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최근 언행이 매우 유감스럽고 우려스럽다. "대남 사업"을 "대적 사업"으로 바꿔 부르고, "갈 때까지 가보겠다"며 위협적인 언사를 늘어놓고, "협박용" 말이 아니라 "연속적인 행동으로 보복해야 한다"는 담화 속에서 북한이 품은 독기를 느낄 수 있다.
도대체 북한이 왜 이럴까? 이 질문에 대한 우리 사회의 지배적인 담론을 접하면 한숨을 쉬게 된다. '하노이 노딜'의 분풀이를 미국한테는 못하니 만만한 남한한테하는 것이라는 주장이, 경제제재에 이어 코로나19 사태로 심각해진 경제난으로 인한 북한 주민의 민심 이반을 '외부의 적'을 호출해 무마하면서 체제 결속을 다지려는 것이라는 주장이 진실에 가깝다면?
이게 사실이라면 북한식 표현으로 김정은 정권은 "상종할 가치가 없는 집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적반하장식의 태도를 일삼고 있는 정권을 상대로는 대북 억제 태세를 갖추면서 무시하는 게 나을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북한이 화풀이해야 할 상대는 미국인데 이게 부담스러우니 남한을 괴롭히려 한다는 주장 자체가 어색하다. 이런 북한이었다면 "코피 작전"이나 "화염과 분노"니 "북한 완전 파괴"니 하는 트럼프 행정부를 상대로 수소탄을 시험하고 대륙간 탄도 미사일(ICBM)을 연이어 발사하고 "괌 포위 사격"이니 "노망난 늙다리"니 하는 막말을 쏟아낼 수 있었을까? 북한이 "국가 핵무력" 완성을 선언하기 '전'에는 만만했던 봤던 미국이, 북한이 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후'에는 두려워졌다는 것인가?
북한의 최근 언행을 북한의 경제난과 연계시켜 분석하는 것도 어색하긴 마찬가지이다. 우선 우리는 북한의 정확한 경제적 실상을 모른다. 제재에 코로나 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까지 겹치면서 '매우 어려울 것'이라는 막연한 추측만 존재할 뿐이다. 그런데 다른 해석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우선 북한 전체 경제에서 무역이 차지하는 비중이 20% 안팎에 불과해 북중 교역이 크게 위축되어도 경제에 미칠 영향이 그리 크지 않을 수 있다. 또한 북한은 제재에 맞서 국산화의 비중을 비약적으로 높여왔다. 주요 수출품이었다가 제재로 수출길이 막힌 석탄을 내수용으로 전환한 것이 대표적이다. 아울러 강요된 '폐쇄 경제'가 코로나 19의 영향을 최소화하고 있다는 역설적인 진단도 가능하다.
물론 북한이 이렇게 나오는 정확한 이유를 파악하긴 어렵다. 하지만 미국 탓, 북한 경제 탓하는 것은 문제의 본질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합리적인 대처마저도 어렵게 한다.
아마도 북한의 최근 언행은 세 가지 이유가 중첩된 결과로 보인다. 첫째는 '하노이 노딜'에서 확인된 문재인 정부의 중재력의 한계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하노이 회담에서 내민 영변 핵시설 완전 폐기와 대북 제재 완화의 교환은 2018년 9월 평양 남북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문재인 정부의 중재안의 성격이 짙었다. 그러나 이 제안은 트럼프 대통령에 의해 거절당했고 낙담한 김정은은 문재인 정부를 향해 "남측은 오지랖 넓은 '중재자', '촉진자' 행세를 할 것이 아니라 민족의 일원으로서 제정신을 가지고 제가 할 소리는 당당히 하면서 민족의 이익을 옹호하는 당사자가 되어야 한다"라고 말한 바 있다.
둘째는 실망감이 배신감으로 악화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지난해 7월 말 김정은의 '권언'과 관계된 것이다. 김정은은 "최신형 공격무기 도입" 및 한미연합군사훈련 중단을 거듭 촉구했지만, 그 이후 상황 전개는 이 '권언'이 철저하게 무시당하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설상가상으로 최근 한미 양국은 연합 공중 훈련과 미사일 방어 체제 통합 훈련도 실시했고, 코로나 19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정부는 하반기 연합훈련을 실시할 예정이라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셋째는 북한이 최근 집중적으로 문제삼고 있는 대북 전단 살포다. 이는 근인(近因)이자 표면적 이유에 해당된다. 북한은 "그러지 않아도 계산할 것이 많은 남조선 당국의 이러한(대북 전단 살포 방치) 배신적이고 교활한 처사"라고 표현해 이러한 속내를 감추지 않았다. 이에 따라 정부가 신속하게 전단 살포를 제지하겠다고 밝혀도 역부족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북한이 문재인 정부를 향해 품어온 실망감과 배신감이 '근친 증오' 수준으로 악화되었기 때문이다.
현재로서는 뾰족한 수가 보이질 않는다. 북한이 마땅히 자제해야겠지만, '우리가 원하는 북한'과 '있는 그대로의 북한' 사이의 간극은 더욱 벌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정부는 슬기롭게 냉각기를 거쳐 반전을 도모해야 한다. 이미 밝힌 것처럼 대북 전단 살포에 대해 실효적인 규제 조치를 마련하고 하반기 실시를 예고한 한미 연합 군사 훈련도 중단하겠다고 발표해야 한다.
연합훈련 중단에 대해서는 트럼프도 마다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본인 스스로 약속한 바인데다가 코로나 19 및 미국 대선을 앞두고 '북한 변수'를 관리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남북 정상회담의 합의 사항인 "단계적 군축"에 첫발을 내딛는 의미에서 남은 임기동안 국방비를 매년 40~45조 원 정도로 동결하겠다고 발표해야 한다. 폭등하는 민생 수요는 이를 위한 전화위복의 기회이기도 하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