에서 충당하는 것은 자유경쟁과 책임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주장은 과연 맞는 것일까. 한 개인의 성공이 순수한 재능과 실력, 노력만으로 이뤄진다는 것이 얼마나 허구인지는 그동안의 많은 연구 결과가 말해준다. 온라인 산업 등 코로나 시대에 적합한 업종을 택한 것은 분명히 '선택 운'이 좋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라는 예기치 않은 '눈먼 운'이 스스로 찾아온 것도 부인할 수 없다. 코로나가 어떤 사람들에게 '눈먼 불운'인 것처럼 어떤 사람에게는 '눈먼 행운'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이 운의 오묘한 작용 앞에서 자유경쟁, 책임의 원칙, 도움을 받는 사람의 도덕적 해이 등을 이야기하는 것은 부질없다.

정의로운 사회는 불가항력적 운의 결과를 '중화'시켜 개인의 삶에서 운이 차지하는 비중을 최대한 낮춰주는 사회다. 중화의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불운한 사람을 지원해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행운의 결과물 중 일부를 사회가 넘겨받아 불운한 사람을 지원해주는 것이다. 그것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영국의 경제사학자 엘리너 러셀은 '흑사병은 어떻게 부자들을 더 부자로 만들었는가'라는 글에서 "국가 힘의 강화와 소수 대기업의 시장 지배 가속화"를 흑사병의 경제적 결과로 설명하면서 "14세기 당시와 현재 간에 평행선이 존재한다"고 분석한다. 역병의 창궐 속에서 '부자가 더욱 부자가 되는' 현상은 흑사병이나 코로나나 마찬가지라는 진단이다..

부의 불평등 심화를 제도적으로 완화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조세 시스템을 바꾸는 것이다. 최근 미국과 영국 등에서 부유세를 한시적으로 적용하자는 등의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미 연준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말을 기준으로 미국의 상위 10% 부유층이 보유한 순자산은 총 80.7조 달러로 미국 가구 총자산의 70%에 육박한다. 이는 3분기 국내총생산(GDP)의 375%에 해당하는 규모로, 지난 30년 동안 상위 10% 부유층의 순자산이 GDP의 200%를 넘어선 전례가 없다고 한다. (한국금융연구원 <금융브리프> 30권 5호). 부유세 도입 검토는 코로나 극복을 위한 강도 높은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을 무한정 지속할 수는 없다는 위기감과 함께 심각한 부의 불평등을 더는 방치할 수 없다는 인식이 확산된 결과다. 우리나라도 증세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이지만 조용하기만 하다. 여당 대선주자들도 많은 재원이 소요되는 복지정책을 앞다투어 내놓지만 증세 문제에 대해서는 아직 제대로 된 토론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공정과 정의는 단지 입학시험 스펙 쌓기 논란 정도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더 중요하고 본질적인 공정과 평등, 분배의 정의 문제에 대한 사회적 차원의 진지한 논의가 절실하다. "어떤 한 도시를 아는 손쉬운 방법은 거기서 사람들이 어떻게 일하고 어떻게 사랑하며 어떻게 죽는가를 알아보는 것이다." 알베르 카뮈의 소설 <페스트>의 도입부에 나오는 대목이다. 코로나 역병에 갇힌 대한민국이라는 도시의 모습은 어떤가. 사람들이 어떻게 일하고 어떻게 사랑하며 어떻게 죽어가고 있을까. 특히 인간끼리의 사랑과 연대가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가를 곰곰이 생각해보게 하는 요즘이다.

덧붙임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역시 코로나로 행운을 얻었다. 이 부회장을 조기에 가석방한 명분은 "엄중한 위기 상황 극복, 코로나 백신 확보 역할 필요성" 등 주로 코로나와 연관돼 있다. 코로나가 아니더라도 이 부회장 쪽은 감옥에서 나오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기울였겠지만, 코로나 사태라는 '운'이 있었기에 더욱 손쉽게 가석방 혜택을 입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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