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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과 조선일보의 '색깔론', 그리고 진중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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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과 조선일보의 '색깔론', 그리고 진중권

[김종구의 새벽에 문득]

한때 사상적 친구였던 장 폴 사르트르와 알베르 카뮈의 불화와 결별은 지금도 세계 지식인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지성사의 역사적 사건이었다. 카뮈는 공산주의의 전체주의적 속성을 날카롭게 비판하면서 마르크시즘에 대한 사르트르의 태도를 자유를 위한 앙가주망이 아니라 "굴종에의 열망"이라고 비판했다. 사르트르는 카뮈의 주장이 사회주의 혁명을 역행시키려는 우파 언론들에 의해 이용당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카뮈가 역사의 바깥으로 물러앉아 역사에 대해 훈계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두 사람은 카뮈가 출간한 <반항하는 인간>의 서평을 둘러싼 갈등으로 결국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이때 사르트르가 한 유명한 말이 있다. "우리를 가깝게 했던 것들은 많았고, 우리를 갈라놓았던 것들은 얼마 되지 않았다." 서로 '공통점'이 많았는데도 '사소한 차이점' 때문에 결별하게 됐다는 아쉬움의 토로다. 카뮈가 1960년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을 때 사르트르는 추도사에서 "카뮈는 아마도 나의 마지막 좋은 친구였다"고 말했다.

한때 진보진영 인사로 분류됐으나 지금은 문재인 정부로부터 등을 돌린 사람들(진중권·서민 교수, 김경율 회계사 등…)을 지켜보면서 문득문득 사르트르의 이 말이 떠오르곤 한다. 물론 시대와 상황, 맥락은 다르다. 그들이 카뮈도 아니고, 그들이 공격하는 대상이 소련도 아니다. 그럼에도 사르트르의 말은 진중권 교수 등과 진보진영 간의 불화와 결별을 음미해보는 데 유용해 보인다.

진 교수 등이 진보진영과 멀어진 것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한 검찰 수사가 발단이다. 그 뒤 사사건건 현 정권과 진보진영을 향해 날선 공격을 해 왔다. 여기까지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진보에 대한 쓴소리는 필요하고, 현재의 민주당 정부가 진보적 가치를 제대로 구현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지적은 아무리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런데 그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대변인'을 자처하는 대목에 이르면 '이해 불능'이다. 그는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민주당을 향해 "너희들이 표방하고 있는 정치이념에서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경고를 하고 싶다"고 말했는데, 진 교수에게도 묻고 싶다. 애초 진 교수가 표방한 정치이념은 도대체 무엇이며, 지금 자신의 행보는 그 정치이념에 가까운 것이냐고.

'반공주의, 지역주의, 성장주의, 사대주의.' 오랫동안 한국 정치를 지배해온 네 가지 키워드다. (안재원 서울대 교수, <아테네 팬데믹>). 점차 모습이 드러나는 윤 전 총장의 정치적 지향점, 국정운영 철학도 결국 이 네 기둥 위에 서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검찰총장을 떠나기 직전 대구를 방문해 환호하는 대구 시민들에게 "고향에 온 것 같은 느낌"이라고 말한 데서는 지역주의의 망령이, 탈원전 정책에 대한 맹공에서는 생태와 환경, 미래세대의 안전과 건강보다는 당장의 성장지상주의 그림자가, '미군 점령군' 발언 논란 키우기에서는 반공주의와 사대주의 신봉자로서의 진면목이 확인된다. 앞으로 드러날 남북 정책에서도 평화와 공존이 아닌 대결과 냉전의 논리에 기초한 정책이 될 확률이 높다. 진 교수는 윤 전 총장의 대권 야망에 대해 "결과를 생각하지 말고 그냥 옳은 길을 가는 것 자체가 희망을 실현하는 길"이라고 덕담을 아끼지 않는다. 그런데 구태의연한 색깔론, 단정적이고 편협한 역사관, '반문 정서'에 기댄 강경보수 정책으로의 회귀가 우리 사회의 미래를 밝혀줄 희망의 가치이고, 시대정신인가?

윤 전 총장의 가장 열렬하고 강력한 후원자는 다름 아닌 <조선일보>다. 반공주의, 지역주의, 성장주의, 사대주의 등 이념적 지향점이 비슷한데다, '반문'이라는 핵심적인 공약수를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 '미군 점령군' 발언 색깔론 공세에서도 조선일보와 윤 전 총장의 이념적 동질성, 찰떡공조가 잘 확인된다.

요즘 '조선일보가 가장 사랑하는' 논객을 꼽으라면 당연히 진 교수다. 진 교수가 대중들에게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린 계기가 '안티조선' 활동이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매우 역설적이다. "하루에도 300만부씩이나 찍어 전국을 '거짓말'로 도배하는 조선일보"라고 질타했던 사람은 다름 아닌 진 교수였다. (<조선일보를 아십니까?> 도서출판 개마고원, 1999년).

"왜곡과 편견, 냉전적 대결 의식을 부추기는 반통일적 언론, 이념을 내세운 메카시즘적 발상의 포로, 청산되어야 할 역사를 미화하는 파시즘 언론…." . 당시 진 교수 등이 앞장서 외쳤던 조선일보의 속성이다. 그런 조선일보가 그사이 개과천선해 '정의롭고 훌륭한 언론'으로 탈바꿈했는가? 안티조선 운동은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최장집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장에 대한 조선일보의 '사상 검증'을 계기로 시작됐다. 이번에 다시금 확인됐듯이 "이데올로기적 오만에 사로잡혀 사정권에 들어선 인사는 모두 이념의 처형장으로 끌고 가려는 습관"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그런데도 진 교수는 "이제까지 운동권 내에서 아무 검토 없이 사실이나 진실로 받아들여져 온 이데올로기적 망상에서 아직 자유롭지 못한 것"이라고 이재명 경기지사에 대한 비판에 가세했다. (7월5일 NEWS더원 칼럼 '이재명은 언제 철드나'). 반면에 조선일보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색깔론 공세에는 침묵으로 응원했다. 그가 "이재명 언제 철드나?"라고 말하려면 똑같이 "조선일보(윤석열) 언제 철드나?"라고 물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전체주의에 대한 카뮈의 비판은 '정오의 사상'으로 이어진다. 치우치지 않는 "중용의 가치, 한계와 절도, 관용과 대화, 조화와 통일성에 대한 사랑"이 바로 정오의 사상이다. (윤정임, '카뮈-사르트르 논쟁사'). 세기적 지성의 사려깊고도 웅혼한 사고를 진 교수 등에게 기대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지금 사상의 시계가 어디를 가리키고 있는지는 명확히 해야 한다. 그의 사상은 '정오의 사상'이 아니라 '한밤중의 사상'이다.

▲30일 조선일보 주최로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에서 대선출마를 선언한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김부겸 국무총리의 축사를 경청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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