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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위 국장님, '된장녀'는 혐오가 아니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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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인권위 국장님, '된장녀'는 혐오가 아니라고요?

[기자의 눈] 혐오표현 가이드라인, <말이 칼이 될 때>를 보라

지난 17일, 국가인권위원회의 신년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문재인 정권 출범 이후 인권위가 연일 '환골탈태' 행보를 보이고 있기에 올해 사업에 대해 큰 기대를 안고 자리했다.


인권위는 2018년도 업무 추진 계획으로 인권기본법, 인권교육지원법 제정 노력과 함께 혐오표현 확산에 대한 적극적 대응 등을 밝혔다. 혐오대응 특별팀을 구성해 규제되어야 할 혐오표현의 경계 등을 구분하는 가이드라인을 제정하고, 앞으로 발생하는 혐오표현 이슈에 대해 선제적으로 조사권을 행사하겠다는 것이다. 각종 인권 침해 사례에도 침묵으로만 일관했던 과거의 인권위를 떠올리자니, 이러한 적극적인 태도가 반가웠다.


혐오표현 대응 특별팀을 만든 이유에 대해선 "사회적 약자에게 가해지는 혐오표현은 단순히 표현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 물리적 위해를 당할 수 있다는 공포감을 조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일정 수준의 규제 또는 관리가 필요하며, 교육‧협력, 정책‧제도 개선 및 조사 등 인권위의 모든 권한과 기능이 종합적으로 투입되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인권위가 '혐오표현을 잡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만큼, 자연스럽게 혐오표현에 대한 이야기가 밥상머리에 올랐다. 마침 인권위 혁신위원이기도 한 홍성수 교수의 새 책 <말이 칼이 될 때>(홍성수 지음, 어크로스 펴냄)를 최근에 흥미롭게 읽었던 터라, "이 책이 혐오표현 대응에 대한 나름의 답을 제시한 것 같다"고 했다. 그러자 같은 테이블에 앉은 인권위 모 국장이 말했다.

"그런데 '된장녀'를 혐오표현이라고 하면 말이 안 되죠. 그런 말까지 다 혐오표현이라고 하면 언어 사용의 자유에 한계가 생기는 겁니다. 그게 어떤 범죄를 일으킬만한 선동 표현도 아니고, '된장녀'를 혐오표현이라고 하는 데 동의하는 사람도 많지 않고요."

처음 듣는 말이 아니었다. 지인들과 혐오표현에 대한 논쟁 비슷한 것을 할 때마다 꼭 나오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다른 이들도 아닌 인권위 직원에게서 '된장녀가 왜 혐오표현이냐'라는 식의 말을 듣게 될 줄은 몰랐다. 당황스러웠다.

"그런 표현이 심화돼서 행동으로까지 옮아갈 수 있기 때문에 문제 아닌가요? '된장녀'가 법적으로 처벌받을 표현은 아니라 할지라도 '혐오표현'에 해당한다는 인식을 사람들이 갖도록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어정쩡하게 끝난 자리, 찜찜함은 가시지 않았다. 한마디 더 보태고 올 걸 그랬다. "그게 인권위가 해야 할 일 아닌가요?"라고.

▲'강남역 살인 사건' 이후 여성혐오 반대 운동이 들불처럼 일어났다. 지난 2016년 6월 1일 열린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우리도 '기자회견녀'라 보도할 텐가?"라며 '○○녀' 등 여성혐오 표현이 넘쳐나는 현실을 비판했다. ⓒ프레시안(서어리)

인권위가 할 일이고, 스스로 하겠다고 천명한 일이다. 그 자리에서 배포된 자료에도 버젓이 나와 있는 내용이었다. '사회적 약자에게 가해지는 혐오표현은 단순히 표현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 물리적 위해를 당할 수 있다는 공포감을 조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일정 수준의 규제 또는 관리가 필요하다.' 그래서 인권위는 특별팀까지 구성해 혐오표현을 해결하기로 한 것 아닌가.

물론, 혐오표현이란 무엇인지, 어디까지가 혐오표현인지 우리 사회 내에서 아직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그렇기에 "'된장녀'가 혐오표현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발화자가 사회적 약자의 인권 침해 가능성에 그 누구보다도 예민하게 촉을 세워야 할 인권위 인사라는 사실은 안타깝다.

'된장녀'를 혐오표현이라고 하는 데 동의하는 이들도 많지 않다고도 주장했지만, 이는 제대로 된 현실 인식이라고 볼 수 없다. 당장 인터넷에 '된장녀'와 '혐오표현'을 동시에 검색해보라. '김치녀‧된장녀 등 여성혐오 단어'와 같이 '된장녀'를 여성혐오 표현으로 간주한 글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특히나 인권위가 향후 혐오표현 가이드라인을 제정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혐오표현의 정의와 범위에 대해 나름대로 고민해봤지만 스스로 생각을 갈무리하기는 어려웠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얼마 전, 허점투성이인 나의 생각을 대신 정리해준 것 같은 아주 반가운 책을 만났다. 앞서 언급한 홍성수 교수의 책 <말이 칼이 될 때>다.

홍 교수에 따르면, '혐오표현'이란 "소수자에 대한 편견 또는 차별을 확산시키거나 조장하는 행위 또는 어떤 개인, 집단에 대해 그들이 소수자로서의 속성을 가졌다는 이유로 멸시‧모욕‧위협하거나 그들에 대한 차별‧적의‧폭력을 선동하는 표현"이다.

▲책 <말이 칼이 될 때>(홍성수 지음, 어크로스 펴냄). ⓒ어크로스
이러한 정의에 기대어 보면, '된장녀'도 혐오표현으로 보는 편이 타당해 보인다. 여성에 대한 다양한 수위의 차별적 표현도 여성에 대한 폭력도 결국 혐오라는 거대한 맥락 안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지난 2016년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 이후 여성들이 "우리도 '기자회견녀'라 보도할 텐가"라며 기자회견을 연 것은 바로 혐오표현과 폭력의 연결성을 지적하기 위해서였다.

이해를 돕기 위해, 책의 일부를 떼어내 소개한다.

"된장녀라는 말을 여성혐오로 간주하는 것에 대해 여성들은 별다른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 경우가 많다. 오히려 여성혐오라고 부르는 것이 현실의 문제를 적절하게 드러낸다고 말한다. 된장녀라는 말이 여성차별이나 폭력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기 때문일 것이다.

여성을 차별해온 과거가 있고 그 차별이 현존하며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 자명한 상황에서 여성들은 그 어떠한 사소한 차별 발언도 가볍게 넘길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다양한 수위의 모든 차별, 혐오, 배제, 폭력의 표현들을 하나의 용어로 포괄해서 지칭해야 하지 않을까."(32쪽)

"된장녀가 왜 혐오표현이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왜 된장녀'도' 혐오표현일 수 있는지 설득하는 자체가 운동이라는 것이다. 된장녀 신상털기와 데이트 폭력, 성폭력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제기다. 다양한 수위의 차별, 적대, 배제, 폭력의 말들을 혐오표현이라는 이름으로 묶어내 이 문제들이 하나로 연결되어있음을 의도적으로 드러내야 한다."(34쪽)

"여성혐오는 여성을 열등한 존재로서 차별하는 것을 넘어 일상적인 공포를 야기하기도 한다. 열등한 존재인 여성을 대상화하고 종속화하는 남성 지배 문화에서는 여성을 폭력의 대상으로 삼기도 한다.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이 발생했을 때 여성들의 분노, 불안, 공포, 그리고 저항의 몸부림은 여성에 대한 일상적 폭력이 얼마나 뿌리 깊은지를 보여주는 장면이었다."(44쪽)

인권위가 인지하고 있는 대로, 우리 사회 내 혐오의 뿌리는 깊고도 넓다. 그런데 '우리 안의 혐오' 문제는 인권위도 예외는 아닌 듯하다. 인권위가 향후 제정할 혐오표현 가이드라인 안에 '된장녀'는 어떻게 규정될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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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어리

매일 어리버리, 좌충우돌 성장기를 쓰는 씩씩한 기자입니다. 간첩 조작 사건의 유우성, 일본군 ‘위안부’ 여성, 외주 업체 PD, 소방 공무원, 세월호 유가족 등 다양한 취재원들과의 만남 속에서 저는 오늘도 좋은 기자, 좋은 어른이 되는 법을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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