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과 정약용이 와도 지금 국회에서는 '할 일'이 별로 없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국회가 입법권을 쥐고 그 권한을 남용하며 사사건건 국정의 발목을 잡고 있다며 비판한다. 그런데 이러한 시각은 부분적인 타당성만을 지닌다.
사실 우리 국회 입법의 과정은 기형적이다. 현재 우리 국회에서 국회의원의 입법 활동이란 대체로 법안 발의로 멈춘다. 의원 발의의 그 법안은 국회 공무원인 국회전문위원의 '검토'를 받아야 한다. 의원들이 발의한 법안의 운명은 이 '검토보고서'에 의해 좌지우지된다. 주객전도, 본말도치. '지원'과 '보조'의 차원을 한참 넘어 어느덧 '주(主)'와 '본(本)'의 자취를 찾기 어렵게 됐다.
이 제도는 박정희와 전두환 정권이 완성했다. 물론 이러한 '한국적' 제도를 가진 나라는 우리나라 외에 없다. 어느 나라든 법률안이 발의돼 상임위원회에 제출되면 "의원들에 의해 직접적으로" 모든 개별 규정을 비롯해 축조심사가 이뤄지고 서문과 표제에 대해서도 세밀하게 토의가 진행된다. 이렇게 하나의 법률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1독회, 2독회, 3독회 등 수십 차례에 이르는 "의원들의" 토론과 논의를 거듭하고, 마지막에 단순 다수결의 투표로써 상임위 과정을 마치게 된다.
그런데 우리 국회에서는 이 모든 과정이 거의 대부분 생략되고 특히 의원들의 활동을 보기 어렵다. 그야말로 심각한 부실이고 왜곡이다(이 점에서 의정감시 시민단체들이 법안발의 건수로 의원을 평가하는 것은 방향 착오의 측면이 다분하다).
그런데도 당사자들인 의원들은 이를 바꿀 생각이 별로 없는 듯하다. 필자는 의원들이 이 전문위원 검토보고서 제도 개혁에 소극적이라는 말을 중진의원으로부터 직접 들었다. 스스로의 본업을 소홀히 하고, 그리해 스스로 맡은 바의 직책을 수행하지 않고서 외부에 현시하는 그 어떠한 미사여구와 행위도 모두 공허할 수밖에 없다. 최근 한 의원보좌관으로부터 국회의원들은 (국회 소속기관인) 국회도서관에 전혀 관심이 없다는 '훈계'를 들었는데, 이는 본업과 기본이 희미해진 국회의 한 '단면'이다.
오늘의 입법 왜곡, 법원이 판결을 외주로 맡기는 것과 같아
입법 시스템의 이러한 왜곡 현상을 좀 심하게 비유하자면, 마치 법원이 판결을 외주로 맡기는 것과 같다. 국민이 부여한 입법권에 대한 직무유기다. 이러한 사실을 아는 국민은 거의 없다.
우리 사회는 교수와 연예인 혹은 언론계를 비롯해 잘 나간다 싶으면 결론은 거의 어김없이 국회의원이다. 사실 이러한 현상은 정치가 우습게 된 현실의 직접적 반영이다. 하루아침에 맡은 바 자신의 본업을 내팽개치고 의원 배지를 달기 위해 줄서는 이러한 현상이야말로 우리 사회를 결정적으로 왜곡시키는 적폐다. 아무나 국회의원 될 수 있는 이런 현상이 가능한 배경에는 역시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현재의 조건이 존재한다. 그저 시늉만 내면 된다.
이러한 입법 시스템 하에서는 아무리 사명감이 투철한 의원이 국회에 진입한다고 해도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 왜곡된 이 시스템이 바뀌지 않는 한, 민주주의와 국민주권을 위해 정상적으로 작동되는 의회의 모습을 찾기 어렵다. 이런 국회에서는 설사 정약용과 이순신 장군이 국회의원이 된다고 해도 일하기 어렵다. 국회는 우선 그 '기본'부터 바뀌어야 한다.
선거제 개혁으로 국회를 올바르게 재구성해야
일본 자민당은 최근 치러진 선거에서 단지 1/3의 득표로써 2/3에 이르는 의석수를 차지했다. 이는 사실상 '사기에 가까운' 선거제도다. 그런데 우리의 현 선거제 역시 일본과 크게 다르지 않다.
현재의 단순 소선거구제에서는 거의 절반에 가까운 유권자의 표가 사표(死票)로 전락하고 만다. 여기에서 끝이 아니다. 이마저 "더 마음에 들지 않은 정당이나 후보"를 떨어뜨리기 위해 당선 가능한 정당 후보를 찍는 '강제 투표'로 된다.
이런 구도로 인해 제3당은 설 땅이 없어지고 여야의 거대 양당제만 군림하게 되고, 이는 결국 표심(票心)과 분리된 정당구도와 표심을 왜곡한 의석수로 나타난다. 이는 "대의할 수 없는" 대의민주주의고, 민의를 왜곡하는 선거제도다. 결국 민주주의의 외피만 쓴 "무늬만 민주주의"며, 국민주권주의에 배치되는 소수의 '과두제(寡頭制, oligarchy)'다.
거꾸로만 가는 국회
일반적으로 거대 보수당은 비례대표제를 강화하는 선거제도 개혁으로 심각하게 손해를 볼 것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실제 독일식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적용시켜보면, 심지어 의석이 오히려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런데도 그들이 반대하는 이유는 소수정당, 이를테면 정의당의 의석이 증가되기 때문이다. 또 녹색당 등의 신생정당도 의석을 얻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이제까지 그들이 누려왔던 독점적 지위에 틈이 생기기 때문에 선거제 개혁에 반대한다.
가장 우려되는 점은 지금 진행되고 있는 국회 정개특위의 선거제 논의가 다수결이 아닌 합의제라는 사실이다. 세계적으로 의회 상임위의 법안은 모두 다수결로 결정된다. 우리 국회는 이 점에서조차 현대 사회에서 적용되는 '규범'을 따르지 않고 있다. 거꾸로만 가는 우리의 국회다. 이번에도 국회에서 선거제 개혁은 물 건너가는 것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국회로는 우리의 민주주의를 전진시키기 어렵다. 국회구조의 전면적 개혁이야말로 민주주의 발전의 사활적 과제다. 모름지기 입법은 입법다워야 하고, 의원은 의원다워야 한다. 이를 위해 선거제도 개혁으로 국회구조를 올바르게 재구성해야 하며, 지금 왜곡돼 있는 국회의 본업인 입법권은 반드시 정상화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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