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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농업은 '청년 전태일들'의 구명보트"

[전태일 50년, 혁명인가 전환인가?] ② 청년이 일어서지 않으면 한반도는 끔찍한 아사자의 땅으로 변한다

전태일 50주기를 맞아 1983년 돌베개출판사 편집장으로, <어느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 전태일 평전>을 처음 출판했고, 전태일기념사업회 부설 구로노동상담소 간사, 전태일노동자료연구실 대표로도 일을 했던 박승옥 햇빛학교 이사장의 기고 글을 세 차례에 나누어 싣는다.

그는 지금은 박제된 기념이 아니라 고뇌하고 또 고뇌하다 직접 행동에 나섰던 1970년 당시의 전태일처럼 기후위기 시대 청년 민주주의 혁명과 전환의 직접 행동이 필요한 때라고 역설하고 있다.

'지구가 아프다'는 식의 '지구의인화'는 기후 문제 해결의 본질을 희석시킨다

"지구가 아프다. 지구가 죽어가고 있다. 기후위기는 지구의 위기…"

기후위기와 관련해서 우리 주위에서 흔히 듣는 말이다.

우리는 이제 이런 표현 자체를 가능한 쓰지 말아야 한다. 그 뜻과 의도를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지구를 사람과 동일시하는 이런 의인화 방식 표현은 기후위기를 일으킨 원인을 애매하게 희석시켜 버리고 78억 인류 전체가 문제라는 식의 결론으로 나아가 기후위기 범죄자들에게 지구라는 공간 전체로 숨을 곳을 제공해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는 사이 지금 이 순간에도 시꺼먼 이산화탄소 배출은 마구마구 청소년들의 미래를 목 조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론의 여지 없이 기후위기를 일으킨 범죄자는 근대 국민국가와 기업이다. 끝없는 경제성장과 개발 지상주의의 산업화 체제 그 자체다.

우리나라의 경우만 하더라도 이산화탄소 배출의 80%를 한전의 발전자회사들인 공기업과 포스코 등 민간 기업들이 차지하고 있다.

지구는 아프지도 않고 죽어가고 있지도 않다. 지구라는 행성과 그 안의 기후는 수십억 년을 그래온 것처럼 변화무쌍하게 늘 변하고, 그리고 앞으로 수십억 년 뒤 해가 적색거성으로 팽창해 지구를 삼킬지도 모르는 그 날까지 끊임없이 변할 것이다.

우리는 그런 까마득한 억겁의 미래는 상상할 수도 없고 관심도 별로 없다. 인류가 진화를 거듭해 광합성의 식물과 동물이 혼합된 새로운 생명체로 지구를 떠나 광활한 우주 어딘가의 행성으로 이주할지 알 수조차 없다.

다만 우리는 지금 여기 이 순간 우리의 기적 같은 삶이 끝장나고 있다는 강한 종말의 위기감에 휩싸여 있을 따름이다.

나와 내 자식뿐만 아니라 내 이웃, 나아가 지구 생명체 전체가 급격히 여섯 번째 멸종으로 치닫고 있다는 사실만을 뼈저리게 매일매일 확인하고 있을 따름이다. 우리의 공동의 집이 무너지고 있다는 현실에 직면해 있을 뿐이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기후위기는 명백히 지구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문제다. 인류의 생존 문제다. 최후의 생존자 한 사람이 죽음을 맞이함으로써 인류라는 종이 멸종된다 할 지라도 지구는 멀쩡하게 태양 주위를 돌 것이고, 다음날 아침 해는 동쪽에서 또다시 떠오를 것이다.

박정희와 김일성: 전태일도 한반도 기후도 살해한 범죄자들

한국의 관행농 농업과 농민은 온실가스 배출이라는 측면에서만 보면 기후위기를 조장하고 촉진하는 범죄자다. 불편한 지적이지만 이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특히 축산농가는 더하다.

논밭에 뿌려지는 농약과 비료는 화석연료로 만든 온실가스 배출원 그 자체이다. 논밭을 갈고 씨앗을 뿌리고 농약과 비료를 주고 수확하고 보관하고 운반하는 데 모두 화석연료가 투입되고 이산화탄소가 배출된다. 곡물을 담는 포대도 볏짚으로 만든 가마니가 아니라 화석연료로 만든 플라스틱 제품이다. 당연히 이산화탄소가 배출된다.

우리가 먹는 한 끼 식사의 90%가 사실은 석유고, 우리는 석유를 먹고 살이 찌는 석유 인간이다.

그러나 이런 '석유농업'은 국가가 농민에게 강요한 것이었다.

필리핀에 있는 국제쌀연구소(IRRI)는 석유메이저의 자금 지원으로 농약과 비료가 반드시 필요한 쌀 품종을 개발하는 곳이었다. 국제쌀연구소에서 개발한 품종이 바로 1970년대 '유신 통일벼'였다.

박정희는 '녹색혁명'을 부르짖으며 농민에게 강제로 유신 통일벼 재배를 강요했다.

박정희와 농식품부 관료들은 이 같은 석유농업의 도입을 통해 오늘날 한국 농업을 온실가스 배출의 주요 거점 가운데 하나로 만든 주범들이다.

한국 농업과 농민은 이들에 의한 석유 중독의 경로 의존성으로 결국 석유 관행농을 고착화하고 내면화할 수밖에 없었다.

북한의 김일성 또한 박정희보다 훨씬 앞서서 북한을 온실가스 배출의 석유농업 천지로 만들었다. 1950년대 북한에는 남한에 1대도 없던 뜨락또르(구소련이 원조한 트랙터)가 2000대나 있었다.

온실가스 배출 가해자는 78억 인민들이 아니라 국가와 기업이고 성장과 개발 체제 그 자체인 것이다.

1962년 1월 13일 박정희는 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을 선포했다. 이어 2월 3일에는 울산공업센터 기공식이 열렸다.

박정희는 여기서 "우렁찬 건설의 수레 소리가 동해를 진동하고, 공업생산의 검은 연기가 대기 속에 뻗어나가는 그 날에는 국가 민족의 희망과 발전이 눈앞에 도래하였음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라고 했다.

전태일 50년, 박정희와 김일성은 매일매일 한반도 기후와 김용균을 살해하는 범죄 체제의 원흉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1950년대와 60년대 북한은 아시아에서 손꼽히는 사회주의 모범국가로서 인민이 잘사는 나라였다. 김일성은 지금까지도 북한 인민들에게는 위대한 지도자로 추앙받고 있다.

박정희는 경부고속도로를 만들고 경제개발계획을 성공시켜 한국을 부국강병의 나라로 만든 산업화의 아버지로 남한의 일부 인민들로부터 구국의 영웅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그러나 인간의 세상 자체가 사라지기 일보 직전의 기후위기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의 입장에서 이들은 시꺼먼 이산화탄소 대기를 만든 범죄집단의 수괴와 다를 바 없다.

문재인 정부가 끊임없이 경제성장을 역설하면서 그린벨트에 아파트를 짓자고 주창하고 평양을 갈 때 삼성 이재용을 데리고 가는 순간, 문재인 정부도 구태의연한 구체제의 범죄 행위자 명단에 이름을 올린 것이나 마찬가지다.

아직 임기가 1년 반 남았지만, 문재인 정부의 성장과 개발 기조가 바뀔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처럼 보인다.

성장과 개발의 산업화 체제는 언제 무너질 수 있을까

사회와 국가는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는다. 성장과 개발 체제의 전환과 혁명 또한 결코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사람들의 생각도 쉽게 바뀌지 않으며, 습관이 무서운 것처럼 체제의 경로의존성 또한 무섭도록 강고하다. 기득권자들은 결코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러나 자본주의건 사회주의건 지금의 산업화 체제가 흔들리고 무너질 수 있는 시기는 식량위기와 식량전쟁의 시기가 들이닥쳤을 때이다.

구소련 해체의 핵심 요인도 식량위기였다.

캐나다와 미국의 농지를 합한 것보다 더 넓은 경작지를 기반으로 식량 수출국이었던 구소련은 생산수단의 사회화를 국유화로 착각했고, 농민을 집단농장에 가둬 임금을 받는 노예의 농업노동자로 만들어 버렸다. 이런 정책은 관료주의와 결합해 구소련을 식량 수입국으로 전락시켜 버리고 말았다.

고르바초프가 서기장이 되던 1983년 당시 집단농장에 출근하지 않는 농업노동자는 부지기수였다. 그나마 생산된 농산물의 3분의 1은 열악한 유통망 때문에 중간에 버려지고 있었다. 당시 구소련은 수십 년 동안 해마다 수천만 톤이나 되는 엄청난 양의 식량을 수입해야만 했다.

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은 1960년대 말 개발된 시베리아의 거대 유전에 의존해 연명하고 있었다. 1970년대 오일쇼크 이후 고유가는 구소련에 식량 수입을 할 수 있는 달러를 제공해 주었다.

그런데 1980년대 내내 저유가가 지속되었고 설상가상으로 구소련의 석유 생산량은 생산체제 자체의 문제로 급감하고 있었다.

식량 수입을 할 수 있는 재원이 줄어들자마자 곧바로 구소련은 심각한 식량난에 빠지게 되고 말았다. 그리고 이윽고 식량 배급제도가 붕괴되자마자 구소련은 해체될 수밖에 없었다.

한마디로 식량위기가 닥쳤을 때 비로소 사람들은 굶어 죽지 않기 위해 생존가능한 변화를 모색하고 선택한다.

4세기 초반 중앙아시아 초원의 가뭄과 냉해로 식량위기가 닥치자 훈족은 살길을 찾아 서유럽을 침략했고 서유럽의 게르만족 또한 연쇄반응으로 대이동 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로마는 게르만족의 침략으로 몰락하고 만다. 훈족이 세운 국가가 다름 아닌 지금의 헝가리다.

지금 쓰나미처럼 몰려오고 있는 기후위기와 식량위기를 예견한다면 우리는 생존을 위해서라도 체제 전환을 준비하지 않을 수 없다. 국가와 기업의 개발과 성장 경제에서 지역공동체의 자연순환과 공유경제로의 전환은 그러므로 인류 역사라는 오래된 미래에서 찾아내고 배울 수 있는 가장 유력한 대안이라고 할 수 있다.

기후위기-식량위기 시대의 탈출구, 청년 농민

구소련이 해체되었을 때 러시아 인민이 굶어 죽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다차(Дача)'의 존재였다. 러시아 인민들은 소규모 도시 야외 텃밭인 다차에서 스스로 식량을 조달할 수 있었다.

1992년 구소련의 석유 공급이 북한처럼 하루아침에 끊기고 최악의 경제위기라는 특별한 시기를 맞아 쿠바 인민들이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던 것 또한 그 유명한 도시텃밭 덕분이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대규모 공습으로 영국의 곡물 유통체제가 마비된 상황에서 런던의 시민들이 생존할 수 있었던 비결도 도시텃밭으로 변한 도시정원(gardening) 덕분이었다.

식량위기에 가장 취약한 한국의 거의 유일한 대비책은 기후농업이다. 굶어 죽지 않으려면 지금부터라도 탈화석연료의 기후농업과 도시텃밭운동을 과감하게 준비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기후위기와 동시에 일자리 파괴의 냉혹한 4차 산업혁명 앞에 마주 선 수많은 '청년 전태일들'에게 새롭고 신선한 '모범업체' 일자리의 저수지이자 생존의 구명보트인 기후농업은 새로운 세상으로의 생태적 전환 초대장이나 다름 없다.

2008년 국제 금융위기 이후 그리스 경제는 급전직하로 추락하기 시작했고 그리스는 어쩔 수 없이 2011년과 2011년 두 차례의 IMF 구제금융을 받았다. 일자리는 없고 도시에 사는 대부분의 그리스 청년들에게 미래는 암담하기 짝이 없었다.

이때 청년들이 선택한 것은 농업이었다. 그리스 청년들은 올리브 농장과 포도 농장 등으로 귀농하기 시작했고, 전 세계에서 청년 귀농이 가장 급증하는 국가가 되었다.

이들은 유기농으로 농사 체제를 바꾸면서 동시에 다양한 협동조합을 만들었다. 이들은 해체되고 노후된 지역공동체를 재생하기 시작했고, 오늘날 그리스 농업농촌은 가장 생동하는 농촌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기후위기와 청년 일자리에 대한 제대로 된 준비를 하고자 한다면, 무엇보다도 농민 기본수당부터 즉각 실행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이유다.

농민 기본수당이야말로 수많은 도시 청년을 귀농귀촌의 희망버스로 갈아탈 수 있게 만드는 가장 강력한 구인 광고라고 할 수 있다.

청년 농민은 기후체제 전환의 촉진자다

기후농업으로의 정의로운 전환은 이렇듯 기후체제의 생태적 전환과 기후민주주의 정치혁명을 선도하는 주체로서 농민을 새롭게 정립시킬 수 있다.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기후농업의 농민-소비자 연대야말로 기후체제 전환과 혁명의 가장 유력한 근거지라고 할 수 있다.

마르크스를 비롯한 사회주의 혁명 이론가들은 자본주의에서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노동자계급을 혁명의 주력군으로 상정했다.

그러나 실제 현실에서 레닌이 주도한 러시아 혁명은 노동자와 농민, 병사가 연대한 소비에트 공동체가 혁명을 성공시켰다. 마오쩌둥의 중국 혁명 주력은 농민이었다. 베트남과 쿠바, 북한 등의 이른바 제3세계 사회주의 혁명의 주력 또한 농민이었다.

혁명 당시 이들 국가들은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제1의 우클라드(uklad)로서 성장하지 못한 농업 국가였다.

서구 자본주의 국가들은 식민지 착취를 통해 벌어들인 돈으로 혁명의 주력군인 노동자 계급을 매수해서 사회주의 혁명 자체를 무력화시켜 버렸다.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로 확실히 이행한 한국의 노동자 계급 또한 혁명의 주력군은커녕 자본주의 경제성장과 개발의 가장 강력한 수비대이자 자본주의 체제 유지의 근거지다.

그러나 기후위기는 성장과 개발의 군사작전식 폭력과 무장투쟁 전략과는 전혀 다른 비폭력 평화의 새로운 체제 전환 패러다임을 요구한다. 그야말로 벼락보다도 더 센 충격과 발상의 전환을 강요한다.

기후체제 전환은 인민을 주체로 세우는 촉진의 과정일 때 비로소 힘을 가질 수 있다는 말이다. 농민과 도시 소비자, 노동자의 연대연합을 통한 기후위기 극복의 동반자, 협력자로 세우는 과정, 그것이 기후체제 전환의 전략일 수 있는 것이다.

기후정치 체제 전환의 중심에 자연순환 농업의 가족농 소농이 있다.

기후위기는 청장년 귀농귀촌의 새로운 시대 흐름과 함께 전 국민의 5%도 안 되는 농민들은 다가오는 식량전쟁-식량위기의 해결자이자 주체로서 다시금 당당한 천하지대본(天下之大本)으로 우뚝 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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