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9일 개봉해 여전히 상영 중인 <청년경찰>은 올여름 한국영화 가운데 최고 흥행작은 아니지만, 제작비를 감안하면 흥행의 진정한 승자일 것이다. 이 영화는 한국영화의 흥행 시리즈 <투캅스>(1993년에 1편이 개봉되었다)와 흥행작 <아저씨>(2010)를 영리하게 조합해 흥행을 이끌어냈다.
<투캅스>의 모델이 된 <리썰 웨폰>(1987)을 보면, 늙은 흑인 형사와 젊은 백인 형사가 파트너가 된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버디 무비'의 동성애에 대한 느낌이나 암시를 배제하기 위해 그렇게 보일 확률이 가장 희박한 조합을 지향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투캅스>에서도 부패한 고참형사와 원칙을 고집하는 신참형사가 파트너인데, 미국과 문화적 차이가 있는 한국에서 이러한 설정이 <리썰 웨폰>과 같은 맥락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청년경찰>에서 <투캅스>의 설정을 변형해 동갑의 경찰대생 두 명을 등장시킬 때(그들이 나란히 서서 샤워하는 씬이 반복됨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장애는 없었을 것이다. <투캅스>의 중년과 청년의 조합에서는 나이와 경력의 차이를 통해, <청년경찰>의 동갑내기 조합에서는 성격의 차이를 통해 재미를 만들어낸다. 활달한 기준(박서준)은 몸을 잘 쓰고, 섬세한 희열(강하늘)은 머리를 잘 쓰는 식이다.
다른 무엇보다 이십대 청년 기준과 희열의 조합에서 주목할 점이 몇 가지 있다. 먼저 지난 몇 년 동안의 한국영화 흥행작을 보면, 주요인물이 전부 이십대인 경우가 거의 없었다. 청년인물은 중년남성의 지배를 받는 역할로 등장하거나 찾아보기조차 어려웠다. 예를 들어 2016년의 흥행작 <검사외전>을 보면, 중년의 검사(황정민)가 살인의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가게 된다. 그가 감옥에서 복수를 계획할 때, 사기죄로 옥살이를 한 청년(강동원)을 조정해서 실행해나간다. 또 2015년의 흥행작 <내부자들>에서, 중년의 유명 논설주간(백윤식)은 젊은 깡패(이병헌)를 철저하게 이용한다. 이러한 설정은 한국사회의 청년들이 살인적인 경쟁과 취업난에 시달리면서, 젊은이다운 패기를 상실하고 기성세대에 순응하게 되는 현실과 맞닿아 있다.
한국영화의 흥행 공식처럼 돼버린 남성 투톱 영화에서, 두 인물은 대립하거나 경쟁하는 경우가 더 많고 청년들이 우정을 나누는 설정도 아주 드물었는데, 기준과 희열은 금방 의기투합한다(사진1). 그들이 사회질서에서 일탈한 사기꾼이나 조폭의 일원이 아니라 사회질서의 파수꾼인 경찰지망생으로 설정된 점도 주목된다.
제목에서부터 '청년'을 내세운 <청년경찰>은 기준과 희열을 통해 군인 같은 생활을 하는 경찰대생이지만 여느 이십대와 다른 없는 고민과 애환을 코믹하게 그려낸다. 그들은 공적인 사명감 따위로 경찰을 지망한 것이 아니다. 가난한 기준은 학비가 무료이기 때문에, 과학고를 다닌 희열은 특별한 일을 하고 싶어서, 각각 경찰대를 선택했다. 그들은 목숨을 걸고 사건을 해결하고 범죄의 피해자들을 구해내는 어려운 일을 해냄으로써, 사명감 충만한 경찰이 되어간다. 그러므로 이 영화는 일종의 성장영화라고도 할 수 있다.
한국사회의 청년들이 3포 세대, N포세대 등으로 지칭되면서 한국영화에서도 소외되었다면, 기준과 희열 같은 인물의 등장은 지난 촛불혁명과 대선에서 이십대가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여파가 아닐까 싶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국민의 안위를 위해 악전고투한 그들에게 주어지는 대가는 그에 걸 맞는 상이 아니다. 기준과 희열은 포상을 기대하기는커녕 오히려 퇴학을 당할까 전전긍긍하는 처지가 된다. 교무회의에서 양 교수는 그들을 옹호하는 발언을 하면서, 그들이 '잘 컸다'가 아니라 '잘 키웠다'고 표현한다. 그는 퇴학이 아닌 유급 조치를 시혜라도 되는 듯이 통보하고, 두 사람은 그것을 감사히 받아들인다(사진2: 돌아서는 양 교수에게 경례하는 기준과 희열). 하고자하는 일을 위해 용기를 내서 일종의 바리케이드를 넘은 청년들에게 기성세대는 다시 규칙과 규율에 대한 복종을 요구한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매우 보수적이다.
<청년경찰>을 좀 더 문제적인 영화로 보게 되는 지점은 기준과 희열이 마주하게 되는 범죄현장의 가해자와 피해자의 설정에 있다. 그들이 납치된 젊은 여성을 찾아 헤매다 난자밀매 조직을 마주하는 설정은 <아저씨>에서 전직 국정원 요원 태식이 납치된 이웃집 소녀를 찾다가 장기밀매조직을 접하게 되는 설정을 변형한 것이다. <아저씨>에서 범죄의 공간은 차이나타운으로 지칭되지만, 최악의 범죄를 자행하는 주범은 한국인이며 부하들 가운데 조선족은 없었던 것 같다. <청년경찰>에서는 차이나타운을 대림동으로 명시하면서, 서울에서 가장 화려한 공간 강남에서 가장 어두운 공간으로 이동한다. 대림동이 조선족만 살아서 무법천지의 위험한 지역이 되었다고 설명한 다음, 조선족을 추악한 범죄를 저지르는 주범으로 등장시킨다.
조선족이 범죄와 폭력에 연루되는 설정은 이 영화가 처음은 아니다. 몇몇 사례 가운데, <아수라>(2016)가 떠오른다. 이 영화에서 부패한 박 시장은 자신의 비리를 알고 있는 검사를 제거하기 위해 조선족이 섞여있는 외국인노동자들을 동원한다. 도끼를 든 조선족(사진3)이 '겁날 거 없다'며 주저하지 않고 검사와 경찰에 대한 공격을 개시할 때, 그들은 소름끼치고 무시무시하며 치외법권의 느낌을 주는 범죄 집단으로 자리매김한다. <청년경찰>은 그렇게 구축된 조선족의 부정적 이미지를, 때로는 로우 앵글의 카메라를 통해 더욱 강화한다(사진4). 그들은 지저분하고 남루한 차림인데다, 혐오스럽게도 심지어 수십 명이 동물들처럼 한 공간에서 잠을 잔다(사진5).
기준과 희열이 사건에 연루되는 계기는 윤정이라는 여성이 납치되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첫눈에 반할만한 미모의 대학생처럼 보였으나, 유사성매매업소에 종사하는 여성으로 밝혀진다. <아저씨>에서, 태식은 악당들을 모두 처치한 다음 자신이 구해낸 이웃집 소녀를 만난다. 반면 <청년경찰>에서, 기준과 희열이 윤정을 구해낼 때 그녀가 마취상태이기 때문에 대화를 나누지 못한다. 기준은 미혼모의 아들로 등록금을 마련하기도 힘든 처지이고 윤정은 새 아빠의 폭행으로 가출한 여성이지만, 비슷한 또래의 청년들은 경찰대생과 유사성매매업소 종사자로 분리된다(윤정이 위기에서 벗어나자마자 스크린에서 사라져버리기 때문에, 사회질서 안에 있는 청년과 밖에 있는 청년으로 나누는 경향도 감지된다). 기준과 희열은 윤정을 구하기 위해 위험을 무릎 쓰게 되면서도 세 사람이 서로 마주하거나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하나도 없다. 이 영화는 폭력이 난무하는 끔찍한 범죄현장에서도 코믹한 정조를 놓치지 않으려고 하면서 조폭코미디영화처럼 관객이 편안하게 즐길 수 있도록 애를 쓴다(범죄의 대상을 열악한 환경의 여성으로 설정함으로써, 대다수 관객이 안전한 느낌을 갖게 한 점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계층이 다른 세 청년이 조우하는 장면은 폭력을 코미디로 덧칠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이다. 관객은 그들의 계층차이에서 오는 리얼리즘의 순간을 목도하게 될 것이므로, '최고의 오락영화'로 포스터에 명시한 영화에서 그렇게 난처한 장면의 연출은 피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로만 폴란스키의 <차이나타운>(1974)에서, LA의 '차이나타운'은 무법천지의 공간으로 묘사된다. 폴란드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폴란스키는 '차이나타운'을 통해 자신이 목도한 타락한 자본주의 미국사회를 은유하려고 했다. <청년경찰>이 대림동의 차이나타운을 무시무시한 공간으로 그려내면서 이를 통해 부패한 한국사회의 일면을 은유했다면, 이 영화의 많은 한계들은 어느 정도 가려질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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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욱
영화평론가
연세대에서 사회학을 전공하고, 동국대와 중앙대에서 영화이론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영화사에서 기획과 시나리오 컨설팅을 했고, 영화제에서 프로그래머로 활동했다. 영화평론가로 글을 쓰면서 대학에서 영화 관련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는 <블록버스터의 환상, 한국영화의 나르시시즘>(2002), <YU HYUN-MOK>(2008), <나쁜 세상의 영화사회학>(2012), <한국영화는 무엇을 보는가>(2016)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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