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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민주화의 근간에 금융 개혁이 있다

[DEEP FUTURE] 루트에너지 윤태환 대표 인터뷰③·끝

루트에너지 윤태환 대표 인터뷰 보기

1편: '지하 자원'에서 이제 '천상 자원'으로 가는 길

2편: "탄소 중립 목표, 10년 더 앞당겨 2040년 가능케 하는 게 목표"

......

이병한 : 태양광도 풍력도 결국 천상자원인데요. 하늘의 변화, 기후와 날씨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작년에는 장마가 석 달 가까이 지속되기도 했잖아요. 간헐성의 제약은 어떻게 극복할 수가 있을까요?

윤태환 : 재생에너지 발전의 유일한 흠이죠. 햇볕의 내리쬠과 바람의 불어옴과 멈춤은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어찌할 수 없으니까요. 지리적으로도 편차가 있어요. 극지방으로 갈수록 바람이 좋고요. 적도로 갈수록 태양광이 유리합니다. 그래서 기술적인 대안과 금융적인 대안을 함께 마련해야 합니다. 간헐성을 채울 수 있도록 리튬이온 같은 배터리 기술을 고도화하고, 수소 저장 기술도 발전시켜야 하고요. 금융적으로는 보험 상품을 잘 설계해야 하겠죠. 그래도 작년의 경우 긴 장마에도 불구하고 평균 이상의 발전은 했던 것으로 나와요. 역시 기술적 진화의 성취였습니다. 패널당, 단위 면적당 발전 효율이 그만큼 높아진 것이죠. 지난 2년 사이에 2배 이상 높아졌습니다. 기술적 대안에 먼저 주력하고, 금융적 대안까지 보완이 된다면 간헐성 문제는 제법 해결이 될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이병한 : 역시나 테크놀로지에 파이낸스까지 결합해서 대안을 궁리하시는군요. 8년간 사업을 해오시면서 체화된 접근법이 아닌가 싶습니다. 국민이 함께 할 수 있는 임팩트 투자 플랫폼은 꼭 만들어 주시면 좋겠어요. 저도 기꺼이 참여해 보고 싶습니다. 새로운 차원의 '동학개미운동'으로 업그레이드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네요. 긴 시간 긴한 말씀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윤태환 : '에너지 시민성'이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습니다. 정부와 대자본이 주도하는 흐름에 수동적으로 따라가고 끌려갈 것인가. 아니면 내 돈을 내는 자발성과 직접성으로 시민이 주도하는 에너지 대전환을 견인해 낼 것인가. 그러기 위해서라도 좋은 정보를 계속 제공해야 하고, 좋은 교육 프로그램도 많이 만들어야 합니다. 훌륭한 인재들이 많이 양성되어 생명산업으로 유입되면 시장의 규모가 커지고, 결국은 나라와 세계 전체가 바뀌어 가는 것이죠. 저는 이미 강원도 태백의 사례를 통해서 주민의 자발적 참여가 얼마나 큰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목도한 바 있습니다. 2040년, 2050년, 제 아들이 서른이 되고 마흔이 되었을 미래를 내다보면서 사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 지긋하게 꾸준하게 지극한 정성으로 근본적인 변화를 일구어내도록 최선을 다하려고 합니다. 후회가 없도록, 아낌없는, 남김 없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저 또한 감사합니다.

▲인터뷰 중인 윤태환 루트에너지 대표(좌). 우측은 저자. ⓒ루트에너지 제공

윤태환 대표가 초등학생 때 읽었다는 <지구 실험실>을 찾아 읽었다. 지금은 절판되어 알라딘 중고책방에서 구했다. 내가 좋아하던 사이언스북스의 <사이언스 마스터스> 시리즈의 열 번째 책이었다. 그 시리즈를 탐독하던 시절이 대학생 때이다. 윤 대표는 초등학교 6학년에 읽었다고 하니, 역시나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남다른 모양이다. 시종 진지하고 신중하며 사려 깊었다.

오는 6월 21일이 '세계 로컬화의 날'(world localization day)이다. <오래된 미래>의 저자 헬레나 호지가 이끌고 있는 '로컬 퓨처스'(Local Futures)에서 정한 미래를 기념하는 날이다. 생명살림도시를 표방하고 있는 춘천시가 올 가을 준비 중인 <생명:하다, 춘천써밋>을 소개할 수 있는 1시간을 할당받았다. 나는 그간 인터뷰해왔던 스타트업 CEO들도 소개하고 싶었다. '생각하다', '생활하다'에 '생산하다'까지 결합되어야 생명하는 문명, 살리는 문명, 생명문명이 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강원도 태백에서 거둔 루트에너지의 성과를 전 세계의 로컬 운동가들에게 알리자고 했더니, 아직은 이르다며 손사래를 친다. 태양광 커뮤니티 펀딩에 투자한 태백 주민들의 만족도를 이제야 모니터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들이 얼마나 행복감이 높아졌는지 제대로 추적해야 한다는 것이다. 채 1만 명도 되지 않는 참여자 규모는 본인이 목표로 하고 있는 수십만, 수백만에 한참 모자라다고도 했다. 그 정도의 성취를 이룬 다음에야 당당하게 루트에너지를 세계를 향해 소개하고 싶다는 것이다. 춘천 행사의 총기획자로서 아쉬움이야 말할 바 없으나, 그의 이러한 태도에 더 큰 감동을 받았다. 울림이 있고 떨림이 있는 사람이다. 믿음직스러웠고 미래가 더욱 기대가 되었다. 당장 나부터 루트에너지의 앱을 다운로드했다. 밝은 미래에, 청정한 미래에 접속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기도 하겠다.

에너지 민주주의, 라는 말을 거듭 곱씹어본다. 에너지 시민성, 참여 에너지라는 표현도 흥미롭다. 기왕의 민주주의는 역시나 인간 중심, 사람과 조직이 쥐고 있는 권력과 권한을 민주화하는데만 골몰했던 것 같다. 권력(power)의 근간에 에너지(energy)가 있다. 에너지를 얻는 자, 권력을 손에 쥘 수 있었다. 그 에너지의 생산과 유통과 소비를 민주화해야 권력의 민주화도 내실을 다질 것이다. 20세기의 에너지 산업처럼 계층적이고 위계적이며 지휘 통제적인 세계도 없었다. 대형은행은 대형에너지 자산에 투자하고, 대형발전소는 개인과 가정, 기업에 에너지를 판매했다. 에너지는 한 방향으로 흐르고, 현금은 반대 방향으로 흘렀다. 대형 에너지기업의 의사결정은 소수의 개인과 이사회에서 이루어졌으니 사용자와 사회는 배제되어왔던 것이다. 참여에너지란 에너지를 최종적으로 소비하는 개인과 가정과 지역사회에 에너지의 발전과 송전과 저장과 관리와 거래에 참여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하는 것이다. 루트에너지의 실험이 기대되는 것은 여기에 참여금융까지 접목시켰다는 점이다. 개인과 가정과 지역사회가 자신들이 사용할 에너지 자산에 직접 투자할 길을 열어준 것이다. 개인과 지역에 권능을 부여하는 것(empowerment)이다.

지역 분권을 이야기한지 이미 오래되었다. 권력의 분산을 논의한지도 한참이다. 그럼에도 서울 중심, 수도권 중심, 대기업 중심의 사회체제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아니 집중도가 도리어 더 심화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그 모순의 근저에 만물과 만사를 움직이는 근원, 에너지 문제가 도사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윤태환 대표가 직접 정치를 언급한 적은 단 한마디도 없었으나, 그가 하는 사업은 근본적으로 정치적이다. 혁신적인 에너지-파이낸스-로컬 비즈니스의 융복합으로 산업화세대와 민주화세대가 합작한 한국 근대화의 결실, 서울공화국의 적폐를 청산할 수 있을지 모른다. 인터뷰를 정리하던 와중에 새만금개발공사의 강팔문 사장을 뵈러 갈 일이 생겼다. 새만금 일대에도 루트에너지가 참여한 태양광발전과 풍력발전이 가동되고 있었다. 산부터 섬까지, 전국 방방곡곡에 루트에너지의 흔적을 발견할수록 한국의 민주주의는 뿌리로부터 달라질 법하다.

▲루트에너지의 투자자 모집으로 개발이 이뤄진 양천햇빛발전소. ⓒ루트에너지 제공

지난 8년 잘 버티어내어 기본기를 탄탄히 다져두었으니, 앞으로 10년이 관건이 될 것이다. 십년이면 강산이 바뀌고, 강산(江山)이 바뀌는 십년이 삼세번, 한 세대가 이어지면 재조산하(再造山河), 새 나라를 이룰 수도 있다. 파괴적 혁신이 일어날 것 같다. 핸드폰이 유선전화 시장을 붕괴시키는데 필요한 시간이 10년이었다. 스마트폰이 디지털 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꾸어버리는 데도 10여년이 소요되었을 뿐이다. 구리가 모자라서 유선전화 비즈니스가 종식된 것이 아니다. 핸드폰이 더 빠르고 더 깨끗한 서비스였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이 더 편리하고 매력적인 도구였기 때문이다. 누구나 콘텐츠를 생산하고 저장하고 전송하고 소비할 수 있는 권능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을 쥐고 있는 이용자에게 권력을 선사한 것이다. 기왕의 미디어산업과 통신산업을 '참여 소비자'들이 뒤흔들어 버린 것이다.

그러나 기술 혁신만으로 기왕의 상품과 산업을 몰아내 시장을 붕괴시키는 것은 아니다. 기술 혁신 못지않게 비즈니스 모델의 혁신도 수반되어야 한다. 공학에 경영학이 결부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으뜸은 역시 금융 혁신이다. 일백년 전의 사례를 복기해볼 필요가 있다. 1918년 미국에서 자동차를 보유하고 있는 가정은 8% 남짓이었다. 상위 10%에 드는 사람들만 소유할 수 있는 고급의 사치재였던 것이다. 그러나 불과 10년 만에 80%의 집안이 자동차를 보유하게 된다. 자동차 기술이 혁신에 혁신을 거듭해서가 아니었다. 엔진이나 변속기를 새로 달았다고 자동차가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간 것이 아니다. 아주 작은 금융의 혁신으로부터 말미암았다. 할부금융이라는, 당시로서는 전례가 없던 신상품이 나왔다. 한 번에 제값을 지불하지 않고도 자동차를 구매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해낸 것이다. 그 10년간 자동차를 구매한 사람의 8할이 할부금융으로 구입했다. 금융의 혁신이 자동차 산업의 폭발적인 성장을 견인했던 것이다. 태양광 기술도 나날이 진화하고 있다. 패널의 효율도는 날로 높아지고, 배터리의 저장 기술도 점점 고도화되어간다. 전기자동차와 자율차 역시도 앞으로 10년 비약적인 성장을 이룰 것이다. 이 모든 생명산업 생태계가 공진화하여 그린-클린 에너지 비즈니스를 추동해갈 것이다. 다시금 화룡점정이 금융이 될지 모른다. 이 거대한 에너지 대전환의 물결에 개개인이 동참하고 기여하고 그 결실을 나누어가질 수 있는 참여금융의 혁신적 솔루션을 루트에너지가 제공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년, 생명평화운동이라는 것이 있었다. 죽임의 문명을 살림의 문명으로 반전하려는 깨어있는 사람들의 정성스러운 운동이었다. 그 생명평화운동의 메카라고 할 수 있는 곳이 지리산의 실상사이다. 도법스님이 터하고 계신 곳이다. 스님을 뵈러, 또 생명평화운동의 차세대 3040 활동가들을 만나러 지리산으로 향했다. 테슬라 자동차를 몰고 가며 탄소 한 움큼 배출하지 않고 세 시간을 달렸다. 기왕의 생명평화운동에 가지는 터럭 하나의 아쉬움이 바로 이 지점이다. 새로운 생각이 있었다. 새로운 생활도 있었다. 그러나 새로운 생산에는 이르지 못했다. 생각과 생활과 생산의 선순환으로 새로운 생명문명의 건설까지는 이루지 못한 것이다. 어디까지나 생명평화 '운동'에 그쳤다. 운동이 문명으로 나아가는 데, 대안이 대안으로 그치지 않고 주류로 진화하는 데 필히 기술과 경영과 금융이 접목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한 고민과 고뇌가 켜켜이 쌓여 있었기에 2021년을 맞이하여 나부터 생명산업 스타트업의 CEO를 만나고 다니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나는 시장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이라 믿는 순진한 시장 숭배자도 아니요, <포스트-피크>에서 설파하는 것처럼 시장 경쟁이 강요하는 기술혁신이 환경문제까지 완전히 해소해줄 것이라는 환상도 일절 품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시장의 혁신이 상당한 에너지 절감 효과를 가져올 수 있음을 무시하고 자본과 기업과 금융에 담을 쌓고 땅으로 돌아가는 것만이 능사라고 여기지도 않는다. 올해가 마침 <녹색평론> 창간 30주년인바, 녹색평론과 녹색대학과 녹색연합과 녹색당 등등 녹색진영에서 고수해 왔던 농본주의적 생각과 생활에 일대 파괴적 혁신이 필히 요청될 것이라는 입장이다. 인류사를 곰곰 되돌아보면 농업의 시작이야말로 가장 인위적이고 작위적인 자연에 대한 개입의 출발이었기 때문이다. 즉 농업은 태초부터 자연스럽지 않았다. 자연을 강조하며 기술과 산업과 공학을 배타하는 것은 매우 부자연스러운 일이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이제야 때가 오고 있는지도 모른다. 정부도 '그린 뉴딜'을 설파하고, 기업도 ESG로 전속력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앞으로 10년, 이 거대한 물결에 적극적으로 타고 올라 그린 워싱(green washing)이 아니라 그린 웨이브(green wave)로 심화하고 확장하는데 적극적인 역할을 도맡아야 할 것이다. 이 세상이 흑 아니면 백으로 양단간에 나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모 아니면 도라는 태도 또한 무책임할 수가 있다. 생명평화운동가들과 생명산업 비즈니스맨들부터 눈빛을 나누고 지혜를 모아야 한다. 대동소이, 구동존이의 태도를 견지하며 기왕의 좌/우, 노동/자본, 진보/보수, 농촌/도시라는 낡은 구도를 혁파하는 대통합과 대연합과 대연정을 솔선수범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런 점에서 나는 '지구 공학(geo-engineering)'조차도 마냥 삐딱하게 보지 않는다. 지구에 대한 인간 개입의 끝판왕이 지구공학이라 할 것이다. 이미 대기 중의 탄소를 포집해 돌로 만들어 땅에 묻어버리는 기업도 생겨났다. 우주에 방어막을 설치해 지구에 내리쬐는 일사량을 줄이려는 스타트업도 등장했다. 이 모든 사업이 시행착오를 반복하다 죄다 실용성이 없는 것으로 판명될 지도 모른다. 이러한 인위적인 지구 관리는 결국 차선책에 그칠 뿐이라는 점 역시도 너무나도 잘 안다. 그러나 그 무모한 시도와 도전이 있었기에 인류가 진화하여 현재의 문명까지 이룩할 수 있었다는 사실 또한 외면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무모한 도전, 무한도전에 나설 것이다. 그들을 향해 미리 녹색 근본주의의 견지에서 그것은 답이 아니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단정 짓는 사람이야말로 교만하고 오만하며 인류의 진화에 훼방을 놓는 자일 수도 있다. 현재 등장하고 있는 수많은 기후-테크(climate-tech), 어스-테크(earth-tech) 가운데 그 어느 것도 금세기에 현실이 될 수 없다고 해도, 그 가능성과 기회를 탐구하고 실험하는 일만은 배척할 것이 아니라 쌍수를 들고 환영해야 할 일이다.

<마이셀프로젝트>는 땅에서 피어나는 곰팡이, 균사체에서 지구의 미래를 구한다. <마린 이노베이션>은 지구의 7할, 바다의 해조류에서 청정한 환경의 대안을 찾는다. <루트에너지>는 태양이 떠있고 바람이 불어오는 하늘로부터 지속가능한 인류의 내일을 열어가고자 한다. 하늘과 땅 사이에 우뚝 솟아난 것이 산이다. 한국은 국토의 7할이 산이라고 한다. 그 산에서 산삼을 키우는 여성 CEO가 있었다. 그런데 사람이 산삼을 재배하는 것이 아니었다. 로봇이 한다. 로봇공학과 임업의 창조적인 융복합, 심바이오틱(SYMBIOTIC)의 김보영 대표를 만나러 간다. 첩첩산중 강원도에 계셨다. 굽이굽이 원주와 평창을 차례로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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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한

20대는 사회과학도였다. 서방을 선망했고, 새로운 이론의 습득에 골몰했다. 30대는 역사학자였다. 동방을 천착하고, 오랜 문명의 유산을 되새겼다. 자연스레 동/서의 회통과 고/금의 융합을 골똘히 고민했다. 그 소산으로 1000일 <유라시아 견문>을 마무리 짓고 40대를 맞이했다. 개벽학자이자 지구학자이며 미래학자를 지향한다. 인간 이전의 자연적 진화는 물론이요, 인간 이후의 자율적 진화에, 인간만의 자각적 진화를 두루 아울러야, 지구의 진화에 일조할 수 있는 미래학자의 자격이 갖추어진다고 생각한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공진화, 하늘과 땅과 사람의 공진화, 생물과 활물과 인물의 공진화, 만인과 만물과 만사의 공진화, 개벽학과 지구학과 미래학의 공진화, 이 모든 것을 아울러 깊은 미래(DEEP FUTURE)를 탐구하는 깊은 사람(Deep Self), 무궁아(無窮我)이고 싶다. www.byeongh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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