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전세불안'이 폭발 국면에 접어들었다. 전셋집을 못 구해 아우성을 치며 이리 뛰고 저리 뛰는 게, 천하대란이라도 일어나는 느낌이다. 여느 때의 한 겨울이면 전세시장은 비수기인데, 작년 가을부터 이어져온 성수기가 멈출 기세를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올 겨울은 얼마나 추운가. 한파주의보와 경보가 꼬리를 무는 엄동설한이다. 서민들은 참으로 견디기 힘든 겨울을 보내고 있다.
이 같은 전세'난리'는 쉴 틈도 없이, 봄철의 '진짜 성수기'와 이어질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시장에 나온 전셋집은 적은데 찾는 사람이 많다. 그러면 집값은 치솟게 돼 있다. 지금까지 살던 가격으로 재계약이 이뤄지는 전셋집은 이미 없다. 전국의 전세값이 2009년 3월 이래 23개월 연속 올랐다고 했다. 작년 12월 한 달 동안 1%에 이어, 올 1월에도 0.9%나 뛰었다고 했다.
때문에 서울 강남에서는 2억 원 하던 전세가 4억 원으로 두배된 경우도 적지 않다는 이야기까지 들린다. 전세입자들은 보증금을 감당할 수 없어 변두리로 변두리로 싼 전셋집을 찾아나서고, 그도 안 되면 서울에서 수도권지역으로 밀려나기도 한다. 한 통계는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서 이처럼 점차 외곽으로 밀려나가는 전세주민들이 최고 140여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서민들이 손해를 보는 대목은 또 있다. 낮은 금리 때문에 집주인들은 보증금을 굴려야 별 이익이 없다고 보고, 아예 임대 형태를 바꾸기도 한다. 전세를 월세로 바꿔 내놓거나, 보증금을 낮춰 받으면서 월세를 따로 받는 반(半)전세도 많이 등장했다. 이 '난리'의 원인을 살펴보면, 배후에 이명박 정권의 주택정책이 자리잡고 있다. MB식 주택정책이 참으로 절묘하게도 서민층만 골라 힘들게 하는 중이다.
기본적으로 이 정부의 주택정책은 서민ㆍ중산층보다는 주택소유자와 건설업체의 편의를 위하는 쪽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2008년 이 정부 출범하면서 강만수씨가 "건설경기를 정상화하지 않으면 우리 경제는 어렵다"고 목소리를 높인 것과 맥을 같이한다. 바로 '삽질 국부론'이다. 주택분야에서도 아파트 분양이 잘돼야 건설업계가 활기를 띄고, 그래야 나라 경제가 좋아진다는 이야기였다.
아파트를 재건축 할때는 일정비율의 임대주택을 짓도록 되어 있었다. 서민주거를 위한 용도였다. MB정부들어 이 의무조항이 폐지되었다. 뿐만 아니다. 이 정부는 2009년 9월부터 국민임대주택단지를 분양위주의 보금자리주택으로 변경 승인해줬다. 수도권 8군데를 포함해 전국 31개 지구를 그렇게 했다. 서민층 전월세 물량을 줄여서 중ㆍ대형 주택의 분양물량을 늘려준 것이다.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한 대책은 마련되지 않았다.
무분별한 뉴타운 개발과 재개발 사업에서도 전세대책은 없었다. 동시 다발적으로 공사판이 벌어지면서 전ㆍ월세가 대부분인 단독ㆍ연립ㆍ다세대 등 소형주택들이 무더기로 철거되었다. MB정권 들어선 2008년부터 작년까지 서울에서만 그렇게 헐려나간 집이 9만7000여 채였다. 공급된 집은 4만5000여 채, 헐려나간 집의 절반도 못되었다. 보금자리 주택이 시가보다 싸게 공급돼 주택가격 안정에 기여하는 것은 순기능이다. 그러나 미분양 아파트에는 눈도 주지 않고, 전셋집을 전전하며 보금자리주택 분양기회를 기다리는 큰 손 전세입자들이 적지 않다는 게 업계의 진단이다. 전반적인 전세사정을 놓고 볼 때는 보금자리주택의 역기능이다. 그것도 감안해야 했다.
또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자기집'에 큰 관심이 없는 1~2인 가구가 빨리 늘어가고 있다. 그 같은 현상이 소형임대주택 수요에 적지않은 영향을 주리라는 예측은 얼마든지 가능했다. 이런 모든 문제를 알고 풀어내야할 정부가 현상조차 파악하지 못한 채 사실상 손을 놓고 있었던 게 문제였다. 작년 가을 이사철에 전세값이 급등국면에 접어들었을 때도 정부는 그랬다. 태연했다. "심각한 상황이 아니다" "전세값 상승은 일시적 현상"이라했다.
구제역 바라보듯 했다. 구제역 다루듯 했다. 지난달 '대책'이라는 것을 내놓으면서도 "우려할 상황은 아니다"고 정부는 큰 소리를 쳤다. 업계에서는 '전세대란' 못지않게 정부의 그 같은 '시각'이 더 큰 문제라고 걱정을 한다. 주택관련 대책은 다른 것과 달리 오늘 수립해 당장 시행에 들어가더라도 입주가 가능한건 적어도 1년 이상의 시일이 걸려야 한다고 했다.
주택정책 주무부처인 국토해양부가 온통 4대강 사업에만 매달리다보니 이 지경에 이르렀다는 소리도 나온다. 정부가 부자감세 같은데나 신경쓰다보니 서민들의 고통쯤은 외면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지적도 주목을 끈다. 바른 주택정책의 수립과 시행은 정부입장에서는 그야말로 따로 돈 안들이고 베푸는 서민용 주거복지다. 그런 '복지' 베푸는 게 힘들거나 귀찮다면 서민들에게 박탈감이나 고통 느끼지 않도록 만이라도 해줄 수는 있을 것이다. 적어도 그건 도리다.
입만 열면 '친서민'을 말하면서도 MB정권은 그렇게 서민들 반대쪽으로 가는 길을 골라서 걸었다. 주택정책에서뿐만 아니다. 도처에서 그랬다. 한 나라의 살림살이 모습은 다른데 살필 것 없이 예산을 들여다보면 다 나온다. MB정권의 '안티(Anti) 서민'행태는 예산 날치기 처리과정에서부터 극명히 나타났다.
방학 중 결식아동 급식지원 예산이 사라졌다. 급식이 끊기는 방학동안 굶는 아이들25만 명의 점심 밥값이었다. 작년까지 줄곧 계상돼 집행돼오던 예산이었으나 한 순간에 날려버렸다. 날치기 처리를 목전에 두고 허겁지겁 우선순위를 매기다보니 서민용 복지예산은 뒤로 밀려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빈곤층 생계급여예산, 영유아 예방접종 확대 예산, 기초노령연금, 장애인 연금, 저소득층 국민연금 보험료 지원 예산 등 '민생ㆍ교육ㆍ복지 예산' 1조 1000억 원이 그렇게 삭감되었다.
MB정권의 사전에 '서민'이나 '민생'이나 '복지'란 말은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대신 그렇게 급하지도 않고 당장 필요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예상치도 않았던 예산들이 우선순위에서 앞자리를 꿰차고 사업권을 따내는 이변을 연출했다. 물론 서민이나, 민생이나 복지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들이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형님 이상득 도로'다.
포항~영덕 고속도로는 이상득 의원 주변지역이어서 '형님 예산' 논란이 일던 건설사업이었다. 국가재정법에 따라 조사한 이 고속도로의 예비타당성 지수는 0.33이었다. 타당성 1이 넘어야, 들어가는 비용에 비해 실익이 있다는 평가를 받게 돼 있다. 말하자면 이 고속도로는 건설하지 않는 게 타당하다는 결론이 나 있었다. 그런데도 이 도로는 "영덕이 낙후지역이라 지역 균형발전차원에서 건설해야 한다"는 이유가 붙어, 2조 5000억 원의 예산이 통과되었다. '형님'은 역시 막강했다.
포항~삼척 철도건설(700억 원)과 울산~포항 복선전철사업(520억 원)도 그랬다. 이들 2개의 사업은 특히 감사원이 "사업의 타당성을 재조사하라"고 지적해, 당초 예산에 한 푼도 계상되지 않았으나 희한하게도 되살아났다. 우선순위가 뒤바뀐 것이었다. 예산은 두말할 나위없이 아껴서 소중하게 써야 한다. 필요한 곳에 정당한 우선순위에 따라 쓰여야 한다.
이른바 끗발에 따라 예산집행 순위가 정해져서는 안 된다. 국민들이 낸 피땀어린 세금이기 때문에 그렇다. '형님' 주변에서는 그렇게 예산이 흥청망청 쓰이고 있는데도 중요한 국가사업을 하면서 '형님'쓰는 돈의 수십분의 1이 없어 쩔쩔매며 피를 말리는 곳도 있다. 여수엑스포는 2012년 5월 전남 여수에서 93일간 열리는 세계적인 해양박람회다. 엑스포로는 1993년 대전에 이은 두 번째다.
100여개 나라가 참여하리라 했다. 인구 30만 명에 재정자립도 29%인 여수시는 요즘 죽을 지경이다. 하루 10여만 명씩 950만 명의 국내외 방문객이 예상되지만 시내의 도로망이 골목수준이기 때문이다. 연간 쓸 수 있는 전체가용재원이 400억 원에 불과한 이 소도시는 엑스포 때문에 이미 1400억 원의 빚을 얻어 썼다. 도로확장ㆍ개설비용 540억 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지만 정부는 도로법 핑계를 대며 계속 고개를 내젓고 있다. 자치단체 도로는 자체 건설토록 돼 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여수 사람들은 할 말이 있다. 대전엑스포때는 대전시내 도로 건설비용으로 정부에서 1549억원이나 도와줬다. 18년 전에 그랬다. 그때도 도로법은 있었다. 하지만 정부 실무부처로서는 드러내놓고 말은 못해도 딱한 사정은 있어 보인다. 돈이란 돈은 모두 4대강과 '형님' 주변 같은 데로 몰려가 버렸으니 도와줄 여력이 있을리 없다.
문제는 어느 것이 바른 씀씀이냐 하는 의문이다. 이와 함께 바른길 놓아두고 한눈이나 파는 정권은 아닌지, '친서민'아닌 '안티 서민'의 길을 찾아가는 정권은 아닌지, 지금은 그런 문제를 원점에서부터 따져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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