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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해야 한다' 중압감, 내려놓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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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해야 한다' 중압감, 내려놓읍시다

[김형찬의 동네 한의학] 너무 잘 하려고 하지 말자

"일할 때 지나칠 정도로 잘 하려고 하진 않는지요?"

"조금 그런 경향이 있어요. 남들은 유난 떤다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제 마음이 불편해요. 무슨 일이든 제가 정한 기준을 충족해야 마음이 편해요."

"물론 매사 완벽하면 좋지요. 대충 넘어가면 안 되는 일도 있고요. 하지만 한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는 법이거든요. 적절히 덜어내지 못하고 쌓아 두기만 하면 그 중압감을 마음과 몸이 버티지 못해서 탈이 납니다. 지금 환자분의 상태가 그래요. 당장의 치료는 그간 버틴 몸과 마음의 회복에 초점을 두겠지만, 삶을 다루는 방식에 조금은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그게 안 되면 적절한 기법을 이용해 그 중압감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차오르지 않도록 조절하는 연습이라도 하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다양한 병증이 생길 테고, 그 증상에 일일이 대응하다 보면 나중에는 엉킨 실타래처럼 복잡해질 거예요. 그러니 지금의 치료는 물론이고 앞으로를 위해서라도 환자 본인이 달라질 필요가 있습니다."

병이 어디에서 왔는가를 추적하다 보면 일이나 운동을 많이 한 후 어깨가 아픈 것처럼 원인이 간명하게 드러나는 경우도 있지만, 실상은 마음에 더 크게 영향을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몸과 감정과 정신이 서로 영향을 주는 것이 인간이라는 점에서 당연한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후자의 경우 치료 시 간과하기 쉽지요. 병이 가볍고 일시적이라면 증상만 해결해도 몸이 알아서 회복합니다. 하지만 몸의 증상은 물 위에 뜬 빙산의 일부이고, 실상은 생각과 감정의 바다에 가라 앉아 있는 경우 드러난 것만을 걷어내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이런 병증의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중압감입니다. 중압감에 의한 신체증상은 주변에서 성격도 좋고 일도 잘하고 성실하다는 평가를 받는 분에게서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분들은 상담할 때도 '참 괜찮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지요. 주된 증상은 두통, 어깨 뭉침, 복통, 소화불량, 역류성 식도염, 변비나 설사, 불면 그리고 만성적인 피로감 등입니다. 여성은 생리통, 생리주기의 이상 혹은 자궁의 병증과 같은 증상이 동반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중압감은 삶의 무게에 내가 눌린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변 상황이나 자신이 만들어낸 기준으로 인해 일상이 버거운 결과지요. 무거운 배낭을 메고 산을 오르는 것을 연상하면 쉽게 이해가 될 것입니다. 처음 힘이 있을 때는 그 무게를 잘 견디면서 올라가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무겁게 느껴집니다. 어깨가 눌리며 아파 오고, 등과 허리는 조금씩 구부정해집니다. 숨도 점점 차오르지요. 적당한 때 쉬면서 물도 마시고 배낭을 가볍게 해주면 문제가 없지만, 휴식과 재충전 없이 무리한 산행을 하면 결국 다치거나 조난을 당하게 됩니다.

심리적 배낭도 이와 같은 현상을 일으키기에, 위에 언급한 증상이 나타납니다. 이것이 발단이 되어 더 중한 병이 생기기도 합니다. 힘들어도 스스로 짊어져야 한다는 마음의 짐이기 때문에 내려놓는 것 자체가 어렵습니다. 자신의 짐을 남에게 잘 떠맡기거나 나 몰라라 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런 분은 적어도 중압감 때문에 병 들지는 않겠지요.

그럼 중압감을 어떻게 치료할 수 있을까요? 의사가 환자가 처한 환경을 바꿔줄 수도 없고, 마음을 뚝딱 고친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현재의 불편함만을 해결해주는 것으로는 부족하고요.

일단 환자 자신이 병의 길을 인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감정이나 생각의 패턴이 어떤 식으로 몸의 증상을 만들어 내는지를 알면 해결책은 자연스레 나오게 됩니다. 이러한 작업을 의사와 함께 해나가면서 과도한 중압감으로 인한 몸의 긴장반응을 풀어주고, 정체되고 막힌 통로를 열어 그간 소모된 부분을 보충해 줍니다. 이렇게 우리 몸이 스스로 회복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놓고 기다리면, 그간 중압감에 눌려 지친 몸과 마음이 조금씩 활력을 채웁니다. 물론 이 과정이 순조롭지 만은 않지요. 삶이 그렇듯 치료도 멀리 보면 앞으로 나아가지만, 잠깐을 두고 보면 비틀거리기 마련이니까요.

겉으로는 어떻게 보일지라도 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때론 그 속에서 길을 잃기도 하지요. 잘 하는 것은 좋지만 왜 잘해야 하는지를 잊지 않는 게 더 중요합니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잘 보이거나 어떤 일을 잘 하려고 사는 게 아니라, 행복을 위해 살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 삶은 등산과도 비슷합니다. ⓒ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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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찬

생각과 삶이 바뀌면 건강도 변화한다는 신념으로 진료실을 찾아온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텃밭 속에 숨은 약초>, <내 몸과 친해지는 생활 한의학>, <50 60 70 한의학> 등의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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