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임 시장들의 성폭력 사건에서 비롯된 서울, 부산 시장 보궐선거가 부동산 이야기만 하다가 끝났다. 아니, 부동산이 아니라 'LH 사태'만 주구장창 반복됐다. 어찌됐든 부동산이 이슈가 됐다면 부동산 문제에 대한 제대로 된 진단과 해법이라도 진지하게 논의되는 선거였으면 좋으련만, 선거는 그런 곳이 아니었다. 민주당은 심상치 않은 민심을 눈치 채고 바짝 엎드리며 '국민들 화 풀릴 때까지 반성'하겠다며 연일 철저수사와 강력처벌만 반복했다. 정부가 이미 발표한 서울 32만 호, 전국 83만 호 주택 공급대책 발표에 이어 추가 주택 공급 공약도 덧붙였다. 국민의힘도 대규모 주택공급만이 해결책이라며 '스피드 주택공급'을 내걸었다.
정부여당은 도대체 무엇을 반성한다는 걸까? 공정한 부동산 시장을 못 만들어서? 시민들이 느끼는 분노, 답답함, 불안함이 모두 재건축, 재개발을 못해서인가? 문제는 주택이 거대한 자산시장으로 확고히 자리 잡았다는 것이다. 삶의 안정성과 직결되는 주거문제가 투자/투기와 결부되고, 시장 변동성에 연동되어 삶의 불안정으로 이어지고 있다. LH는 단지 버튼이었을 뿐이다. 주택이 인생을 건 자산시장이 된 게 문제다.
수도권 주택보급률 99.2%, 그래도 부족하다는 주택
지난 4년 동안 정부는 집값을 잡겠다며 부동산 대책만 25차례 발표했지만 서울 아파트값은 83.9% 올랐다(서울대 환경대학원). 부동산 정책 실패가 분명해진 상황에서, 정부여당은 짧은 기간 안에 최대한 많은 신규주택을 공급하겠다는 2.4 대책을 발표했다. 집값이 급등하는 이유는 공급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세간의 주장을 받아들이며 정부의 정책실패를 인정한 것이다. 인구감소 시대를 맞았지만 서울 수도권으로 일자리를 찾아 인구 집중이 계속되는 상황, 새 아파트에 대한 꾸준한 수요는 공급부족론에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하지만 이를 좀 더 들여다보면, 아파트를 중심으로 한 일부시장의 거주 수요와 주택의 자산투자상품화가 결부된 결과이지 절대적인 주거수요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2019년 기준 수도권의 주택보급률은 99.2%, 서울은 96%다. 과거 60~70년대 인구증가와 전국에서 몰려든 인구로 인해 1966년에는 50%에 불과했다. 이러한 주택부족을 정부는 강남개발(70년대), 분당·일산과 같은 수도권 대규모 신도시 주택공급(300만 호)으로 해소해나갔다. 물론 그렇다고 달동네 사람들이 좋은 주거환경에 거주하게 된 건 아니지만 현재 주택보급률과 비교하면 근본적으로 다른 조건이었다. 2011년부터 이미 서울 주택보급률은 98.4%에 달했지만, 대규모 택지개발과 도심 재개발 방식의 '아파트' 공급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현재 건설 중인 2기 신도시에 이어, 3기 신도시 개발을 발표했고 서울 도심 재개발도 공기업이 직접 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그렇게 실제 주거수요와는 괴리된 자산시장으로서 주택시장이 급성장했다. 2000년에 처음으로 주택 시가총액이 1000조 원을 넘겼고(당시 GDP 650조 원), 2016년 4000조 원에 이어 불과 3년 만인 2019년 5000조 원을 돌파했다. 실제 경제규모지표인 GDP 대비 2.64배를 기록한 것이다. 지난해 불붙었던 주식시장 시가총액이 2000조 원으로 GDP와 거의 비슷한 수준임을 감안하면 주택시장의 팽창은 엄청난 것이다. 보통 부동산 시장 안정을 명분으로 정부가 나서서 민간건설사와 함께 대규모 신규 아파트를 공급하면서 주택가격의 전반적인 상승을 이끈다. 이미 오를 대로 오른 시세보다 조금 싸게 청약분양을 해 공공성을 확보했다고 자평하고, 이를 구매 가능하도록 금융자본과 함께 장기 주택담보대출상품을 판매하는 방식으로 주택시장의 팽창은 이루어졌다. 정부는 양질의 주택을 대규모로 공급했다는 명분과 함께 건설경기 붐으로 경제성장률을 끌어올렸다. 건설사는 말할 것도 없고, 각종 대출상품을 판매한 은행 그리고 최근에는 LH가 주도한 임대주택 금융 투자 상품인 리츠(REITs)까지, 아파트 수요와 가격상승에 기대는 금융자본들의 비중은 커져만 갔다. 다주택자는 말할 것도 없고 인구의 절반을 넘는 주택소유자들은 집값이 오르는 게 결코 싫지 않다. 이렇게 주택시장의 덩치가 커질수록 정부도, 건설사도, 주택소유주도 행복할 수 있었다. 엄청난 집값 상승에 놀란 이들이 죽을힘을 다해 막차를 탔다. 주택가격 상승 하나만 바라보고 향후 20년, 30년 인생을 건 대출이 바로 '청년 세대 영끌'이다.
수도권 인구의 절반은 세입자
부동산 문제만큼 '가진' 사람들의 목소리만 들리는 곳도 없다. 뉴스에 등장하는 주택은 거의 모두 '아파트'다. 주택가격 급등이나 전월세 대란과 같은 뉴스들은 거의 다 아파트 시장 이야기다. 하지만 서울 주택의 54.4%(2018 통계청)는 아파트가 아닌 단독주택, 다세대주택이다. 수도권 가구의 46%는 무주택 세입자이다. 그 결과 주거정책을 대체한 부동산 정책에서 인구의 절반은 소외되고, 이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검색창은 온통 종부세, 공시지가, 부동산 세제 개편, 주택담보대출, 이사철 아파트 전월세 시장 뉴스로만 가득 차 있다. 집은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곳이라더니 주식시장과 다를 바 없는 거대한 자산투자시장이 된 것이다.
들리지 않는 50%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다면, 아니 기본권으로서 주거권에 기초한다면 정부의 주거정책이 취해야 할 방향은 분명하다. 국민의 인생을 저당잡고 자산시장으로서 부동산 시장을 키우는 게 아니라, 그 누구도 쫓겨나지 않고 원하는 만큼 적정한 가격으로, 쾌적한 주거환경에서 삶을 계획하고 영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아파트 아닌 주택의 관리보수 및 주거환경 개선 사업, 기한 없는 계약갱신청구권, 기준금리에 준하는 전월세상한제 등이 필요하다. 서울에 빈집이 무려 9만 3천 채가 있다(2019 통계청). 뉴타운지구가 해제된 후, 추후 개발 호재를 노리고 방치한 주택이 대다수이다. 재개발, 신규택지 중심의 부동산 공급 정책이 만들어낸 아이러니이다. 일부 지자체를 중심으로 진행된 도시재생, 다세대주택관리의 활성화, 작년에 이루어진 계약갱신청구권과 전월세상한제를 골자로 하는 임대차법 개정이라는 정책방향은 주거 정책으로서 부동산 공급 대책보다 훨씬 중요하다.
세입자에게 전가되는 부동산 규제, 주택 소유자가 답이 되는 세상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대규모 신규주택공급을 한 축으로, 다주택자/고가주택보유자에 대한 세금부과를 다른 한 축으로 굴러왔다. 자산소유자 모두가 행복해지는 부동산 시장의 성장과 함께 과도한 투기욕심을 막는 공정한 정책이라는 것이다. 그 결과 아파트값은 이제 다른 세상 이야기가 되어버렸고, 다주택자에 대한 세금인상은 고스란히 세입자에게 전가되었다. 청와대 정책실장, 여당 국회의원도 시세 따라 어쩔 수 없이 올린다는데 다른 집주인들이라고 별 수 있나. 전월세 인상 때문에 2년마다 이사 다니는 것도 힘들고, 상대적으로 쾌적한 주거환경을 갖춘 아파트값은 계속 오르니 '내 집 마련을 통한 주거안정'은 매우 합리적인 선택이 된다. 주거안정에서 출발한 '내 집 마련 프로젝트'는 인생을 건 투자가 되어 이후에도 계속 오를 아파트를 찾게 되고 부동산 시장의 플레이어가 되어 '부동산 뉴스'에 촉각을 곤두세우게 된다.
세입자의 권리를 임대인과 상충하는 권리로 보고 이를 '조정'하는 문제를 넘어서야 한다. 모든 사람의 기본권으로서 주거권을 분명히 해야 한다. 임대인 주택소유권은 주택매매에서나 중요한 권리이지 주택사용에 있어서는 거주자의 주거권이 우선되어야 한다. 주거 안정이라는 삶의 필수적인 가치를 이용한 주택의 자산상품화를 끊어내야 한다. 수도권 가구 99.2%가 실제 거주하고 있는 주택과 5,000조 원을 넘어선 주택자산시장을 분리하는 것이다. 그래야 내 집 마련을 하지 않아도 '주거 안정'을 이룰 수 있다. 정부의 부동산 조세 정책이 세입자에게 전가되는 걸 막을 수 있다. 현재 4년까지 보장되는 계약 갱신청구권은 기존 2년이 조금 늘어난 정도에 그치고, 5%로 제한된 전월세인상폭도 결국 4년을 주기로 소위 '시세'를 반영하게 될 것이다. 임대차법은 다시금 전면 개정되어야 한다. 임차인의 무기한 계약갱신청구권, 강화된 전월세상한제가 그 시작이다.
공정한 부동산 시장은 없다
'LH 사태'는 또 다시 불공정, 반칙 논란을 불러왔다. 인생을 건 투자를 감행한 사람들이 많았기에, 그 분노는 앞선 입시비리, 불공정 채용 논란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이다. 사실 이런 개발 비리를 예상 못했던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한국의 부동산 개발의 역사는 개발 비리의 역사이기도 하다. 그때마다 정부는 비리 공무원, 정치인, 건설사, 재개발 조합원 엄중 처벌을 반복해왔다. 이번에도 몇몇 직원들이 엄중처벌 될 것이다. 법제도도 촘촘해지고 깐깐해질 것이다. 하지만 '공정한' 부동산 시장은 결코 오지 않을 것이다. '주거 안정'을 바라고 '벼락 거지'는 면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영끌해 주택자산시장에 뛰어든 이들에게 '부동산 시장'이 베풀 공정은 영원히 오르는 주택가격밖에 없기 때문이다. 임차인의 권리가 부실한 한국에서 주택시장의 불안정은 곧바로 임대차 시장으로 옮아간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집값이 하락하자 무리한 대출로 주택구매를 했던 이들이 은행에 집을 뺏기고 전세보증금도 상환하지 못하는 일이 생겼다. 역전세난 속에 전세보증금을 떼인 사람들, 경매로 나온 주택을 울며 겨자 먹기로 인수한 세입자들 사례가 불과 십여 년 전 이야기다.
부동산을 둘러싼 답답함, 불안함, 분노는 방향을 찾지 못하고 있다. 얽히고설킨 거대한 도박판이 되어버린 부동산 시장에서, 유일한 해법은 또 다시 대규모 주택공급을 통한 주택가격 안정화밖에 없는 것처럼 이야기된다. 정부여당은 이제 40년 초장기 주택담보대출 금융상품을 내놓겠다고 한다. 결국 정부의 반성은 모두가 공정하게 부동산 자산 소유자이자 채무자가 될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가장 분노해야 하는 건, 바로 역대 정부가 모두 '공공'의 이름으로 앞장서서 주택을 '사는 것'으로, 쏠쏠한 장기 투자 상품으로 팔아왔다는 점이다. 정부는 농지와 유휴지를 강제 수용해 공공택지로 개발하고 민간 건설사와 합자해 아파트를 짓고 팔았다. 모두가 공유하고 사용하는 토지라는 한정된 자원을 어떻게 이용할지, 새로운 공적 공간으로서 도시와 주거지를 어떻게 구성할지는 전적으로 '공공'의 역할이 되어야 한다. 바로 그 '공공'의 탈을 쓰고, GDP의 몇 배가 넘는 거대한 부동산자산시장을 정부가 만들어 온 것이다. 주식시장보다 훨씬 큰 자산투자시장이 된 부동산 시장에서 투자와 투기를 구별해 공정하게 운영하겠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주거가 불안정하면 삶이 불안정해진다. 이 불안정을 더 큰 시장 확대로 무마하겠다는 망상을 버리고, 주택소유 여부와 상관없이 모두의 주거권을 보장해야 한다. 부풀대로 부푼 주택자산시장을 연착륙시킬 책임이 정부에게 있음은 물론이다.
인권운동사랑방이 발행하는 '인권으로 읽는 세상'은 <프레시안>과 <비마이너>에 공동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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