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의 외주화'라는 말을 요 근래 많이 들어왔다. 대기업들은 안전사고 위험이 높은 위험 작업을 직접 하지 않고 하청업체에게 떠맡긴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사고와 재난은 대기업 공장에서 벌어지지만 숨지거나 다치는 사람은 대기업 노동자가 아니라 외주 하청업체 노동자들이다. 이런 사례는 워낙 많아 여기서 일일이 소개하는 것이 무의미하다.
위험의 외주화는 대기업들로 하여금 안전 문제에 소홀하게 만든다. 또 대기업들이 위험한 작업장을 안전한 작업장으로 만들기 위한 투자를 게을리 하도록 만든다. 이 때문에 우리 노동자들의 건강과 생명이 날이 갈수록 더욱 위협받는 처지에 놓였다.
맥도날드 햄버거 사건이 보여준 식품 위험의 외주화 민낯
위험의 외주화는 작업 현장에서 벌어지는 문제다. 한데 이와 유사한 일이 식품업계에서도 오랫동안 벌어져 왔음이 확인됐다. 얼마 전 우리 사회를 놀라게 했던 맥도날드 햄버거 패티 어린이 요독성증후군 소송 사건에서 검찰 수사로 이런 사실이 드러났다. 식품 위험의 외주화란 새로운 용어가 탄생한 것이다.
2016년 10월 6일께 돼지고기 패티가 든 햄버거를 먹은 한 어린이가 용혈성요독증후군이 생겨 신장 기능이 거의 망가지는 치명적 장해를 입었다. 아이 부모는 한국맥도날드에 이를 알리고 원인조사를 요구했다. 하지만 햄버거를 만들어 판매한 매장에서 위생상 문제를 찾아낼 수 없었다.
이 아이뿐만 아니라 비슷한 피해를 입은 것으로 여긴 4명의 소비자가 2016년 2월부터 2017년까지 1년 3개월 동안 설익은 패티 안에 들어 있는 병원성 미생물 때문에 신장 장애가 생겼다며 한국맥도날드를 식품위생법 위반과 업무상과실치상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하지만 이미 상당한 시간이 지난 뒤였기에 당일 제조된 문제의 햄버거 패티가 남아 있을 리 만무했다. 아이가 먹은 돼지고기 패티에 용혈성요독증후군을 일으킬 수 있는 병원성대장균이 있었음을 검찰로서도 확인할 길이 없었다.
지난 2월 검찰은 "피해자들의 상해가 한국맥도날드의 햄버거에 의한 것이라는 점을 입증할 증거가 부족"하다며 한국맥도날드를 불기소 처분했다. 이는 사건이 불거졌을 때, 그리고 피해자들이 한국맥도날드를 형사고발했을 때 충분히 예견된 것이었다.
오염된 위험 패티, 2000만 톤, 154억 원 어치나 팔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이 검찰 수사에서 밝혀졌다. 한국맥도날드가 햄버거를 만드는데 사용한 패티는 맥키코리아란 회사가 만들어왔는데 장출혈성대장균에 오염됐을 가능성이 있는 패티를 1년 넘게 만들어왔다는 것이다. 이 패티는 폐기처분 되지 않고 버젓이 한국맥도날드가 만드는 햄버거에 사용돼왔다. 매우 충격적인 사실이다.
한국맥도날드는 2016년 6월말께 장출혈성대장균이 검출된 쇠고기 패티를 맥키코리아가 납품한 사실을 알아차리고 7월 각 매장에서 사용하던 패티를 수거해 폐기했다. 그리고 그동안 맥키코리아가 외부에 맡겨 검사를 하던 것을 자체검사토록 했다. 또 이후 유사한 문제가 생기면 납품사, 즉 맥키코리아가 모두 책임진다는 합의를 했다.
맥키코리아는 2016년 1월부터 2017년 10월까지 병원성 미생물이 오염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증표인 시가독소 유전자가 검출된 쇠고기 패티를 무려 2160만 톤(시가 154억 원 상당)이나 납품했으며 이를 가지고 한국맥도날드는 햄버거를 만들어왔다.
한국맥도날드는 휴게음식점-너무나 허술한 식품안전 법체계
전국 400곳이나 되는 매장을 보유한 대규모 프랜차이즈업체인 한국맥도날드는 식품위생법상 휴게음식점으로 분류돼 햄버거 위생 상태에 대한 검사 의무가 없고 자체 병원성 미생물 오염 검사 절차도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안전을 담보할 수 없는, 허술한 법체계가 작동되어온 것이다.
현재 쇠고기 함량 100%인 순쇠고기 패티는 병원성 미생물 검사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 돼지고기 패티는 의무 검사 대상이지만 다른 종류의 패티와 함께 생산되는 경우 다른 종류의 패티를 검사하면 검사의무가 면제된다. 납품업체는 이를 악용해 장출혈성 대장균 오염 가능성이 낮은 닭고기 패티만 외부검사를 맡겨 돼지고기 패티 검사를 회피해왔다.
돼지고기 패티는 장출혈성 대장균에 오염된 쇠고기 패티를 생산하던 곳과 같은 라인에서 생산하고 있었다. 이는 어느 한쪽이 오염되면 다른 쪽도 오염되는 이른바 교차오염 가능성이 큰 것으로 평가된다.
이를 종합해보면 식품제조업체에 대한 식품안전관리를 외부 대행업체에 용역을 주어왔으며 납품업체에 식품안전 책임을 떠넘기는 시스템을 정부 식품안전 당국이 허용해준 셈이다. 작업 현장에서만 위험을 외주화한 것이 아니라 식품산업 현장에서도 큰 식품 기업들이 위험을 작은 업체에 외주화 하고 문제가 생기면 자신들은 미꾸라지처럼 쏙 빠져나가는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이루어져온 것이다.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맥키코리아가 병원성미생물에 오염됐을 가능성이 있는 쇠고기 패티를 한국맥도날드 쪽에 납품해왔음에도 한국맥도날드 쪽이 이를 사전에 알아차리지 못했기 때문에 고의성이 없어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는 점이다.
정부는 소 잃고 뒤늦게 외양간 고치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 식육 함량이 50% 이상의 햄버거 패티와 돈가스 등 분쇄가공육제품은 매출액을 기준으로 단계적으로 위해요소중점관리기준제도, 즉 해썹(HACCP)을 의무화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매출액 20억 원 이상은 오는 12월 1일까지, 매출액 5억 원 이상은 2020년 12월 1일까지, 1억 원 이상은 2022년 12월 1일까지 해썹을 의무적으로 적용키로 했다. 진작 이렇게 정책 개선을 했더라면 피해를 막고 부모의 불안을 잠재울 수 있었지 않을까 싶다. 식품위험의 외주화는 있을 수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말이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안종주 박사는 <한겨레> 보건복지 전문기자를 지냈으며,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안종주의 위험 사회' '안종주의 건강 사회' '안종주의 위험과 소통' 연재 칼럼을 써왔다. 석면, 가습기 살균제, 메르스 등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각종 보건 및 환경 보건 위험에 관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며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석면, 침묵의 살인자> <위험 증폭 사회> 등 다수가 있으며, 최근 코로나19 사태를 맞이해 <코로나 전쟁, 인간과 인간의 싸움> <코로나19와 감염병 보도 비평>을 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