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나 19대 국회의원. 그는 정치를 하면서 엄마가 됐다. 더불어민주당 '청년 비례대표'로 공천을 받아 국회에 입성했던 그는 임기 내 결혼을 하고 출산을 했다. '여성'과 '청년'의 대표성이 턱없이 부족한 국회에서 임신과 출산은 매우 예외적인 경험이었고, 축하받을 일이라기보다 일을 제대로 못 한다는 눈총을 걱정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정작 당시엔 동료 의원들에게 임신 사실을 막판까지 말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랬던 그가 '엄마 정치'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20대 총선에서 낙마한 그는 환경운동연합 활동가로 일하기 시작했고, <한겨레>에 동명의 기획연재(장하나의 '엄마 정치')를 쓰다가 같은 문제 의식을 가진 엄마들을 만나 지난 6월 '정치하는 엄마들'이란 비영리 단체를 만들었다.
대한민국에서 '엄마'라는 말은 무한의 자기 희생과 노동을 내포하고 있다. 이런 '엄마'를 통해 여성들이 수행하는 수많은 돌봄노동은 그저 사적인 일로 치부됐고, 이를 통해 국가와 기업은 경제적 이득을 누렸다. '정치하는 엄마'들의 목표는 '엄마'라는 말을 정치적으로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것이다.
'정치하는 엄마들'은 40여 명의 회원으로 이제 막 출범한 조직이다. 하지만 "국사책에, 아니 세계사책에 남는 운동"을 하겠다고 한다. '한국판 서프러제트'를 꿈꾸며, 스스로가 변해 국가와 사회를 바꾸겠다는 장하나 '정치하는 엄마들' 공동대표를 만났다. 인터뷰는 지난 4일 서울의 한 카페에서 진행됐다.
(☞ '정치하는 엄마들' 바로 가기 : https://www.facebook.com/political.mamas/)
"쉬쉬했던 임신과 출산, 지나고 나니 후회된다"
프레시안 : 국회의원 임기 중 딸 두리를 출산하며 엄마가 됐다(2015년 2월). 현역 의원으로 활동하면서 임신과 출산을 경험한 예는 없는 것 같다. 일련의 과정이 본인에게도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장하나 : 당시 임신 사실을 공개적으로 알리지 않았다. 상임위원회 활동을 같이하는 의원 몇몇만 알고 있는 정도였다. 출산하면 쉴 수밖에 없으니까 두리를 낳은 후에야 동료 의원들에게 소식을 알렸다. '언제 임신해서 아기까지 낳았느냐?'며 놀라더라. 그만큼 쉬쉬했다. 청년비례대표로 의회에 들어왔는데 아이 낳고 쉰다고 할까 봐 웬만하면 알려지지 않기를 바랐다.
이탈리아 출신 리시아 론줄리 유럽의회(EU) 의원이 3년 동안 아이를 데리고 의회에 참석해 화제가 됐다. 두리를 임신하고 출산하던 현역 의원 시절, 론줄리 EU 의원처럼 했다면 어땠을까. 정치적 영향력이나 사회적 효과가 있었을 것이다. 지나고 나니, 후회가 많이 된다.
프레시안 : 그 경험을 바탕으로, '정치하는 엄마들'(이고은·장하나·조성실 공동대표)을 만든 것인가?
장하나 : 출산과 육아를 하는 엄마들을 세대로 구별하자면, 청년(19세~39세)이다. 그런데 '청년 정치'는 엄마를 다루지 않고, '여성 정치'는 엄마를 배제한다. 사실 19대에 이어 20대 때 또 국회에서 일하게 되면 '엄마 정치'를 할 생각이었는데, 총선 공천 경선에서 탈락했다.(웃음)
꼭 국회에 있지 않아도, 의원으로 당선되지 않아도 언제 어디서든 여러 가지 형태로 정치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정치하는 엄마들' 모임처럼…. 그리고 현역 의원이라면 지금과 같은 정치 조직을 만들 수 없다. 법적으로 제재를 당하는 것은 아니지만, 보기에 따라서는 팬클럽 같기도 하고. '정치하는 엄마들'을 준비하면서 전직 국회의원이란 신분이 장애가 될까 걱정했지만, 개인기로 극복했다.(웃음)
'뿔난' 엄마들이 나섰다
프레시안 : <한겨레> 토요판 연재물인 '장하나의 엄마 정치'가 현실에서 실현된 느낌이다. 전업 정치인이라 고민했다고 하지만, 글을 보고 문제의식에 공감한 엄마들이 모였다.
장하나 : '정치하는 엄마들'은 알던 사람들끼리 '이런 걸 해보자' 하고 모여 추진한 게 아니다. 독자들 사이에서 '오프라인 모임 한 번 합시다'라고 해서 누가 나올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만났다. 지난 4월 22일 첫 모임을 했는데, 서로 힘든 이야기를 하며 울고 웃고…. 그런데 글의 내용이 '정치해야 한다', '싸워야 한다'였기 때문에 이들 모두 싸우려고 온 사람들이었다. 걱정은 기우였다.
지난 6월 11일 창립총회를 하기까지 채 두 달이 걸리지 않았다. 단체의 목적을 정하는 데만 수년이 걸릴 수도 있는데, 정말 기적적으로 '정치하는 엄마들'이 만들어졌다.(웃음) 누구 한 사람이 '하자, 하자' 하고 부추겨서 될 일이 아니다. 모임에 참가한 이들의 열의와 분노가 폭발 직전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다.
프레시안 : 회원 구성은 어떻게 되나.
장하나 : 엄마 회원이 주를 이루고 있지만 할아버지와 할머니, 남편 등 현재 40여 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다. 우리는 성별이나 직함에 상관없이 회원들의 호칭을 '언니'로 통일해 부른다. 그래서 친정아버지에게도, 남편에게도 '언니'라고 하는 재미있는 일이 발생한다.(웃음)
대한민국 사회는 한쪽은 반말하고 다른 한쪽은 존댓말하는 관계가 형성되기 마련인데, 회원들끼리는 존댓말을 한다. 세상을 바꾸겠다며 다른 사람에게만 변화를 외치면 안 된다. 스스로가 달라지고 바뀌지 않으면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보육 문제, 노동부의 일이자 노동 시간 단축이 답이다"
프레시안 : '정치하는 엄마들'이 최근 국민 정책 제안 프로젝트인 '광화문 1번가'에 참여해 보육 분야 정책을 제안했다. 대한민국 보육 정책의 가장 큰 문제, 뭐라고 생각하나.
장하나 : 보육 문제라고 하면, 지금까지는 복건복지부나 여성가족부의 일로 여겼다. 하지만 고용노동부가 움직이지 않으면, 직장 내 출산 및 육아휴직이 보장되지 않는다. 여성들이 직장에서 생리휴가를 못 쓰는 것과 같은 이유다.
(지난해 고용노동부가 출산휴가 사용률이 저조한 사업장 455곳을 집중 점검한 결과, 84.6%인 385개 사업장에서 1149건의 모성보호 관련 위법 사례를 적발했다. 적발 유형은 출산 및 육아휴직 관련법 위반 외에도 출산휴가 미허용, 출산휴가 급여와 통상임금의 차액 미지급, 육아휴직 미부여, 육아휴직 기간 근속 불인정 등이다. 모성보호 관련 불법·불편사항은 '1350'으로 신고하면 된다.)
정부는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을 보다 실효성 있게 운영해야 한다. 적발과 처벌로 끝낼 게 아니라, 엄마 아빠가 보육을 좀 더 원활하게 할 수 있도록 주 40시간 근무 및 정시 퇴근을 보장하고 잠정적으로는 노동시간을 단축해야 한다. 오후 9~10시까지 야근하는 업무 환경에서 누군가 출산 및 육아휴직을 하면, 주변에 '업무 폭탄'이 떨어진다. 공무원은 출산 및 육아휴직으로 결원이 생기면, 단기간 공무원을 채용하는 방식으로 대체인력을 투입하지 않나. 기업 등 민간 부문에도 이런 방식이 확산되어야 한다.
(지난해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취업여성의 일·가정 양립 실태와 정책적 함의' 보고서를 보면, 2011년 이후 출산 15~49세 직장인 여성의 41.1%가 육아휴직을 사용했고, 나머지 58.9%는 육아휴직을 사용하지 않았다. 공무원·국공립 교사와 정부 투자·출연기관 종사자는 각각 75%와 66.7%가 육아휴직을 사용한 반면, 일반 회사원의 경우 34.5%만 육아휴직을 사용했다.)
장하나 : 부모를 대신해 육아를 책임지고 있는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초등학교 교사 며느리가 1등, 공무원 며느리 2등이라며 등급을 나눈다. 며느리 퇴근 시간에 따라 이들의 육아 퇴근 시간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자유한국당 원유철 의원이 지난 6월 21일 손자 손녀를 돌봐주는 조부모에게 가족양육수당을 지급하는 '할마할빠법(할머니엄마, 할아버지아빠)' 발의를 추진한다고 했다. 하지만, 이런 접근은 위험하다. 육아에 참여하면 돈을 주는 방식으로 '근로화'하는 것이다. 특히 워킹맘이 할머니 할아버지 찬스를 쓰는 주된 이유는 경력단절을 피하기 위해서인데, 국가가 책임지기보다는 조부모의 노동을 제도화하고 육아를 개인화하려는 의도다.
육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노동 문제를 건드려야 한다. 오후 6시 정시에 퇴근한다고 해도 집에 와서 아이를 씻기고 저녁을 준비하다 보면 오후 8시나 9시가 되기 일쑤다. 그나마 출퇴근 시간이 1시간 이하인 경우다. 엄마의 문제만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아빠 역시 늦게 퇴근하며 돈만 번다. 노동 시간을 단축하지 않고는 육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위 보고서에 따르면, 첫 아이 출산 전후 6개월간 취업 중이던 여성 노동자의 44.6%가 경력단절을 경험했다. 공무원·국공립교사는 11.2%만이 경력단절을 겪었지만, 일반 회사원은 절반에 가까운 49.8%가 출산 뒤 일을 그만둔 것으로 나타났다.)
프레시안 : '정치하는 엄마들'은 보육과 노동 외 또 어떤 문제를 제기할 계획을 가지고 있나.
장하나 : 앞으로는 무기류를 본떠 만든 장난감을 교육시설이나 보육시설에서 퇴출하자는 운동을 할 생각이다. 엄마들은 기본적으로 평화 통일에 관심이 많을 뿐 아니라, 남자아이를 둔 엄마일수록 군 문제에 관심이 많다. 그런 차원에서 무기 장난감 퇴출은 엄마들이 할 수 있는 일종의 평화 운동이다.
엄마를 '벌레'로 만들다
프레시안 : 소설 <82년생 김지영>(조남주 지음, 민음사 펴냄)의 주인공 김지영은 현재 엄마들의 문제의식을 대변한다. 여성 입장에서는 일상적인 이야기를 모아놓은 듯하지만, 남성 입장에서는 '정말, 이래?'라며 놀라기도 한다. 그나마 이 책을 읽는 남성들은 여성 문제에 관심이 있는 편인데도 말이다. 여성과 남성, 모두 각자의 생활에 대한 이해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장하나 : 사실 같은 여성끼리도 없다. 서른아홉 살에 두리를 낳았는데, 출산하기 전까지 대한민국에 '엄마'라는 계급이 있는 줄 몰랐다. 여성도 그런 걸 보면, 남성들이 책을 보고 충격을 받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여성들은, 또 엄마들은 출산과 육아로 고생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하지만, 군대 이야기는 어떤가. 남성들은 누가 묻지 않아도 군대 이야기를 자주 한다. 직접 경험하지 않았지만, 이야기를 많이 들어 생생하다.(웃음)
프레시안 : 그런 이야기를 하면 더 고생한 엄마들, 즉 엄마의 엄마들이 '유세 떤다'고 한다.(웃음)
장하나 : 일반적으로 군대 복무는 나랏일이라고 생각한다. 남성은 사회에 공적인 기여를 한 것이라는 인식에 군대 이야기를 어디서든 드러내놓고 한다. 하지만 여성의 출산과 육아는 국가 공동체에 기여한 일로 여기지 않는다. '애국자'라며 출산을 장려하지만, 어디까지나 사적인 일로 취급된다. '네가 좋아서 결혼하고 아이 낳았으면서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는 식이다.
이렇듯 출산과 육아의 공적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다 보니, 엄마들 스스로 목소리를 내지 않게 됐다. 엄마의 존재 자체가 이 사회의 '그림자'가 된 것 같다. 투표권은 있는데, 2등 시민 같은 느낌? 우리 스스로도 이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지 않나. '엄마가 정치에 대해 뭘 알아? 밥하고 김치 담글 줄이나 알지.'
프레시안 : 소설에도 나왔는데, 얼마 전부터 '맘충(민폐 엄마)'이라는 단어가 엄마들을 비하하는 의미로 쓰인다. 소설에서 김지영 씨는 어느 날 유모차를 끌고 동네 공원에서 1500원짜리 커피를 마시다 "서른쯤 된 양복 입고 회사 다니는 멀쩡한 남자들"에게 "맘충 팔자가 상팔자야"라는 이야기를 듣고 충격에 빠진다.
"사람들이 나보고 맘충이래. (중략) 죽을 만큼 아프면서 아이를 낳았고, 내 생활도, 일도, 꿈도, 내 인생, 나 자신을 전부 포기하고 아이를 키웠어. 그랬더니 벌레가 됐어. 난 이제 어떻게 해야 돼?"(<82년생 김지영> 164~165쪽)
장하나 : '엄마'라고 하면, TV 드라마에서 보여주는 고정된 이미지가 있다. 남편의 직장 내 성공을 위해,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상사와 선생님에게 뭐든 갖다 바치며 굽실굽실하는 모습. 대한민국 엄마와 아줌마를 정말 벌레처럼 그려 놨다. 사실 승진에, 취업에, 스펙에 목매는 우리 모두가 벌레이고 괴물이면서도 엄마만 그렇다는 듯 매도한다.
'한국판 서프러제트'로 기록될 것
프레시안 : 그동안 출산과 육아, 즉 가정의 일은 사적인 영역이었다. 공적인 개념으로 다뤄지는 정치 이슈가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은 국가가 출산과 육아를 얼마만큼 보장해 주는가가 핵심이다. 정치적인 개입 없이는 해결되지 않는 일이 됐다. 한 발 더 나가 여성은, 엄마는 관련 정책의 수혜자가 아닌 주체자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엄마'라는 계급이 가진 정치의 의미는 사적인 것을 공적인 개념으로 확장시켰다는 것이다. 엄마들이 출산과 육아 문제를 직접 이야기한다는 것은 일종의 '점핑(jumpping)'이다.
장하나 : 엄마들이 아이를 낳고 키워봤더니, 육아는 자식과 부모라는 혈연관계가 아니라 국가와 국민 간 직접적인 관계로 접근해야 된다는 생각이다. '정치하는 엄마들'은 그래서 발을 빼겠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보육 정책은 외벌이 남성을 모델로 설계되어 있다. 그래서 여성이 '독박육아'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헌법 위반이다. 아기를 만들 때 어떻게 하나. 남녀가 같이 하지 않나. 육아는 더도 덜도 아니고, 딱 그때처럼만 같이 하면 된다.(웃음)
출산 후 육아를 담당하며 경험하는 감정은 예상 밖이다. 스스로가 노예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의기소침해지고 무기력해진다. 이를 혼자 극복하기란 어렵다. 주변에서 마음의 벽을 깰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그래서 엄마들은 화를 내는 동시에 많이 아프다. 해결 방법은 분노하며 싸우는 수밖에 없다.
독자 중 이런 엄마들이 있다면, '정치하는 엄마들'에 참여해라. 최소한 정신 건강이 좋아진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덤이고. 엄마들의 목소리가 세계사를 다시 쓸 기세다. 처음에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우리가 잘되면 국사책에 나올 것이다'라고 했는데, 최근 느낌은 세계사에 나올 것 같다.(웃음)
프레시안 : '한국판 서프러제트'?(웃음)
(서프러제트(Suffragette)는 20세기 초 영국에서 일어난 여권 신장과 여성 참정권 모임으로, 이후 '여성 참정권 운동가'를 일컫는 대명사가 됐다. 사라 가브론 감독이 2015년 동명의 제목으로 영화화했다.)
장하나 : 엄마들의 열의만큼은 서프러제트를 능가한다(웃음) '정치하는 엄마들'은 여성의 참정권을 넘어 민주주의의 의미, 국가의 역할 또는 국가관을 재정립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동안 여성은 출산과 함께 자연스레 '돌봄' 역할을 해왔다. 시부모가 편찮아도 그 집 아들이 아니라, 며느리 또는 딸들이 돌봤다. 그러나 이제 국가의 역할은 이런 돌봄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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