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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1억'으로 이웃의 아픔을 경청하는 것, 이게 민주주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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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1억'으로 이웃의 아픔을 경청하는 것, 이게 민주주의다

[기고] 민주화운동 그 기억과 희망나누기 사업, 한국 민주화 운동의 본류

높이 쳐든 안경으로 보이는 광화문의 세상과 하늘

21세기가 막 시작되던 무렵이었다. 광화문 사거리 종로쪽 입구 근처였다. 안경을 두 손으로 높이 쳐들고 하늘을 보며 천천히 걸어오고 있는 특이한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흘끔거리며 쳐다보았다. 그를 알아보는 데는 단 몇 초도 걸리지 않았다. 그는 내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벌써 20여년이 가까운 시간이 흘렀는데도 그 때 그 장소 그리고 그의 얼굴 표정이 너무도 생생하다.

남영동 대공분실과 이근안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동으로 박종철과 김근태를 떠올린다. 인간백정 이근안의 가혹한 고문으로 23살의 박종철은 목숨을 잃었다. 38살의 김근태는 죽음 직전까지 갔다가 살아남았지만 평생을 고문후유증에 시달렸다.

그런데 흔히 잊고 지나쳐버리는 사실이 하나 있다. 남영동의 그 숨막히는 밀실 속에서 이근안 일당들에게 고문을 당했던 학생과 노동자, 일반 시민들은 그 두 사람 말고도 수백 수천명에 달한다. 남영동뿐만 아니라 전국의 경찰서, 검찰, 안기부(지금의 국정원), 보안사(기무사)등에서 고문받았다가 그 후유증으로 지금도 정신질환을 앓거나 자살하거나 각종 질병에 시달리는 사람들 숫자는 일반 시민들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다.

하늘을 향해 안경을 높이 쳐들고 종로 입구를 천천히 걸어가던 그도 다름아닌 고문의 희생자였다. 그는 고문을 받다가 심한 정신착란 증세를 보였다. 그래도 경찰과 검찰은 그를 풀어주지 않고 구속 수감했다. 30년을 훌쩍 지나 이제 환갑이 넘은 지금 이 순간에도 그는 정신질환으로 고통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그가 고개를 들고 안경을 높이 쳐들어 보고자 했던 광화문 위의 세상은 어떤 세상이었을까.

독재는 천재를 죽이는 체제다

사람들은 흔히 머리좋고 공부 잘하고 이른바 일류대학 나오고 특출한 논문을 쓴 사람을 천재라고 부른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하늘이 준 재주라는 말 뜻 그대로 5천만 한국 국민은 모두 천재다.

그저 설렁설렁 손과 발을 움직이기만 했는데도 정리정돈 하나는 깔끔하게 기가 막히게 잘 하는 재주를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사람이 있다. 냄새만 맡아 보고도 된장이 언제 어느 지방에서 어떤 콩으로 쑤었는지 정확히 알아내는 재주를 타고난 이도 있다. 악기를 잘 다루는 이도 있고, 칼질을 잘 하는 사람도 있다. 게으르기가 한이 없는데도 어떤 일에는 끈질기게 매달려 일을 성사시키는 곰같은 사람도 있다. 우리는 모두 아무리 사소한 것일지라도 하늘이 준 재주를 하나씩은 갖고 태어난 만인 평등의 천재다.

이승만에서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한국의 독재 체제는 이런 천재들을 죽이는 체제였다. 자신의 삶을 소중하게 생각할 뿐만 아니라 한걸음 더 나아가 내 이웃인 천재를 살리고자 했던 수많은 젊은이들이 과감하게 이런 살인 독재 체제에 행동으로 저항했다. 1990년대까지 민주화 운동의 최전선에 뛰어들었던 수많은 청년들이 거리에서, 노동현장에서, 농촌현장에서 기꺼이 자신의 젊음을 내던졌다.

사람들이 흔히 잊고 지내는 두 번째 사실이 하나 더 있다. 한국의 민주화 운동은 수백 수천 명이 한 것이 아니다. 1987년 6월 항쟁 당시 길거리로 쏟아져 나와 자동차 경적을 울리고 최루탄 가스에 눈물을 흘리며 시위를 했던 시민들은 전국에 걸쳐 수백만 명에 달했다.

이런 장삼이사의 평범한 천재(!!) 국민들에 의해 기적처럼 전두환 군사독재가 무너졌고, 대통령을 직선으로 뽑을 수 있었다. 시위에 나선 국민들은 일당을 받고 동원된 사람들이 전혀 아니었다. 누가 시켜서 마지못해 쪽수 채우기 위해 나온 사람들도 아니었다. 오직 스스로의 판단에 의해 불의에 대한 분노와 저항의 어깨동무로 저 무도하고 불의한 파시스트 정권을 타도하고자 연대한 사람들이었다. 민주화 운동은 국민 운동이었지 결코 소수 정치인들의 운동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런 국민 운동으로서의 민주화 운동 때문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아직도 병마에 시달리고 있거나 생활의 고통을 받고 있다면 우리는 그들에 대해 무엇을 해야 할까.

'기적의 1억'

세월이 흘렀고 세상이 달라졌고 세대도 바뀌었다. 법과 제도로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피해자와 5.18 민주화 운동 피해자, 긴급조치 피해자 등에 대한 보상도 일부 이루어졌다. 국민들은 민주화 운동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은 이제 그것으로 충분히 끝났다고 생각하고 있고 별로 관심도 없다.

그러나 잘 알려져 있지 않아서 그렇지 민주화 운동 인사들 가운데 가난과 병마에 신음하면서 그야말로 생사의 경계 속에 서 있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이들은 아무런 보상도 없이 그저 묵묵히 자신의 자리에서 독재의 세상이 남겨 놓은 병마와 가난의 감옥에 갇혀 헤어나오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더구나 이름도 명예도 그리고 무엇보다도 재산도 남김없이 돌아가신 분의 유자녀 가운데는 어렵고 힘든 삶을 오롯이 감당하고 있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독립 운동을 하면 3대가 힘든 삶을 살아야 했던 게 냉혹한 한국 현대사였다. 친일파 자손들이 대를 이어 호위호식하고 있는 것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그래서 6.25동란 이후 어른들은 자식들에게 늘 사회 운동에는 절대 나서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그러나 젊은 세대는 늘 기성세대를 거역하고 반역한다. 4.19의 중학생을 비롯한 청년들이 그랬고, 1960년대 이후 유신과 5공 때의 대학생들이 그랬고, 전태일을 비롯한 숱한 노동자들이 그랬다.

민주화 운동에 뛰어든 젊은이들은 친일파 자식들처럼 나 혼자만 출세해서 잘 사는 삶을 거부한 진정한 의미의 공동체주의자들이었다. 그들은 늘 내 삶을 이웃의 삶과 함께 공유하고자 한, 공유와 연대의 협동주의자들이었다.

늦었지만 이런 공동체주의자들이 다시 모였다. 2019년 어느날 (사)6월항쟁계승사업회에 익명의 기부자가 이름을 밝히지 않는 것을 전제로 1억 원을 보내왔다. 해마다 1억 원을 보낼 터이니 유신과 5공 군사독재 시절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돌아가신 분 들의 유자녀들을 위해 써달라는 당부와 함께였다. 까마득히 잊고 있던 민주화 운동의 동지애, 우애와 환대의 공동체의식이 다시 소생하는 계기였다. 자본이 세상을 바꾸는 현실에서 자본이 아닌 '기적의 기부금' 1억 원이 세상을 바꿀 수도 있음을 다시금 일깨우는 순간이었다.

모든 시작은 기적이다. 3.15부정선거에 항의해서 대구에서 시작한 중학생들의 시위는 학생 운동과 사회 운동의 기적같은 부활이었다. 전태일의 기적으로부터 한국 노동 운동은 비로소 빨갱이 굴레를 벗을 수 있었다.

이웃의 아픔을 경청하는 것, 이것이 민주주의 운동의 시작이다

이웃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는 행동의 출발은 다른 무엇에 앞서 이웃의 아픔을 우선 경청하는 것이다. 민주화 운동 유자녀에게 기부금을 낸 행위는 아픔에 고개를 돌려 그 아픔을 듣고 함께 하겠다는 연대와 공생의 의지였다.

1억 원의 기부금으로 그냥 단순히 어려움을 겪고 있는 민주화 운동 유자녀나 병마에 시달리고 있는 민주화 운동 피해자에게 생활비를 지원하는 데서 끝났다면 이 일은 아마도 그렇고 그런 수많은 장학사업이나 자선사업과 하나도 다를 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기부금을 종자돈으로 '희망나누기 사업'이라는 기금으로 만드는 순간, 이것은 공동체 운동으로의 전환이었다. 그리고 사실 가장 강력한 사회안전망은 국가가 아니라 풀뿌리 국민들이 스스로 복원한 공동체에 있다. 독립 운동처럼 민주화 운동을 했다고 3대가 어렵게 살게 하면 안된다는 아주 작은 소망과 발원이야말로 무한경쟁과 각자도생의 골방에서 뛰쳐나오는 공생의 공동체 운동 첫걸음이다.

평범한 수많은 사람들이 이 기금에 동참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아주 작은 밑바닥에서부터 사람들을 다시 연대하게 만드는 것, 사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민주주의 운동이다.

"한 가지 명백하게 밝혀두고 싶은 게 있습니다. 여러분이 어렵기 때문에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중략) 분명히 먼저 가신 동지들, 아픈 동지들. 그리고 그 가족들 모두가 당연히 지원받아야 한다는 점입니다."('민주화 운동, 그 기억과 두 번째 희망나누기' 기금 전달식 11월 21일 연성만 운영위원장 인사말)

소액이라도 기금에 보태는 사람들, 나는 괜찮다 지낼만하다며 지원대상으로 추천받았음에도 극구 사양하는 사람들, 이것이야말로 민주화 운동 본류의 계승이자 확산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민주화 운동의 본류, 희망나누기 사업

19세기 말 서구의 사상과 정치경제문화를 수입하면서 독재정, 왕정, 입헌군주정, 귀족정, 대의정 등등 수많은 정치체제 가운데 하나인 민주정을 이데올로기로까지 격상해서 민주주의라고 번역한 곳은 전세계에서 한중일 등 동아시아 뿐이다. 그만큼 왕정에 대한 배격과 국민이 주체가 되는 세상에 대한 열망이 강렬했기 때문이었다.

민주주의는 말 그대로 국민이 주권자로서 통치자이자 피통치자라는 이중 정체성을 가지고 국가와 사회를 운영하는 정치 제도다. 정치의 주체가 소수 엘리트가 아니라 국민 전체이며, 국가의 주요 결정을 국민이 발의하고 국민이 투표를 통해 결정하는 국민발의와 국민투표가 핵심이다. 사실 지금 한국의 대의정과 선거는 정확히 말하면 민주주의가 아니다.

오늘날 세습 불평등은 갈수록 더 확대되고 기후위기는 이미 임계점을 지나 세상의 종말을 예고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한국뿐 아니라 전세계 국민국가의 대의정치는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이미 상실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때문에 수백만의 전세계 청소년들이 학교에서 뛰쳐나와 금요등교 거부시위를 벌이고 있다. 영국 등 '멸종반란' 단체 회원들은 도로를 막고 지하철을 멈춰 세우고 자연사박물관의 공룡 화석 밑에 드러누워 비폭력 평화 시위를 벌이다 기꺼이 연행된다. 스페인의 포데모스(우리는 할 수 있다)를 비롯한 유럽의 직접 민주주의 정치도 점차 확대되고 있다.

이같은 청소년과 시민들의 직접행동과 정치의 밑바탕에는 수많은 풀뿌리 공동체 운동이 있다. 미국의 샌더스 현상 아래에는 이같은 기후위기 직접행동에서부터 풀뿌리 공동체 운동, 협동조합 운동, 에너지전환 운동, 유기농 직거래 운동, 원주민 운동 등등이 확고부동하게 튼튼한 주춧돌로 자리잡고 있다.

6.25동란 이후 4.19혁명, 5.18광주민중항쟁, 6.10항쟁, 2016/2017 촛불시위 등 한국의 민주주의 운동은 주권자가 정치의 주체로서 주권을 끊임없이 확대해 온 역사였다. 이같은 주권의 확대는 이웃의 고통을 스스로 함께 나누는 주권자들의 풀뿌리 연대연합에서부터 출발한다. 불평등과 기후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은 보수 진보의 권력투쟁을 통해 찾아지는 게 아니다. 좌우 엘리트의 지배에서 주권자 국민 주체로 상하를 뒤집는 체제 전환은 밑바닥 풀뿌리 공동체의 복원에서부터 시작된다.

기적의 1억 원을 씨앗으로 국민과 함께 하는 '희망나누기' 사업이야말로 민주화 운동의 본류다. 민주화 운동의 본류는 결코 민주화 운동 출신 엘리트 정치인들에게 있는 게 아니다. 지난 11월 21일 희망나누기 기금 전달식이 수운회관에서 있었다. 작년에 이어 두 번째다. 내년에도 이 사업은 계속된다. 민주주의 운동은 늘 이렇게 소생하고 지속된다.

▲민주화운동, 그 기억과 희망나누기 기금 전달식 ⓒ민주화, 그 기억과 희망나누기 운영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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