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규 전 대검 중수부장도 이해했다. 그가 애매모호한 말로 '노무현 차명계좌'가 있는 것처럼 말한 이유가 쌓인 감정이 많아서라고, '노무현 서거'로 불명예 퇴진한 자신의 처지를 만회하기 위한 것이라고 이해했다.
하지만 이것만은 이해하지 못한다. 조현오 경찰청장이 '후보자' 딱지를 뗀 지금 이 순간까지도 한나라당이 '노무현 특검'을 매만지는 이유를 도통 헤아리지 못한다.
아무리 둘러봐도 한나라당에 득 될 게 없다. '노무현 특검'을 운위해서 한나라당이 정치적으로 유리한 지형을 조성할 여지가 없다. 오히려 격화시킨다. 정치적 논란을 격화시키고, '노무현 서거' 때 조문한 500만명이 넘는 유권자들을 자극한다. 벌집 쑤시는 것이다. 그런데도 한나라당은 멈추지 않는다. 왜일까?
▲ 이인규 전 대검찰청 중수부장. ⓒ뉴시스 |
한나라당이 정말 그렇게 기대한다면 나중에 입맛 다시게 될 공산이 크다. "노무현 차명계좌는 없다"는 검찰 쪽 발언에 기대어 하는 전망만은 아니다. 아이러니 하게도 이인규 전 대검 중수부장의 말 또한 한나라당의 기대가 공염불에 그칠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인규 전 중수부장은 "(조현오 경찰청장의 차명계좌 발언은) 틀린 것도 맞는 것도 아니다. 꼭 차명계좌라고 하긴 그렇지만 실제로 이상한 돈의 흐름이 나왔다면 틀린 것도 아니지 않나"라고 말했다.
이인규 전 중수부장의 말이 그대로 수사 결과로 나타나면 난투극이 벌어진다. '사실' 규명이 '해석' 싸움으로 변질된다. "이상한 돈의 흐름"을 차명계좌로 볼지 말지를 놓고 극심한 대립이 벌어진다. 정파가 제 각각의 정치적 입장에 따라 "틀렸다"고 주장하고 "맞다"고 주장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더불어 '의도'를 둘러싼 공방이 전개된다. 차명계좌 존재 여부를 가리기 위한 특검이 전면 재수사에 나섰다는 논란이 일면서 수사에 개입된 정치적 의도를 둘러싸고 격한 공방이 오가게 된다.
국민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객관적 사실'을 특검이 내놓지 못하는 한, 또는 국민 누가 봐도 달리 해석할 수 있는 '주관적 평가'를 특검이 내놓는 한 한나라당은 정치적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결과적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을 '부관참시'한 당사자로 지목된다.
특검까지 거론하며 멀리 내다 볼 필요도 없다. 어차피 검찰의 사자명예훼손 사건 수사 때 벌어질 일이다. 수사 핵심은 '허위사실' 여부고, '허위사실'을 가르는 기준은 '노무현 차명계좌' 유무다. 물론 검찰이 조현오 경찰청장의 '차명계좌 발언 근거' 유무만 살피면 에둘러 갈 수도 있겠지만 검찰이 은연중에 적극성을 띤다면 사실상 재수사가 되고 그럼 특검제 하의 난투극과 비슷한 싸움판이 먼저 벌어진다. 아니 더 거세질지 모른다. 형식상 독립 수사를 하는 특검과 달리 이명박 정부에 속한 검찰이 벌이는 재수사이니까. 정치적 의도와 수사 공정성을 둘러싼 논란이 더 거세게 전개될 수 있다.
난투극이 벌어지면 한나라당은 본전을 건지지 못한다. 최소한으로 잡아도 한나라당은 양패구상의 화를 피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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