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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 현실은 첩보영화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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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 현실은 첩보영화잖아!

[오홍근의 '그레샴 법칙의 나라']① 아아, 헌법 제1조

가령 ´100원 어치의 은이 함유된 100원짜리 동전′이 통용되는 세상에 ′50원어치만의 은이 섞인 100원짜리 동전′이 추가로 유통되기 시작한다면 사람들은 ′50원 어치 은이 녹아든 동전′만을 쓰고 전에 사용되던 ′품질 좋은 동전′은 자기 집 장롱 속에 감추기 시작할 것이다. 16세기 영국의 경제 전문가 토마스 그레샴은 이 같은 화폐 유통 행태가 하나의 법칙에 따라 이뤄진다고 지적, ″악화는 양화를 구축한다″(Bad money drives out good)는 그레샴 법칙을 주창하고 나섰다. 그로부터 사람들은 세상살이에서 경제적인 현상과 관계가 없더라도 일반적으로 옳지 않은 것이 올바른 것을 밀쳐 내거나 좋은 일이 맥을 못 추는 상황이 나타날 때마다 이를 그레샴 법칙 현상이라 일컫기 시작했다.

지금 이 나라는 그런 그레샴 법칙이 횡행하는 나라가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지적했듯이 언론이 멱살 잡혀 질질 끌려 다니면서 민주주의는 파탄 났고, 부유층과 대기업만 살기 편해지면서 서민 경제는 그지없이 옹색스러워졌으며, 관리해야 할 대상을, 타도하거나 굴복 받을 대상으로 몰아가면서 남북관계는 불안한 상황과 손해를 자초하고 있다.

정치와 국민 사이는 물론 정부와 국민 사이에서도 신뢰는 무너져 밀려나고 있으며, 4대강 사업에서 보듯 대다수의 건강한 목소리는 소수집단의 눈 부라림에 잦아들고, 최근의 개각과 청문회의 '후보' 사퇴파동이나 민간인 사찰사건 처리과정에서 우리가 절절히 느꼈듯이 예측 불가능하고 절대로 공정하지도 않은, 그래서 한없이 당혹스런 일들이 꼬리를 무는 중이다. 단언컨대 그것은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국격(國格)′을 말하면서 ″촛불시위자들이 반성하지 않는다″고 일갈도 한다. "공정한 사회를 만들자"고 목청도 돋운다. 자기는 '바담풍(風)'하면서 국민들에게는 '바람풍'하라 하는 것이다. 사실은 이게 다 국민을 졸(卒)로 보는데서 빚어지는 현상들이다.

필자는 한때 현역 군인들로부터 칼부림 테러까지 당하면서 바르지 않은 세상에 대고 싫은 소리를 질러댔으나, 어쩌다 정치판에 발을 담근 죄로 한동안 입을 다물어 왔다. 그러나 세상 돌아가는 꼴을 보면서 말을 하고 싶은 욕망을 더 이상 억누를 수가 없게 되었다. 1년여쯤 전에 정치판과도 담을 쌓았다. 경건한 마음으로 감히 붓을 들고자 한다.

▲ 2008년 촛불시위 장면. 당시 시민들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헌법 제 1조를 외쳤다. ⓒ프레시안

하나의 나라가 세워지고 그 나라가 정상적으로 운영되어 가는데 반드시 지켜야 할 가장 큰 약속은 헌법이다. 무수한 법률과 규범들도 이 헌법정신의 범위를 벗어 날수는 없다. 그 헌법 중에서도 나라의 으뜸이 되는 가치를 담아 놓은 게 바로 헌법 제1조다. 오늘 필자가 말하고 싶은 게 바로 그 헌법 제1조 이야기다.

이 나라 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②'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등 2개항으로 되어 있다. 이중 ②항은 유신헌법에서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국민은 그 대표자나 국민투표에 의하여 주권을 행사한다′ 는 아리송한 조항으로 바뀌는 시련을 겪지만 건국 이래 2개항 모두 현행대로의 모습을 유지해왔다.

최근 들어 이 헌법 제1조의 2개항을 놓고 ″이 나라가 헌법 제 1조의 조항에 맞게 굴러가는 나라 맞나″라는 의구심을 표현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 맞는가, 맞다면 집회 및 결사의 자유,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 사상과 양심의 자유는 보장돼 있는가″하는 외침도 들리고, ″이 나라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것 맞는가, 청와대나 영포회로부터 나오는 것 아닌가″하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들린다. 특히 민주주의의 요체인 언론자유문제를 놓고는 할 말 있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아 보인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이후 그만큼 ′한 일′이 많기 때문이라 했다.

혜성처럼 등장한 최시중 씨를 중심으로 이 정권은 방송과 인터넷, 신문까지 거의 전방위로 멱살을 틀어쥐었다. TV의 종편채널 허가를 놓고 조중동 등 보수신문사주들은 방송통신위원회의 눈치 살피기에 여념이 없다. 그 사주들은 기자들에게 가 있어야 할 언론자유를 몰수해 둔지 이미 오래다.

방송장악은 이제 새로운 이야기도 아니다. 임기가 시퍼렇게 남아있는 KBS 정연주 사장을 몰아내기 위해 불법을 저지르는데 서슴지 않았고,(배임죄로 고발된 형사사건에서 정연주는 무죄를 선고 받았고, '정연주 해고를 취소하라'는 판결도 나왔다.) MBC사장 축출, YTN 길들이기에 성공했으며, 싫은 소리 한다고 MBC TV 메인 뉴스의 신경민 앵커도 생니 뽑듯 끌어내렸다. 쓴소리 전문 진중권 교수도 대학 강의를 박탈당했고, 가수 윤도현, 개그맨 김제동도 다 그렇고 그런 이유로 일거리를 빼앗겼음을 모르는 사람 거의 없다.

악화에 의해 양화가 구축된 사례는 최근 MBC <PD수첩>사건에서 또 한 번 극명한 모습을 보였다. '4대강 수심 6m의 비밀'이 ″허위사실″이라고, ″그래서 방송돼서는 안 된다″고 국토해양부가 낸 방송금지 가처분 신청을 법원이 기각 했는데도, 오히려 MBC내부에서 사장이 방송을 금지토록 한 이 희한한 사건은 비록 격렬한 여론에 떠밀려 회사 측이 프로그램을 방송하게는 했어도 (일부 가위질된 내용이었다) 민주공화국을 표방하고 있는 이 나라 헌법 제1조가 이 정권 들어 얼마나 심하게 몸살을 앓고 있는지 웅변해주고 있다. 당초 예정일이었던 8월 17일 <PD수첩>을 방송 못하도록 한 MBC사장이 어느 얼굴을 떠올리면서 그 같은 결정을 내렸을까를 점치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2009년 9월7일 이명박 대통령은 KBS 이사들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면서 ″방송을 장악하려 한다는 일부 주장이 있지만 사실이 아니다″고 말한다. 국민을 향해 입을 열 때 정치인은 거짓을 말할 수 있다고 쳐도, 한 나라의 대통령은 진실을 말하는 게 지엄한 도리다. 거짓말은 안 된다. 거짓말을 할 일을 해서도 안 된다.

헌법 제1조 ②항을 놓고도 우리는 그런 ′억장 무너짐′을 느낀다. 참으로 이 나라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고 있는가, 많은 사례는 다 제쳐두고 민간인 사찰사건 하나만을 놓고 보아도 우리는 소름이 돋는 심정을 금할 수 없다. 이건 차라리 으스스한 한편의 007첩보 영화다.

국무총리실 내부에서 조차 ′공직윤리지원관실′이란 기구가 총리실에 설치된 것을 그동안 모르는 사람이 많았다고 했다. 법규에 소관 업무로 명시되지도 않은 민간인 사찰을 밥 먹듯 했다고 했다. 한 중소기업인이 이 사찰망에 걸려 들어 자신이 100만 명도 넘게 조회한 인터넷 동영상 하나를 옮겨 온 것이 잘못인지 아닌지도 모르는 채 회사를 빼앗기고, 그도 모자라 살이 떨리는 공포감 속에서 일본까지 도망쳐 자살까지 생각했다고 했다. 한나라당 남경필의원을 비롯한 몇몇 국회의원들도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의원에게 싫은 소리를 했다 해서 공직 윤리지원관실 등의 불법 뒷조사를 당했다고 했다.

이 무시무시한 임무를 수행한 이인규 공직윤리지원관은 이사관급으로 국무총리실 박영준 차장(차관급) 휘하이며 장관급인 직속상관 국무총리실장도 박 씨와 이 씨 등이 무얼 하는지 몰랐다고 했다. 박영준 씨는 오랫동안 이상득의원의 보좌관을 역임한 인연으로 실세가 되었으며, 박 씨를 포함해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한 이상득 의원등이 모두 영일과 포항출신 공직자 모임인 영포목우회의 멤버들이라고 했다.

어처구니없는 일은 '사찰'보도가 터져 여론이 들끓기 시작했는데도 조사나 수사가 시작될 기미가 보이지 않은 점이었다. 며칠 지나서 대통령의 ″조사하라″는 지시가 떨어져서야 검찰은 움직였으나 이인규 공직윤리지원관 윗선은 처음부터 수사대상에서 제외되었다. 일개 이사관급인 이인규 씨는 누구의 지시로 누구의 힘을 믿고 왜 그런 불법을 저질렀을까. ″조사하라″는 대통령의 명령이 있었는데도 알 수 없는 이유로 검찰은 손도대지 못했다. 법에도 없는 그런 무소불위의 권력을 공직윤리지원관의 손에 쥐어준 그 사람들은 누구일까 그것이 알고 싶다.

해방이후 이 나라 현대사의 대부분은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한 피와 땀으로 얼룩져 있다. 많은 사람들이 목숨도 잃었다. 바로 헌법 제1조를 지켜내기 위해 온갖 희생을 감수하며 싸운 고된 여정이었다. 그 헌법 제1조가 다시 수난의 수렁으로 빠져드는 그레샴 법칙의 나라를 우리는 지금 목격하고 있다.

2008년 촛불 시위 때 미국의 시사 주간지 타임은 이명박 대통령에 대해 '군부권위주의가 정치권을 호령하고 문어발식 재벌이 경제를 장악하던 시대가 바로 이명박을 만들어내고 성공시킨 세계'라고 지적하면서 '현대건설 사장과 서울시장 재임시절 지시와 명령에 익숙한 지도력을 보여줬다'고 상기 시킨바있다.

최근 경제지표가 좋아졌다는 자화자찬이 들린다. 부유층과 대기업의 이야기일 뿐이라는 반론이 뒤를 잇는다. 이 대목에서 우리가 귀 기울여야 할 이야기가 있다. 바로 요새 서점가에서 선풍을 일으키고 있는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의 충고다. 그는 우리나라 방문길에 ″도덕적 가치에 대한 논의 없이 경영하고 관리하려 드는 정치 아래서는 그 어떤 민주주의 사회도 존속 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헌법 제1조대로 이 나라는 민주공화국이어야 한다. 이 나라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어야 하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와야 한다.

필자 오홍근 씨는 1988년 당시 <중앙경제신문>(<중앙일보> 자매지) 사회부장으로 '청산해야할 군사문화'란 제목으로 군 문화를 비판하는 칼럼을 썼다가 아침 출근길에 정보사 현역군인들로부터 칼부림 테러를 당했다. 그는 또 국민의 정부 초대 국정홍보처장과 청와대 공보수석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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