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대통령 시기상조론', '독재자의 딸이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당위론적 불가론', 그리고 '베일에 싸인 박근혜가 검증과정을 넘어서지 못할 것이라는 현실적 불가론'이 그것이었다. 이명박 정부 출범 후 새롭게 제기된 '불가론'이 있다면 아마도 "권위적, 독단적 리더십으로는 안 된다"는 정도일 것이다.
이 4불가론은 각각 따로 돌아다니지만 때론 결합되기도 한다. 여기에 더해 '이명박 대통령과 친이계가 그렇게 간단하게 권력을 넘겨주겠느냐', '현직 대통령은 누굴 대통령으로 만들 힘은 없어도 대통령이 못 되게 만들 힘은 있다'는 자못 설득력 있어 보이는 현실론과 결합되어 유포되기도 하는 모양이다.
여성 대통령 시기 상조론?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진영이 가장 신경을 많이 쓴 대목은 '여성대통령 시기상조론'이었다. 박근혜가 그 바쁜 와중에도 독일까지 가서 여성 총리 메르켈과 회동을 가진 것도 그렇고 엘리자베스 여왕과 마가렛 대처를 롤모델로 설정한 것도 그렇다. 성공한 여성 리더들과의 만남을 통해 여성대통령 불가론을 희석시키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각설하고.
'여성대통령 시기상조론'은 시대착오적인 데마고그다. 여성이 대통령이 될 수 없다는 얘기는 호남출신이 대통령이 될 수 없다는 얘기만큼이나 그리고 상고출신이 대통령이 될 수 없다는 얘기만큼이나 악의적인 선동이다. 그럼에도 '여성대통령 불가론'은 지역에 따라 2012년 대선에서도 상당한 힘을 발휘할지 모른다. 유교적 전통이 아직 강하게 남아있는 경북 북부지역 같은 곳 말이다.
그러나 '불가론'의 강도는 이 지역에서조차 매우 약화될 것이다. 단지 여자라는 이유 때문에 다른 모든 긍정적 요소에도 불구하고 박근혜에 대한 지지를 철회할 '여성 대통령 불가론'을 흔들리지 않는 소신으로 갖고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여성대통령 불가론'은 박근혜 대세론이 취약하고 당선 가능성이 높지 않을 때 다른 이유들과 결합돼 '박근혜는 안 돼'라는 여론을 만드는 매개변수적 역할을 할 수는 있을지 모르겠지만 형성되어 있는 대세론을 꺾을 만큼 위력적인 불가론은 이미 아니다. 80%의 지지율을 기록하며 얼마 전 퇴임한 칠레의 바첼레트 대통령이나 룰라 대통령을 이어 브라질을 이끌 지우마 호세프 새 대통령, 국제 사회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핀란드의 국격을 높이고 있는 할로넨 대통령의 사례를 잠깐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이 점은 분명하다 하겠다.
'독재자의 딸은 안된다'…안될까?
'독재자의 딸은 안된다'는 '당위론적 불가론' 또한 그렇게 위력이 클 것 같지 않다. 박근혜가 막 정계에 입문할 무렵에는 이런 주장이 설득력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정치 입문 10년이 지난 박근혜를, 그리하여 박정희의 딸이라는 과거의 스토리 못지 않게 박근혜 자신의 스토리를 많이 갖게 된 박근혜를 박정희의 딸이라는 프레임에 가두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다. 더구나 '독재자의 딸'이라는 프레임이 '경제성장 주역의 딸'이라는 또 다른 프레임보다 확실한 비교우위에 있는 것도 아니다. '독재자의 딸은 안 된다'는 당위론적 불가론이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할 것으로 예상하는 이유다.
▲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지난 21일 청와대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청와대 |
2009년 1월 '가장 존경하는 역대 대통령은 누구인가'란 리서치앤리서치의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49%는 박정희, 18.3%는 김대중, 7.9%는 노무현을 응답했다. 박정희는 호남을 제외한 전 지역에서 50%를 넘는 높은 지지를 받았다. 2009년 8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도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는 역대 대통령에 대한 국민여론조사를 실시했다. 국가발전에 기여한 대통령은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에 대해 응답자의 53.4%는 박정희, 25.4%는 김대중, 12.4%는 노무현을 꼽았다.
박정희는 남성, 여성 모두에서 그리고 모든 세대에서 1위로 꼽혔다. 이렇듯 역대 대통령을 평가하는 거의 모든 조사에서 박정희가 1위를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은 국민의 절반 가량이 박정희 대통령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는 사실을 뜻한다. 이와 같은 여론 지형에서 박근혜를 '박정희의 딸=독재자의 딸'이라는 프레임에 가두는 것은 불가능하다.
박근혜는 '박정희의 딸'이기도 하지만 '육영수의 딸'이기도 하다. 박정희에 대해서는 어찌됐든 공과를 둘러싼 논란이라도 있지만 육영수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런 논란이 없다. 육영수는 모든 조사에서 바람직한 영부인상으로 꼽히고 있다. 그것도 압도적 1위로. 박근혜가 충청권에서 강한 지지세를 보이고 있는 데에는 충북 옥천이 육영수의 고향이라는 사실도 한 몫을 하고 있다. 박근혜가 세종시 전선으로 영남과 충청을 정치적으로 아울렀다면 박정희와 육영수 또한 영남과 충청을 묶어내고 있다. 참으로 좋은 '가정환경'이자 '출생배경'이라 아니 할 수 없다.
광주 민주화 운동을 영화를 통해 '역사'로 알게 되는 20~30대가 유권자의 주축을 이루고 있다. 이들에게 박정희는 그야말로 오래 전 역사의 인물이다. '역사'가 된 박정희를 설명할 때 '경제를 일으킨 박정희'는 따로 설명이 필요 없을 만큼 강한 소구력을 갖지만 '쿠데타를 일으키고 민주주의와 인권을 유린한 독재자 박정희'는 설명이 필요하다. 문제는 설명을 해야 할 '역사적 현실'의 '비현실성' 때문에 설명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쿠데타'를 영화에서나 접하는 젊은 층에게 5.16 쿠데타와 10.26 까지의 비극적 역사를 체감도 높게 설명하는 것이 쉬운 일이겠는가 말이다. 죽은 사람과 싸워 이긴 장사는 없다. 박근혜를 대적하기도 벅찬 박근혜의 경쟁자들이 박정희와 육영수까지 싸움터로 불러내는 무모함을 범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박근혜의 사생활'?
'박근혜의 사생활'이 박근혜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는 주장은 이미 절반 이상 설득력을 잃었다. 2007년 경선에서 나올 얘기는 대부분 다 나왔기 때문이다. '숨겨둔 아이'얘기까지 나왔고 "아이를 데리고 오면 DNA 조사라도 받겠다"는 박근혜의 강경한 대응까지 나왔으므로 더 나올 얘기가 뭐가 있겠는가.
'최태민 목사 관련 논란'도 그 사건 자체가 30년도 더 된 것인데다가 당사자도 세상에 없고 설사 제기된 의혹들이 일부 사실로 밝혀진다 하더라도 대규모 권력형 부정부패로 번질 일은 없는, 말하자면 법률적으로 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공소시효가 소멸된 지나가 버린 에피소드가 아닌가 말이다. 그 밖에 육영재단 관련 논란이나 동생 근령 씨와의 불화를 둘러싼 얘기들이 거론 될 수는 있으나 비극적 가족사에 대한 동정심을 자극할 뿐 불가론으로까지 비화될 그런 수준의 문제라 하기는 어렵다. 이처럼 박근혜의 사생활 관련 논란은 이미 58세에 이른 박근혜의 '여성적 매력'을 환기시키고 동정심을 자극하면 자극했지 그의 이력에 별다른 상처를 입히지는 못할 것 같다. 얼마 전 뒤늦게 인터넷을 통해 알려진 '박근혜 비키니' 사진에 대한 대중들의 호의적인 반응이 이를 증명한다.
박근혜의 롤모델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은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국가 간 정략결혼이 가장 중요한 외교수단이자 집단 안보체제의 보증서로 작용했던 시대에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는 것은 그 자체로 특별한 의미가 있다. 엘리자베스 1세는 각국 국왕들의 청혼이 있을 때마다 "나는 영국과 결혼했다"는 말로 품격을 유지하면서 담백하게 청혼을 물리쳤다. 엘리자베스 1세는 자신의 독신생활까지 영국국민들의 사랑을 끌어내는 인간적 요소로 활용할 줄 알았다.
박근혜가 결혼과 독신생활에 대해 어떤 속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는 알지 못하나 독신 생활까지 포함한 그의 인생 궤적이 외형상 엘리자베스 1세와 유사한 점이 많다는 것은 약점보다는 강점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노년의 엘리자베스 1세가 행한 마지막 의회 연설이 박근혜의 심정을 표현하는 하나의 전거가 될지도 모르겠다.
"신께서 나를 여왕으로 만들어 주신데 감사하지만 내가 누릴 수 있었던 가장 큰 영광은 백성의 사랑을 받으며 통치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중략) 나보다 더 강하고 현명한 군주는 과거에도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지 모르지만 나만큼 백성을 사랑하는 군주는 이때까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박근혜의 권위적이고 독단적인 리더십?
박근혜의 권위적이고 독단적인 리더십이 국정운영을 어렵게 할 것이라는 네 번째 불가론은 주로 이명박 정부 출범 후 친이계로부터 제기되었다. 친박계 인사들의 복당문제나 세종시 문제 등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친이계는 '박근혜의 높은 벽'에 번번이 무릎 꿇었다. 그 과정에서 터져나온 불만들이 '박근혜의 권위적이고 독단적인 리더십'이었다.
그러나 친박계 의원들의 설명은 전혀 다르다. 지금껏 어떤 경우에도 박근혜가 직접 지시하고 줄 세운 적이 없다는 것이다. 박근혜는 주위의 의견을 경청하고 결정하되 그 결정을 강제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친박계 의원들은 박근혜의 생각을 이심전심으로 따라왔을 뿐이라는 것이다.
친박계의 이런 설명이야말로 역설적으로 토론 부재의 친박계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이런 정황을 박근혜의 권위적이고 독단적인 리더십으로 해석하는 것은 과도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할 위험성이 크다.
박근혜의 리더십이 권위적이고 독단적인 것이 아니라 이명박 정부 출범 후의 긴박하고도 각박한 정치 현실이 친박계를 움츠리게 만들었고 방어적으로 만들었으며 그 상황을 뚫고 나오는 과정에서 박근혜의 강한 카리스마와 돌파력이 결과적으로 부각되었다는 것이 사실에 근사한 설명일 것이다. 그러므로 이 마지막 불가론은 '박근혜 불가론'이라기보다는 '박근혜 경쟁력'으로 읽힐 수도 있는 양면적 성격을 갖는다. 어느 쪽에 가까운지는 독자 여러분이 판단하시기 바란다. 역지사지. 입장 바꿔 생각하는 것이 정말로 필요한 대목이 바로 이런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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