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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묻는다 "북한이 요즘 왜 이럴까?"

[정욱식 칼럼] "사실상의 종전선언" VS "있으나 마나 한"

남한을 향해 북한이 막말과 비아냥거림을 쏟아내고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묻는다. "북한이 요즘 왜 이럴까?"

혹자는 북한이 2019년 2월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의 '하노이 노딜'에 대한 분풀이를 또다시 쏟아내는 것이라고 한다. 강력한 대북 제재에 이어 설상가상으로 코로나19 사태까지 겹치면서 경제난이 심해지자 주민들의 불만을 외부로 돌리고 체제 결속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의 범위'에 갇혀 옴짝달싹 못 해온 문재인 정부에 대한 실망감의 표현이라는 얘기도 있다.

이러한 분석이 현실과 얼마나 맞닿아 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2018년에 문재인 정부에게 '역대급 환대'를 했던 북한이 2019년 하반기부터 왜 '역대급 냉대'를 하고 있는지에 대한 분석치고는 허전하다는 느낌 역시 지울 수 없다. 특히 북한의 대남 비난의 주된 요인을 북미관계나 북한 내부 탓으로 돌리게 되면 정작 우리가 할 수 있는 바가 별로 없어지게 된다.

일각에서는 북한이 최근 집중적으로 문제 삼고 있는 대북 전단 살포에 대해 남한이 실효적인 규제책을 내놓는다면 남북관계 복원의 계기가 될 수 있다고도 한다. 대북 전단 살포 규제가 시급한 과제인 것만은 맞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북한의 누적된 대남 불신과 증오를 풀기에는 한계가 있을 뿐만 아니라 향후 다른 악재를 예방하는 데에도 소홀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남북관계의 엇박자는 9.19 군사 분야 합의로도 불리는 '역사적인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서'에 대한 양극화된 인식 차이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최근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은 이 합의를 가리켜 "있으나 마나 한"이라고 표현하면서 파기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에 반해 문재인 정부는 이 합의를 가리켜 "사실상의 종전선언"이라는 의미를 부여해왔다. 그런데 정부는 9.19 군사 합의에 대해 이렇게 역사적인 의미를 부여해놓고 사상 최대 규모의 군비증강에 나서왔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약속했던 한미연합훈련도 계속해왔다.

누누이 강조하지만 북한의 대남 불신과 증오의 결정타는 바로 이 지점에 있었다. 북한군 수뇌부는 판문점 및 평양 남북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거수경례를 했었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문 대통령에게 능라도 경기장 연설 자리도 마련해주었다. 군사 합의 역행 조짐이 확연해지자, 김정은은 작년 7월에 남한을 향해 최신형 무기 도입과 한미연합훈련 자제를 촉구하는 "권언"까지 내놓았다.

그러나 그 이후 정세는 이러한 권언이 철저하게 무시당하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9.19 군사 합의에 대해 "있으나마나 한"이라고 평가한 것은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통일전선부가 "적은 역시 적"이라며 "갈 데까지 가 보자"는 증오어린 막말을 내놓은 것도 이와 연장선상에 있다. 이에 따라 북한은 대북 전단 살포를 구실로 삼아 남북연락사무소 폐쇄에 이어 군사 분야 합의 파기 수순을 밟아나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아마도 향후 남북관계의 중대 변수는 대북 전단 살포 규제 여부와 더불어 8월에 예정된 한미 연합 군사 훈련 실시 여부가 될 것이다. 그리고 문재인 정부가 전단 살포는 규제하면서도 연합훈련 실시는 강행한다면 남북관계 악화를 막기에는 역부족이 될 것이다.

대북 전단 살포 규제는 문재인 정부가 북한과 합의한 바이다. 연합훈련 중단은 트럼프가 김정은에게 약속한 바이다. 그래서 약속을 지키는 것은 결코 '북한 눈치 보기'가 아니다. 북한의 막말이 분명 유감스러운 것이지만, 한미 양국이 북한과의 약속을 얼마나 성실히 지키려고 했는지 자문도 해봐야 하는 것이다.

어차피 8월 한미연합훈련 실시 여부는 코로나19 사태로 불분명한 상황이다. 사정이 이렇다면 코로나19에 떠밀려서 '못하는 것'이 아니라 한반도 위기관리 차원에서 선제적으로 '안 하겠다'고 발표하는 것이 여러모로 이롭다. 또한 문 대통령 스스로 '전시 경제'를 표방한 만큼, 국방비를 대폭 감축해 민생에 투입하겠다는 의사를 보다 분명히 밝힐 필요가 있다. 코로나19가 전화위복이 되려면 이 정도는 해야 하지 않겠는가?

남북관계는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다. 하지만 2019년 하반기 이후 남북관계는 질적으로 매우 나빠지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는 분명 문재인 정부의 책임도 있다. 불편하더라도 이러한 현실을 직시해야만 올해 하반기나 내년에 새로운 시작을 도모할 수 있다. 북한의 자제와 더불어 문재인 정부의 각성을 촉구하는 까닭이다.

* 필자 신간 <한반도의 길, 왜 비핵지대인가?> 보러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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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북한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99년 대학 졸업과 함께 '평화군축을 통해 한반도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평화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통일·외교·안보 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말과 칼>, <MD본색>, <핵의 세계사> 등이 있습니다. 2021년 현재 한겨레 평화연구소 소장을 겸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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