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의 한 원로 정치인이 이런 얘기를 했었다. 그의 전망은 거의 정확하게 맞아떨어지고 있다. 10.26재보선 결과를 통해 내년 총선 결과를 예측한다면 한나라당은 48개 지역구 중 7개 지역에서만 승리할 수 있다. 물론 야권 단일후보와 1 대 1 구도 하에서다.
민심이 보여주고 있다. 여론조사 전문가 안부근 디오피니언 소장은 풍부한 경험과 데이터를 통해 40대 민심이 현 정권에서 완전히 돌아섰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특히 2012년 대선과 관련해 '비전'이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차기 대권 주자의 덕목으로 '비전'보다 '소통'과 '신뢰'를 더 중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내년에 있을 선거가 미래 지향적 투표가 아닌 회고적 투표, 즉 '심판론'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시사한다.
정치평론가인 고성국 정치학 박사는 이같은 민심과 관련해 여권이든 야권이든 뼈를 깎는 노력이 없으면 모두 실패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한나라당은 제 2의 창당 작업을 불사한다는 각오로 노력해야 겨우 만회할 수 있고, 야권은 리더십 부재를 타개하고 분열을 경계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파괴력을 인정받은 '안철수 변수'는 여전히 유효할 것으로 보인다. 그가 정치에 직접 나설지 여부는 아직 미지수지만, 그는 여전히 선거판을 흔들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반MB' 민심과 안철수 변수, 그리고 여당과 야권의 '정계 개편' 가능성이 버무려진 내년 선거 판도를 예측해봤다. 안 소장은 "총선에서 이기면 대선에서 이긴다"고 했다. 즉 이번 선거에서 보여줬듯 내년 총선은 '바람'에 의해 결판이 날 것으로 보인다. 누가 '바람'의 진원지가 될 수 있을까?
다음은 지난 28일 있었던 안 소장과 고 박사의 대담 전문
▲ 안부근 소장과 고성국 박사 ⓒ프레시안(최형락) |
낡은 것은 새로운 바람을 이길 수 없다
안부근 : 10.26재보선에 대한 평가를 해보자. 이번 결과를 보면, 박원순을 당선시켜야겠다는 열망보다 한나라당을 당선시키면 안된다는 열망이 더 작용한 것 같다. <YTN> 여론조사를 보면 경력, 정책 부분에서는 나경원이 더 (지지율이) 위다. 박원순이 제대로 못 보여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경원이 진 것은 '한나라당이라서 안 되겠다'는 점 때문인 것 같다.
고성국 : 결국 정권 심판론이 먹혔다고 봐야 하나?
안부근 : 그렇다. 심판론이 크다.
고성국 : 한나라당이 먼저 네거티브 공격을 치열하게 해서 심판론을 덮은 것처럼 보였는데, 안 그랬던 모양이다.
안부근 : 네거티브가 성공은 했다. 왜? 한나라당 표를 결집시켰으니까. 그런데 '반한나라당' 표에는 네거티브가 원래 안 먹힌다.
고성국 : 네거티브 캠페인을 하면 자기 표는 결집시키고 상대방을 주춤하게 만들 수는 있지만, 중도층을 끌어오는 데 한계가 있다. 이번에 나경원 후보가 얻은 46.2%를 보면, 두 달 전 (주민투표율인) 25.7% 중에서 보수층 표, 약 22%로 추정되는 표가 줄지도, 늘지도 않고 나온 것 같다.
안부근 : 수치 상으로는 그렇다고 볼 수 있다. 결국 심판론이었다. 요즘 FGI(Focus Group Interview, 표적집단면접)를 해보면, 차기 지도자, 차기 대통령의 덕목 중에 뭐가 제일 중요하냐고 물을 때 '비전', '희망' 이것은 아무도 안 꼽는다. 그것 참 이상하다. '소통', '신뢰' 두 개를 주로 꼽는다.
고성국 : 이명박 대통령이 그렇게 만든 것 같다.
▲ "지도자의 덕목으로 '비전', '희망' 이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왜 아무도 안 꼽느냐고 하니까, 너무나 간단하게 대답한다. '내일이면 바꿀 비전, 희망 듣기 싫다'는 것이다. 결국 이 대통령 탓 아니겠나." ⓒ프레시안(최형락) |
고성국 : 그러니까 (청와대와 당은) '선거 결과를 받아들이겠다. 젊은 층과 소통을 하는데 힘쓰겠다'고 하고 바로 (촛불 시위 당시 이른바 '명박 산성' 컨테이너 박스를 광화문에 만든) 어청수 전 경찰청장을 경호처장에 임명해 버리는 것이다. 그러면 젊은 사람들은 (이명박 대통령을) 믿을 수가 없는 것 아니겠나.
안부근 : 그래서 사람들이 대선에서 중요한 '비전'이나 '희망'을 사람들이 안 꼽는 것이다. 그들이 비전 대신 대신 꼽은 '신뢰' 그리고 '소통'이 뭔가. '우리 말 좀 들어 달라. 그리고 약속을 지켜달라'는 것 아닌가. 특이한 현상이다.
고성국 : 노무현 정부 말기에 조사를 하면 반 노무현 정서를 가진 사람들이 노무현과 유사한 정책이 아닌 쪽으로 답변을 한다. 그런데 그것을 '이념 스펙트럼'에 놓고 보면 보수화 된 것으로 나타난다. 지금 이명박 정권 하에서 반MB정서가 강하니까 사람들은 MB와 거리가 먼 쪽으로 답변한다. 이것을 이념 스펙트럼에 놓고 보면 진보화 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진짜로 몇 년 만에 사람들이 보수화됐다가 진보화 된 것인가? 단순히 반노, 반MB가 그렇게 표출된 것에 불과한 것인가? 이 진단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대응이 달라지는데, 저는 지금 성향은 후자, 즉 '반MB'가 본질이라고 본다. 그런데 잘못 이해하면 민주당처럼 진보화 해야 한다고 노선도 바꾸고 중도도 폐기하고 그렇게 되는 것이다.
안부근 : 저와 생각이 비슷하다. 저는 기본적으로 전 정권이 다음 정권을 만들어낸다고 생각한다. 전 정권의 실정, 잘못한 점이 그 다음 정권을 만든다는 것이다. 또 하나 얘기하고 싶은 것은 진보, 보수 개념 구분이 중요하지 않다는 점이다. 진보도, 보수도 다 나름대로 변화를 원하고 있다. 지금 현재를 뛰어 넘는 새로운 것을 원하는 것이다.
고성국 : 낡은 것과 새 것의 구도다.
안부근 : 그렇다. 그리고 비상식과 상식의 문제다. 뭔가 (지금은 유권자들이 상황을) 비상식으로 보는 것이다. 진보, 보수(문법으)로만 읽으면 안 된다.
나경원 캠프는 '회사'…박원순 캠프는 '놀이터'
안부근 : 이번 선거의 특징을 분석해보자. 최근 언론 보도를 보니, 모 대학교 교수가 학생들에게 박원순, 나경원 캠프에 가서 본 것을 리포트로 제출하는 과제를 냈다고 한다. 학생들은 이렇게 반응했다. 나경원 캠프에 가니 칸막이를 해 놓고 업무를 보는 모습이, 회사 분위기와 비슷하다는 평이 나왔다. 젊은 층이 오는 것을 굉장히 경계하더라는 것이다. 그런데 박원순 캠프는 '오픈'된 분위기인데다, 시끄럽고 활기차더라는 것이다. 이런 평가를 보면 나경원은 정책이나 경력이 유권자에게 유리하게 다가갔음에도 불구하고, 박원순 측의 활달함, 개방성 이런 분위기에서 진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런 특유의 활달함, 개방성을 한나라당에 주문해봤자 한나라당은 못 할 것이다. 이게 딜레마다. 지적 받아도 계속 관료적으로 캠프를 차려서 끌고 갈 것이다.
▲ "저는 기본적으로 전 정권이 다음 정권을 만들어낸다고 생각한다. 전 정권의 실정, 잘못한 점이 그 다음 정권을 만든다" ⓒ프레시안(최형락) |
안부근 : 200년 전에 토크빌이 <미국의 민주주의>라는 책을 썼다. 그가 미국이 발전할 것으로 본 이유 중 하나는 이렇다. 어느 미국의 가정에서 숙식을 하고 아침에 일어났더니 엄청나게 시끄럽더라는 것이다. 애들이 뛰어다니고 난리인데, 유럽 가정과 달리 부모가 간섭을 안 한다는 것이다. 그것을 보고 토크빌은 미국이 자유롭게 발전할 것을 느꼈다고 한다. 앞서 얘기한 것도 비슷하다. 박원순 캠프는 대학생들이 오니까 데리고 다니고 설명도 해주고 그러는데, 나경원 캠프에서는 '왜 왔느냐' 하는 분위기다. 그런 차이다. 이것은 보수, 진보의 틀로 보는 것도 아니다.
고성국 : SNS가 이번 선거에 영향을 많이 미치기도 했다.
안부근 : SNS(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 관련해 TGIF(트위터, 구글, 아이폰, 페이스북)라는 말이 있는데, 이번 선거는 전부터 조짐이 '선거 주도권이 젊은이들에게 넘어간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번 선거를 통해 이 '무기'를 가짐으로 선거 주도권을 젊은이들이 쥐는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았다.
고성국 : 그러나 SNS가 선거에 영향을 미친다고 해도 박근혜의 경우, 아주 일방적으로 불리하게 작용할까? 그렇지는 않다고 본다. 한나라당의 누구보다도 박근혜는 SNS에 익숙한 것 같다. 야권 주자들도 보자, 손학규, 문재인이 SNS에 익숙한가?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선거 참패 후 어청수 임명? 여권, 할 수 있는 일도 못하게 됐다"
고성국 : 야권 입장에서는 (선거가) '반MB'고 '반 기성 정치권' 구도이기 때문에 참신한 사람을 내면, 후보가 다소 준비가 안 됐어도 이번처럼 쉽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앞으로 정치권과 거리를 둬 왔던 참신한 사람을 될 것이다. 대선도 마찬가지다. 그러니까 손학규보다는 문재인이, 정동영보다는 안철수가 더 유리해진 것 같다. 그런데 한나라당 쪽은 그런 구도 하에서 굉장히 답답할 수밖에 없다. 이미 정치권에서 10년 이상 해 온 박근혜를 빼놓고 정치권 밖에서 다른 대안을 찾기도 쉽지 않다. 또 '반MB'를 표방하자니 대통령과 차별화라는, 여권 분열의 소지가 많은 행동을 해야 한다. 안 소장은 여권은 어떨 것 같다고 보나?
안부근 : 현 흐름은 기성 정치에 대한 반대다. 여당도 곤란하고 야당도 곤란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현 상황만 놓고 보면 야당은 혼란을 겪겠지만 방법을 찾아낼 수도 있을 것 같다. 여당은 방법이 별로 없을 것 같다. 박근혜라는 사람이 거의 확정이 돼 있으니까 대안이 없다는 것이다. 여당, 야당에 동시에 (위기가) 밀어닥치고 있는데, 여당이 더 방법이 없는 형국이다.
고성국 : 그래서 여당 입장에서는 박근혜를 업그레이드 시키고 진화시키는 방법밖에 없을 것 같다. 그게 최선이다. 이번에 선거 유세에 나온 박근혜를 보니 4년 전에 비해 많이 진화가 됐다. 대중 접촉 스타일도 발전했다. 그런데 박근혜 혼자 진화했다고 승부가 결정나는 것은 아니다. 야권에서는 대선 후보로 새로운 사람이 나올 가능성이 많고, 정당도 지금의 민주당이 아닌, 전혀 새로운 형태의 당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한나라당은 그 모습 그대로다. 박근혜만 몇 년 전에서 조금 변화된 모습을 보인다? 그러면 승부가 안 되는 것이다.
게다가 이번 선거 이후에 한나라당의 대처 방법을 보자. 선거 당일, 당 대표가 '진 것도 이긴 것도 아니다'라고 했다. 느닷없이 선거에 직접 책임을 질 일 없는 청와대 대통령실장이 사의를 표하니까 집권당 대표가 급하게 쫒아가 만류한다. 이런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이렇게 참패를 당하고, 또 내년 총선에서 전멸할 수밖에 없는 성적표를 보고도 '진 것도 이긴 것도 아니'라고 하고 있다. 책임지겠다는 사람에게 책임지지 말라고 하고 있다. 이런 지도부가 있었나. 굉장히 잘못된 방식이었다.
안부근 : 지금 두 가지 포인트를 봐야 한다. (여권은) 결과를 심각하게 받아들인다고 말해 놓고 어청수를 경호처장으로 임명했다. 또 책임져야 할 사람이 있을 것 같은데, '우리가 진 것 같지 않다'고 한다. 전체적으로 보면 내곡동 문제도 다소간 영향을 줬을 것이다. 그 문제도 책임 질 사람이 있을 것인데, 그 사람은 입을 닫고 있다. (모두가) 겸허히 받아들인다고만 한다.
고성국 : 이 상태로는 한나라당은 할 수 있는 일도 못하게 될 것이다. 기득권 때문이다.
▲ "(여권은) 결과를 심각하게 받아들인다고 말해 놓고 어청수를 경호처장으로 임명했다. 또 책임져야 할 사람이 있을 것 같은데, '우리가 진 것 같지 않다'고 한다. 전체적으로 보면 내곡동 문제도 다소간 영향을 줬을 것이다. 그 문제도 책임 질 사람이 있을 것인데, 그 사람은 입을 닫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
"야권은? 리더십도, 판메이커도 없다"
고성국 : 민주당도 결국 야권 질서 개편을 질서 있고 시너지 있게 만들어 가려면 기득권을 먼저 던져야 한다. 민주당이 기득권을 고집하면 지금처럼 좋은 분위기, 좋은 환경에서도 아주 이상한 결과가 나올 수 있다. 이를테면 2003년처럼 될 수 있다. 주류는 신당 창당(열린우리당)으로 갔는데 그루터기(구 민주당)는 남아서 호남을 지키겠다고 하는 식의, '야권 분열' 상황으로 갈 수도 있다. 여든 야든 기득권을 누가 먼저 던지는가에 따라 새로운 정치의 주도권이 결정된다고 본다.
안부근 : 87년에 (김대중 전 대통령이) 4자 필승론으로 고집을 피워서 졌다. 투표 결과는 야당 표가 더 많았다. 김영삼이 28%, 김대중 27%를 받았다. 단순 합산만 해도 50%가 넘는데, 그렇게 야당 표가 많았는데도 36.6%가 나온 노태우에게 졌다. 그런 결과가 안 나오리라는 보장이 없다. 자만하고 연대든 혁신이든 게을리 하면 그런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지 않나.
고성국 : 객관적인 상황을 보면 민주당이 좀 더 해볼 만한 상황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실제로 야권이 더 잘 할까? 저는 부정적이다. 여권은 그래도 박근혜가 있다. 선거 결과에 대한 홍준표 식의 왜곡된 해석이 횡행하고 있어서 지금 당장은 굉장히 어수선해 보이지만 어찌됐든 여권은 대주주가 있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도 박근혜가 결단하면 그 다음 날 정리가 될 수 있다. 박근혜가 어떤 해법을 내 놓을지에 따라 그 다음날 당명을 갈든지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야권은 그런 대주주가 없다. 서로 맞춰가야 하는데, 주자들을 불러 테이블에 앉히는 역할 등, 이런 것을 하는 '판메이커'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존재가 아직 없다. 객관적 조건은 민주당이 훨씬 좋으나 전망은 야권에 부정적으로 본다.
안부근 : 야권도 어떤 결정을 하자면 리더십이 있어야 한다. 리더십을 확고하게 가진 사람이 안 보인다. 이게 최대 문제다.
고성국 : 한나라당의 경우 앞서 박근혜 얘기를 했는데, 박원순 당선 다음날인 27일 박근혜의 행보는 잘 봐야 한다. 한나라당은 대참패를 했다. 그런데 박근혜는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정현 출판기념회에 갔다. 표정이 굉장히 밝았다. 선거 '한 번' 한 것이다. 주눅들 일도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기자들이 '대세 깨진 것 아니냐'고 아픈 질문을 던지는데 박근혜는 '대세론은 원래 없었다'고 한다. 잘 받아친 것이고 아주 노련했다. 반면 문재인이 아직 리더십으로 보이지 않는다.
혁신과 통합을 통해 야권 연대에 일조하겠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겠다고 해야 한다. 이를테면 문재인이 '나 이제 정치 시작한다. 대통령에 도전한다'고 할 때 리더십은 크건 작건 생기는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이번 선거에서 동구청장 패배는 문재인에게 굉장히 뼈 아픈 패배다. 패배 원인은 (문재인의 리더십 외에) 여러 가지로 분석할 수 있지만 (사람들이) 굉장한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는 점은 사실이다.
안부근 : (당초에는) 동구청장 선거에서 이길 수도 있다고 생각하게 된 동기가 많았다. 한나라당의 자체 내분이라고 할까, 한나라당 후보 외에 여권에 가까운 사람 두 사람이 출마를 해 (야당 1명, 여당 및 여당 성향 3명이) 싸웠지 않나. 내가 보기에 제일 중요한 것은 영남, 그리고 부산에서 '민주당'이라는 당명이 가진 한계다. 그 벽을 넘지 못한 것이다. 오히려 주민들이 그것을 지적하고 있다. '차라리 무소속으로 나오지. 그러면 훨씬 거부감 없이 접근할 수 있을 텐데'라는 것이다.
▲ "이를테면 문재인이 '나 이제 정치 시작한다. 대통령에 도전한다'고 할 때 리더십은 크건 작건 생기는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이번 선거에서 동구청장 패배는 문재인에게 굉장히 뼈 아픈 패배다." ⓒ프레시안(고성국) |
고성국 : 지난 14일 오전에 박근혜가 부산 동구에서 지원유세 하고, 오후에 문재인이 한명숙과 함께 지원 유세에 나섰는데, 그 게임에서는 박근혜가 완승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안부근 : 그렇다. 부산만큼은 아니지만 서산, 함양, 인제 등에서도 박근혜 효과가 있었다고 봐야 한다.
고성국 : 문재인이 '테이크오프(도약)' 하는데 제동이 강하게 걸렸다고 본다. 적어도 PK(부산 경남)에서 문재인의 힘을 보여줘야 했는데 어설프게 들어갔다가 망신을 당한 것이다. 좀 더 준비를 제대로 하고 들어가서 임팩트 있게 했어야 한다는 아쉬움이 있다. 이런 질문을 해 보자. 문재인 쪽은 전략이 없는 것 같다? 혹은 반대로, 나름대로 전략을 짰는데 진 것이다? 후자라면 굉장히 큰 패배로 봐야 할 것인데, 안 소장은 어느 쪽인 것 같나?
안부근 : 저는 '무소속 후보로 나왔으면 차라리'라는 (부산 동구 주민의) 이 말에서 저는 힌트를 갖는다. (이기려고 했다면) 어느 정당으로 나설까, 이것부터 신중하게 고민했어야 했는데 문재인 쪽이 너무 교과서적으로 간 것 같다. 전략이 좀 부족했다고 보는 것이다. 이를테면 부산에서 안철수가 도움을 줬어야 했는데, (문재인이 요청을) 안 한 것 아닐까 생각된다. 이런 것도 실수인 것이다. 부산 동구에 젊은 층도 있고 그들을 최대한 끌어내려고 해야 했는데, (문재인이) 자신으로 충분했다고 생각했지 않았을까 한다.
고성국 : 안철수는 (동구에 있는) 부산고등학교 출신이고 동구가 고향이다.
안부근 : 그렇다. 그런데 한나라당은 경남고 출신 정영석을 내보냈다. (민주당 이해성 후보는 부산고등학교 출신 -편집자주) 안철수가 거기에 안 나타난 것도 (문재인과 민주당의) 전략적 실수인 것이다. 안철수를 더 활용할 수 있었는데 안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비유를 하면 이렇다. 한나라당이 안암동에 연대 출신을 출마시키고, 신촌에 고대 출신을 출마시킨 것과 같은 상황이었다. 동구는 부산고등학교인데, 경남고 출신 정영석을 내보낸 것이다. 야권이 그런 지역적 상황을 (전략적으로) 별로 안 써먹은 것이다.
고성국 : 그래서 상황을 보면, 중앙 정치권에서는 문재인을 잠재적 대권주자로 보지만 동구청장 선거만 놓고 보면 부산 사람들은 아직 문재인을 대권주자로 안 보는 것 같다. 그 점이 문제인 것 같다.
안부근 : 자기 고향에서 인정을 못 받는 것이죠.
고성국 : 그 점이 문재인에게 뼈아픈 것 같다.
안부근 : 그런 점에서 부산 사람들의 메시지는 '우리가 당신이 민주당에 들어갈 것으로 아는데 우리가 당신을 지지할 수 없다. 다른 동네 가서 좀 더 인기를, 세를 불려놓고 와라. 그러면 우리가 다시 봐 주마'라는 것 같다.
고성국 : 같지는 않지만, 김문수의 전략이 'TK(대구경북) 출신의 수도권 기반' 이런 것이었는데, 정작 TK에 가면 김문수가 TK인줄 몰랐다는 얘기가 나온다. 아마 MB의 전략과 비슷한 것으로보이는데, TK 지방에서는 인정을 안 하니 기본 전략이 흔들려 버린 것이다.
안철수가 투표하자면서 '인권 운동' 이야기 꺼낸 이유는?
▲ "안철수가 (박원순 후보) 협찬을 한 번이 아니라 두 번 해줬다. 그 행동을 보고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것이다. 정치 행위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이다. ⓒ프레시안(최형락) |
안부근 : 제일 큰 이유가 그 조사는 투표장에 나온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그리고 다자구도 조사였다. 그리고 안철수를 볼 때 어떤 사람은 대선에 나올 것으로 보지만 어떤 사람은 나올 것으로 안보는 사람도 많다. 미지수인 것이다. 그런 것들을 종합적으로 봐야 한다.
고성국 : 나올 것 같나?
안부근 :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고성국 : 본인의 의지가 있다고 보나?
안부근 : 제가 본인의 의지를 알 수는 없다. 그런데 이 사람이 (박원순 후보) 협찬을 한 번이 아니라 두 번 해줬다. 그 행동을 보고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것이다. 정치 행위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이다.
고성국 : 저는 두 번째 지원 나온 것 때문에 내년에 직접 나설 가능성이 별로 없다고 본다. 편지 내용이 아주 재미있었다. 로자 파크스 사례를 가지고 참여를 촉구하는 내용이었다. 이게 흑인 민권 운동과 관련된 내용이다. 그것이 갖는 보편적인 정당성과 가치가 있다. 그러나 이것은 운동적 감성과 정서다. 아직까지는 정치적 감성과 정서로 접근하지 않고 있다. 박원순이 이겨야 하는 것도 내년 대선, 내년 총선 등 어떤 정치 구도 속에서 이겨야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상식이 이겨야 한다고 본 것이다. 안철수의 힘이 이런 곳에서 나온다고 본다. 실제로 이 사람이 정치적 계산을 하는지, 안하는지 모르지만 사람들에게는 정치적 계산을 넘어서 있는 사람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감성과 정서라면 대선 출마를 구체적으로 고민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여기에서 조금 더 나가 보자. 안철수가 자신의 힘을 잘 유지하는 것도 결국 정치권과 적당하게 거리를 두면서 '멘토링'을 할 때다. 여기에서 자기가 뭘 하겠다고 나서는 순간 똑같은 얘기라도 진정성에서 차원은 달라질 수 밖에 없다. 지금은 중간층을 포함해 기성 정치권에 실망한 사람들의 지지까지 받고 있지만 정치적 행동을 하면 같은 얘기라도 진영으로 갈라지는 게 불가피하다. 그러면 영향력은 줄어든다. 이 사람이 굳이 그런 선택을 내년에 해야 할까. 시간은 많다. 이렇게 촉박하게 채 준비도 되지 않는 상태에서 할까. 그래서 저는 내년은 아닐 것이라는데 방점을 찍는다.
안부근 : 일부 동의한다. 투표 독려를 하면 오바마의 경우라든지, 그런 예를 들어야 하는데 인권 운동 예를 들었다. 의외다. 우리나라에서는 '비(非)정치적'인 의미를 갖는 사례를 가지고 정치적 행동을 설득하는 도구로 삼은 것이다. 물론 그것이 그 사람의 장점이고, 그것이 먹혀 들어갈 수는 있다. 그런데 한편에서는 '(안철수가) 아직 정치는 잘 모르는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정치를 모를 경우 오히려 '정치를 하겠다'는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안철수가 한 얘기 중에 '나는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할 때 그것이 그 사람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 지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부분이 있다. 이 발언은 그 사람이 지금까지 학자, 기업인으로 그만큼 당당하고 소신 있게 살아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치인으로써는 대단히 위험한 얘기다.
예컨대 정치인이 방송에서 토론자와 얘기하는 것도, 그것은 토론자와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듣는 사람은 국민이라고 생각하고 토론하는 것이다. 확장시키면 국민이 내 말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 이것은 정치인이 아니다. 나는 안철수가 '만약 정치인이라면 저 말의 위험성을 알고 말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치를 모른다는 생각이 든 이유다.
▲ "박원순의 당선 일성이 굉장히 위험했다고 본다. 기본적으로 운동적 감성과 정서다. 서울시장이라는 행정직을 그런 감각과 정서로 하면 실패할 수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
민주당과의 관계도 그렇다. 박원순은 새로운 정치를 열망하는 시민에 의해 세워진 후보고 그 열망에 의해 당선된 후보이기 때문에 이 사람은 기성 정당과 비슷하게 가는 모습을 보면 운명적으로 외면 당할 것으로 본다. 정치 얘기를 안해야 한다. 제가 '저건 아닌데' 하고 생각한 것은 민주당 의총에 가서 인사한 것이다. 왜 민주당 의총에 가나. 자기를 지지한 민주당원들에게 메시지를 전하는 방법이 민주당 의원총회에 가는 것인가. 그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9시 뉴스에 나오는 그림이 박원순 시장이 민주당 의원들에게 고개를 팍팍 숙이는 모습이다. 이것은 아니다. 이는 박원순을 지지한 다수의 지지자들의 마음과 맞지 않는 행위다. 최근 민주당에 들어가면 안된다는 여론조사가 나왔다. 이것을 심하게 해석하면 민주당 없애야 한다는 여론이다. 그런데 그 민주당에 가서 고개를 숙인다? 이것은 어설픈 정치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장이 됐다. 그래서 걱정스러운 것이다.
이제 40대의 '반란'은 '상수'…민심은 어디로?
안부근 : 20대는 이번 선거에서도 적게 나왔다고 본다. 30대는 그 보다 많이 나왔다. 문제는 40대다. 두 가지 이야기를 하고싶다. 제가 이번 선거에서 놀란 것은 40대가 반한나라당이 됐다는 것이 명확히 드러났다는 것이다. 40대가 44세, 45세에서 (위 아래로) 갈라져야 하는데, 이번에는 40대가 일방적으로 박원순을 지지했다. 한 마디를 더하면 40대가 아래 세대 쪽으로 가세한 것은 '우리를 왜 힘들게 만들었나' 하는 원성으로 들린다. '참 살기 힘들다'는 원망이랄까, 분노가 들리는 것 같다.
고성국 : 왜 이렇게 살기 힘들게 만들었느냐는 것은 40대보다는 50대가 더 강할 수 있다. 안 소장 말에 동의하지만, 그것과 별도로 이런 측면도 있다. 이들이 486 세대다. 민주화 운동기를 같이 집단적으로 공유한 운명적 측면이 있다. 40이 넘어서 다소 보수화됐다고 해도 사회정의나 공정성 같은 사회적 가치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굉장히 익숙한 세대다. 그런 면에서 높은 수준의 정치화가 돼 있는 세대다. 2008년 촛불 때 아이들을 데리고 광화문에 나온 세대이기도 하다. 숨어서 민주화운동을 한 세대도 아니다. 오히려 20대 30대 보다도 40대가 앞으로 50대가 되도 유사한 성향을 보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한국의 40대가 갖는 특수성이 있다.
안부근 : 동의한다. 하나 더하면 40대가 연령이 가진 특성을 말하고 싶다. 40대와 'FGI'를 하면 어떨 때는 눈물이 나려고 할 정도다. 누구를 지지하냐가 아니라 당신네들 요즘 술자리 같은데 가면 무슨 얘기를 하느냐로 얘기를 시작하는데, 우리 사회 문제의 백화점이 40대다. 처음에는 이런 말을 한다. 나 언제까지 몇 살까지 직장에 다닐 수 있을까. 그리고 벌써 누구는 40대 후반에 직장에서 압박을 받고 있다고 하더라는 식이다. 그 다음에 자기 미래가 나온다. 노후를 어떻게 세우나. 그리고 부모의 미래에 대한 얘기다. 시골에 살아서 계시는 부모들이 많다. 그러다가 또 자기 얘기로 돌아온다. 영업 스트레스, 동료와의 경쟁을 얘기한다. 다음에 밑으로 내려간다. 애들 교육이 덜 끝난 것이다. 특히 사교육비 얘기를 한다. 그러다 사회적인 문제를 꺼낸다. 고물가를 이야기하고 남북 관계를 이야기한다. 나아가서 이 사람들은 세계 경제를 이야기하고 월가 이야기를 한다. 아랍권의 민주화 혁명 얘기까지 나온다. 이들은 자신의 현재, 자신의 미래, 부모의 미래, 아이의 미래, 주택, 물가, 남북 문제 세계 문제를 다 얘기한다.
고성국 : 40대의 처지가 그렇기 때문에 계속해서 야당 성향을 보일 것 같나?
안부근 : 계속은 모르겠지만 내년까지는 이어질 것 같다고 본다. 그리고 30대 역시 공통점은 왜 먹고살기 힘드냐고 한다는 점이다.
고성국 : 40대가 야성을 띠었다면, 박근혜의 경우는 40대와 승부하지 않으면 어려운 것으로 볼 수 있겠다. 20대, 30대는 힘들고 50대, 60대 이상만 지지해서는 안 된다. 결국 40대의 문제 아닌가?
안부근 : 박근혜가 어떻게 해야할지는 모르겠다. 다만 아래 세대, 20대에서는 '왜 우리 취업을 힘들게 했느냐'의 문제가 나오고, 30대, 40대는 왜 우리가 먹고 살기 힘들게 만들었느냐 이렇게 간다. 그러면 반 집권당 성향이 강해질 수밖에 없는 것은 맞다.
고성국 : 그런데 안철수도 그런 문제(먹고 살기 힘들다)에 대해서는 해답이 없다. 안철수는 '그래 힘들지' 하면서 공감까지는 간다. 그러나 대안까지는 못 가고 있다. 지금까지는 공감 수준으로 사람들에게 어떤 계기를 줬지만 대통령이 되려고 한다면 공감만으로는 부족하다. 지금 각종 여론 조사에서 안철수가 강세를 보이는 것은, 워낙 이명박 정부가 공감과 소통이 안 되니까 그에 따른 반사작용일 수 있다. 안철수가 계속 멘토를 한다고 한다면 '대안을 내놓으라'고 아무도 안한다. 역으로 봤을 때, 이 문제에 대해 대안을 내놓을 자신이 없으면 (안철수는 정치를)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 "소위 시계추 이론을 이야기하는 게 좋겠다. 간단히 말하면 총선 이기면 대선 진다는 것이 시계추 이론인데, 내년에는 이 이론이 안 통할 것 같다." ⓒ프레시안(최형락) |
"민심은 '바람'이다…총선 이긴 쪽이 대권 잡는다"
고성국 : 내년 총선, 대선에 대한 총체적 전망을 어떻게 하나? 누가 이길 것 같나?
안부근 : 대답하기 전에 소위 시계추 이론을 이야기하는 게 좋겠다. 간단히 말하면 총선 이기면 대선 진다는 것이 시계추 이론인데, 내년에는 이 이론이 안 통할 것 같다. 총선에서 지면 대선에서 질 가능성이 높다. 이게 내 기본 생각이기 때문에 지금은 총선만 얘기해도 된다. 누구를 편드는 게 아니다.
이를테면 제가 어제 저녁에 서울시장 선거 득표 기록을 보면서 제일 기가 막히다고 생각했던 곳이 (한나라당 김성식 의원 지역구인) 관악갑이다. 한나라당 득표율이 꼴찌다. 그런데 그 지역 사람들 얘기를 들어보면 김성식 의원이 국회의원으로 일을 제일 잘한다는 평가가 있다. 그리고 시민단체 등의 평가에서도 김성식 의원은 많이 언급된다. 그런데 결과는? 득표율이 서울에서 꼴찌다. (내년 총선은) 어떤 사람에 대한 평가, 능력에 대한 평가와 별개로 그냥 분위기로 확 가버릴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것이다. 이번 선거가 그것을 보여줬다. 여기까지가 답이다. 그런 (김성식 의원의) 경우는 참 안타깝다.
고성국 : 가능성이 높지 않지만, (한나라당도) 방법은 있다고 본다. 한나라당이 절반 이상 물갈이를 하고, 박근혜가 모든 것을 모든 것을 걸고 전면에 나서서 행동하고, 또 야권이 그 과정에서 질서있게 정리되지 않고, 기득권을 갖고 권력 투쟁하듯 하면, 즉 두 현상이 겹치면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 이번 선거는 이명박 정권에 대한 심판적인 성격이 밑바닥에 깔려 있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대로 흐르면 회고 투표가 아니라 전망 투표로 바뀔 수도 있다. 그 경우 사람들이 총선이 아니라 대선을 보고 (투표장에) 갈 수 있으니, 한나라당이 근소하지만 130~135석을 민주당이 125석에서 130석을 차지하는 정도의 결과도 가능리라고 본다. 그러나 지금 한나라당의 상황을 놓고 보면 전혀 불가능하다. 한나라당 지도부의 모습을 보면 100석도 안 나올 것 같지 않다. 그러나 이렇게 끝까지 갈 정도로 한나라당이 미련한 정당은 아니지 않나?
안부근 : 고 박사 말대로 그럴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이를테면 서울시 선거 데이터만 놓고 봤을 때 야당은 망하면 5~6석 가져가지만, 여당은 망해도 10석 정도 가져간다. 여당은 또 영남에서 의석을 많이 가져가게 될 것이다. 고 박사의 말대로 한나라당이 망해도 1당을 할 가능성은 있다.
고성국 : 총선에서 이긴 자가 대선에서 이긴다고 하면 총선에서 1당을 박근혜가 만들면 대선까지 갈 수 있다. 이게 미세한 종이 한 장 차이지만, 엄청난 전략의 차이, 전망의 차이를 가져오기 때문에 민주당, 한나라당 모두 '올인'하듯 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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