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 단국대 교수가 문재인 대통령의 적극 지지자인 이른바 '문빠'를 두고 자신의 블로그에 "문빠가 미쳤다" "너희들은 환자야, 치료가 필요해"란 글을 써서 논란이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문빠의 문제점을 오래전부터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들을 관찰하다가 우리나라 전체에 해악을 끼치겠다는 생각에 글을 쓰게 됐다고 했다.
그러나 오랫동안 문빠를 관찰한 결론이 "너희는 미쳤기 때문에 치료가 필요하다"라면 그것은 장시간 관찰하곤 엉뚱한 결론을 내린 꼴이다. 왜냐하면 서민이 주장하는 문빠의 문제는 그들의 문제라기보다는 여느 온라인 집단에서나 목격되는 집단 성향 내지는 공격성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사실 문재인 열혈 지지자들의 행태는 규모가 커질수록, 이미 오래 전부터 위태위태했다. 그래서 나 역시 이미 지난 1월 이들의 행태를 지적하는 글(대권 향한 문재인의 적은, 바로 문재인 지지자?)을 쓴 적이 있다.
그런데 내가 그때 지지자들에게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다른 후보자 욕하고 조롱하지 말자, 그리고 경쟁 후보자 트집을 잡지 말고 내가 지지하는 후보를 칭찬하자는 것이었다. 간단히 말해 네거티브 하지 말고 포지티브 하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서민은 문재인 지지자들을 향해 미쳤다, 환자다, 치료 받아라 등의 주장을 했다. 이는 악담을 악담으로 받아치는 것으로 욕하면서 배운다는 표현 외에 다른 말이 생각나지 않는다.
문빠가 싫은 것인가, 문재인이 싫은 것인가
나는 서민이 잘못 이해하고 있는 점 몇 가지를 말하고 싶다. 첫째 그는 "문빠들의 극성 때문에 질려서 (문재인을) 싫어하게 된"다고 했다. (웬만하면 "이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분석이다"라고 이야기 해줄 수도 있겠지만) 이는 틀린 분석이다. 문재인 싫다는 이유로 지지자들의 극성을 내세우는 사람들은 원래 문재인이 싫은 사람들이다. 부모가 자유를 찾아 월남했고 민주화 투쟁을 했으며 특전사에서 군복무를 하고 인권변호사의 길을 걸어온 문재인에 대해 딱히 트집을 잡을 게 없자 '문재인 비토'의 알리바이로 끄집어 드는 게 바로 '문빠들에게 질려서'인 것이다. 보수정당 찍는 게 인생의 사명인 사람들이 하나 같이 했던 말이 바로 "문재인 지지자들 때문에"이고 바로 그 지지자들 때문에 문재인은 "빨갱이"라는 것이다. 이는 수많은 사람들이 노무현에 대한 거부감을 정확히 설명하지는 못한 채 "친노 꼴 보기 싫어서"라고 둘러댔던 것과 똑 같은 주장이다.
그리고 둘째, 서민이 "미쳤다"고 주장하는 문빠들의 과도한 행태는 안희정, 이재명 지지자들이나 박근혜 지지자 등 모든 인기 정치인 팬덤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또 이러한 과격 지지자들은 정치인 팬덤에서만 나타나는 게 아니다. PC통신 시절엔 30만 대군의 위용을 자랑하던 붉은악마가 때로 과격한 집단행동을 보여 비난을 받기도 했고 뒤이어 인터넷 공간에서 가장 강력한 팬덤을 만든 김연아의 팬들 역시 김연아의 위대함에 방해가 되는 인물이 있다면 가차 없이 쫓아가 응징하기도 했다.
문빠가 아니라 인터넷이다
인터넷 초기 많은 학자들은 인터넷의 개방성이 기존 대의민주주의의 문제점을 보완해 텔레데모크라시를 가져오고 결국 전자민주주의, 결국 진보된 민주주의를 가져올 것으로 낙관했지만 현실은 거대 자본이 미디어를 장악하고, 즉흥적이고 비이성적인 말다툼의 공간으로 변질했다. 익명성 뒤에 숨어 욕설과 인신공격 등 언어폭력의 배출구로 전락하기도 했고 때론 국가간 갈등을 촉발하기도 한다. 결국 인터넷은 여론 조성에 장애가 되기도 하고 따라서 새로운 공론장 모델이 되기엔 제한적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서민은 문빠들이 자기랑 의견이 조금만 다르면 과격하게 공격한다고 문제 삼는데 그것이 문빠들만의 문제일까? 안희정, 이재명, 박근혜 지지자들 외에 일베도 있고 어버이연합도 있고 태극기부대도 있다. 대화가 안 되기로는 진보진영의 경기동부연합도 있다. 결국 이러한 문제는 문빠를 가지고 시비를 걸 게 아니라 인터넷 공간에서의 소통과 집단 성향의 문제를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셋째, 서민은 문빠들이 포털사이트에서 검색어 조작을 했다고 문제 삼는다. 그런데 정확한 설명이 없어서 확실히는 알 수 없으나 "URL 링크해서 우르르 몰려가 댓글을 조작"했다는데 그게 왜 문제인지 모르겠다. 시민들이 온라인에서 좋은 기사를 소개 받아 그 기사로 들어가 각자 '좋아요' 누르고 자신의 생각을 댓글을 표현하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다. 문제는 국가 조직이 공무원을 동원해 댓글을 조작, 유포해 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할 때 발생하는 것이다.
시민의 의견 표명이 조작?
DJ의 유훈이 그것 아니었나. 나쁜 신문 보지 말고, 집회에 나가고, 인터넷에 글 올리고, 하다못해 담벼락을 쳐다보고 욕이라도 하라고. 서민은 국정원의 정치개입과 시민의 자유로운 의사 표시도 구분 못 하나.
넷째, 나는 서민이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이 다소 편협하고 자기중심적이라 생각한다. 그는 세균이나 박테리아가 없는 청정수 또는 무균실에서 살기를 원하는가? 나쁜 세균을 박멸하길 원하는가? 보통 이러한 세상을 원하는 자들이 주장하는 것이 바로 '사회안정'이다. 그러나 많은 경우 이는 기득권 유지, 체제 유지를 원하는 자들의 레토릭이다. 그래서 그들이 사회안정을 강조한 다음 전가의 보도처럼 꺼내 드는 것이 바로 '사회안정을 저해하는 불순세력 척결'인 것이다. 이들은 곧 '제거의 대상'이 된다. 사실 다양성을 추구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하지만 '다양성'으로 받아들이기엔 난감한 이들도 있긴 하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을 제거해야 하나?
통계학의 초보적 개념 중 하나가 정상분포이고 이는 일반적으로 좌우 대칭의 종 모양인 정상분포곡선을 그린다. 평균치 주변이 모여 있고 양극단으로 갈수록 감소한다. 최근 양극화가 사회문제화 되고 있지만 세상은 대체로 정상분포에 수렴한다. 중요한 것은 여기엔 양 극단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과거 이러한 극단의 집단 또는 시민들을 제거하려는 노력이 있었다. 그게 바로 전체주의고 파시즘이다. 이석기의 구속과 통진당의 해산이 그래서 전체주의 통치 방식의 혐의를 받고 있는 것이고 그래서 사회안정과 전체주의는 때로 한 끗발 차이인 것이다.
극단도 포용하는 사회가 되어야
서민은 '바른생활 대한민국'을 이상으로 삼는가? 한쪽엔 일베와 어버이연합, 태극기부대가 있을 수 있고 반대쪽엔 폭력조차 불사해야 한다는 노조도, 이석기 같은 망상가도 있을 수 있다. 문제는 이들과 어떻게 소통하고 설득할 것이냐의 문제이지 이들을 손가락질 하며 미쳤다, 환자다 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일까. 나는 의사인 서민이 만약 권력을 가지게 된다면 이들을 수용소에 격리시켜 집중 치료의 대상으로 삼지나 않을지, 그런 상상이 펼쳐진다.
변상욱 기자가 자신의 SNS에 쓴 것처럼 국민의 절박함을 '빠'라는 비하적 언어를 사용해 군중심리로 몰아가기보다는 민주시민정치의 복원을 고민하는 것이 더 문제의 본질에 접근하려는 노력이 될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정당정치, 대의민주주의가 위기에 빠졌기 때문 아닌가.
최근 메갈리아와 워마드가 논란이 된다고 해서 여성의 해방, 양성평등을 향한 우리의 경주가 지체되어선 안 되는 것처럼 일부 문빠들의 과격한 행태 때문에 문재인을 지지하고 적폐청산, 재조산하를 바라는 다른 모든 시민들조차 매도되어서야 하겠는가.
그렇다면 '문빠 = 환자 = 미쳤다 = 치료의 대상'이라는 공식이 성립 가능할까. 아니다. 서민은 꼬리만 보고 몸통을 그린 셈이다. 서민이 접한 문빠는 '서민이 접한 문빠들'일 뿐이다. 그는 자기가 경험한 문빠를 전체 문빠인 것처럼 왜곡했다. 그가 경험한 문빠는 '문빠의 일부'가 될 수 없을 정도로 문재인을 지지하는 시민은 밤하늘의 별처럼 많다.
문빠에 대한 착각
그렇다면 진정한 문빠, 문재인 지지자의 주류는 누구일까. 인터넷 공간에서 "뒈져라"를 연발하는 키보드 워리어들? 아니다. 가장 강력한 문재인 지지 집단은 온라인커뮤니티의 20~40대 여성으로 보인다. 온정적이고 교양을 갖춘 이들이 사실은 최강의 전사들이다.
이들은 요리나 해외직구 온라인 커뮤니티 또는 협동조합이나 '○○맘'이라는 이름의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는 온라인 공동체이면서 사실상 생활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생활정치, 민생정책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들은 사교육과 집값에도 예민하지만 출산, 육아, 보육, 환경 문제에 매우 민감하다. 물리적 결속력은 느슨하지만 매우 빠른 의견 교환과 단단한 결집력으로 무장한 이들은 확산력 뿐 아니라 여론 생산 능력도 탁월하다. 지난 대선 1등 공신이기도 하다. 세상을 바꾼 주역이다.
이렇듯 문빠에 대한 우리의 편견과는 다르게 조용하게, 그러나 적극적으로 문재인을 지지하는 많은 시민들이 있다. 그 중 서민이 주목한 요란한 '문빠'는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서민이 지적하는 문빠 정도로 한 나라의 대통령이 서지는 못한다.
그리고 이들 지지자들은 청소년 아이돌 팬이 아니다.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고 세상도 살만큼 살았으며 무엇보다 지난 이명박, 박근혜 십 년 간 단련된 사람들이다. 깨어있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몸으로 체득한 이들이다. 그래서 이들은 댓글이라도 달려는 것이다.
세상은 우리에게 보이는 것보다 넓다
마침 리듬체조 선수였던 손연재의 기사가 떴는데 제목이 특이하다. "악플에 큰 상처... 모든 국민이 나를 싫어한다는 생각 들어"이다. 김연아 팬들에게 좀 심하게 당했고 예상보다 빨리 은퇴 선언을 한 이유도 그것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손연재를 좋아하는 국민도 많았는데 정작 그는 인터넷 댓글만 가지고 모든 한국 사람이 자신을 싫어하는 것으로 착각한 것이다. 역시 자신이 보고 경험하는 것만으로 세상을 판단하게 되는 것은 손연재도 마찬가지였다.
이는 서민에게도 마찬가지이다. '내 언어의 한계가 내 세계의 한계'라고 하듯 내 경험의 한계가 내 세계의 한계이다. 서민은 자신이 경험한 문빠를 가지고 세상을 이해하려 했다. 그러나 문빠를 포함해 문재인 지지자들은 세상의 별만큼이나 많고 또 다양하다. 자신의 경험을 가지고 전체를 매도하는 것은 삼가야 할 것이다.
결론으로, 장담컨대 '서빠'가 등장하더라도 '문빠'와 전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서민은 그때 서빠에게도 "너희들은 미쳤어! 환자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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