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은 22일 오후(현지 시각)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푸틴 대통령과 소규모·확대 정상회담을 가졌다. 소규모 회담에는 양측 외교장관과 대통령 직속 외교안보 참모 등 소수만이 배석했고, 확대회담에는 김동연 경제부총리와 과기부·문화부 장관 등 장·차관급 10여 명이 참석했다.
푸틴 대통령은 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중요하고 민감한 문제를 논의했다"며 "북한 핵과 국제 문제에 대한 우리의 접근이 많이 가까워질 수 있지 않았나 (한다)"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는 항상 한반도 정상(간 대화를) 지지해 왔다"고도 했다.
문 대통령은 "양국은 상호 보완적·호혜적 경제협력 구조를 하고 있고, 신(新)동방정책과 신북방정책이라는 완성된 발전 전략을 수행하고 있어서 서로에게 최적의 실질 협력 파트너"라며 외교안보전략 측면보다는 경제협력 측면을 좀더 강조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문 대통령은 "(우리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 구축이라는 목표를 공유하며 긴밀히 협력해 왔다"며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의 성공적 개최 등 한반도 정세의 진전 과정을 적극 지지해 주신 데 대해 깊은 사의를 표한다"고 말하고 "남북·북미 정상회담 합의가 완전하고 신속하게 실천될 수 있게 러시아 정부와 계속 긴밀히 협의하고 공조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두 정상은 정상회담 후 양국 정부 장관이 서명하는 12건의 양해각서(MOU) 체결식을 갖고, 질의응답 없는 짧은 기자회견을 가졌다. 문 대통령은 기자회견 모두발언을 통해 △미래 성장동력 등 신산업 분야에서의 협력 강화 △평화와 공동 번영 비전 △보건의료 협력 확대 등 3가지를 강조했다. 북한 비핵화 전망과 관련해 한국뿐 아니라 세계의 관심이 집중됐지만, 이와 관련한 구체적 언급은 없었다.
푸틴 대통령은 한반도 정세를 조금 언급했다. 그는 "(우리는) 국제 문제를 논의하면서 한반도를 둘러싼 문제도 논의했다"며 "한반도의 정세가 많이 나아졌다. 남북관계가 개선되고 소통도 재개됐다"고 평가했다. 그는 또 "두 차례의 남북정상회담 결과 매우 기대되는 합의가 이뤄졌다"면서 "북미정상회담에서도 미국과 북한이 대화와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는데 대해 환영한다. 이를 통해 한반도를 둘러싼 긴장이 완화되고 앞으로 이 지역에서 튼튼한 안전체계가 구축되기 바란다"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은 석유, LNG 등 에너지 분야에서 양국 간 협력 사례를 언급하면서 "이 모든 사업은 동방경제포럼에서 논의될 것이다. 문 대통령이 포럼에 주빈으로 참석하시기 바란다"고 문 대통령을 오는 9월 블라디보스톡에서 열리는 동방경제포럼에 공식 초청했고, 문 대통령은 이에 대해 "한국에 돌아가 하반기 전체 외교일정을 살펴본 뒤 빠른 시간 내에 답을 주겠다"고 답했다.
한러 정상 공동선언, 무려 31개항…내용은?
이날 양국 정상은 정상회담 후 발표한 무려 31개항의 이례적 공동성명을 통해 안보·경제·문화 등 다방면에서 폭넓은 협력을 다짐했다. 한반도 정세와 관련해 양국 정상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 간의 싱가포르 회담에서 긍정적 결과가 도출된 것을 환영하고, 동 회담 합의사항들이 한반도에서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정착에 기여할 것이라는 기대를 표명"한다는 내용을 공동선언문에 명기했다.
양국은 이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달성과 한반도 및 동북아의 항구적 평화 및 안정을 확보하기 위한 공동 노력을 계속해 나가기로" 다짐했다. 이와 관련해 푸틴 대통령은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와 번영을 위한 한국의 중요한 역할을 높이 평가하고,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 채택을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으며, 문재인 대통령은 "한반도 문제 해결에 있어서 러시아의 건설적 역할을 높이 평가"했다.
양국은 또 △동아시아정상회의(EAS) 등 다자간 대화 채널을 통해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제고하기로 다짐하면서, 특히 △"핵확산금지조약(NPT), 화학무기금지협약(CWC), 생물무기금지협약(BWC)과 같은 다자 조약들을 지속 강화해 나가겠다는 약속을 확인"했다. 양국은 "비확산 체제를 더욱 강화하기 위해 국제사회가 통합된 노력을 기울어야 할 필요성을 재확인"하고 "모든 국가들이 동 조약(들)을 준수하는 가운데 핵 안보 및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안전조치 체제를 강화하고 수출통제의 효율성을 제고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는 북한의 핵·생화학무기를 겨냥한 내용으로 풀이된다.
안보-경제 양 측면에 걸친 이슈로는 △"남북러 3각 협력사업 진전을 위한 공동 연구의 필요성을 인식하면서 전력·가스·철도 분야의 공동연구를 위해 유관당국 및 기관을 통해 협력해 나가기로 했다"는 내용과 △ "원자력(핵에너지)의 평화적 이용 분야에서 협력이 성공적으로 이뤄지고 있음을 언급하고 한국 원자력(핵)발전소용 핵연료주기 관련 제품 및 서비스 공급 지속 등 향후 협력 발전에 대한 관심을 표명했다"는 내용 등이 있었다.
남북러 3각 경협에 대해서는 더 구체적으로 △"한반도 내 대규모 인프라 프로젝트 실현은 동북아 평화와 번영에 기여할 것이라는 공동의 이해에 입각해, 한국-러시아-유럽을 연결하는 철도망 구축에 대한 관심을 확인"하고 △"이와 관련해 '우호적 여건이 확보되는 대로' 나진-하산 철도 공동활용 사업을 포함해 다양한 철도 사업에서 협력"하기로 했다.
또 △"한국으로의 러시아산 천연가스 공급 확대를 촉진"하기로 했는데, 한러는 이와 관련해 "동북아 에너지 분야 상호 연계 강화의 중요성을 인식하면서, 러시아로부터 한국으로의 파이프라인 가스(PNG) 공급 관련 공동연구"를 해 나가기로 했다. 전력 분야에서도 △"한러를 포함한 동북아 국가 간 전력망 연계를 위한 정부 간 협력을 지속"하기로 했다. 철도, 전력, 에너지(가스) 분야에 대해 양국은 이번 정상회담 계기에 각각의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경제 분야에서는 △한러 FTA와 관련해 "서비스·투자 FTA 체결 협상을 최대한 조속한 개시하기 위해 노력하기로 했다"는 내용이 공동성명에 담겼고 이외에도 △혁신 플랫폼 구축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항공기·자동차·조선·우주 등 분야의 협력을 강화하며 △문 대통령이 작년 동방경제포럼 당시 주창한 일명 '9개의 다리(나인 브릿지)' 협력 분야별 투자 프로젝트 수립 등을 담은 행동계획(액션플랜)을 마련하기로 했다. 사회문화 분야 교류 관련 내용으로는 △오는 2020년을 한러 상호교류의 해로 선포하기로 하고 관련 MOU를 체결했다.
양국 정상이 기자회견과 공동성명 발표를 통해 밝힌 내용은 한러 정부 간 체결된 12건의 MOU 등을 통해 뒷받침됐다. 정부는 이번 국빈방문 계기에 러시아와 △한러 FTA 관련 공동선언문 △전력 분야 협력 정부 간 MOU △철도공사 간 협력 MOU △북극 LNG 협력 MOU △혁신 플랫폼 구축 MOU △ICT 협력 MOU △분당서울대병원 모스크바 국제의료특구사업 협력 MOU △세브란스병원 모스크바 건강검진센터 설립 협력 MOU △지방협력포럼 설립 MOU △체육교류협력 MOU △사회복지 협력 MOU △2020 한러 상호교류의 해 MOU 등을 체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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